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60화(160/200)
19장 유적 : 여덟째 망나니
일리나는 어렸을 적 울보였다.
넘어져서 울고, 무섭다고 울고, 배고프다고 울고.
하루는 아끼는 인형이 망가져서 울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귀에 대고 커다란 뱀이 와서 잡아간다고 속삭였다. 그럴 때면 무서워서 울음을 뚝 끄쳤다.
그때만 해도 일리나에게 이무기란 머릿속 상상력이 창조해낸 공포의 상징이었다.
‘분명 그런 존재였건만.’
어찌 운명이 이럴 수 있을까. 전설로만 존재하는 괴수를 본인 손으로 처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리나는 속으로 죽음을 각오했다.
이야기 속에나 등장했던 뱀과 싸워야 한다니. 아무리 칸 일행이 강하다 할지라도 체급에서부터 밀린다. 5분이나 버티면 다행이라 여겼다.
게다가 이곳이 호수라는 점도 문제였다. 인간족은 물속에서 호흡조차 불편하다. 무슨 수로 거대한 뱀을 잡겠다는 건지 당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싸움이 벌어지자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게 밝혀졌다.
영감님과 덩치 큰 사내, 차가운 표정의 여인은 의논 한마디 없이 기계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들의 매끄러운 공격 연계가 이무기를 귀찮게 했다.
가장 압권은 모험가 칸. 그의 능력은 정말이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칸, 당신은 대체···”
원래도 그가 실력자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그가 보여준 무위는 뭐랄까. 한계를 넘어선 힘이었다. 그녀는 평생 동안 구축해왔던 상식이 우르르 무너졌다.
“방금 그 힘은 뭔가요? 거인족과 흡사한 돌덩이를 불러내고, 견고한 밧줄을 제몸처럼 다루고, 심지어 데리고 다니는 소환수는···설마 드래곤인가요?”
칸은 그저 대답 없이 싱긋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희망을 넘어 흥분을 느꼈다.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다!’
크라켄에게 부딪치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여겼다. 결국 결말은 파멸이라 생각했것만. 칸의 진면목을 알아채니 완전히 달라졌다.
전설의 괴수도 잡았는데 크라켄을 못 잡을까. 일천년 동안 대를 물려 버텨왔던 왕가의 숙원이 자신의 대에 이뤄질 수도 있다. 눈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쉴 새 없이 두방망이쳤다.
그런 그녀의 손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예의 차가운 인상을 한 여인이었다. 시온이라는 이름이었나. 항상 무표정하던 그녀의 미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가 말했죠? 도련님을 믿으라고요. 저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그녀는 기적을 목도했다. 저 사내라면, 저 인간이라면 그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만약 칸이 해저도시를 해방해준다면, 나는 그를 구원자로서 평생 받들겠다.’
속으로 다짐하는 일리나였다.
* * *
어인화 단약을 먹고 호수를 내 집처럼 활보했다. 코코의 뿔에서 튀는 전류가 어두운 호수를 밝혀주었다.
빛이 눈에 들어오자 이무기의 시체가 시야에 명확히 들어왔다. 막상 가까이서 보니 정말이지 엄청난 크기다.
곧바로 인어왕의 보주를 찾을 수도 있지만, 이대로 사체를 놔두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좀 챙겨볼까.”
이무기는 날개가 없다 뿐이지 드레이크나 와이번처럼 유전자 자체는 용족과 유사하다. 인간과 원숭이, 고릴라, 오랑우탄과 비슷한 관계라 보면 된다.
비늘도 단단해서 방어구를 제조하는데 활용하면 최소 유니크급 이상의 아이템이 탄생할 것이고, 날카로운 이빨도 쓰일 용도가 많을 듯했다.
무엇보다 제일 가치 있는 아이템은 이무기가 지닌 내단이었다. 이는 드래곤 카일에게서 얻은 드래곤 하트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저번에 얻은 드래곤 하트는 코코를 깨우는데 사용되었지.’
이번에 얻은 내단도 코코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보여줬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뀨뀨! 뀨!”
코코의 설명을 알아듣자면 마나결정체가 어느 정도까지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는 악마의 사체가 더 효과적이란 이야기였다.
이무기는 크라켄과 달리 마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마기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코코도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섭취해야겠군.’
내단을 꿀꺽 삼키고 가부좌를 틀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동료들은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무기의 기운이 몸을 타고 단전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성질 급한 용혈이 발작하고 푸른마나가 중재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조금 다른 진전이 보였다.
