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1)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91화(191/200)
22장 결착 : 탈각한 망나니
쾅!
정답을 알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섰다.
거친 기세에 지나가던 하녀가 꺄악거리며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야.”
“예···예?”
“삽 있냐?”
“삽이요? 잘 모르겠어요.”
“모르면 찾아서라도 내놔. 죽여버리기 전에.”
망나니 명함이 이럴 때 편하다.
겁에 질린 하녀가 낑낑거리며 나무삽을 들고 왔다.
그녀에게서 삽을 확 잡아채고 바깥으로 나갔다.
“더럽게 무겁네.”
현재 나는 오른손과 왼다리가 잘린 상태다.
겨드랑이에 낀 삽을 목발로 짚으며 길거리를 걸었다.
주변에서 징그럽다는 시선을 보내거나 등 뒤에서 손가락 욕을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내가 묻힌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곳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으니까.
도착한 시각은 자정.
달빛에 의지해 첫 삽을 퍼올렸다.
“에라이!!”
절로 육두문자가 나온다.
오른손 없이 왼손으로만 땅을 파봐라.
게다가 나는 오른손잡이다.
골반을 지지대 삼아 손잡이를 지탱하고 왼손으로 삽자루를 쥐고 퍼올렸다.
삽의 무게만으로도 무거운 참에 흙 무게까지 더해지자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차라리 몸만 힘들면 다행이지, 가장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만약에 헛다리를 짚었다면?’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장이었다면? 나 혼자 급발진해서 맨땅을 파고 있다면? 메시지는 맞되 내가 잘못 해석했다면?
턱선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아까보다 굵어졌다.
푹! 푸욱! 푹! 푹!
내가 이렇게 깊게 묻혀있었나?
불안감이 점점 증대되었다.
그러면서도 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구덩이 하나가 만들어졌다.
“하아···설마 진짜 아니었던 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쉴 때였다.
까앙!!
기계적으로 퍼올리던 삽 끝자락에 낯선 감촉이 걸렸다.
반가운 소음도 함께였다.
‘뭔가 있다!’
삽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은 채 멀쩡한 왼손으로 정신없이 땅을 파헤쳤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
땅 속에 검은 관이 묻혀있었다.
결국 이 세계의 ‘맹점’이자 ‘역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패러독스(paradox)
나는 관 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맨땅에서 흙덩이를 입에 머금고 시작했다.
“정말로 가짜 세계였군.”
조심스럽게 관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고 그 안을 살펴본 내 동공이 확장되었다.
거기에는···가슴에 손을 올리고 얌전히 잠들어있는 내가 있었다.
한 세계에 동일한 인물이 두 명 존재한다.
비상식적인 일이 계속해서 발견되자 견고했던 가상세계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간 여기저기에 균열이 가고 부서진 조각들이 땅에 떨어지고 그 너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일렁였다.
쿠콰콰콰콰!!!
땅이 미친 듯이 뒤흔들리며 지진을 만들어냈다.
동요하지 않고 손을 천천히 내뻗었다.
손끝이 헤논의 시체에 닿았다.
번쩍!!
시체처럼 누워있던 헤논이 눈을 떴다.
나와 내가 눈동자를 마주치는 찰나,
쨍그랑!
거짓된 세계가 무너졌다.
* * *
세계수 이그드라실에 의해 아르니아 대륙으로 떨어졌을 때, 나는 헤논 로이드라는 사생아 몸에 빙의되었다.
당시 헤논은 실제로 죽음을 맞이해서 땅에 묻힌 상태였고 그의 몸에는 나 김철수의 영혼이 들어갔다.
헤논으로 생활하면서, 신체의 원래 주인이었던 헤논의 영혼은 죽어서 승천했거나 스틱스 강을 건넜거나 윤회의 고리에 녹아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헤논의 영혼은 죽어서도 육체를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오르네오 현자님에게 듣기로 이런 케이스가 제법 있다고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죽음을 인지했어도 미련이 크게 남아서 자신의 몸에 억지로 들어가 머무는 경우.
물론 영혼이 신체에 머문다고 해서 그가 신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생(生)을 정의하자면 영혼과 육체를 연결해주는 무형의 영적 에너지다.
