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8화(18/200)
3장 북부 : 떠나는 망나니
천마의 봉인을 푸는 길이 드루이드로서 성장하는 길이라.
-이제 알겠느냐? 너와 나는 한배를 탔다는 말이다. 어쩌다 이런 기막힌 인연이 맺어졌는지는 모르겠구나.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내가 봐도 천마와의 관계는 특별했다.
이어서 떠오르는 생각.
“어디서부터 황금가지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군요. 정보상이라도 찾아가야 할까요.”
-그건 문제없다. 봉인의 열쇠는 나와 연결되어 있어서 멀리서도 서로를 느낀다.
“황금가지가 느껴진다는 말입니까?”
-그래.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라도 대략적인 방향은 짐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천마표 네비게이션이다.
하지만 좋아하긴 이르다.
여긴 여행과 이동이 자유로운 21세기 지구가 아니니까.
-가장 가까운 위치는···한참 북쪽으로 가야겠구나. 너희가 흔히 말하는 북부산맥에 있는 듯하다.
하필 있어도 북부산맥에 있단다.
북부는 마왕 바알의 봉인지이며 온갖 몬스터가 창궐하는 사지 중의 사지다.
날씨는 또 더럽게 춥다.
강원도 북부에서 하던 군생활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어렵군요. 그래도 가야겠지요.”
어차피 잘된 일이다.
아르니아 대륙에 머물면서 알게된 지식에 따르면 엘든 왕국의 귀족은 가문당 한 명은 반드시 북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이고 대부분 금전으로 갈음한다.
이 와중에 북부에서 2년간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온다면?
신분에 관계없이 굉장한 영예로 쳐준다.
평민이라면 평민 사이에서, 귀족이라면 귀족 사이에서 한발짝 앞선 것으로 대우해준단 얘기다.
현재 필립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내가 북부에서 생환하면 코끼리와 개미의 싸움에서 코끼리와 사슴의 싸움까지는 체급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후작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허락을 해주실지 모르겠군요.”
* * *
며칠 후.
오늘도 어김없이 시온과 대련했다.
누더기 용병단장 게빈과의 생사투, 사령술사 라울 퇴치가 좋은 경험이 되었는지 검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나와 검을 맞대는 시온의 이마에는 진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도련님, 많이 늘으셨습니다.”
시온이 순순히 인정할 정도.
그러나 내 성에 차지는 않았다.
“엑스퍼트가 되려면 얼마나 더 수련해야 할까?”
“로이드 후작님께서 소드마스터셔서 실감이 안 나시겠지만, 사실 엑스퍼트만 되어도 검의 대가라 불립니다.”
“일전에 내 성장 속도가 빠르다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다만 실력이 느는 것과 깨달음은 별개니까요. 엑스퍼트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형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단순히 노력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계기와 운이 따라야 한다는군요.”
“그렇군.”
다시 검을 들고 수련을 하던 찰나에, 연무장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놀랍게도 의외의 인물이 나를 찾아왔다.
진한 화장을 떡칠한 뚱뚱한 중년 여인이 애써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여기가 네가 주로 수련하는 장소인가 보구나.”
어째서 로잘린이 날 찾아왔을까.
억지웃음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요새 너에게 너무 소홀해서 어미로서 죄책감이 들더구나.”
“옛날부터 쭉 그래 왔는데 뭘 새삼스럽게···”
“응? 뭐라고 했지?”
“아닙니다.”
“아무튼 수련 끝났으면 같이 식사장에 가자꾸나. 아침 먹어야지.”
아무리 봐도 그녀와 나는 하하호호 웃을 사이가 아닌데 갑자기 친절하게 구니까 괜히 기분이 나쁘다.
어쨌든 로잘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식사장까지 같이 걸어갔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헤논 로이드. 새로운 로이드가 되었으니 기쁘겠구나.”
“후작님께서 과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겠지요.”
“그래도 주제 파악은 잘하고 있구나.”
웃으면서 패는 신종 공격법인가.
오히려 더 까다롭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려 노력했다.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직은 좀 모호하다.
“너도 알다시피 로이드란 이름은 무겁단다. 혜택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무게 또한 견뎌야 하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들어가자꾸나.”
뜻모를 소리를 들으며 식사장에 입장했다.
상석에 앉아있던 후작은 다크서클이 볼 밑까지 내려온 것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모두 앉거라. 스프가 식겠구나.”
불편한 식사.
이러다 아침마다 체하겠다.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후작에게 북부행을 설득시킬지로 가득했다.
바로 그때였다.
“헤논, 북부로 가거라.”
이게 웬걸.
후작이 먼저 나에게 북부행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너무 쉽게 고민이 해결돼서 얼떨떨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북부가 제가 아는 그 북부가 맞습니까?”
“그렇다.”
“너무 갑작스럽군요.”
“갑작스럽다니. 이 어미는 이해가 안 가는구나.”
로잘린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내가 말했잖니? 로이드가 가지는 이름의 무게는 무겁다고. 북부로 가서 가문을 빛내고 오려무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아침부터 찾아와서 보여준 일련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내 북부행 때문이었나.
