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56)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56화(156/200)
19장 유적 : 계약한 망나니
인어왕과의 대면이 끝났다.
일리나 총리는 인어왕의 직속무사가 된 특전으로 왕궁 내에 머물 곳을 마련하겠다 했으나 이미 지낼 곳이 있다고 핑계대며 거절했다.
문어대가리가 왕으로 있는 곳에서 살기 싫었고, 그 외에도 여러 찝찝한 이유가 겹쳐서였다.
왕궁에서 나왔다.
포세이돈 시티의 대로변을 걸으며 동료들에게 방금 있었던 상황을 전부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의문을 제시한 사람은 오르네오 영감님이었다.
“인어왕의 보주가 어디있는지 알아낸 건 다행이다만, 인어왕이 이를 콕 집어서 노리고 있다니 골치 아파졌어. 애초에 인어왕의 보주인데 인어왕이 안 가지고 있다는 것도 웃긴 일이고.”
옆에 있던 시온도 한마디 덧붙였다.
“도련님께서 인어왕을 만날 당시에 왕궁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런데 인어왕과 관련해서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시온이 이상하다고 꼽은 첫번째 요인은 왕궁 호위 무사 중 무도대회 우승자 출신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각 구역의 강자를 뽑는 무도대회가 꾸준히 치러져 왔고, 우승자도 매해 배출되었는데도 왕궁에서 실질적으로 근무하는 사람은 없었다.
궁녀에게 물어봐도 전부 모른다고 고개를 저을 뿐. 그 많던 우승자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두번째 요인은 당연하게도 인어왕이었다.
인어왕은 지나치게 많이 먹었다. 과식이 일상화된 왕이었다. 심지어 성향도 폭력적이다.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인어왕을 두려워한단다.
그럼에도 이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는 일리나 총리 덕분이라고. 그녀는 정사를 도외시한 인어왕을 대신해서 모든 대소사를 관장하며 일해주고 있단다.
시온과 오르네오가 가진 의문은 인어왕의 진짜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가질 만한 의문이었다.
다만 나 같은 경우는 놈이 먹을 것 밝히는 거대 문어라는 사실을 알기에 인어왕이 왜 저러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오히려 이상한 건 일리나 쪽이다.’
보니까 똑똑한 여자던데, 왜 인어왕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을까.
더불어서 오늘 시험도 어색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무도대회 우승자를 일부러 떨어트릴 각오로 전력을 다했고, 이에 실패하자 눈물을 보였다.
심지어 인어왕도 그녀가 진 적이 처음이라 하지 않았던가. 일리나로서는 합격자가 나오면 안 됐던 걸까. 퍼즐 조각은 다 가지고 있되 제대로 끼워 맞추질 못하는 기분이다.
고심하던 차에 의식 속에서 천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송아, 황금가지의 기운이 느껴진다.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예상대로 황금가지는 포세이돈 시티에 있었다.
“어느 쪽입니까?”
-안내하마. 여기서 멀지 않다.
일행에게 황금가지를 찾았다고 말하니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나를 따라왔다.
천마게이션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넓고 부유해 보이는 주택이 나타났다.
-저곳에서 느껴지는구나.
조금 의외였다.
황금가지는 세계수의 파편.
그만큼 귀중한 보물이다.
무인도처럼 아예 외진 곳이나 왕궁 창고처럼 지키는 사람 많은 장소에 있을 줄 알았건만, 그냥 부자 한 명이 소장했던 모양이다.
어인족이라 황금가지의 진면목을 몰랐던 걸까. 아무튼 잘 된 일이다. 들어가서 집주인과 타협만 잘하면 쉽게 얻을 수 있을 듯하니.
“저기! 계십니까!”
조개껍데기로 된 문을 쿵쿵 두드렸다. 한참 동안 응답이 없다가 이내 집사복을 입은 늙은 어인족 하나가 모습을 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응? 인간족?”
“이곳의 주인장과 뵙고 싶습니다.”
“주인님은 아무나 만나시지 않습니다.”
“저희는 북부 구역 무도대회 우승팀입니다. 저는 최우수자로 방금 인어왕 전하도 만나뵙고 왔고요. 가볍게 대화나 나누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럴 때 쓰라고 얻은 타이틀이다. 가감 없이 이용했다. 집사가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웬 정체 모를 인간족 어중이떠중이에서 무도대회 우승자로. 신분이 격상되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약간의 시간이 걸리고 집사가 다시 나왔다.
“들어오십시오.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시나 먹혔구나.
신이 나서 들어갔다.
