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9화(19/200)
3장 북부 : 통과한 망나니
낯선 나그네 빅터와 동행했다.
빅터는 블랙캐슬 사령관인 카리나 휘하 레인저 부대 단장이란다.
근무한지 벌써 7년이 넘은 고참이라고.
임무를 받고 잠시 남쪽에 내려왔다가 복귀하는 길에 나와 마주친 모양이다.
“이런 우연이 있나! 그쪽도 블랙캐슬로 향하는 길이었다니!”
내가 시온과 함께 블랙캐슬에 군복무를 하러 간다니 격한 리액션을 보였다.
“보아하니 귀족 같은데 굳이 사서 고생하는 이유가 있나? 대부분 돈을 내고 군복무를 대체하던데.”
“사생아다.”
“아.”
사생아는 참 편리한 단어다.
빅터는 곧장 알아들었다.
“버린 자식이라는 건가. 그래도 귀족 나으리인데 이런 험한 곳에 오다니 처지가 딱하게 됐어. 그리고···”
빅터가 시온을 곁눈질했다.
“귀족 나으리를 보좌하러 온 건가? 젊은 여인이 이곳에서 좋은 꼴 보기는 힘들어. 지금이라도 돌려보내는 게 어떻겠나?”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신경 꺼주시죠.”
“워우~기백은 합격.”
시온이 특유의 차가운 말투로 응대했더니 오히려 좋아한다.
알고보니 빅터는 수다쟁이였다.
우리가 시큰둥하게 반응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말하는 내용은 주로 사령관 카리나에 대한 찬양이었다.
“블랙캐슬의 사령관 카리나님께서는 그야말로 역사에 기록될만한 위대한 분이시지.”
“그런가?”
“당연한 소리! 은퇴하신 로이드 후작을 제외하고는 엘든 왕국에서 유일하게 현역으로 활동 중이신 소드마스터시다.”
예전에 들었던 정보였다.
코딱지만한 엘든 왕국이 아직도 칼론 제국에 안 잡아먹힌 이유는 소드마스터 카리나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다.
“어디 그뿐이겠나? 마왕에 맞서 대륙을 지키신 세븐 스타 중 일인이시자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마왕과 용사 카일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북부 산맥을 지키는 파수꾼이시지.”
“무엇보다 여인의 몸으로 엄청난 업적을 이룩하셨으니 북부인에게는 카리나님이 여왕이라네.”
이후로는 북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에 대해 역설했다.
“가끔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아르니아 대륙에 마계가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일 거라고.”
“그 정도로 척박한가?”
“말도 못할 정도의 추위는 기본일세. 동상에 걸려서 발가락 한두 개 없는 놈이 부지기수야. 하루는 불 피우는 걸 깜빡하고 잠들었더니 옆엣놈이 얼어죽었네.”
“심각하군.”
“이건 약과야. 하루 건너 하루마다 몬스터가 출몰하네. 여기 있으면 인간보다 몬스터의 얼굴에 익숙해진다.”
빅터는 꾸밈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인가 보다.
단순히 겁을 주려고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느껴젔다.
빅터를 만나고 나서도 며칠 더 북상했다.
덜그럭거리던 마차는 어느새 북부의 허브이자 전초기지인 블랙캐슬에 도착했다.
“블랙캐슬에 온 걸 환영하네.”
마왕성이 이러할까?
처음 본 블랙캐슬은 모든 구조물이 시커메서 단단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풍겼다.
뾰족한 철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었다.
성벽의 높이가 다른 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서 뒷목이 당길 정도로 고개를 당겨야 그 끝이 보였다.
눈이 하도 내려서 블랙 앤 화이트로 색상이 대조되는 느낌은 있었다.
“성문이 열려있군.”
“이곳은 남문이니까. 남쪽으로 향하는 문은 언제나 열려있어. 반면의 북문은 그렇지 않아. 한 번 열릴 때마다 몇 명은 죽어서 돌아오니 우리 사이에서는 헬게이트라 불리지.”
살벌한 소리를 읊조리던 빅터는 나와 시온을 데리고 블랙캐슬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로 안내했다.
“이곳이 사령관님의 보금자리네. 마침 나도 보고할 일이 있으니 같이 들어가세.”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북부 사령관의 집무실.
