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4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40화(140/200)
17장 가짜 : 연기한 망나니
요한과 함께 창고에 도착했다.
문을 닫고 단둘이 되자 그는 어리둥절한 기색이다.
“기껏 온 장소가 으슥한 창고라니. 혹시 남색(男色)을 밝히나? 만약 그렇다면 상당히 의외인데.”
“그보다 더 의외인 걸 보여드리지요.”
위장 크림을 지웠다.
그러자 내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하얀 피부에 오똑한 콧대, 요요한 녹안.
요한과는 일전에 엘든 왕국에서 검을 맞댄 사이다.
그가 곧바로 알아봤다.
“너는···헤논 로이드?”
“오랜만입니다.”
스르르릉
검을 뽑은 요한이 나를 겨눈다.
“신성국의 추기경이 실종되었다던 헤논 로이드라니. 신성모독이 따로 없군.”
양손을 들어서 싸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검을 거두어주시죠.”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지?”
“예전에도 요한님은 제가 악마에 씌었다며 공격하셨죠. 결과적으로는 오해였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범하실 겁니까?”
옛날 이야기를 꺼내주자 요한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짧게 이야기해라. 듣고 판단하겠다.”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나태에게 급습당한 시점부터 신성국에 오게된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레플리가 가짜 성녀이며 심지어 황혼교의 칠대사도 색욕이라는 사실도 빠짐없이 고했다.
당연하게도 요한은 불신했다.
“듣기만 해도 불쾌하군. 당장 해명하라. 그러지 못한다면 성녀를 모욕한 죄로 참하겠다.”
증거를 보여주려고 창고에 데려왔다.
석상을 움직여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를 보여줬다.
비밀통로를 발견한 요한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신전에 이런 공간이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겠지.
“이쪽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발광석조차 부족한 어두컴컴한 실내.
꿉꿉한 습기가 호흡을 잠식한다.
이끼 섞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
음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녹슨 쇠창살 감옥.
갇힌 죄수들은 전원 젊은 여인이었다.
어찌나 깡말랐는지 갈비뼈가 앙상하다.
온몸에는 크고 작은 멍이 가득했다.
손목은 철제 수갑에 묶여있었고, 발목에 달린 무거운 쇠구가 자유를 제한했다.
결박부위는 피부가 짓눌렸고 염증과 출혈로 인해 고름이 줄줄 흘렀다.
구석에는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지옥 같은 환경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굶어 죽은 사람보다 스스로 혀를 깨문 사람이 더 많았다.
어찌나 원통하고 억울했는지 모두가 뜬눈으로 죽어있었다.
“세상에···아아, 벨라누스시여···”
요한은 크게 경악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거구의 사내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연신 성호를 긋는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이곳은 레플리가 만든 장소입니다. 그녀는 무고한 여인에게서 신성력을 착취해서 본인이 성녀 행세를 하고 있죠.”
“그럴 리가 없다. 이곳은 네가 만든 장소 아니더냐! 감히 누구를 속이려 드는 게냐?”
“정 그러시면 갇힌 여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잡혀 왔고 무슨 일을 당했는지요. 그러면 답이 나오겠지요.”
요한은 내 말대로 했다.
납치된 여인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성토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결백했다.
굳이 죄를 찾자면 신성력으로 의료 행위를 벌였다는 정도일까.
병자를 동정한 대가는 가혹했다.
이들은 단순히 신성력만 착취당한 게 아니다.
다양한 방면으로 학대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 몇몇 가해자는 부주의하게 정체를 노출했다.
여인들은 감옥을 관리하는 간수가 성직자의 가면을 쓴 황혼교도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여인은 레플리가 가짜 성녀이며 황혼의 대간부 색욕이라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수많은 증인과 증거가 전부 레플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제아무리 요한이 성녀바라기라도 도저히 두둔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믿을 힘들다···레플리님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마.”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웃기고 멍청한 소리다.
요한이 가서 ‘성녀님 색욕입니까?’ -라고 물으면 레플리가 ‘나는 색욕이 맞아요!’ -라며 순순히 인정할까.
보나마나 온갖 변명으로 부정하겠지.
지하실의 존재를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밀 모습이 벌써부터 훤히 그려졌다.
“요한님, 차라리 이렇게 하시죠.”
그에게 제안했다.
어차피 요한은 레플리에게 콩깍지가 씌인 상태다.
그렇다면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요한의 콩깍지가 벗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면 된다.
* * *
신성국에는 중앙 광장이 있다.
서울의 광화문이나 명동 같은 장소다.
낮 동안 시간이 남는 사람은 죄다 이곳에 몰려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항상 활기가 넘쳤는데, 오늘은 그 수준이 평소보다 심했다.
“저게 사실일까?”
“나도 모르지.”
“엄청나군.”
“신성국이 뒤흔들리겠어.”
사람들이 요란을 떠는 이유.
그것은 밤사이에 중앙광장에 붙은 대자보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가짜 성녀 레플리를 고발합니다. 그녀는 벨라누스님을 기만한 역적이자 죄인입니다.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범죄자입니다.진짜 성녀가 누구인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내일 정오에 홀로니움 대신전 앞에 있겠습니다. 안 나오시거나 병사만 보낼 시 가짜임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림자 성녀-]
대자보는 하나만 붙은 게 아니었다.