머릿속으로는 주인장을 어떻게 구워삶을지, 무슨 선물을 줘야 황금가지를 내놓을지, 여러 상황과 대사를 점검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공간 주머니를 만지며 줄 만한 보물이 있나 계속 살폈다.
마침내 주인장을 만났다.
“······”
주인장의 정체는 충격이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계획서가 깔끔히 리셋되었다.
“이것 참 우연이군요. 저희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죠?”
주인장은 총리 일리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기가 막힌 우연이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녀에게 차를 대접받았다. 일리나는 왕궁에서 봤던 화려한 모습과 달리 집에서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수수한 복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낯선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원래는 단도직입적으로 황금가지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일리나라는 걸 알아버렸다. 바로 용건을 내뱉으면 손해라는 예감이 든다.
일단은 계획을 선회해서 가벼운 화제로 간을 보기로 했는데······
“원래 제가 먼저 부르려고 했는데 먼저 찾아오셨으니 수고를 덜었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장 임무를 포기하고 해저도시를 떠나세요.”
일리나가 빠꾸 없이 본론부터 들이밀었다.
“조금 당황스럽군요. 갑자기 떠나라니요.”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곳에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있다가는 결코 좋은 꼴 못 볼 겁니다.”
“인어왕 때문입니까?”
“!!!”
내가 인어왕 이야기를 꺼내자 일리나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오늘 잠깐만 봐도 인어왕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인어왕의 진짜 정체가 무엇입니까? 진짜 인어왕은 맞는 겁니까?”
일리나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처음 본 낯선 인간족에게 어디까지 털어놔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에게 좀 더 확신을 심어주고자 강하게 나갔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가설이 하나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인어왕은 진짜 인어왕이 아니고 가짜 행세를 하는 마수이며, 일리나님은 진짜 인어왕의 혈통이거나 이를 수호하는 집안쯤 되겠지요. 아닙니까?”
“헉.”
일리나가 육성으로 비명을 내뱉고 만다. 그녀는 귀신이라도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고 싶겠지.
추리하기는 쉬웠다.
인어왕 행세를 하는 저 먹보 소년이 거대 문어 괴수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저 문어도 기존의 왕가를 밀어내고 저 자리에 앉았을 터.
만약 왕족이 모두 죽지 않았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대를 이어가며 부흥 운동 내지는 복권 기회를 노릴 것이라 예상했다.
일리나의 행동은 딱 망국에 남겨진 왕족의 전형이었다.
대소사를 관리하며 어인족을 돌보는데 힘쓰면서도 끊임없이 인어왕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돌발 행동을 저지하려 한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격언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제 가설이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정확하게 보셨어요. 현재의 인어왕은 일천년 전 봉인에서 풀려난 바다의 악마 크라켄입니다.”
크라켄을 떠올리는 일리나가 몸서리쳤다. 그녀의 눈빛에는 명백한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놈은 벌써 일천 년이 넘게 살았고 저희 왕족은 생존을 담보로 노예처럼 일하고 있지요.”
“역시 왕족이셨군요.”
“일천년 전 제 시조가 어인족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의 크라켄에게 산채로 먹혀버렸지만요.”
일리나에게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다 들켰으니 이제 가릴 것도 없군요. 칸님께서는 인어왕의 보주를 포기해주세요. 보주가 놈에게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인어왕의 보주는 해저도시에서 최고로 치는 보물로 유명했다. 강력한 에너지원이라 식탐 많은 인어왕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어왕의 보주는 강력한 주술이 걸려있고 어려운 함정이 즐비한 유적지에 보관되어 있었다.
사악한 마물을 배척하는 주술 때문에 유적지에 접근할 수 없던 크라켄은 일리나의 선조를 닦달했다.
몇 번의 원정대가 꾸려졌지만 모두 실패했다. 유적이 난이도가 상당했던 것이다. 어중간한 인재로는 중간 이상 가지도 못하고 죄다 몰살당했다.
그제야 크라켄은 진짜 고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저도시 전역에서 강자를 뽑을 것을 명령했다.
무도대회 탄생의 전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저희 선조들은 저를 포함해서 무도대회 우승자를 내리 꺾었습니다.”
“고수가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면 크라켄이 보주를 찾아오라 시킬 것 같아서겠군요.”
“맞아요. 크라켄 앞에서 대회 우승자가 약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안간 일리나가 눈물을 쏟아냈다. 옥구슬같이 맑은 눈물이 하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때문에 수많은 우승자가 희생되었습니다. 화가 난 크라켄이 저에게 진 우승자를 쓸모없다며 모조리 잡아먹었거든요.”