한번 죽음을 맞이한 순간 육(肉)과 영(靈)을 연결하던 얇은 실이 끊어져서 영혼이 아무리 노력해도 육체를 움직일 수 없다.
강제로라도 신체를 움직이려면 순리를 거부하고 역행해야만 한다.
이를 역천(逆天)의 술법이라 하여 아르니아 대륙에서는 흑마법, 그리고 이 흑마법을 다루는 자를 네크로맨서 내지는 사령술사라 부른다.
이 기준에 빗대어 살펴보면, 나와 헤논의 관계는 굉장히 특수했다.
헤논의 영혼이 신체에 머물러 있을 때 내가 그의 몸을 비집고 들어온 셈이니까.
원래라면 자신도 아닌 타인의 몸에 들어가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고, 심지어 주도권까지 갖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와 헤논의 육체를 생(生)의 에너지로 연결해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붕 떠버린 건 헤논의 영혼이었다.
졸지에 눈 뜨고 몸을 강탈당했으니까.
그런데도 헤논은 별다른 저항 없이 얌전히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헤논도 내심 짐작한 것이다.
혹시라도 운이 좋아서 육체를 되찾아봐야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런 헤논에게 상수리나무에 깃들어 있던 친모 헤나의 영혼을 만나게 해주었다.
사실 의도적으로 만나게 해준 건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헤논의 영혼이 숨어있는 줄도 몰랐다.
정령의 목소리를 따라가서 상수리나무에 접촉하고 영적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지했다.
동시에 모자(母子) 상봉도 이루어졌다.
‘헤논을 잘 부탁해요.’
헤나는 아련한 목소리로 내게 부탁했다.
이후 헤논의 육체를 드루이드로 각성시킨 하이엘프 주술사는 마지막 힘을 다하고 성불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와 헤논 사이에는 암묵적인 협의가 이루어졌다.
나는 헤나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망나니 헤논의 삶을 영웅 헤논의 삶으로 바꿔놓았고, 헤논의 영혼은 묵묵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봐 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둘 사이에는 변화가 생겼다.
일단 내 정체성이 점차 사라져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체성 자체가 헤논이 되었다.
어느새 김철수란 존재는 사라지고 헤논만 남게 되었다. 이제 나도 내가 헤논인지 김철수인지 헷갈렸다.
영혼의 형태로 존재하던 본래의 헤논도 이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헤논인가.
그가 헤논인가.
아니면 둘 다 헤논인가.
헤논은 누구인가.
처음에는 작은 의심으로 시작했다.
나조차도 의식 못 할 정도로 뇌리 한구석에만 맴돌던 의문.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의문은 불안의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웠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세상과 소통할 기회가 자주 찾아왔고, 그럴수록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중요해졌다.
싹을 틔운 의심은 야금야금 영혼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심마(心魔)로 인한 영혼 오염의 전조였다.
나는 영혼이 아프다고 신호하는지도 몰랐다. 그러기에는 현실에 닥친 일이 너무 많이 밀려있었다.
당장 마왕 바알의 부활이 코앞이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황혼교주와 싸웠다.
내면의 상태가 어떤지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훈련하면서도 성장이 정체된 이유가 단순히 벽에 막혀서인 줄 알았다.
영혼이 만신창이였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천마님은 내 상태를 알았던 걸까.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영감님은 내가 시간에 쫓겨 허덕인다는 걸 알고 휴식을 권했다.
오랜만에 숨 좀 돌리자 순간적이지만 내 육체와 영혼이 극히 취약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미 뿌리를 깊게 내린 심마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심마는 절망 밖에 없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내 의식을 강제로 그 속에 가두었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을 때 발생한 작고 사소했던 약점을 절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내가 가상세계에서 나갈 수 없던 이유는 명확했다.
어쨌든 세계를 만든 사람이 나 자신에서 비롯된 심마였으니까.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해서 머릿속 의문을 말끔하게 해소하기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탈출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를 도와줬구나.”
심마에 먹혀서 자아가 소실되려 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놀랍게도 그동안 잠자코 지내던 헤논이었다.
