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4)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54화(154/200)
19장 유적 : 민망한 망나니
구경꾼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서로가 올킬로 손쉽게 결승에 왔기 때문에 한계치를 모르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둘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전혀 감이 안 왔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엄청난 호각세였던 것이다.
승부가 한쪽으로 기운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테오도르가 몰아치는 듯하다가 애꾸눈에게 뒤집어지고, 이후 결정타가 안 나오며 난타전으로 흐르는 양상.
완전히 긴장한 그들은 이젠 응원조차 관둔 채 잔뜩 집중해서 둘의 힘겨루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던 둘의 승패는 허무하게 갈렸다.
애꾸눈 도살자가 몸을 움직이다가 근육 경련이라도 왔는지 순간 멈칫했고, 그대로 테오도르의 창이 마무리를 지었다.
“와아아아아!!!”
관중석은 열화와 같은 함성으로 휩싸였다. 진행자도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승자는 날쌘바람 부족의 테오도르! 포세이돈 시티의 강자 도살자 형제를 꺾습니다! 심지어 두 전사는 수준 높은 경기를 보였죠. 역대 무도대회 중 손꼽히는 대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반면에 강철심장 선수 대기실은 난리가 났다.
도살자 형제의 둘째, 혹부리가 노발대발하며 행패를 부렸다.
“감히 막내를 죽여? 저놈을 아작내서 갈아마셔야겠어.”
혹부리가 휘두른 방망이에 옆에 앉아있던 강철심장 전사의 머리가 애꿎게 터져나갔다.
순전히 기분이 나빠서 벌인 살인이었다.
혹부리가 나서자 관중석이 또다시 술렁였다. 그는 애꾸눈보다 덩치도 살짝 큰 와중에 훨씬 유연하고 날래보였다.
“테오도르, 선수 교체다.”
테오도르에게 기권을 권했다.
이미 그는 애꾸눈과의 결투에서 많은 체력을 소진했다. 여기서 더 했다간 패배하고 목숨도 못 건진다. 테오도르가 죽으면 무도대회에서 우승하더라도 날쌘바람은 끝이었다.
테오도르도 내 생각을 알아는지 순순히 흰 수건을 흔들어 기권의사를 표했다.
날쌘바람의 에이스였던 테오도르가 시합을 포기하자 난리가 난 건 관중이었다.
“뭐야? 테오도르가 기권이라고?”
“그러면 누가 싸워? 나머지 선수?”
“말이 안 되는데. 누가 나서도 테오도르보다 약할 거 아녀.”
“아! 이래서 역베팅은 하는 게 아닌데!”
오직 테오도르만 믿었던 날쌘바람 부족에도 암울한 분위기가 돌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부족장에게 질문세례가 퍼부어졌다.
그러나 케빈이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무대에 올랐으니 말이다.
“아! 다음 선수 올라왔습니다! 지상에서 온 모험가 칸! 그가 날쌘바람 부족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쌘바람 부족원은 몰랐던 이야기일까요? 다들 놀란 표정입니다.”
인간족의 무도대회 최초 참가. 이와 더불어 어인족 사이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간족에 대한 편견. 동생의 죽음으로 분노를 터트리는 강력한 도살자 혹부리.
모든 요소가 날쌘바람의 패망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가 진행자로서 묻겠습니다. 정말로 테오도르 전사를 기권시키고 당신이 나올 겁니까?”
“그렇다.”
“이 시합에 무엇이 걸려있는지는 아시죠?”
“그렇다니까?”
“당신은 인간족입니다. 그런데 저 거대한 어인족과 싸우겠다는 겁니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의 질문은 이 자리의 모든 이의 의문을 대변했다. 어인족이 얼마나 인간족을 하찮게 보는지 느껴졌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되묻고 그것도 모자라서 날쌘바람 부족장 케빈의 서면동의까지 얻고서야 시합이 진행되었다.
