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7)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77화(177/200)
20장 혈통: 엿먹인 망나니
그동안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했다.
내가 전력을 다하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이 나올까.
드루이드의 교감력을 극대화하는 도토리도 수량이 열 개 뿐이라 아껴먹어야 했고, 어인화 단약은 비교적 최근에 얻어서 섭취할 기회가 없었다.
세계수 스킬은 시험 삼아 여러 번 소환해봤지만, 생사가 넘나드는 전투 중에 꺼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러 버프가 중첩된 덕분에 온몸에 전능감이 넘쳐흘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3단계에서 쩔쩔매던 놈이 잠시 쉬는 시간 좀 줬다고 그새 기고만장해졌군. 이번엔 죽을 때까지 공격해주마.”
하늘에서 재차 죽음의 비가 쏟아졌다.
흑색 마력탄이 사정없이 대지를 두들기고 헬파이어가 떨어지는 족족 크레이터를 남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끈적대는 원혼의 늪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고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방금까지는 이 연계 공격에 정신 못 차리고 얻어맞았지만, 전신에 힘이 넘치는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내면의 직감이 저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속삭였다.
[우드 실드] [크리스탈 실드]콰콰콰콰콱!!
땅에서 수정벽과 나무벽이 치솟았다.
도핑하기 전에 무용지물이었던 실드 계열 스킬이 도토리와 어인화 단약, 세계수 버프를 받으니 완전히 달라졌다.
직육면체의 모양을 고수하며 지상 공격만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솟아오른 나무벽과 수정벽은 스스로 버섯 형태를 형성해서 머리 위를 가려주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흑색마력탄을 막아주는 커다란 우산이 생긴 것이다.
[강화된 바인드]땅에서 솟은 굵직한 나무뿌리가 버섯을 뱀처럼 칭칭 감쌌다.
그러자 견고함이 한층 증가했다.
마력탄을 맞고 균열이 생기거나 무너진 곳은 어김없이 나무뿌리가 몰려들어 꿰매고 수리하고 보충했다.
“!!”
아까는 잘 먹혔던 공격이 가로막히자 오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쇼타임은 지금부터였으니.
[우드 레인] [크리스탈 레인]아까 전에 흑마력탄을 맞고 허무하게 부서지던 맥아리 없던 나무와 돌 고드름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웬만한 창보다 길고 기둥보다 굵었다.
레인 스킬의 표적은 오만이 2단계로 방출했던 초고열 화염구다.
나무는 화염구에 닿자마자 사그라졌지만 열에 강한 크리스탈은 중심부까지 파고들어 핵을 건드렸다.
콰콰콰쾅!!
상태가 불안정해진 헬파이어가 공중에서 요란하게 폭발했다.
하늘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폭발이 그야말로 폭죽놀이였다.
남은 건 귀찮게 잡아끄는 다크 스웜.
연계 공격 때문에 처리하기 곤란했었지, 흑마력탄과 헬파이어가 없는 상황에서 제거는 식은 죽 먹기다.
오러블레이드가 휘둘러질 때마다 원혼의 늪이 사라져갔다.
[아아···] [감사합니다···]아무래도 다크스웜을 구성하던 원혼은 강제로 속박되어 있었던 모양.
오러로 인해 구속에서 풀려난 영혼이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하늘로 성불했다.
“이럴 수가!”
잠깐 사이에 형세가 완전히 뒤집히자 오만이 경악하여 소리를 질렀다.
이해가 안 갈 법했다.
1차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했는데 이번엔 내 스킬이 녀석의 스킬을 모두 잡아먹었으니 말이다.
결국 출력의 문제였다.
레인 계열 스킬, 실드 계열 스킬, 바인드 계열 스킬.
딱히 새로운 스킬을 쓴 것도 아니다.
단지 단약과 세계수 버프로 인한 순수 파워 증가로 오만의 스킬을 찍어눌러 버렸다.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끝내주러 갈 테니까.”
당황한 틈을 내버려둘 이유는 없다.
검을 들고 오만을 향해 쇄도했다.
가는 도중에도 버섯 우산이 생성되어 하늘을 막아주고, 레인 스킬이 헬파이어를 요격하여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치워줬다.
이대로라면 오만은 나와 초근접전을 벌여야 한다. 네크로맨서와 검사의 박투라니, 세상에서 제일 긴장감 없는 대결이다.
“기어이 4단계를 꺼내게 만드는구나.”
오만의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원시부족 주술사가 맬법한 목걸이였는데, 목걸이 끝에 시커먼 어금니가 달려있었다.
어떤 존재의 어금니인지는 짐작 가는 게 없었다.
그가 스태프를 들어 목걸이에 마력을 불어넣자, 어금니가 덜그럭거리며 반응했다.
“나오거라! 심연의 아귀여!”
쩌저적!!!
처음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법한 실금이었다.
그런데 그 작았던 실금이 점점 선명해지며 영역을 넓혀갔다.
나중에는 입을 벌리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불길한 검은 구체가 블랙홀처럼 자리했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등장하고 나면 굉장히 귀찮아지리란 예감이 들었다.
