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5)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35화(135/200)
17장 가짜 : 호출된 망나니
조지는 신성국 출신 서민이다.
그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제국만 해도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치료 수단이 막막했다.
귀족이야 집안에 의원이나 사제를 들인다지만 서민인 그에게 무슨 돈이 있단 말인가.
반면에 벨라누스에서는 항시 사제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조지 같은 서민도 약소하나마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감사하며 살던 도중.
결혼하고 자식이 태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조엘.
아이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다.
조엘은 앉은뱅이였다.
“어째서···어째서···흐흑···”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신전으로 갔다.
사제라면 치료할 수 있겠지.
그들은 대륙 최고의 치유술사니까.
“저희 정도의 신성력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성녀님이라면 가능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성녀라면 가능하다.
조지의 머릿속에는 성녀라는 단어만 맴돌았다.
그때부터 재산을 하나하나 팔았다.
집도 팔고 농지도 팔고 가구도 팔고.
간신히 모은 전 재산 오백 골드.
결국 성녀를 만날 수 있었다.
“불쌍한 아이로군요. 벨라누스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겁니다.”
레플리 성녀님은 너무나 온화하고 화사하고 따뜻했다.
조지는 저 아름다운 여인이 조엘을 구원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파아앗!!!
발휘된 신성력이 방을 가득 채웠다.
이어서 기적이 일어나려 한다.
조엘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몸을 세우려 했다!!
“조엘! 힘내! 너는 할 수 있어!”
애타게 부르짖었으나, 기적은 딱 거기까지였다.
반쯤 몸을 일으킨 조엘은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원래의 앉은뱅이로 돌아왔다.
“안타깝군요. 조엘은 벨라누스님에게 선택 받지 못했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벨라누스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신이잖습니까?”
“벨라누스님 또한 저희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성의를 보인 인간을 총애하기 마련이지요.”
이해할 수가 없다.
벨라누스의 화신이라 불리는 성녀의 입에서 저런 발언이 나오다니.
“그렇다면 제가 헌금한 기부금이라도 돌려주십시오. 그건 제 전재산입니다.”
“형제님의 성의에 벨라누스님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네?”
“형제님, 귀가 안 들리십니까? 벨라누스님께서 기뻐하신다고요.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 주세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아들도 치료하지 못해놓고 재산만 꿀꺽하다니.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조지는 격렬히 저항했고, 그 결과 흠씬 두들겨 맞고 조엘과 함께 신전에서 쫓겨났다.
이후에 그는 술로 날밤을 지새웠다.
하도 억울하고 분해서 잠이 안 왔다.
아들이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모습만 보면 가슴이 미어터졌다.
‘신성국에 태어난 걸 축복이라 여겼는데, 사실 저주였구나.’
조지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떠올렸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아들과 함께······
“자네, 그 소식 들었나?”
일터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의 잡담.
“무슨 소식?”
“[그림자 성녀] 말일세.”
성녀라는 단어만 나와도 치가 떨리는 조지다.
“모르는 일이야.”
“허허! 요새 완전 난리인데, 한 번도 못 들어봤단 말인가?”
“꼭 알아야 하나?”
“당연하지. 그림자 성녀라고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제인데, 못 고치는 병이 없으시단다.”
조지는 비웃었다.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성녀조차 조엘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날을 기점으로 조지는 믿음을 버린지 오래였다.
“그래봐야 사이비겠지.”
“사기꾼이었으면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을 걸세. 자네 루크 알지? 신전을 짓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지가 마비됐잖나.”
“알지.”
“루크가 새 삶을 찾았네.”
“···뭐라고?”
“척추가 부러졌던 루크가 정상인처럼 생활한다고! 못 믿겠으면 직접 보고 오게나.”
반신반의하던 조지는 즉시 삽을 내팽개치고 루크를 만나러 갔다.
루크는 동료의 말대로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림자 성녀님은 내 삶의 빛이자 희망일세. 모든 사제가 고개를 저을 때 그분만이 나를 돌아봐주셨지.”
“어째서 그분을 성녀라고 일컫는가?”
“당신께서는 자신이 진짜 성녀고 레플리 성녀를 가짜라고 하시네. 처음에는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지금은 믿네. 그림자 성녀님이 진짜 성녀님이야.”
조지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쳤다.
아들 조엘을 치료하지도 못하고 기부금만 꿀꺽하던 레플리 성녀.
심지어 헌금의 양에 따라 신의 사랑이 차등 분배된다는 무논리를 펼치던 여자.