‘어라?’
모든 기운에 이빨을 보이던 용혈이 이번에는 이무기의 기운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잡아먹고 흡수하며 하나가 되었다.
‘이무기가 드래곤의 하위종이라서구나!’
배척하고 싸우기만 하던 용혈이 이무기의 기운을 흡수하고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마나 각성도가 증가합니다.] [혼합률이 증가합니다.] [초록마나 각성도 50%] [↑0.0%] [푸른마나 각성도 48%] [↑0.0%] [용혈 각성도 50%] [↑4.0%] [혼합률 48%] [↑9.0%]그동안 용혈의 각성도는 48%에서 오르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으면서 쭉 같은 수치를 유지해왔다.
그랬던 용혈이 처음으로 2% 오르며 초록마나와 동일한 수치를 형성했고, 혼합률도 48%로 급상승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푸른마나의 대처였다. 그동안 초록마나에 대항하여 용혈+푸른마나 연합으로 이원마나를 형성했던 기운이 삽시간에 해체되었다.
용혈이 충분히 강해지자 푸른마나도 독립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맨 처음처럼 초록마나 vs 푸른마나 vs 용혈의 삼파전 구도, 즉 삼원마나로 내부가 개편되었다.
삼원마나가 형성되면서 세 개의 기운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었다가 이내 에메랄드 빛으로 환원되며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아아!!”
그 광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지켜보던 일리나가 탄성을 터트렸다.
번쩍!
번뜩이던 빛이 이내 몸속에 갈무리되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안광에는 미미한 기운이 일렁였다. 오르네오가 다가오며 물었다.
“한 단계 도약했나?”
“아니요. 벽을 마주했습니다.”
분명 삼원마나로 바뀌면서 온몸의 기운이 승천하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어딘가로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는데, 갑자기 한쪽이 삐그덕대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왜 그랬나 살펴봤더니 푸른마나 때문이었다. 50%의 각성도를 채운 다른 마나와는 달리 푸른마나는 여전히 48%였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하늘로 로켓을 발사하는 과정에서 취약한 지지대 하나가 부러진 느낌이었다.
‘지지대 세 개가 모두 완전해야 상승을 이룰 수 있다.’
그러려면 푸른마나가 더 필요했다. 배고픈 몸이 영양소를 갈구하듯, 전신에서 푸른마나를 격렬하게 요구했다.
“마스터의 벽을 말하는 거로군. 확실히 그 벽은 넘기 어렵지. 그래도 젊은 나이에 자네 수준의 성취를 이룬 게 정말 대단허이.”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죠.”
“일단은 인어왕의 보주를 찾아보세.”
“알겠습니다.”
이동하기 전에 이무기의 시체를 통째로 아공간에 넣었다.
사실상 내가 해치웠기도 하고, 아공간이 아니라면 저 큰 걸 옮길 능력도 없으니, 일리나도 내가 사체를 가지는데 동의했다. 오히려 그녀는 커다란 덩치의 뱀이 단번에 사라지는 모습을 신기해했다.
이무기가 사라진 곳에는 자그마한 동굴을 발견했다. 안쪽에서 신령한 푸른빛이 퍼져나오고 있었는데, 딱 봐도 무언가 있을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동굴 안쪽은 육지였다. 텅 빈 공동이었는데, 가장 구석진 곳 단상에 타조알 크기의 오브가 있었다. 푸른빛은 그 오브에서 나오는 중이엇다.
“저것이 인어왕의 보주야!! 내 살아생전에 진짜 보주를 보게될 줄이야.”
오르네오가 무릎을 꿇고 땅에 키스했다. 고대했던 보물을 보고 감정이 격해진 탓이다.
홀린 것처럼 다가가던 영감님이 허공에서 무언가에 막힌 듯 덜컥 부딪쳤다.
“조심하세요!”
뒤로 넘어지려는 영감님을 부축했다. 지금 보니 무형의 투명한 벽이 보주와 이곳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긴 무언가 장치가 있었으니 여태까지 보주가 온전했겠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이무기가 먹어치웠을 것이다.
“푸른마나를 사용해서 통과해보겠네.”
호숫물을 소환해서 벽에 박아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단순히 힘으로 뚫는 게 아닌 듯합니다. 일리나, 혹시 이 벽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습니까?”
“아뇨. 여기까지는 기록이 없어서요.”
