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70화(170/200)
20장 혈통 : 알아낸 망나니
정월 초하루 전날.
동료들을 이끌고 온천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해있던 나태와 파헬이 우리를 맞이했다.
“작전은 따로 있나?”
“매복해있다가 한 번에 덮치기.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의 목적이 목표물의 섬멸이 아닌 납치랄까. 호위병력과 굳이 싸워주지 않아도 된다. 황제를 확보하는 순간 그들은 무력화될 테니.
“상대에 대한 정보는?”
“황제 직속 호위기사 열둘이다. 전부 익스퍼트 상급.”
“만만치 않군.”
“제일 큰 문제는 리더인 한스 기사단장이다.”
한스 기사단장.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세븐 스타의 마지막 퍼즐이자 첫번째 별. 대륙제일검으로 불리는 만큼 엄청난 고수임이 확실했다.
“작전의 개요는 이렇다. 매복하다가 틈이 보이는 순간 전부 돌진한다. 온천이라 가능성이 있다. 욕탕 내부에는 황제 혼자거나 많아봐야 한 명 뿐일 테니까.”
“만약에 빈틈이 나오지 않으면?”
“······”
돌아오는 침묵이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남은 하루는 매복지를 설계하는데 보냈다.
몸을 숨기기 쉬운 수풀을 조성하고 구덩이를 파서 안에 들어갔다. 온천이 숲 한가운데 있어서 간단한 작업이었다.
일부러 진흙에 몸을 비볐다. 코가 예민한 녀석으로부터 체취를 숨기기 위해서다. 당연하게도 매복지는 바람을 등지는 위치에 만들어졌다.
해가 질 때쯤엔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모든 증거를 없애는 데 주력했다.
땅에 찍힌 발자국을 지우고 어색한 방향으로 부러진 나뭇가지를 제거했다. 밟혀서 고개를 숙인 풀도 바로 세웠다. 동물의 배설물을 가져와 사방에 뿌리기도 했다.
이 방면에서 나와 캠벨, 그리고 시온은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북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톡톡히 도움되는 순간이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렸는데, 흑야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없습니까? 복지는 업계 최고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응, 싫어.”
파헬의 어림없는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지정된 매복지에 숨었다. 이제 황제가 오길 기다리면 된다.
나태의 말에 따르면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라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숨어있는 위치가 욕탕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눈속임과 시간 벌어주기 역할이니, 결국 황제를 확보해야 하는 건 나다.
나태는 한스 기사단장을 전담하기로 했다. 한스가 나태보다 한수 위일 것 같긴 하지만, 나태도 어디가서 맞고 다니는 여자는 아니니까 시간은 끌어주겠지.
대기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밤샘 잠복근무에 좀이 쑤시는지 캠벨이 작게 투덜거렸다.
“도대체 황제 놈은 언제 오는 거야?”
“늙은 나도 기다리는데 젊은 자네가 그러면 안 되지. 그리고 폐하께는 존칭을 붙이게.”
“캠벨은 못 배워서 예의 따위는 모릅니다.”
“아무렴 하녀만 할까.”
“지금이 작전 중임을 감사히 여기십시오. 아니었으면 진작 교육해줬을 텐데.”
“누가 할 소릴.”
“쉿! 조용히 해라.”
드디어 황제가 도착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여덟 마리의 준마가 끄는 마차. 드래곤 조각상이 잔뜩 달려있어서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제도 황제지만 중요한 건 호위병력이다. 마차를 물샐틈없이 보호하는 열두 명의 호위기사를 일일이 가늠했다. 정말이지 감탄이 나오는 정예병력이었다.
만만한 놈이 하나 없었다. 만약 저들과 정면승부를 내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설사 이기더라도 동료 셋 이상은 잃지 않을까. 좋지 않은 결과값이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이 있었으니. 선두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중년 사내였다.
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반반 섞인 사내는 매의 눈으로 온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분명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히고 턱밑에 칼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천마가 호승심을 불태웠을까.
-제법 붙어볼 만한 놈이 나왔구나. 검에 갇힌 신세만 아니었어도 재밌는 싸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호위무사 셋이 미리 가져온 대나무 칸막이를 황제가 들어갈 욕탕 주변에 설치했다.