정말로 레플리는 가짜고 그림자 성녀가 진짜일까.
어차피 잃을 것 하나 없고 밑져야 본전이다.
“루크, 그림자 성녀를 만나고 싶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가?”
* * *
스파앗!!
신성한 빛이 퍼지고.
부러진 팔이 온전하게 붙는다.
방금 전까지 격한 고통을 호소하던 환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팔을 매만졌다.
“이게 도대체···”
“벨라누스님의 축복입니다.”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느낀 환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저는 목수입니다. 오른팔을 다쳤을 때만 해도 눈앞이 깜깜했는데 그림자 성녀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가면 쓴 소녀가 대답했다.
“저는 그림자 성녀지만 진짜 성녀입니다. 태양 아래 있는 성녀는 가짜 성녀고요.”
“아무렴요. 기적을 목도했는데 어찌 부정하겠습니까? 오늘부터 제 마음속 진짜 성녀는 그림자 성녀십니다.”
환자가 거듭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잠시 한적해진 실내.
가면을 벗은 메리안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칸님, 정말 괜찮을까요? 레플리 성녀가 제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병사를 보내올 거예요.”
메리안이 진짜 성녀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그녀에게 신성력을 사용한 치료 행위를 지시했다.
본래 성녀가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당연한 의무다.
다만 그동안 신성력을 발휘하는 젊은 여자를 모조리 신전에서 잡아갔다.
끌려간 여인이 신전에서 어떤 고초를 겪는지는 똑똑히 들었기에 메리안은 음지에서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안가를 마련한 다음, 희망자에 한해 안대로 시야를 가린 뒤 불편한 몸을 고쳐주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환자들은 메리안의 기가 막힌 신성력을 체험하고는 동네방네 소문을 퍼트렸다.
결국, 그녀가 그림자 성녀로 유명해진 건 순식간이었다.
또 하나 메리안이 유명세를 탄 이유는 치료비를 일절 받지 않아서도 있었다.
부상의 정도와 상관없이 공평하게 치료했고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거듭 사양해도 고마운 마음에 두고 간 계란이나 과일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보수 진료였다.
메리안은 치료한 환자마다 본인이 진짜 성녀이며, 현재 홀로니움 대신전에 있는 레플리 성녀는 가짜임을 강조했다.
처음에 치료받은 환자들은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기존 성녀에 대한 경외심 때문인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림자 성녀의 기적이 연일 이어지고 팬덤까지 형성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말로 메리안을 진짜 성녀로 여기는 추종세력이 여기저기에 생겼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단다. 결국 언젠가는 레플리와 부딪치겠지. 그 전에 너의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해.”
메리안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벌컥 문이 열렸다.
“칸님.”
“왜.”
“신성국 부대가 접근해옵니다.”
“안가가 탄로났군.”
“그렇습니다.”
“다음 안가로 이동한다.”
안전은 어떤 요소보다 중요하다.
메리안이 잡히면 끝이니까.
시온과 캠벨을 동원해서 그녀의 안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오랜만에 돌아온 시온이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 암살자이자 정보전에 특화된 그녀는 신성국 수색대를 농락했다.
적의 모든 움직임이 그녀 손바닥 위에 있었고, 신성국 병사들은 우리가 사라진 빈자리에서 번번이 허탕만 쳤다.
이동한 아지트에서 치료 행위를 이어나갔다.
다음 환자는 아들을 업고 들어온 건장한 사내였다.
코끝이 빨간 것이 살짝 알코올 중독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벨라누스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당신이 그림자 성녀요?”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성녀지요.”
“진짜 성녀라면 내 아들 좀 고쳐주시오.”
아들은 가엽게도 앉은뱅이였다.
아비된 사내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결코 메리안이 아들을 고칠 수 없다 확신하는 모양새.
어디서 크게 데이기라도 했나.
“벨라누스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군요.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스파아앗!!!
엄청난 신성력이 휘몰아쳤다.
이후 앉은뱅이였던 아들이 부들거리며 일어났다.
누군가의 부축조차 없었다.
스스로 벽을 짚더니 천천히 걸었다.
본인도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기색이다.
“아버지, 저 걸을 수 있어요! 걸을 수 있다고요!”
“조엘! 정말이니? 벽에서 손을 떼보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어.”
조엘이라 불린 아이가 벽에서 손을 뗐다.
이후로도 조엘은 잘만 걸었다.
오히려 점점 적응하며 살짝 뛰기까지 했다.