조금 높다 싶은 담장에는 여지없이 붙어있었다.
자그마한 전단지 형식으로도 뿌려졌는데, 신성국 국민이라면 모두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이건 고발을 빙자한 도전장이었으니까.
그동안 메리안이 분발해준 덕분에 그림자 성녀의 인지도는 치솟고 있었다.
적어도 신성국에서 메리안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정면대결을 선택했으니, 기대감과 흥분감이 신성국 전역에 퍼졌다.
한편, 이 소식은 레플리의 귀에도 들어갔다. 레플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를 호출했다.
“숨어지내던 년이 겁을 상실했네. 내일 그년이 나타나면 당장 체포해버려.”
“상당한 악수를 두시는군요. 성녀님이 직접 나서지 않고 병사만 보내면 모두가 의구심을 품을 겁니다.”
속을 슬쩍 긁자 색욕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어떻게 하라는 거야?”
“대중 앞에서 신성력 쓰는 모습만 가볍게 보여주십시오. 아무리 그림자 성녀가 유명하다 해도 감히 레플리님만 하겠습니까?”
그림자 성녀의 지지세력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신성국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아직까지는 레플리의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들에게 메리안은 결국 아류고 레플리를 돋보이게 할 조연이었다.
만약 똑같이 신성력을 발한다면, 결국 대중의 지지는 레플리를 향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분위기가 넘어오고 그림자 성녀를 잡아들여야 사람들이 납득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강제로 상황을 만들면 그림자 성녀를 죽인다 해도 이후 다른 성녀가 나타나 레플리님의 자리를 위협하겠죠.”
내 의견은 일견 타당했다.
레플리가 귀를 기울였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림자 성녀를 죽이지 말고 지하실에 감금하시죠. 대중에게는 사이좋게 지낸다고 포장하세요. 그래야 그림자 성녀의 지지자도 레플리님이 흡수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후 그림자 성녀의 신성력은 레플리님이 빼앗아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반항하면 다른 여인처럼 고문을 통해 굴복시키고요. 그림자 성녀를 레플리님의 꼭두각시로 삼는 겁니다.”
“끝까지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은 없습니다. 혹여 강한 의지로 버틴다면 눈앞에서 죄없는 사람들 손가락이나 잘라주지요. 본인이 성녀라면 알아서 말 잘 듣는 개가 되어줄 겁니다.”
타인을 인질 삼아 협박한다고 하자 색욕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예전에도 느꼈는데···역시 너는 우리 쪽이 어울려.”
“그런 말씀 마시지요. 황혼보다 더 좋은 대가를 주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쪽에 붙을 테니까요.”
“고급 인력 붙잡기 어렵네. 하지만 제국의 황제조차 교황과 성녀를 줄 수는 없단다? 너는 평생 내 밑에서 일해야 해.”
“이거 완전히 발을 잘못 들였군요. 기왕 이렇게 됐으니 마지막까지 당신을 보좌하겠습니다.”
충성심 어린 심복을 연기했다.
그녀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기색.
오랜 시간을 들여 그녀를 공략한 내 노력이 먹혔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
자그마한 방심을 치명적인 독으로 되갚아줄 시간이었다.
* * *
다음날.
홀로니움 대신전 앞.
너도나도 구경하고자 몰려들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았는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미리 병사를 풀어서 현장을 통제했다.
하지만 그들마저 그림자 성녀가 정말로 나올지 궁금해했다.
모두가 구경꾼이 되어 숨죽이고 있을 때, 저쪽에서 검은색 면사를 쓴 소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를 목격한 구경꾼 하나가 목청 좋은 목소리로 외친다.
“저기다! 그림자 성녀다!!”
“진짜로 나왔어.”
“저렇게 어린 소녀라고?”
“성녀잖아. 나이가 어릴 수도 있지.”
메리안의 양옆에는 시온과 캠벨이 칼을 들고 호위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림자 성녀의 열혈 지지자 수백이 뒤를 따랐다.
그 수가 생각보다 많자 군중들이 술렁댔다.
레플리를 지지하는 국민 중 몇몇이 그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했다.
“이단이다! 감히 성녀를 자칭하다니!”
“우우우우!!!”
“꺼져라! 그림자 성녀라니, 이름도 촌스럽다!”
휘파람 섞인 야유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성녀 측은 침착했다.
메리안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흥분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날. 벨라누스님께서 누가 진정한 성녀인지 알려주실 겁니다.”
메리안은 외모는 어렸으나 말투에는 묘하게 현기가 섞여 있어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 짧은 시기에 현실을 외면하던 소녀는 사라지고 어엿한 지도자만이 남았다.
정말이지 타고난 성녀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메리안은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레플리를 기다렸다.
그녀를 둘러싼 수만 관중 전부 입도 벙끗 안 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십분 가량 이어졌을까.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데엥! 데엥! 데엥!
본래 정오에 종이 치면 신성국 국민들은 홀로니움 대신전을 향해 절을 올린다.