무도대회 우승자가 쥐도 새도 사라진 이유도 크라켄 때문이었나. 일리나가 나와의 대련에서 지고 서럽게 울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제가 총리에 오르고 처음으로 시험에 통과한 고수가 나타났죠. 크라켄도 오랜 기간 기다리느라 인내심이 다했는지 둘이서라도 갔다 오라고 명령한 겁니다.”
일리나를 위로했다.
“총리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크라켄이란 마물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괴물인데, 왜 총리님께서 죄책감을 느끼십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사정을 아셨으니 임무를 포기하고 지상으로 올라가세요. 어인족이면 몰라도 인간족인 여러분에게는 탈출구가 존재하니까요.”
일리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갈 때 가더라도 오르네오 영감님은 인어왕의 보주를 챙겨야 했고, 나는 황금가지를 얻어야 했다.
“총리님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군요.”
“어떤 제안 말씀이세요?”
“사실 저희 또한 인어왕의 보주가 필요합니다.”
“예상대로군요. 당신처럼 강한 인간족이 우연히 해저도시에 왔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인어왕의 보주를 허락해주신다면, 바로 지상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크라켄이 보주를 얻을 기회 또한 없어지겠지요.”
내 제안을 일리나가 딱 잘라 거절했다.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인어왕의 보주는 저희 왕가의 보물입니다. 어찌 크라켄에게서 벗어나겠다고 보주를 지상으로 방출하겠습니까?”
역시 힘든가.
내가 일리나였어도 거절했을 것 같다.
이러면 황금가지도 안 줄 가능성이 높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던 차에 일리나가 먼저 말했다.
“하지만···꼭 안 될 것도 없죠.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요.”
“조건을 말씀해주시지요. 새겨듣겠습니다.”
“간단해요. 크라켄을 없애주세요. 만약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인어왕의 보주를 드릴게요.”
크라캔을 없애달라. 말만 쉽지 담긴 내용은 절대 그렇지 않다.
“난감하군요. 제가 어떻게 일천년을 산 괴수를 처치하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역대 왕가의 일원 중에 순위권에 들 정도로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를 칸님께선 한 손으로 농락할 정도로 강하셨죠.”
“농락은 안 했습니다만.”
“아무튼 지금이 아니라면 당신 정도의 고수가 언제 또 이곳에 나타날지 모르니 불안한 마음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황금가지 시험에서 봤던 크라켄의 강력함을 떠올려보았다.
어마어마한 거구에서 나오는 강인한 근력과 날카로운 이빨에서부터 비롯된 비상식적인 치악력. 연체동물 특유의 날렵하고 예리한 공격.
다리에 붙은 빨판에선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하는데, 잘못 싸우다 이곳에 달라붙을 경우 옴짝달싹 못하고 저승행 티켓을 끊어야 한다.
그뿐이랴.
녀석에게는 강력한 필살기가 존재했다.
코에서 뿜어내는 끈적한 먹물이다. 적중 당하는 순간 시멘트처럼 굳어지며 상대를 돌로 만들어버린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전투 데이터가 일천년 전 기록이라는 점이다. 긴 세월 동안 크라켄이 얼마나 더 강해졌고 무슨 새로운 스킬을 배웠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좋습니다. 크라켄을 처치해드리죠.”
그럼에도 일리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가 아니라면 해저도시의 그 누구도 크라켄을 처치 못 할 것 같기에.
현재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 중에 놈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처치할 상대는 마왕 바알, 황혼교주 같은 엄청난 거물이다. 고작 문어 대가리 따위에게 막혀서야 어차피 세상은 멸망한다.
“정말인가요?”
“예. 대신에 저도 한가지 조건을 더 붙이고 싶군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첫번째는 유적지에 묻힌 인어의 보주를 먼저 확보하겠습니다. 크라켄 처치는 그다음입니다.”
이 조건은 크라켄을 처치하고 나서 급한 똥을 해결한 일리나가 딴소리를 할까봐 미리 걸어두는 예방 장치였다.
그녀도 내 제안의 의도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두번째는 왕가의 보물을 하나 더 가지고 싶습니다.”
“어떤 보물인가죠?”
“혹시 이곳에 신령한 기운을 품은 나뭇가지가 있을까요?”
“세계수의 파편 말인가요?”
어인족이 황금가지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나뭇가지가 필요합니다.”
“크라켄을 처치한다면 세계수의 파편도 같이 드리지요. 어차피 지상으로부터 비롯된 귀물, 돌려 드리는 게 맞습니다.”
일리나와 내가 손을 굳게 맞잡았다.
이로써 구두 계약이 체결되었다.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