유치한 행동에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정말 경박하구나. 진지한 자세로···”
“후작님, 이건 의무입니까?”
로잘린을 무시하고 후작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의무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권유사항이지. 원치 않는다면 안 가도 된다.”
“당신!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헤논이 북부로 가지 않으면 후작령 삼 년 치 세금을 왕실에 바쳐야 한다고요!”
로잘린의 새된 목소리.
어떻게든 나를 북부로 보내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북부는 생존하기 어려운 장소다. 단순히 검을 잘 휘두른다고 되는 곳이 아니지. 네가 북부로 가는 게 영지를 위해서 좋은 일이기는 하나, 원치도 않는데 사지로 보내고 싶진 않다. 네 의견은 어떠하냐?”
필립, 로잘린, 로이드 후작.
시온을 포함한 집사와 하녀들까지.
모든 이의 시선이 모였을 때,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북부로···보내주십시오.”
후작이 눈썹을 들썩였다.
로잘린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고 필립이 히죽댔다.
시온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집사장 세바스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천마는···
-운 좋은 놈! 잘될 놈은 엎어져도 황금을 줍는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군!
왜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혼자 씩씩댔다.
저런 못된 심보를 지녔으니 검에 봉인됐···크흠흠, 여기까지만 말하자.
아무튼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비장한 표정을 유지했다.
로이드 후작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정말이냐? 취소할 기회를 주마. 그곳은 네 상상과는 무척이나 다른 곳이다. 젊은 혈기로 해결되는 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진심입니다. 저로 인해 영지의 자산이 굳고 가문의 이름을 빛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영광이지요.”
“헤논이 가고 싶대잖아요? 어서 보내주죠. 참으로 장하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로잘린의 칭찬을 들었다. 당연하게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저 또한 북부에서의 군생활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왕국과 가문을 위해 봉사하고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로이드 가문을 위해 뼛속까지 충성하는 발언을 했다.
결국은 공허한 발언이다.
귀족자제 중 2명 중 1명은 죽어나가는 곳이 북부였으니까.
심지어 생존률 50%도 가장 후방에 있는 귀족 기준으로 말한 거다.
사생아인 나는 후방 배치라는 특권도 못 받을 테니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으면 사실상 죽은 목숨이라 보는 게 옳았다.
그러나 가야만 한다.
단순히 황금가지를 얻고 강해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다가올 메인스트림을 극복할 힘을 얻지 못하면 후작령에 있으나 북부에 있으나 죽은 목숨인 건 매한가지다.
나로서는 <시온라이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서 다소 강하게 나갔는데, 이런 내 모습이 로이드 후작에게는 인상 깊었나 보다.
후작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로이드 가문은 논공행상이 분명한 곳이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고 잘한 일이 있으면 상을 받는 당연한 이치가 확실하게 작용하는 곳이지. 만약 헤논 네가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면···응당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마.”
무슨 보상인지 따로 말하진 않았다.
패밀리 네임을 줄 때도 따로 보상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던 후작이다.
그런 후작이 보상이란 단어를 직접 꺼냈으니 살아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리라.
어디까지나 살아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당연하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단다.”
“내 동생이 북부에서 귀환한 역전의 용사라니. 내가 다 자랑스러워지는군.”
로잘린과 필립도 맞장구를 쳤다.
죽을 놈이니 선심이나 쓰자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언제쯤 갈 생각이냐?”
“내일 가겠습니다.”
“시원하구나. 좀 더 있어도 된다.”
“아뇨. 굳이 밍기적거릴 필요 없지요. 다만 동반인을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누구를 데려갈 생각이지? 가문의 기사는 각자 일로 바빠서 네가 원한다고 붙여주기 힘들단다.”
로잘린은 내 생존률이 올라갈 어떠한 변수도 주고 싶지 않은 듯 호위무사 동반을 원천차단했다.
로이드 후작이 이를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차피 기사를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웬만한 기사보다 더 실력 있고 나랑 잘 맞으며 외모도 아름다운 인재가 있잖는가.
“하녀 시온을 같이 데려가고자 합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예에에에???”
뒤에 있던 시온이 경악한다.
예상조차 못한 모양.
마치 반에서 싫어하는 남자애에게 고백받았을 때 딱 그 얼굴이다.
이건 좀 상처인걸?
“허락한다. 애초에 네 전담하녀였으니 따라가는 게 당연하지. 집사장, 괜찮나?”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건 당연하지요. 제 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녀라면 뭐···가서 빨래나 목욕물 받아줄 여인 한명 쯤은 있어야지.”
시온의 진정한 무력을 알지 못하는 로잘린과 필립도 수긍하는 모양새.
그저 시온의 얼굴만 거무죽죽하게 죽었다.
감히 내가 가는데 안 따라가려 했다니.
무례했으니 나중에 대련으로 갚아줘야겠다.
* * *
다음날 새벽.
마차가 준비되었다.
온 가족이 나와서 날 배웅해줬다.
이러니까 갑자기 논산훈련소 가는 그날이 떠오른다.
물론 그때처럼 멋있는 군악대나 빨간모자 조교님들은 없었다.