그는 나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내가 만든 세계에 간섭할 수 있었다.
다만 간섭 정도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 방면으로 힌트를 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가 전해준 단서를 바탕으로 나는 이 세계의 맹점을 찾아 가짜 세계를 타파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 * *
부서진 세계.
이곳은 내 의식이다.
일렁이는 어둠.
나와 헤논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눈, 코, 입, 머리카락, 입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똑같다.
“도와줘서 고맙다. 덕분에 살았다.”
맞은편의 헤논에게 말했다.
그러나 헤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표현. 잘못되었다.”
헤논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다시 자신을 가리키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다시.”
“고맙다···”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기도 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고민할 때, 헤논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나는 너, 너는 나다.”
그동안 지겹게 보았던 문장이다.
아직도 나는 이 문장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헤논은 나고, 나는 헤논이다.
이 당연한 말을 왜······
“아!!!”
뇌리를 관통하는 번뜩임.
드디어 깨달았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되돌아왔다.
이제 빈 공간에 끼워 넣을 차례.
“고맙지···않다.”
정확히는 고마울 필요가 없다.
고맙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감사의 표시로 하는 말.
여기서 누군가는 결국 타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타인이 아니다.
내가 나를 도와주는데 굳이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정답을 찾아내자 맞은편 헤논의 입가에 미미한 호선이 그려졌다.
“그래.”
“고마울 필요가 없구나.”
“그래.”
“너는 나고, 나는 너니까.”
돈오의 순간을 음미할 때.
헤논이 돌발질문을 던졌다.
“너는 김철수인가, 헤논인가.”
다시금 의식이 흔들렸다.
나는 김철수일까? 아니면 헤논일까.
지구에서의 생활이 다시금 기억을 스쳤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불우한 삶이었으나, 분명 그 삶에서의 나는 김철수였다.
다시 돌아와서.
아르니아 대륙에서의 헤논은 나일까?
내가 헤논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맞은편에 있는 헤논은 누구지?
심장이 지끈거리며 통증이 올라왔다.
이제야 알아차렸다.
내 심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너는 김철수인가, 헤논인가.”
“너는 누구인가.”
다시 묻는다.
대답을 고르고 고른다.
김철수는 나다.
나는 헤논이다.
헤논은 김철수다.
세 가지 명제가 무한 루프 알고리즘를 타고 돌고 돈다. 참과 거짓이 섞여 혼돈을 그려낸다. 머릿속이 빙빙 돈다.
다시금 심마가 마수를 뻗쳐온다.
어둠에서 비롯된 검은 손이 일렁거리며 내 심장을 꽉 움켜쥐었다.
고통이 느껴진다.
이 심장이 멈추는 순간 내 자아는 붕괴될 것이다.
맞은편의 헤논은 고요한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두근! 두근! 두근!
정답은 대체 무엇일까.
너무 어렵다.
심마의 손이 심장을 거듭 압박했다.
두근··· 두근··· 두근···
아까보다 확연히 느려진 심장박동.
이제는 사고 회로마저 과부하를 일으킨다.
점차 생각이 둔해지고 죽음과도 같은 편안함이 의식을 감싸온다.
의식을 잃는 순간 끝이라는 걸 알고도 편안함에 몸을 맡기게 된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희미해졌다.
점점 먼 곳에서 들려온다.
내 심장이 심장이 아닌 듯하다.
나는 내가 아닌 건가?
헤논은 김철수가 아닐까?
결국 무엇을 위해서 달렸던 걸까.
내 몸도 아닌데.
두근.
마지막 심장박동.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소멸로 이어지는 안식.
이대로············
“떽! 저리 물러가거라! 어디 구경났느냐? 위험한 상태니까 방해하지 말고 꺼져!!”
쩌엉!!!
귓가를 울리는 걸걸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천마 영감님이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영감님은 무엇을 위해 나를 지켜주는 걸까.
나는 진짜 헤논이 아닌데.
어째서 가짜를 위해 저렇게까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맞은편에 있던 헤논이 똑같은 문장을 내뱉었다. 그러자 심장이 다시금 미친듯이 뛰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
잠깐 사이에 천마와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흘렀다.