“저는 기회를 드렸습니다. 이제 시합을 진행하겠습니다! 일방적인 승부가 예상되는데요. 언제나 기적은 존재하는 법! 인간족이 갈 때 가더라도 하나는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우~~!
야유가 넘쳐흘렀다.
구경꾼들은 뜬금없이 등장한 인간족 때문에 재미있는 결승판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분노한 그들이 던지는 썩은 해산물이 결투장 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몇몇 관중은 벌써 경기가 끝났다며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마검을 뽑아 검신을 쓰다듬었다.
여유로운 태도를 본 맞은편에 있던 혹부리가 인상을 썼다.
“무도대회도 망조가 드는구나. 한끼 간식거리가 어인과 싸우겠다고 나오니 말이다.”
놈은 동생이 죽어서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이와 더불어 인간족이라고 얕보기까지 했다. 팔다리를 뭉개놓겠다느니, 이긴 다음에 잡아먹겠다느니, 별의별 유치한 위협을 가했다.
“후딱 끝내고 나머지 떨거지도 정리해주마.”
결승전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혹부리가 시작부터 달려들어 인간족을 유린하는 장면을 예상했다.
그들의 예상 중에 적어도 하나는 맞았다. 혹부리는 신나서 멧돼지처럼 나에게 쇄도했다.
“으랴아아아!!!”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놈만큼 쉬운 상대도 없다. 이원마나를 몸에 두르고 살짝 몸을 돌려 일격을 피했다.
콰아앙!!
과연 힘 하나는 무식하게 셌다. 그의 방망이가 내려친 곳은 지면이 박살나고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위협적이면 뭐할까.
맞추지를 못하는데.
혹부리의 공격은 번번이 빗나갔다. 그것도 한끝 차이로. 아예 빗나가면 모를까, 아슬아슬하게 스치기만 하자 놈의 눈깔이 뒤집혔다.
“쥐새끼 같은 놈! 잡히기만 해봐라.”
저놈은 전혀 모른다. 내가 일부러 종이 한 장 간격으로 피해주고 있다는 것을.
“으아아아!!!”
그래도 녀석이 영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니다. 광분하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턱!
등이 벽에 닿았다. 도주로가 막혔다. 다 이겼다고 생각한 혹부리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끝이다!!”
“응, 끝 아니야~”
[윈드 컨트롤] [순보]공기를 차고 위로 떠올랐다. 구석에서 하늘로 높게 도약한 다음, 공중제비를 돌며 결투장 중앙에 안착.
이렇게 되면 혹부리는 처음부터 다시 나를 구석으로 몰아야 한다. 힘들게 쌓은 도미노를 무너트린 것과 마찬가지다.
“으아아아아!!”
짜증이 극도로 차오른 놈이 이제는 마구잡이식 공격을 한다. 무식하게 파괴력만 올라갔지, 아까처럼 예리하고 정밀한 맛은 떨어졌다.
‘슬슬 끝낼 때가 되었군.’
내 의도를 읽어서일까.
상대팀 대기석에 있던 외뿔 첫째가 둘째에게 경고를 날렸다.
“조심해라! 저 인간족 상당한 고수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미 나는 혹부리의 지척이었으니.
서걱!
일도양단(一刀兩斷)
위에서 아래로 깔끔하게 내리그었다.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혈선이 천천히 그어졌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
끝까지 상대를 경시하고 방심한 놈다운 최후였다.
쿵!
몸이 두동강 난 거구가 쓰러졌다.
대회장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눈앞에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관중석에는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렸다.
“와아아아아!!!”
“뭐야? 저 인간?”
“내가 본 게 맞는 건가?”
“인간족은 원래 저렇게 강한가?”
“모르겠어. 저런 인간은 처음 봄.”
언더독의 반란은 언제나 환영받는 법.
진행자 입장에서는 노가 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의심하던 놈이 이 갑자기 대놓고 띄워주기 시작한다.