설치가 끝나고 나온 기사는 두 명. 한 명은 욕탕 안에서 대기한다는 의미다. 머릿속에 정보를 넣어두었다.
이제 남은 건 나태가 언급한 빈틈을 찾으며 타이밍을 재는 일뿐. 호흡을 극한까지 멈춘 채 충혈된 눈으로 호위병력의 움직임을 살폈다.
한스 기사단장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저 사람이 방심하지 않으면 돌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때였다.
하늘의 도우심일까.
한스가 몸을 뒤척이며 이동했다.
볼일을 보려함이다.
순간적으로 맞은편에 매복한 나태와 눈이 마주쳤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느껴졌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임을.
상대는 완전히 방심할 상태. 슬슬 몸을 움직였다. 오랜 시간 쭈그려 앉은 탓에 뻐근해진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바스락 바스락
아주 미세한 소리지만 괴물 같은 한스가 귀를 쫑긋거렸다. 이제 더는 숨길 수 없다. 땅을 박차고 달렸다.
“모두 공격!!”
나태가 한스를 향해 비수를 던졌다. 동시에 나머지 일행도 일제히 욕탕으로 쇄도했다.
“막아라!!”
다급한 한스의 음성. 가장 먼저 움직였던 나는 이미 입구 언저리에 도착해 있었다.
“네 이놈!!”
호위기사 한 명이 시퍼런 마나소드를 휘둘렀다. 허리를 뒤틀어 일격을 피하고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윈드 컨트롤] [헤이스트] [순보]돌개바람이 발목을 휘감았다. 동시에 안 그래도 빨랐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주르륵 늘어난 내 신형이 포위망을 그대로 돌파했다.
“어엇?”
당황한 기사가 내 꽁무니라도 잡아보려 했으나 곧바로 들이친 시온의 칼에 황급히 방어자세를 취했다.
챙강!!
“네 상대는 나다.”
이와 비슷한 그림이 온천 입구에서 연이어 펼쳐졌다.
아멜리아와 라칸, 에이든과 파헬, 캠벨과 오르네오까지. 각자 무기를 휘두르며 내가 달려갈 길을 뚫어냈다.
이는 마치 미식축구를 방불케 했다. 공을 가진 사람은 나. 운반을 도와주는 여러 동료들. 미식축구와 다른 점은 경합 도중 죽을 수도 있달까.
옆쪽을 힐끗 보니 볼일을 보던 한스 기사단장과 나태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오러가 부딪칠 때마다 고막이 떨어져 나갈 굉음이 터져나왔다.
마침내 온천 안까지 들어왔다.
대나무 벽을 등지고 대기하던 기사 한 명이 칼을 빼들고 덤벼들었다.
“넌 못 지나간다.”
처음에 눈여겨봤던 상대 중 하나였다. 한스 다음으로 강한 놈. 검에 오러인지 마나인지 모를 기운이 일렁였다. 마스터를 코앞에 두었다는 증거다.
“귀찮군.”
녀석은 내 검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한 상태. 이런 녀석을 상대로 드루이드 스킬을 써주면 꽤 잘 먹힌다.
[우드 컨트롤] [강화된 바인드]최상급 드루이드가 되고 나서 잔뜩 강해진 나무뿌리가 땅에서 솟아올랐다. 꿈틀대던 뿌리들은 뱀처럼 민첩한 움직임을 보이며 순식간에 적을 속박했다.
“억! 뭐야?”
당황한 녀석이 재빨리 검으로 뿌리를 모조리 잘라냈으나, 이미 연계공격이 발동했다.
[크리스탈 컨트롤] [크리스탈 실드]견고한 수정벽이 기사를 감쌌다. 뒤늦게 검으로 벽을 부숴도 늦었다. 이미 나는 황제의 지척이었으니.
스르릉
천마검을 휘둘러 황제의 목에 갖다 댔다. 터치 다운이었다.
“전원 칼 내려놔! 아니면 황제의 목숨은 없다!”
뱃심으로 내뱉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온천을 울렸다.