조지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흐어, 흐어어엉!!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제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벨라누스님의 대리인. 감사는 벨라누스님께 하십시오. 그보다 조엘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아버님께서 죽는다는 말씀을 쉽게 하시면 곤란합니다.”
뛸듯이 기뻐하기도 잠시, 조지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그림자 성녀님,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아무런 돈이 없습니다. 모든 재산을 신전에 기부하고 아들의 치료를 맡겼습니다만, 재산만 빼앗기고 아들은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조지는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예상했다.
자신이 한 행위는 무전취식이나 다름없었으니.
혹시라도 조엘의 다리를 다시 부러트릴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냉랭한 대답 대신 따뜻한 미소였다.
“괜찮습니다. 벨라누스님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요. 저는 조엘이 마음껏 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이 되었습니다.”
조지의 심장이 철렁했다.
얼마 전 만났던 레플리 성녀는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 얼마나 바치느냐에 따라 신의 사랑이 차별적으로 지급된다.’
그러나 똑같이 벨라누스님을 섬기는 그림자 성녀의 말은 전혀 달랐다.
‘신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조지는 본능적으로 누가 진짜 성녀인지 알 것 같았다.
“성녀님, 당신이야말로 저희의 구세주였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흑···”
오늘도 또 한 명의 열정 신도를 얻었다.
그림자 성녀의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 * *
벨라누스 신성국.
홀로니움 대신전.
헐거운 옷을 입은 금발 여인이 맨발을 탁자에 올린 채 포도주를 병째로 마시고 있었다.
예배실은 난장판이었다.
깨진 화분과 찢어진 초상화가 온 바닥에 어질러져 있었고,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썩어가며 악취를 풍겼다.
똑똑
“크림슨입니다.”
문이 열리며 성기사 한 명이 들어왔다.
기사는 엉망이 된 실내를 보며 얼굴을 굳혔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 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좀 치워라.”
성기사는 신전에서 고급인력에 속한다.
신의 검이라 대우받으며 월급도 높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성녀가 가진 권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걸.
게다가 그에게는 레플리에게 절대복종 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색욕이시여.”
성기사이자 황혼교도였기에.
검 대신 걸레를 든 크림슨이 청소를 시작했다.
빈 깡통을 발로 툭툭 건드리던 레플리가 입을 열었다.
“요새 나를 사칭하고 다니는 발칙한 년이 있다던데?”
“그림자 성녀 말씀이십니까?”
“그래. 당연히 잡았겠지?”
“죄송···커헉!”
성녀가 던진 유리 재떨이가 크림슨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붉은 혈액이 이마를 타고 턱 끝으로 떨어졌다.
“미쳤어? 아직도 못 잡아?”
“죄송합니다. 워낙 신출귀몰해서 도저히 파악이 안 됩니다.”
“이딴 무능한 놈도 황혼교도라니, 프란시스가 죽은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피를 흘리면서도 묵묵히 방을 청소하던 크림슨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림자 성녀는 혼자 활동하는 여자가 아닌 듯합니다. 분명 배후세력이 있습니다.”
“확실해?”
“예.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확실하게 저희 눈을 피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예배실이 얼추 깨끗해졌다.
레플리는 청소 내내 짜증을 부렸다.
그때였다.
밖에서 대주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녀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성녀는 하루에도 수백 통씩 편지를 받는다.
그만큼 인기 있는 자리다.
99%의 편지는 레플리의 명으로 화로에 소각되어 왔다.
1%의 편지만 겨우 살아남는데, 보통은 귀족이나 대상인 등 영향력 강한 자의 사업용 편지였다.
“어떤 사람이 보냈는지 말해.”
“칸이란 모험가입니다.”
“칸? 그게 누군데?”
옆에 있던 크림슨이 보충설명했다.
“최근 마수의 숲지기를 잡고 오리하르콘으로 승급한 불세출의 천재모험가입니다. 행방불명된 헤논 로이드 대신 악마살해자란 위명을 이어받았습니다.”
“요새는 개나 소나 악마살해자라고 하네. 아무튼 줘 봐.”
봉투를 뜯고 편지를 읽은 색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네가 읽어보든가.”
편지를 넘겨받은 크림슨이 내용을 확인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림자 성녀의 배후를 알고 있습니다. -칸-]편지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
크림슨이 할 말을 잊었다.
색욕에게서 숨 막힐 듯한 기세가 뿜어졌다.
“칸이라고 했나? 당장 내 앞에 불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