“그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대단한 인간족이 포세이돈 시티의 강자 혹부리를 꺾었습니다. 올해 무도대회는 어찌 되는 걸까요? 점점 오리무중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의 관심사는 외뿔이와 내가 어떤 승부를 펼치나였는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펄—럭!
외뿔 도살자가 흰 수건을 던진 것이다.
당장이라도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고 칼을 뽑아들 줄 알았던 모든 이가 의아해했다.
나 또한 의외라고 생각했다.
‘과연 첫째인가.’
저놈은 힘과 감정만 앞서는 동생들과는 달리 상대를 가늠하고 측정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나름의 적절한 판단력까지 갖췄다.
결국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블레이크만 입에 거품을 물며 외뿔 첫째에게 화를 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돈을 그렇게 처받고 계약을 했으면 이행을 해야지. 겨우 저 인간 따위를 못 이겨서 꼴사납게 포기를 해···커헉!!”
외뿔 도살자가 블레이크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숨이 막힌 블레이크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공중에서 버둥거렸으나 외뿔이의 힘이 어찌나 센지 꿈쩍도 안 했다.
“네놈 때문에 형제를 잃었다. 그 대가를 치러라.”
우득! 우드득!
잔인한 장면이었다. 외뿔 도살자는 블레이크를 말 그대로 해체해버렸다. 인형의 팔다리를 뜯어내듯이 블레이크의 팔다리가 찢어졌다.
외뿔이가 손을 놓자 간신히 자유를 찾은 블레이크가 지렁이처럼 땅바닥에서 꿈틀대다가 이내 움직임이 멈췄다. 허망한 최후였다.
잔인하게 한 명을 도살해버린 외뿔이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퇴장했다. 나가던 와중에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이 한마디 툭 내뱉는다.
“포세이돈 시티에서 마주치면 죽여버리겠다. 인간.”
외뿔 도살자가 사라지면서 결승전은 어수선해졌다. 이제 강철심장에게 남은 전사는 없었다. 자동적으로 날쌘바람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우승자는 놀랍게도 날쌘바람 부족!! 20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며 생존에 성공합니다!!”
“와아아아!!”
모두가 기쁨에 취해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무도대회는 역대 가장 반전이 많았던 대회로 회자되었다.
* * *
무도대회가 끝나고도 날쌘바람 부족은 연일 축제 분위기였다. 이들은 목구멍에 술을 때려넣었다.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셨다.
원래도 이방인에게 관대했던 부족원들은 우리를 거의 행운의 상징처럼 여겼다. 몇몇은 우리 얼굴이 새겨진 작은 조각상을 만들어 집에 놓아두기까지 했다.
나와 일행은 족장 케빈의 집에 모였다. 케빈과 제인, 그리고 테오도르까지. 일가족이 모두 모여 우리를 맞이했다.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셨으니 그래도 돌려드린 것 뿐입니다.”
“칸님이 아니었으면 테오도르 혼자서는 절대 도살자 형제를 못 이겼을 겁니다. 여러분께서는 저희 날쌘바람의 구원자이십니다.”
왕궁으로 가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을 뿐인데, 여러모로 잘 된 결과였다.
우승팀에서 뽑히는 MVP는 테오도르로 당첨되었다. 더 압도적으로 이긴 건 나지만, 아무래도 나는 인간이고 테오도르는 어인이라서 주최 측에서 테오도르로 선정한 모양.
애초에 내 목적이 MVP임을 알고 있던 테오도르가 주최측에 요청해서 MVP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테오도르가 부족을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하자 최종 MVP는 내가 되었다.
“곧 수도로 떠나시겠군요.”
“그럴 예정입니다.”
“인어왕님을 뵙는 건 엄청난 영광이지요. 칸님에게도 영광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도 영광입니다.”
수도로 가서 할 일이 많았다.