끼웨에에엑!!!
소름끼치는 울음소리. 나는 정의로운 만화 주인공이 아니니까 적이 준비할 시간 따위 주지 않는다. 기합성을 내지르며 빠르게 오만에게 돌격했다.
“하압!!”
“아귀여, 모든 것을 삼키거라!”
-애송아! 한 박자 늦었다. 피해라!
천마의 경고에 주저 없이 순보로 거리를 벌렸다.
망설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뒤로 물러나자마자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반으로 동강 난 나무, 잘게 다져진 돌, 반파된 골렘, 팔다리 잘린 언데드 시체, 구멍 숭숭 뚤린 벽, 녹슨 데스나이트의 투구.
심연의 아귀는 모든 걸 공평하게 집어삼켰다. 그는 편식 따윈 모르는 대식가였다.
쿠콰콰콰콰!!
최고 강도로 틀어놓은 진공청소기가 이러할까.
소용돌이치는 흡입력에 천마검을 땅에 박아넣고 버텼다.
한편으로는 천마의 충고를 듣자마자 행동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이 정도 흡입력인데, 더 가까웠다면 아무리 나라도 빨려들어갔을 거다.
저 블랙홀에 삼켜지면 모르긴 몰라도···굉장히 끔찍하겠지.
“크하하하핫!!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구나.”
심연의 아귀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상황.
오만은 다시 1,2,3 단계 공격을 개시했다.
흑색마력탄, 헬파이어, 다크스웜.
아까처럼 스킬을 소환해서 공격을 막긴 했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맥없이 방어만 해야했다.
심연의 아귀는 신통하게도 오만만 빼놓고 주변을 집어삼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아귀의 흡입력에 저항해야 하는데, 어째서 오만은 블랙홀을 코앞에 두고도 멀쩡할까.
궁금증은 천마가 해결해주었다.
-애송아, 저 해골 놈이 맨 목걸이에서 요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목걸이가 심연의 아귀를 조종한단 말씀이십니까?”
-정확히는 목걸이에 달린 뼛조각이 문제다. 아마도 저게 아귀가 주인임을 인식하는 증표 같구나.
아귀를 물러가게 하려면 저 목걸이를 확보해야 한다. 공략법은 알아냈는데 실행하기가 만만치 않다.
잠시 고개를 들어 먼곳에 시선을 두었다.
여전히 오만이 부리는 십만 언데드와 황제+사막 연합군은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전체적인 수준은 인간군이 압도적이나 이곳은 대규모 회전이 벌어지는 전쟁터.
죽는 족족 다시 일어나는 시체군단 때문에 좀처럼 승부는 나지 않고 사망자만 늘어갔다.
언데드의 체력은 무한이나 인간의 체력은 유한하다. 그만큼 사기가 꺾이고 피로도가 쌓인다. 아군을 위해서라도 일초라도 빨리 대장전을 결착지어야 했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너도 잘 알고 있겠지.
후우.
깊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는 세계수의 가호와 땅에 박아넣은 천마검 덕분에 아귀의 흡입력을 버틸만하다.
하지만 버티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만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
박아넣은 천마검을 땅에서 빼고 나를 잡아끄는 힘에 몸을 맡겼다.
“쥐새끼처럼 버티더니 인내심이 다했나? 어리석은 결정이다.”
아귀와 나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삼원마나를 극성으로 끌어올려서 에메랄드 빛 오러로 검날을 덮었다.
몸의 자세를 낮추고 검날을 어깨선과 수평으로 눕혔다. 비로소 돌격만을 위한 신검합일의 자세가 갖추어졌다.
여기에 비장한 표정을 더하자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아귀를 해치우고자 투지를 불태우는 것처럼 보였다.
“크핫하하하!! 설마 아귀를 없애려는 거냐? 광오한 생각이다. 놈은 차원벽 사이에서 아득한 세월을 지내온 존재다. 네놈의 하찮은 오러 따위는 단숨에 먹힐 터.”
나도 안다.
저 아귀라는 놈은 무생물에 가까운 존재다. 굳이 묘사하자면 우주를 떠도는 혜성 같은 존재.
어째서 특정 물건에 귀속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베어낼 수 없는 존재임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천마검을 날카롭게 세우고 아귀를 향해 돌진했다.
중요한 건 아귀를 해치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오만에게 착각을 심어줄 수 있느냐 없느냐다.
난 심연의 아귀부터 해치울 거다. 오만 너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식으로 페이크 모션을 준다.
오만은 속을 수밖에 없다.
아귀가 주변을 빨아들이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기에.
저놈을 무시하고 무지막지한 흡입력까지 견뎌가며 본체인 오만을 노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방심의 틈을 벼락 같이 찔렀다.
[윈드컨트롤] [헤이스트] [순보]본격적으로 움직인 순간은 오만과 아귀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위치했을 때다.
단전에 머무른 마나를 모두 다리에 몰아넣고 바람을 휘감아서 뒷받침했다.
퍼엉!!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공중을 가로지르던 내 방향이 급격히 꺾었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오만이 있었다.