작전이 성공했음을 깨달은 동료들의 얼굴이 환해졌고, 반대로 호위기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호위대장 한스가 이쪽으로 뛰어들 자세를 취했지만 황제의 목에 검을 바싹 갖다붙이자 포기하고 검을 떨궜다.
황제는 목숨이 경각에 처했음에도 의외로 침착했다.
“다들 나가 있게.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야겠으니.”
온천에서 일정거리 떨어진 지점에 한스를 포함한 호위병력을 모두 모았다.
혹시 모를 돌발 행동을 감시하고자 우리 쪽 인원도 붙었다.
황제와 같이 있게된 인원은 나와 파헬, 오르네오까지 셋이었다.
“납치범들. 우선 자네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이런 미친 짓을 벌일 줄이야. 무엇을 원하나? 금은보화? 권력? 영지? 말만 하게. 어느 선까지는 고려해보겠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한 가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솔직히 답변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상당히 과격한 방식이구먼. 뭐···일단 목에 칼이 들어왔으니 별수 있나. 말해보게.”
“저희는 약 십오년 전 벌어졌던 샌디 황후 암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샌디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황제의 동공이 수축되며 표정이 급격히 흔들렸다.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다.
“자네들도 사막왕이 멋대로 싸지르는 헛소리를 믿는 부류였나?”
“글쎄요. 사막왕 가젤이 나라의 명운을 걸고 군사를 일으킨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샌디는 황자를 낳다가 출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타계한 불쌍한 여인일세. 이제 고인은 그만 괴롭히고 편하게 쉬게 놔두게.”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샌디 황후는 암살로 죽은 게 맞습니다. 폐하도 그 과정에 분명 일조하셨고요. 안 그렇습니까?”
황제의 미간에 깊은 주름살이 잡혔다.
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위아래를 훑었으나, 시커먼 옷에 가면까지 착용한 내 정체를 알아낼 방도는 없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질문은 저희가 합니다. 어째서 황후를 죽였습니까?”
“어디서 무슨 정보를 들었는지는 몰라도 샌디는 산통 끝에 죽었어. 여기에 관해서 더는 할 말이 없네.”
끝까지 오리발을 내민다. 황제의 이런 태도는 잠자코 듣고 있던 파헬을 격분하게 했다.
“네놈의 피를 이었다는 사실이 저주스럽다.”
“뭐라?”
“귀가 먹었나? 네놈의 더러운 씨앗으로 세상 빛을 본 게 수치스럽다 말하고 있다.”
파헬이 가면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모자를 뒤로 훌렁 넘겼다. 거칠게 숨을 들이쉬는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황가를 상징하는 백발 머리카락에 사막의 별처럼 반짝이는 샛노란 토파즈 눈동자. 절대 꾸며낼 수 없는 유전적 증거가 황제의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내가 누구일 것 같아?”
황제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대충 어떤 사실을 짐작한 모양. 애써 현실을 부정해본다.
“내, 내가 어떻게 알겠나?”
“거짓말하지 마. 이미 나를 아는 표정인데.”
“모른다. 나는 자네를 모른다.”
“나 똑바로 쳐다봐! 빌어먹을 놈아!”
파헬이 양손으로 황제의 양볼을 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황제의 경련이 아까보다 더욱 심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그럴 리가···보고 받기로는 분명···”
“보고? 부하의 혀가 아니라 네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그녀의 아들이 지금 네 눈앞에 있으니까.”
파헬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증인이자 증거.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황제는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까. 파헬이 자기 아들임을 부정할까. 아니면 수긍할까.
만약 상황이 부정으로 흘러간다면 황제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내가 살리고자 해도 파헬이 쳐죽일 테니.
속으로 그런 그림이 안 나오길 바랬고, 다행히도 황제에게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떨리는 눈동자로 파헬을 바라보던 그가 결국 시인했다.
“어떻게 살았느냐?”
“산파가 죽기 전에 날 뒷골목 쓰레기통에 넣어놨다. 이해가 됐나?”
“미안하구나. 나는 그저···”
“엿 같은 사과는 집어치워. 내가 당신에게 궁금한 점은 이유야. 어째서 나와 어머니를 죽이려 했지?”
황제가 얼굴을 감싸쥐며 주저앉았다.
“나라고 그러고 싶었겠느냐. 나도 피해자고 희생자다.”