다양한 종류의 검이 벽에 걸려있었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탁탁거리며 불꽃을 내뿜었다.
창 밖으로 휘이잉거리는 눈보라 소리와 대비되어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령관 카리나는 책상에 한쪽 다리를 걸친 채 손으로는 검신이 짧은 단도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아슬하게 춤추는 단도가 날카로운 예기를 흩뿌렸다.
그녀는 미녀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 붉은 눈썹과 입술. 새하얀 피부.
마왕 침공 당시 십대 소녀였다고 했으니 지금은 삼십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일 터.
겉보기에는 무척 젊어보였다.
어디까지나 겉모습은.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와 눈동자에 아로새겨진 연륜이 묘하게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빅터, 늦었군.”
“북부의 사령관을 뵙습니다.”
“인사치례는 됐어. 뒤에는 누구지?”
“오면서 만났습니다. 그 유명한 로이드 후작님의 아들이랍니다.”
“···로이드?”
이제는 내 차례다.
앞으로 한발짝 나섰다.
“헤논 로이드입니다. 북부에 군복무를 하러 왔습니다.”
“안 돼. 돌아가.”
이건 예상 못한 답변인데.
“예?”
“돌아가라고. 귀족놀음 하는 곳 아니야.”
“사생아입니다. 원래 헤논 트리스였는데 가문을 빛내고자 헤논 로이드로 개명했습니다.”
결국 또 사생아 카드를 써야하나.
그래도 망나니 카드는 안 써서 다행이다.
칼날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카리나는 드디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요모조모 살펴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랑 전혀 안 닮았는데.”
“어머니 닮았습니다.”
“북부와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야. 너무 곱상해. 잘생겼어.”
“예엣? 카리나님 이런 여리여리한 얼굴이 취향이셨습니까?”
옆에서 빅터가 입을 떡 벌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후작성에서부터 가져온 로이드 후작의 편지를 카리나에게 건넸다.
편지를 받은 그녀는 10초 만에 가볍게 읽고 벽난로로 던졌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편지.
“아저씨가 널 후방에 배치해달래. 널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너희 집안도 어지간히 콩가루구나?”
“후방에 배치되면 북쪽으론 못 나갑니까?”
“횟수의 차이가 있을뿐. 북부의 모든 군인들은 순찰을 나가야 해.”
나는 황금가지를 찾고자 북부로 왔다.
천마의 말에 따르면 황금가지는 블랙캐슬을 기준으로도 더 북쪽에 있단다.
그렇다면 후방이 아니라 순찰을 자주 나가는 전방에 배치되어야 찾을 확률이 올라간다.
“순찰을 가장 많이 나가는 곳은 어딥니까?”
“그건 왜 물어봐?”
“궁금해서요.”
빅터가 옆에서 대답해줬다.
“내가 단장으로 있는 레인저가 가장 많이 나가. 우리는 비번을 제외하고는 매일 북쪽으로 순찰을 간다.”
아무래도 내가 가야할 곳이 정해진 듯하다.
“시온과 함께 레인저가 되고 싶습니다. 그곳으로 절 보내주십시오.”
짧은 순간이지만 카리나의 눈이 가늘어졌고 빅터도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기왕 군복무하는 것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레인저 부대는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야. 최소 기준치의 무력은 충족해야지 가능해.”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았습니다.”
‘망나니라서 주로 때리는 쪽이었지요.’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카리나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서렸다.
“배짱은 좋네. 하지만 그게 네 목숨을 구해주진 않지. 어쨌든 마음에 들었으니 작은 테스트나 하나 해볼까?”
카리나는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홱 던졌다.
순간 나한테 던지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자세를 잡았는데 단도는 나와 카리나의 정확히 가운데에 꽂혔다.
“시험은 간단해. 바닥에 박힌 검을 뽑아봐. 그러면 수색대에 넣어줄게. 뒤에 하녀도 같이 해보렴. 실패하면 둘 다 얌전히 아저씨한테 돌아가면 돼.”
땅에 박힌 칼과의 거리는 고작 다섯 발자국.