천마게이션으로 황금가지를 찾아야 하고, 오르네오 현자님이 원하던 인어왕의 보주도 수소문해야 한다.
소용돌이에 휩싸여 떨어진 곳이 북부에서도 촌구석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듯 했지만, 결국 번듯한 신분을 얻고 수도로 가게 되었으니 위기를 기회로 살린 셈이다.
“이대로 보내기는 제가 너무 염치가 없어서요. 은인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드리고 싶군요.”
첫번째로 족장 케빈이 준 건 궤짝에 든 진주였다.
해저도시는 진주가 화폐를 대신하는데, 이 정도 양이면 아르니아 대륙으로 치면 대략 200골드 정도. 한화로는 5억이라 보면 된다.
날쌘바람 부족에게 5억이면 상당한 거금이다. 그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길래 절로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이 돈은 마을 발전을 위해서 쓰시지요.”
“우승 상금의 절반입니다. 원래는 전부 드려야 하는데 못 드리는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몇번씩 거절해도 케빈은 거의 강제로 궤짝을 밀어붙였다. 하는 수 없이 아공간 속 보물산에 던져놓았다.
“이것도 받으시지요. 칸님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파란색 단약이었다.
“무슨 약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허, 별건 아니고. 제 필생의 역작이라 보면 되겠지요. 잠깐 이쪽으로 와보시겠습니까?”
케빈이 안내한 곳은 자기 집 지하실이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보니 열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이곳은 실험실이었다.
구석에는 여러가지 해초와 약초와 해양 생물이 종류별로 즐비했고, 다양한 모양의 플라스크와 시험관이 탁자 위에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발열식물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신비함을 더했다.
“상당히 흥미로운 공간이군요.”
“제가 해저도시에 오기 전에 학자라고 말씀드렸지요.”
“기억납니다.”
“이곳에 자리 잡고 결혼까지 하면서 저도 어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군요.”
“설마···”
“맞습니다. 그래서 어인화가 가능한 약을 연구해봤습니다.”
인간이 어인화가 되다니.
놀라운 일이다.
족장 케빈이 다시 보였다.
“엄청난 업적입니다. 인간을 어인으로 만들다니요.”
“하하하, 그리 띄워 주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한계가 있는 약이니까요.”
케빈이 파란색 단약을 삼켰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풍기는 기운이 강해졌다.
“일시적이지만 어인의 힘과 민첩성을 갖추게 됩니다. 물론 제한시간도 있고 며칠은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부작용도 심하지요.”
나에게는 상관없는 부작용이다. 패시브 스킬인 끈질긴 생명력으로 피로도를 실시간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큰 장점은 물에서도 숨을 쉬며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실험실 한구석에는 물이 가득 찬 욕조가 있었는데, 단약이 먹은 케빈이 욕조에 뛰어들었다.
물에 완전히 잠긴 채로 5분이 지났다. 그러나 케빈은 호흡이 가빠진 기색이 없었다. 편안하게 숨을 쉬면서 평지처럼 말과 행동을 자유롭게 했다.
단약의 효과는 굉장했다.
바람 스킬로 공중전에 강하고 나무와 돌 스킬로 지상전은 강해도 딱히 물 스킬이 없어서 해상전에 약하던 나에게 단약이 있다면 확실히 유용할 듯 싶었다.
갯수는 대략 스무 개 정도로 제법 넉넉했다. 여기에 더해서 케빈은 단약의 제조법과 재료들을 넘겼다. 아공간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만들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너무 받기만 해서 민망하군요.”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물건은 자신을 알아보는 자에게 있을 때 가치가 올라가는 법. 여기는 죄다 어인족만 사는 동네인데 누가 단약을 원하겠습니까? 좋은 일에 써주시길 바랍니다.”
단약과 제조법, 제작 재료까지 알뜰하게 챙겨 넣었다.
다음날.
성대한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다.
목적지는 포세이돈 시티.
인어왕을 만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