벨라누스의 화신인 성녀에게 경배한다는 개념이다.
허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상당히 많은 수의 국민이 홀로니움 대신전 대신 메리안을 향해 엎드렸다.
특히 그녀가 끌고 온 지지자는 전부 메리안을 찬양했다.
가족 중에서 아버지는 홀로니움 대신전을 향해, 아들은 그림자 성녀를 향해 절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도 연출됐다.
데엥! 데엥! 데엥!
한동안 울리던 종소리가 뚝 멈추었고.
동시에 문이 열렸다.
나타난 건 백색의 화려한 성녀복을 입은 레플리였다.
당연히 군중들은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레플리! 레플리! 레플리!”
“성녀님! 사랑합니다!”
“진짜 성녀는 레플리님이시다!!”
역시나 인기 수준이 다르다.
신성극 전체가 들썩였다.
메리안은 확실히 언더독이었다.
레플리는 기세가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실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품위있는 걸음걸이로 메리안과 마주했다.
백색의 성녀과 흑색의 성녀가 일정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그대가 최근 저를 사칭하고 다니는 그림자 성녀로군요.”
레플리의 도발에도 메리안은 침착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벨라누스님은 당신에게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쿠구구구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꼈다.
그것도 이 근처에만 말이다.
타이밍이 무척 절묘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레플리가 조금 더 메리안을 깔아뭉갰다.
“신성국에는 성녀를 사칭하는 사람이 항상 있어왔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벨라누스님과 소통한다고 말했지요. 허나 그들 중 진실로 소통하는 자는 없었으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레플리의 눈에서 옥구슬 같은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연기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여기에 깜짝 속아 넘어간 신도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흐흐흑, 성녀님이 우시다니, 내 마음도 찢어지는 것 같아.”
“그림자 성녀는 성녀 사칭범이다!”
“당장 저 여자를 처단해야 합니다!!”
메리안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레플리가 손을 올려 그들을 진정시킨다.
“아까 전에 뭐라고 말씀하셨죠? 벨라누스님이 분노하셨다고요? 제 안의 벨라누스님은 오히려 가련한 당신을 동정하고 있습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죄를 뉘우친다면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부드러운 포용력까지 갖춘 완벽함.
누가봐도 진짜 성녀는 레플리 같았다.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마저도.
반면에 메리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수한 소녀였기에 더욱 비교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군중 속에서 한 절름발이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목발을 짚고 이동하던 사내는 레플리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자애롭고 신성하신 성녀님, 저는 별 볼 일 없는 촌부 커너라 하옵니다.”
“스스로를 낮추지 마세요. 벨라누스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어린양입니다.”
“아아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커너가 레플리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나는 촌부를 내려다보는 색욕의 눈빛에 잠깐이지만 희미한 경멸감과 혐오감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형제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저는 신전을 건설하는 전문 노동자였습니다. 얼마 전 불의의 사고로 발목이 뒤틀리고 말았죠.”
“저런.”
“올해 결혼하고 아내가 임신 중입니다. 제가 일을 못하면 가족 전체가 쫄쫄 굶어요. 제발 은총을 내려주시어 다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모두가 공감할만한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레플리가 눈물 젖은 눈으로 커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친 발목에 손을 갖다 댔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당신에게 벨라누스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스파앗!!
레플리의 손에서 신성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커너의 발목이 조금씩 움직여 원위치를 찾아갔다.
기적을 목도한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레플리를 찬양했다.
“오오! 성녀시여!”
“벨라누스님께 영광을!”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눈부시게 빛나던 신성력은 잠시 뿐.
곧이어 불안하게 깜빡였다.
점점 신성력의 양이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커너의 발목은 치료되려다 말았다.
제자리를 찾으려던 발목이 다시 돌아간 상태로 원상복구되었다.
“서, 성녀님?”
당황한 커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레플리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기에.
그런 커너의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형제님, 발목 좀 보여주세요.”
바로 메리안이었다.
검은 면사포를 쓴 그녀가 커너의 발목에 슬쩍 손을 댔다.
동시에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스파아아아앗!!!!!
환자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두를 포근하게 하는 신성력이었다.
레플리에게서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진짜 성녀의 향기.
레플리의 지지자마저도 머릿속으로는 부정하지만 가슴으로는 진실을 체감할 정도였다.
신성력의 향연은 짧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어느새 커너의 발목은 완치되었다.
“어···어? 걸을 수 있습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목발을 버리고 방방 뛰던 커너의 시선이 메리안을 향했다.
“당신이 진짜 성녀였군요. 감사합니다.”
멀쩡한 몸이 된 커너가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레플리가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무슨 사술을 부렸느냐?”
뾰족한 고음에 메리안의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진실이 드러났을 뿐.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벨라누스님은 당신에게 화가 많이 났습니다.”
우르르릉!! 쾅쾅!
메리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천둥이 내리쳤다.
마치 그녀의 말 한마디에 주변이 동조하는 듯했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번쩍이는 번개 빛에 반사된 메리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오늘부로 당신의 성녀 행세는 끝입니다. 이만 자리에서 내려오세요. 황혼의 대간부 ‘색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