“일리나가 한 번 다녀와 보시지요. 혹시 직계혈족만 받아들이는 방어막일 수도 있잖습니까?”
“네, 한 번 시도해볼게요.”
일리나가 벽 너머로 발을 디뎠다. 그랬더니 순간이지만 벽이 출렁거리며 흔들렸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탄성을 발휘한 벽은 이내 원래의 형태를 유지했고, 밀려난 그녀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가볍게 넘어졌을 뿐이에요. 그보다는 보주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정말입니까?”
“네. 저보고 혈통은 준수하나 실력이 부족하다 하더군요.”
아무래도 보주가 워낙 오래된 에너지원이다 보니 미약한 자아를 품은 듯했다. 옆에 있던 오르네오는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고대하던 보물을 눈앞에 두고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니.”
이윽고 시온과 캠벨도 시도했지만 오르네오와 똑같이 나가떨어졌다. 그나마 일리나는 출렁거리기라도 했지, 나머지 둘은 얄짤없는 철옹성이었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나였다. 모두들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섰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벽이 코앞에 다가왔다. 순간 단단해진 벽이 나를 튕겨내려 함이 느껴졌다.
바로 그 순간.
[자정작용이 발동합니다] [모든 상태이상 면역]스킬이 작동하며 어떠한 저항도 없이 쑤욱 발이 내디뎌졌다.
“!!”
주저앉아있던 일행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오르네오도 흥분해서인지 침을 튀기며 말했다.
“뭐야! 자네는 어찌 들어갔는가?”
재차 진입을 시도한 영감님은 벽에 부딪쳤다. 결국 나만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드루이드 스킬이 도움을 줬습니다.”
“허허···대단하군. 아무튼 고맙네. 자네 덕분에 보주를 얻게 되었어.”
이걸로 오르네오 영감님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겠지.
보주 쪽으로 손을 뻗었다. 눈부신 푸른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손바닥으로 인어왕의 보주를 움켜쥐었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현상이 발생했다.
쑤우욱!
손에 닿자마자 흐물대던 보주가 이내 몸속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어라?”
푸른 마나의 정수가 폭포수처럼 몸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뇌리를 울리는 보주의 목소리.
[이럴 수가···놀랍군. 비록 인어의 혈통은 아니나 세상 누구보다도 정통한 계승자로다. 이 힘은 자네에게 가장 적합하네. 부디 좋은 일에 써주게나.]푸른빛이 동굴 전체를 시리게 물들였다. 워낙 밝은 빛이라서 다들 눈을 못 뜰 지경이었다.
기마대처럼 거침없이 돌격한 보주가 단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흘러나온 기운이 기존의 푸른마나를 강화시켰다.
[마나 각성도가 증가합니다.] [혼합률이 증가합니다.] [초록마나 각성도 50%] [↑0.0%] [푸른마나 각성도 50%] [↑4.0%] [용혈 각성도 50%] [↑0.0%] [혼합률 50%] [↑4.0%]삼색 마나가 혼합률을 포함해서 전부 절반 수치에 도달했다. 그 순간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두근! 두근! 두근!
절묘한 균형을 형성한 삼원마나가 폭풍우가 되어 단전에서 치고 올라왔다. 금세 심장에 도착한 삼원마나는 그조차 부족하다는 듯 위로 상승했다.
어느새 도착한 머리. 불현듯 과거 천마의 뜬구름 잡던 발언이 떠올랐다.
-애송아, 네놈의 삼단전을 모두 연결해 삼화취정을 완성시킨 후 대우주와 합일하여 오기조원을 달성하면 영역 따윈 숨만 쉬어도 만들 것을. 대갈통 모자란 천치 같은 녀석!!
‘삼단전이란 곧 단전과 심장과 머리. 이 세곳이 하나가 되도록 연결하란 의미였구나!’
그 전까지는 마나 자체의 출력이 부족해서 불가능했다. 하지만 삼원마나가 절반이나마 각성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몸 전체가 하나의 엔진이 되어 폭발적으로 기동했다.
쿠콰콰콰콰콰!!!!
전신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돌풍이 되어 몰아쳤다. 시온을 비롯한 동료들은 그 압박에 못 이겨 동굴 바깥으로 튕겨나갈 정도였다.
“워 씨! 대체 무슨 일이야?”
“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오르네오의 흰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시온도 뭔가를 짐작한 듯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었다.
“우리는 지금···대륙의 여덟 번째 별이 탄생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