보통 때라면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고 바람스킬을 써도 아귀의 흡입력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수로 인해 2배 펌핑된 신체 스텟과 한 단계 진화한 삼원마나, 도토리와 어인화 단약으로 강화된 기운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잠깐이나마 아귀의 흡입력을 극복하고 오만 쪽에 가까워졌다.
“미친놈. 거기서 나를 노리다니!”
뒤늦게 자세를 잡는 오만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사용, 단 한 발의 원거리 참격을 쏘아냈다.
[천마검술] [초승달 베기]강화된 상태에서 전력투구한 초승달 베기는 이전과는 차원이 틀렸다.
“다크 실드(Dark Sheild)!!”
이전에 내 일격을 막아냈던 방어막이 다시금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참격은 아까와는 달랐다.
위력과 크기가 배가 되어서인지 실드의 겉면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바사삭!!
기를 쓰고 실드를 유지시켰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오만은 황급히 실드 안에 또다른 실드를 생성시켰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여러 개의 실드를 겹겹히 둘러싸서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초승달 참격은 실드를 계속 부수면서 안쪽으로 향했다. 실드가 부서질 때마다 참격의 위력도 급감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오만과의 거리를 가깝게 좁혔다.
뒤에서 잡아끄는 아귀 때문에 속력이 점차 느려져서 이 이상은 접근이 어려웠다.
“어림없는 무리수였다. 심지어 저 일격이 날 맞추더라도 리치인 나는 죽지 않아. 이번 공격이 끝나면 알아서 아귀가 너를 삼키겠군. 잘 가라.”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오만.
그러는 사이에 마지막 실드가 부서지며 참격이 소멸되었다.
“크하하하! 끝났군.”
승리를 낙관하는 제임스 공작.
뇌까지 들어찬 오만함이 그의 방심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 거다.
지금 이 상황조차 내 예상 범위라는 것을.
초승달 베기는 그저 녀석의 실드를 벗기기 위한 장치였고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했다.
결과적으로 오만의 실드가 모조리 사라졌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비쳤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미남 전용 대사를 내뱉으며 천마검을 던졌다.
똑똑한 천마검과 그동안 발전한 내 신체능력은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쇄도했다.
에메랄드 빛살이 오만을 관통했다.
정확히는 그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목걸이 끈을 잘라버렸다.
싹둑!!
“어라?”
당연히 자신을 노릴 줄 알고 스태프를 들고 급소를 방어했던 오만이 의문을 내뱉었다.
목걸이는 이미 잘렸고, 중력의 힘을 받아 수직낙하했다.
[우드 컨트롤] [바인드]때마침 땅에서 솟은 나무뿌리가 채찍처럼 휘둘러 목걸이를 쳐냈다.
신기에 달한 컨트롤이었지만, 최상급 드루이드가 된 나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뿌리에 얻어맞은 목걸이는 자연스럽게 내 손바닥에 안착했다. 목표물 확보 성공이다.
“말도 안 돼! 당장 내놓거라!!”
“응. 싫어.”
이번엔 내 차례다.
어금니에 맺혀있던 오만의 기운을 몰아내고 내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여태까지 나를 죽어라 괴롭히던 흡입력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아하, 이런 느낌이구나.”
오늘 처음 만져보는 귀물이지만 단번에 어떻게 조종할지 알 것 같았다.
이건 아귀와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
머릿속으로 명령을 떠올리며 다시금 마나를 불어넣었다.
‘리치왕을 집어삼켜라.’
쿠워어어!!!
포효와 함께 이번엔 진공청소기가 반대로 작동했다.
소용돌이가 오만 쪽에 만들어졌다.
“끄아아아악!!!”
오만은 마력을 일으켜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으나 녀석에게는 천마검도 없고 세계수도 없다.
속수무책으로 블랙홀로 빨려들어갔다.
리치가 라이프 베슬을 부숴야 소멸하는 불멸의 존재라지만, 아귀에게 삼켜지고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는데 한 표다.
오만도 그걸 깨달았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협상하자! 무엇을 원하나! 지금 아귀를 멈춰준다면 내가 너의 부하가 되겠다.”
“반말?”
“부하가 되겠습니다! 수십만 언데드를 부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를 수하로 두시면 대륙의 황제도 될 수 있습니다!”
왜 악당의 최후는 매번 똑같은지.
여태껏 황제를 마음대로 주물러놓고 기껏 내놓은 패가 황제 자리다.
예의상 대답을 해주었다.
먼저 주먹을 꽉 쥐고,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히 폈다.
“엿이나 까잡숴.”
“으아아아아!! 죽여버리겠어!!!!”
꿀꺽!
아귀가 오만을 삼켜버렸다.
매개체에 마나를 불어넣어 물러가라고 명령했다.
차원벽을 찢고 등장했던 녀석은 자신의 고향 심연으로 돌아갔다.
리치인 오만이 그곳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곳에서 죽었으면 다행이고, 살았으면 불행이다.
“그러고 보니 5단계를 못 봤네. 5단계는 뭐였을까?”
매운 라멘집도 5단계는 특히 매운데, 대단한 기술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굳이 경험하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