“천천히 이야기해보시지요. 어째서 샌디 황후의 암살을 명하셨는지요.”
“암살을 명하지 않았다. 나도 샌디의 죽음은 나중에 알았어.”
이어지는 황제의 설명은 이러했다.
사막 왕국과 제국 간 평화의 상징으로 출가한 샌디. 기존 귀족들은 이질적인 외모의 그녀를 극도로 배척했다.
이는 샌디가 제국의 1황비인 점도 한몫했다. 그녀가 아들을 낳는 즉시 황태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황실의 고귀한 혈통이 더럽혀지는 꼴을 막아야 한다며 귀족들은 합심하여 연일 청원했다. 이는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더욱 극심해졌다.
급기야 후작과 백작을 비롯한 제국의 실력자 일부가 따로 독립하겠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렇다고 이들의 주장을 수용해서 샌디 황후를 폐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황후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분노한 사막왕이 대군을 이끌고 북상할 게 뻔했으니까.
무엇보다 샌디는 배려심 많고 착한 여인이었다. 황제 본인이 그녀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어떤 식으로든 제국은 공중분해다.
황제는 선택해야만 했다.
“그때 나에게 대안책을 제시한 게 제임스 공작이었네.”
“제임스 공작?”
여기서 의외의 이름이 나왔다.
제임스 공작.
황혼교의 오만의 좌를 차지하고 있는 대간부다.
진작에 처리하고 싶었으나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제1권력자에 개인적인 무력까지 강해서 기회를 엿보던 참이었다.
그런 제임스 공작이 왜 등장했을까.
“골머리를 앓던 내게 제임스가 제안했네. 황후의 죽음을 위장하면 어떻겠냐고.”
황후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 사람이 된다면 모든 갈등이 깔끔하게 해결된다.
사막왕은 혼자 죽은 샌디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군사를 일으킬 명분이 없고, 귀족들은 눈엣가시인 그녀가 사라지니 더는 황실을 물어뜯지 못한다.
“그럴싸한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걸 샌디 황후가 허락했겠습니까?”
“허락했네. 그래야 내가 행복한다면 기꺼이 황후 자리를 내려놓고 죽은 사람으로 살겠다더군.”
나는 지금 희대의 바보를 앞에 두고 있다.
대륙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여자를 놓친 머저리.
본인도 그걸 아는지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몰랐네. 제임스 공작은 완전한 내 편인 줄 알았거든. 샌디 황후에게도 항상 우호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샌디를 몰래 궁 밖으로 빼돌려달라 부탁했네.”
황제는 제임스를 도와주겠답시고 샌디 황후를 지키는 호위병력까지 물렸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제임스의 사람이 샌디를 데리고 미리 준비한 안가로 데려갔어야 했다.
거기서 샌디는 아이를 낳고 죽은 사람 행세를 하며 황제와 은밀하고도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어나갔어야 했는데···
제임스 공작이 보낸 건 안내원이 아닌 암살자. 샌디의 운명은 거기서 정해졌다.
“나라고 제임스가 그럴 줄 알았나. 제임스가 샌디의 죽음을 보고했을 때는 이미 늦었어.”
“폐하와 달리 샌디 황후는 현명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겠죠. 그래서 오늘 파헬이 폐하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자의 직감이었으리라.
제임스 공작을 믿지 못한 그녀는 아이를 미리 대피시켰고, 예상대로 암살자가 찾아오자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까지. 답답한 걸까, 똑똑한 걸까. 순애도 이런 순애가 없다.
한편으로는 제임스 공작이 치밀한 인간임을 제대로 느꼈다.
황제에게 꾸준히 호감작을 하면서 신뢰도를 쌓다가 마지막 순간에 뒤통수를 거하게 쳤다.
제임스 공작이 샌디 황후를 죽였어도 황제는 제임스를 건들 수 없다. 이미 공범이니까. 모든 사실을 까발리고 자폭해버리면 황제도 제국도 끝이다.
결국 황제는 제임스 공작과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을 공유한 채로 평생을 불편하게 지내왔던 것이다.
황혼교 칠대사도 ‘오만’에 걸맞는 악랄함과 교활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