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68)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68화(168/200)
20장 혈통 : 찾아간 망나니
샌디 황후가 내뱉은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놀라웠다.
파헬이라니.
분명 아는 이름이다.
알버스 성에서의 영지전이 끝나고 아버지 로이드 후작의 집무실에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정보원. 이후 녀석이 나태의 밑에서 일하는 직속 수하임을 알았다.
황혼의 대간부를 해치우거나 나태와의 볼일이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서 나와 대면했다.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 의심했으나 파헬의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기억회상에 등장하는 저 갓난아이와 똑같았다.
백색머리에 호박색 눈동자. 절대 흔한 외모가 아니다. 아무래도 파헬이 비운의 1황자가 맞는 모양이다.
‘나태를 찾아갈 일이 생겼군.’
일단 계속해서 기억을 훑기로 했다.
아이가 나간 후에 방문을 열고 암살자가 대놓고 들어왔다. 황실 호위기사들은 도대체 뭘 하는지 원.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샌디 황후는 죽음의 사도를 눈앞에 두고도 침착했다. 사막 여인 특유의 성격인 건지, 원래 샌디 황후 자체가 가진 용기인지는 모르겠다.
푹! 푸욱! 푹!
심장에 내리꽂히는 삼연격. 샌디의 입가에 한줄기 선혈이 흘렀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살짝 입을 벌렸다. 한 단어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그이에게···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털썩.
샌디 황후의 죽음. 암살자는 조용히 물러났다. 도망치는 방향을 확인했다.
퇴장하는 암살자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회상이 종료되었다. 눈을 뜨자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영감님이 냉큼 물었다.
“소득은 있었나?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어?”
“잠시만요. 생각 좀 정리하고요.”
죽기 전에 샌디 황후의 담담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회상된 기억 내내 그녀는 습격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도 끝낸 상태였다.
게다가 유언.
그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
의뢰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단 소리다.
여기서 제국 황후인 샌디가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녀가 상간녀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남편인 황제가 유일하다.
따라서 암살자에게 샌디 황후의 죽음을 의뢰한 사람은 황제···인가.
황제가 의뢰인이라고 하면 허술했던 방비도 말이 된다. 황명 하나면 철통 호위도 자동문 호위로 바꿀 수 있으니.
가장 의문인 점은 살해 동기다. 어째서 그런 짓을 했을까? 심지어 출산이 임박한 아내인데.
“이제 좀 말해주게. 기다리다가 목 빠지겠네.”
“진실을 알아도 얌전히 계신다고 약조하면 솔직히 말해드리겠습니다.”
“약조하겠네. 맹세까지 해야 하나?”
“예.”
“맹세하겠네.”
기억 회상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오르네오에게 전달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영감님은 주저앉았다. 파르르 떨리는 흰수염이 그가 받은 심적 충격을 대변했다.
“지금이라도 폐하께 가서···”
“뭐라고 말씀하실 겁니까? 드루이드 지인에게서 십수년 전 과거를 알아냈다 하실 겁니까?”
“······”
오르네오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게다가 저희보다 훨씬 더 폐하의 의중을 알고 싶은 자가 있습니다. 적어도 그자에게 먼저 우선권을 줘야겠지요.”
“누구를 말하는 건가?”
“역사 속에 사라진 파헬 황자 말입니다.”
“아이는 죽은 게 아니었나? 어미가 없는데 어떻게 그 난리통에 살았겠나.”
“그는 살아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실제로 본 적 있거든요.”
쿵.
오르네오가 새로운 정보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충격적인 정보의 연속이라 어쩔 수 없었나 보다.
* * *
올가는 제국 뒷골목 출신 건달이다. 특유의 사나운 성정과 떡 벌어진 어깨로 골목을 평정하다 <흑야>의 부마스터 눈에 들었다.
“제법이군. 우리 길드에 들어오거라.”
“좆까.”
“교육이 좀 필요하겠군.”
신비한 머리카락에 이상한 눈동자를 가진 사내. 비리비리한 체격만 보고 얕봤다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다.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흑야에 들어오고 마스터도 만났다.
알고 보니 흑야는 나름 괜찮은 길드였다.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줬고, 나라가 외면한 고아들을 유일하게 신경 쓰는 조직이었다.