“오오, 헤논! 꼭 무사히 돌아오거라. 이 어미가 매일 태양신 벨라누스님께 기도해주마.”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거 맞죠? 죽여달라고 기도할 것 같은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갔어야 하는데 동생을 대신 보내는 못난 형이 되었구나. 꼭 무사히 돌아오너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네가 대신 가던가.’ 라고 말하려던 걸 역시나 참았다.
이에 반해 로이드 후작의 배웅은 현실적이었다.
“네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버려라. 검술 실력?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일 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명심하도록.
그리고는 편지 한 장을 나에게 전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블랙캐슬 사령관 카리나에게 전해라.”
“알겠습니다.”
편지를 품에 넣고 마차에 탑승했다.
이미 맞은편에는 시온이 앉아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모두 무탈하시길.”
“건강하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덜그럭 소리와 함께 나와 시온을 실은 마차가 후작성을 떠났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다.
* * *
북부로 가는 여정.
마부 한 명을 대동하고 출발했다.
나와 시온은 말린 육포를 비상식량으로 한가득 넣었다.
후작령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장원마다 들러서 은화를 지불하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사령술사가 출몰했던 케이브 장원에도 재차 방문했다.
촌장 해리슨을 비롯한 주민들은 특히나 더 나를 극진히 대접했다.
“음식 말고 술도 드시지요. 어째 술은 입에도 안 대시는 듯합니다.”
“수면제를 탔을까봐 무서워서 그러네. 이미 전적이 있잖나?”
“아이고! 저희가 설마 또 그러겠습니까? 게다가 수면제 탄 술을 드시고도 멀쩡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타긴 탔다는 말이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발 좀 드셔주십쇼!”
촌장 해리슨을 놀리는 맛이 쏠쏠했다.
어쨌든 그곳에서도 좋은 하루를 보냈다.
보름 정도 지난 후 후작령을 벗어났다.
중간에 몬스터 무리를 한 번 만났다.
겨우 고블린 열 마리.
잠든 사이를 노려 우릴 습격했지만 불침번이었던 시온에게 걸리고 말았다.
싱거운 전투와 함께 손쉽게 물리쳤다.
여행 도중에도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천마의 조언을 받으며 끊임없이 검술을 다듬어나갔다.
그의 조언도 아버지 로이드 후작의 조언과 흡사했다.
-지금 네가 배우는 것들은 전부 정석적인 검법이다. 실제 전투에서는 온갖 반칙과 변수가 난무하지. 그런 면에서 볼 때 네놈은 아직 애송이다.
-드루이드 능력? 물론 놀랍지. 나조차도 애먹을 정도였으니까. 허나 명심해라. 그런 드루이드조차 본좌를 감당하지 못하고 봉인에 그쳤다는 사실을.
-단전에 쌓인 마나를 늘려라. 네 기초 체력이자 생명줄이다. 북부산맥은 기후가 척박하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정 수준의 마나량은 필수다.
천마의 정성 어린 조언을 바탕으로 발전해나갔고, 옆에서 실시간으로 내 성장을 체감한 시온도 자극받았는지 같이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오죽하면 마부가 좀 쉬시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다.
길은 점점 척박해졌다.
푸르렀던 녹원은 황갈색의 메마른 고원이 되었다가 이내 새하얀 설원이 되었다.
하루에도 마차 바퀴가 몇 번씩 빠져서 마나를 써서 들어올리기를 반복했다.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져서 안팎으로 양모로 뒤덮인 두꺼운 후드를 걸쳤다.
맞은편에 있던 시온은 연신 손을 호호 불어댔다.
“손이 많이 시린가?”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니야. 손이 벌겋구먼.”
“사실 수족냉증이 있습니다.”
지구나 여기나 젊은 여자들 수족냉증 달고 사는 건 똑같구나.
“북부에 힐러가 있을지도 모른다.”
“후작성에 제국 출신 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듣기로는 사제들은 모두 배부른 돼지라더군요.”
“배부른 돼지라.”
“힐 조금 해주고 돈을 엄청나게 뜯어간답니다. 게다가 신성력이 충만한 사제가 아니면 힐링의 효과도 미미하고요.”
“그렇군.”
덜컹!
시온과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이윽고 바깥에서 마부의 말이 들렸다.
“헤논님.”
“무슨 일이지.”
“웬 행인 하나가 동승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북부의 추운 설원에 행인이 있다니 의외였다.
“위협하든가?”
“그건 아닙니다만,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습니다.”
호기심이 들었다.
“나가보마.”
마차의 문을 열고 나가니 낡은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후드에는 눈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낯선 사내는 날 보더니 후드를 벗었다.
쌓여있던 눈이 떨어지며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편안한 인상.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천마의 말이 들렸다.
-저놈, 고수다. 네놈보다 한참 윗줄이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급하게 마나를 몸에 둘렀다.
이런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남자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잠깐이라 언뜻 보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그랬던 남자는 이내 빙글빙글 웃으며 넉살 좋게 말했다.
“별 볼 일 없는 나그네 빅터라고 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우니 같이 좀 타고 가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