가볍게 걸어가서 칼을 뽑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쉬웠으면 카리나가 굳이 테스트란 말까지 썼을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기가 무거워졌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심장이 옥죘다.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눈앞이 핑 돌았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후작성의 정원에서 드루이드로 각성한 이후 로이드 후작을 만났을 때였다.
당시에 후작은 시들어가는 상수리나무를 보고 대노하여 나에게 살기를 쏘았었다.
상황 자체는 그때와 유사했지만 압박의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훨씬 더 심했다.
아마도 은퇴한 소드마스터와 현역 소드마스터 간의 차이겠지.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저게 북부의 별 카리나의 본질이었군.’
붉은 머리털이 올올히 올라온 그녀 뒤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검은 재규어의 형상이 둥둥 떠있었다.
재규어의 두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타올랐다.
카리나가 낸 시험의 요결은 간단했다.
소드마스터가 작정하고 내뿜는 살기를 극복하고 저 검을 뽑을 수 있느냐.
인제 보니 시험의 난이도가 극악이다.
그녀는 나와 시온을 북부에 머물게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곁눈질로 슬쩍 시온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몸을 가늘게 경련하던 그녀는 어떻게든 한발자국을 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얼마나 이를 악 물었는지 입술이 터지는 바람에 붉은 선혈이 턱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원래라면 나 또한 시온과 비슷하게 반응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미 눈앞에 익숙한 상태창이 보였다.
[스킬 자정작용이 발동됩니다.]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입니다.] [해로운 효과가 제거됩니다.]오히려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
어지럽던 머리가 맑아졌다.
납덩이 같이 나를 잡아끌던 무형의 무게추가 모조리 사라졌다.
심장이 힘차게 뛰고 호흡이 편안해졌다.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한편, 카리나는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가 절대 해낼 수 없을거라 확신하는 모양새였다.
“크흑!”
어느새 시온은 한발자국 앞으로 디뎠다.
충혈된 눈에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저러다 눈알 터질라.
시온이 자기 몸 안 돌보고 덤벼드는 미련한 성격임을 알고 있기에 이쯤해서 슬슬 움직이기로 했다.
“카리나님, 정말로 바닥에 꽂힌 검을 뽑으면 수색대에 넣어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한 번 뱉은 말은 확실히 지키는 주의라서.”
“좋습니다.”
확답을 받고 움직였다.
한걸음. 또 한걸음.
아주 가볍게. 산책 나서듯이.
뚜벅.뚜벅.뚜벅.뚜벅.뚜벅.
정확하게 다섯 걸음을 걷자 발끝에 카리나가 꽂아넣은 단도가 닿았다.
“어, 어떻게!”
책상에 반쯤 걸터앉았던 카리나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빅터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온은···왜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을 글썽였다.
감정이 복받친걸까.
별로 상관은 없다.
허리를 숙여 검손잡이를 쥐니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꽂아 넣은 게 아니라 마나를 담아서 박아넣은 단도다.
단순히 힘만으로는 뽑을 수 없으니 최소 마나 유저는 되어야 합격자로 뽑겠다는 얘기다.
그리고 내 단전에는 지금도 마나가 용솟음치고 있다.
‘그나저나 대단하긴 하네. 몸에서 떨어진지 한참 지난 무기에 원하는 만큼의 마나를 머물게 하다니.’
카리나의 마나운용력에 감탄하기도 잠시, 손에 마나를 둘러서 있는 힘껏 검을 뽑아올렸다.
뽕!
병따개로 맥주병 따는 듯한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단도가 딸려나왔다.
너무 손쉬워서 이게 시험인가 싶다.
주변이 고요했다.
모두가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해줬다.
“칼을 뽑았습니다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잠시 후.
카리나의 웃음소리가 집무실을 울렸다.
“푸하하하! 과연 아저씨 아들이라는 건가? 무슨 수를 쓴 건지 도저히 모르겠어.”
“가문의 비전기술입니다.”
“거짓말. 아저씨에게 살기에 저항하는 특별한 기술 따윈 없었다. 설마 있었어도 사생아에게 그런 기술을 가르켜줄 리가 없잖아.”
쩝, 바로 들켜버렸네.
아무튼 시험은 통과했다.
카리나에게 다가가서 단도를 건넸다.
검을 받아든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북부에 온 것을 환영한다. 사생아 헤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