내려온 임무만 착실하게 수행했더니 어느새 번듯한 주점의 바텐더이자 점장이 되었다. 흑야 내에서는 무려 지부장의 직책이었다.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지부장쯤 되니 주변에서 알아서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제국의 고위직은 만날 일 없다. 마스터와 부마스터만 조심하면 이 좁은 골목에서나마 나는 최강이다.
···라고 생각했다. 의문의 방문객을 만나기 전까지는.
후드를 쓴 사내는 오자마자 대뜸 마스터를 찾았다. 그 무서운 마스터를 말이다.
“미친 놈인가?”
미친 놈은 낯선 손님이 아니라 올가 자신이었다. 부하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지고 주점이 반파가 되어서야 악몽이 끝났다.
다행히도 부마스터 파헬이 낯선 사내를 데리고 가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망가진 주점에 드는 비용은 온전히 자기 부담이었다. 그는 몇 년 간 모았던 쌈짓돈을 허무하게 써버렸다.
그리고 지금 올가는 또다시 시험을 받고 있었다.
“밤거미에게 안내해라.”
상대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 둘. 한 명은 턱에 수염도 안 난 애송이에 다른 한 명은 다 늙어빠진 노인네였다.
‘아무리 봐도 별 것 없어 보이는데.’
고민했다. 과거에 학습된 자료에 의하면 마스터에게 안내하는 게 맞긴 한데···가슴 속에서 자존심이 꿈틀대며 올라온다.
“마스터가 뉘 집 똥개냐? 어디 듣보잡이 와서 까불어?”
설마 그때처럼 또 초고수겠어? 대충 몽둥이찜질 해주고 보내주자. 부하에게 손짓하려던 찰나, 상대가 후드를 벗었다.
“너 나 기억 안 나? 난 너 기억나는데.”
“뭐?”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가늠했다.
저번에 술집을 부쉈던 놈은 선이 굵은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였다. 반면에 지금 앞에 있는 놈은 훨씬 어린 인상에 하얀 피부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어디서 소식 주워들었나 본데, 번지수 잘못 짚었다. 마스터가 아무나 만나주는 분이 아니야.”
결정을 내렸다.
운이 두 번이나 나쁠 리 없다.
저놈은 허풍쟁이가 분명해.
“모두 쳐라!!”
미리 대기하던 떡대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얻어터졌다.
“그때 술집 부숴서 조금 미안했는데, 너 하는 꼬라지 보니까 또 부숴도 되겠다.”
올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얻어맞은 부하들이 하늘을 훨훨 날았다. 가구와 집기가 하나둘씩 분해됐다. 결국 또다시 반파였다.
“그러게 안내하라고 했잖아.”
“너는 누구냐···?”
“누구냐니. 우리 일년 전에 봤잖아?”
“거짓말 마. 너 같은 놈 본 적 없어.”
“아참···그때는 칸으로 왔구나. 이러면 이해가 되려나?”
놈이 뭔가를 꺼내더니 얼굴에 슥슥 발랐다. 그리고 나타난 선 굵은 얼굴. 꿈에 나올 때마다 벌떡 일어나게 되는 그놈이었다.
“어째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알았으면 알아서 밤거미 불러라.”
올가가 힘없이 움직였다.
속으로 그는 다짐했다.
앞으로는 지나가던 고양이가 마스터를 찾아도 순순히 안내하기로.
* * *
황궁에서 나온 뒤.
오르네오 영감님과 뒷골목을 찾았다.
저번에 파헬이 가르쳐준 술집으로 갔는데 점장이 또 몰라보고 시비를 걸길래 살짝 교육해줬다.
결국 파헬이 왔다. 녀석은 반파된 술집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한바탕 저지르셨군요.”
“저놈이 사람 못 알아보잖아.”
“그때랑 얼굴이 다른데 어떻게 알아봅니까?”
“그거야 본인이 잘 구분해야지.”
나라 잃은 표정의 지부장을 뒤로하고 파헬의 인도를 받았다. 그때처럼 안대를 끼고 좁은 골목길을 뱅글뱅글 돌았다.
“마스터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너하고 밤거미, 둘 다에게 볼일이 있어.”
“신기하군요. 저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은 드문데.”
마차가 멈췄다.
안대를 벗고 실내로 들어왔다.
나태는 그때와 똑같이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우리를 맞이했다.
방 전체가 담배 연기로 뿌옇다.
옆에 있던 영감님이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이거 영 늙은이에게 안 좋은 환경이구먼.”
“이곳은 지식을 갈구하는 곳과는 거리가 멀지요. 현자님께서 이해해주시죠.”
역시나 나태는 나와 같이 온 영감님이 오르네오 현자라는 걸 알고 있다.
“헤논 로이드. 오랜만이군. 정확히 3년 10개월 남았다.”
나태의 시선이 천마검을 향해 있다. 여전히 계약에 있어서는 철저한 여자다.
“오늘은 무슨 일로 왔지? 알고 싶은 정보를 말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정보가 있다. 가능하지?”
“물론이다. 어떤 정보인지 말해라.”
시선을 나태에서 옆에 있던 파헬에게로 옮겼다.
“파헬, 너는 황제의 아들이 맞는가?”
실내 온도가 뚝 떨어지며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살갗이 에일 것 같은 살기가 사방을 메웠다.
보통이라면 기세에 쫄아서 하고 싶은 말도 못하겠지만, 방문객이 하필 나와 오르네오 영감님이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오르네오 영감님도 세븐 스타 중 일인. 심지어 최근 인어공주의 눈물을 얻고 전보다 강해지셨다.
우리 둘 다 꿈쩍도 안 하자 대놓고 기세를 흩뿌리던 나태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자세를 바꿨다.
“대가를 먼저 제시하면 정보의 진위를 확인해주겠다. 다만 웬만한 대가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미 다 알아보고 왔는데, 무슨 대가를 또 원해? 그냥 확인 절차야.”
“일반적인 정보라면 몰라도 네가 원하는 정보는 아니다. 대가를 내놓든가. 아니면 나가든가.”
아공간을 열었다.
마침 꽤 괜찮은 물건이 있다.
바로 해저도시에서 잡았던 이무기.
시간 날 때 사체를 손질해두었다.
비늘 몇 개와 송곳니 하나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원하던 대가다.”
“이게 무엇이지? 처음 보는 비늘과 송곳니군. 어떤 몬스터인지 전혀 모르겠어.”
“그만큼 희귀하단 이야기지. 대가로 충분했으면 좋겠군.”
천년도 더 된 전설의 괴수에게서 얻은 전리품인데 알아낼 리가 있나. 흰 장갑을 낀 손으로 한참을 살펴보던 파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품질 자체는 최상등품인데 도무지 어떤 물건인지 모르겠군. 알려주겠나? 정보료는 쳐주겠다.”
“해저에 서식하는 이무기라는 전설의 괴수다. 비늘과 송곳니의 내구도는 모르긴 몰라도 헤츨링의 그것과 비슷할 거다.”
파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태도 머릿속이 복잡한 듯 눈알을 굴리며 계산에 들어갔다. 이내 비밀 금고에 이무기의 송곳니와 비늘을 넣은 나태가 입을 열었다.
“대가는 충분하다. 네가 말한 정보의 진위는 ‘사실’이다.”
나태가 파헬이 황제의 아들임을 인정했다. 동시에 옆에 있던 오르네오가 그를 향해 넙죽 엎드렸다.
“1황자님! 죽여주시옵소서. 불충한 늙은이가 제국의 진짜 주인을 몰라뵈었습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죽여주시옵소서···흐흐흑···”
오르네오가 통곡했다. 나태는 무표정으로 턱을 괴었고 나는 잠자코 상황을 지켜봤다. 오직 파헬만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뿐이었다.
“전 이제 황자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뒷골목에 사는 건달 나부랭이죠.”
“어찌 그런 참담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 오르네오가 살아있는 한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정말 이러지 마십시오. 부담스럽습니다.”
“제국의 황태자 자리는 마땅히 1황후의 소생인 파헬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내 당장 입궁하여···”
“그만 하세요!”
버럭 소리를 지른 파헬이 나태를 바라보았다.
“마스터, 볼일도 다 봤는데 이들을 쫓아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나태의 허락이 떨어지자 파헬이 오르네오를 강제로 일으켰다.
“이제 나가십시오.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고요.”
거친 축객령.
이대로 나갈 수도 있으나.
나에게는 아직 볼일이 남아있다.
“너희에게 주고 싶은 정보가 있다.”
“관심 없습니다. 나가세요.”
“샌디 황후의 암살을 사주한 자를 알고 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헬의 신형이 번뜩였다. 놈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피하겠지만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어느새 목덜미 깊숙히 파고든 검날. 파헬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떤 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