영감님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시온, 캠벨, 코코, 라칸, 에이든, 사샤, 레베카, 메리안, 브론, 카리나, 고든, 오르네오, 톰, 테오도르, 일리나.
이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기억들. 힘들게 극복한 역경들. 같이 웃었던 추억들.
전부 거짓된 순간이었을까? 그들은 헤논이 아닌 가짜에게 진심을 내보였던 걸까?
‘그럴 리 없지.’
그때 당시의 나는 누가 말해도 헤논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헤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헤논이 맞다.’
스팟!!!
심장 중심에서 눈부신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심마의 손은 빛에 닿자마자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깨달음이 구체화되고 현실화하여 재정립된다.
맞은편의 헤논이 다시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헤논이다.”
“너는 김철수인가?”
“나는 김철수이다.”
김철수 또한 내가 가진 기억의 파편 중 하나.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김철수이자 헤논.
처음부터 두 사람을 별개의 존재로 볼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나는 나니까.
“나는 김철수이자 헤논이다.”
스파아앗!!!
돈오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빛은 점점 밝아지고 어둠은 점점 사라졌다.
영혼의 부족함이 채워지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전신을 채우며 하나의 소우주를 완성시켰다.
“나는···누구인가?”
헤논의 물음.
나는 이미 대답을 완성시켰다.
“너는···나다.”
헤논이란 한 인간.
그의 과거조차 내가 품고 가야할 나의 조각 중 하나다.
이 모든 건 빙의라는 특수한 수단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생의 삶.
빙의하기 전 삶.
빙의한 후의 삶.
세 종류의 기억 파편이 서로 섞이지 못하고 부딪치며 균열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본질을 파악하여 그 정수에 다다랐으니.
애초에 기억 파편은 파편일 뿐이다.
조각을 가지고 왜 끙끙대는가.
합쳐서 하나로 만들면 될 것을.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이 문장에 내포된 함의를 깨닫기 위해서 길고도 먼 길을 걸었다. 그래도 결국 정답을 찾아냈다.
영혼의 합일(合一)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여태껏 경험하지 못할 강렬한 힘이 상, 중, 하단전을 모두 일통하며 정수리로 치솟았다.
천공혈을 통과한 빛기둥은 하늘까지 꿰뚫을 기세로 치솟았다.
백색이었던 하나의 빛은 어느새 다섯 가지의 오색 영롱한 색을 띠며 내 주위를 천천히 회전했다.
“애송이 녀석, 삼화취정을 넘어 오기조원의 경지에 올랐는가.”
멀리서 들린 천마의 목소리.
어째서 내가 벽을 마주하고 성장이 정체되었는지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 영혼마저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대우주를 탐험하려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모두 합쳐서 하나의 ‘나’로 엮어냈으니까.
[마나 각성도가 최대치입니다.] [혼합률이 최대치입니다] [초록마나 각성도 100%] [MAX] [푸른마나 각성도 100%] [MAX] [용혈 각성도 100%] [MAX] [혼합률 100%] [MAX]마나 각성도가 정상을 찍었다.
완전해진 하나의 영혼이 답답한 듯 연신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육체라는 매개체에 구속되어 있던 영혼이 한계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적!!
마치 육체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듯.
전신의 피부에 균열이 생기고 틈새에서 오색영롱한 빛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균열은 점점 커지고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마침내 육체가 깨져버렸다.
퍼석!!
탈각(脫殼).
껍질을 벗고 새롭게 거듭난 몸.
투명한 피부에는 핏줄과 모세혈관이 모두 비쳐 보였다.
두근대는 심장과 꿀렁거리는 신체 장기가 선명하게 시야에 잡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몸이 가벼웠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내뱉자 하늘로 치솟았던 빛기둥과 내 주위를 떠돌던 영롱한 빛들이 전부 내 안으로 모여들었다.
쿠콰콰콰콰콰!!!!!
천지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신체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투명했던 전신에 생기가 돌며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파앗!!
마지막 반짝임을 끝으로 모든 빛을 흡수하고 갈무리했다.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눈을 번쩍 떴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오감으로만 인식하던 세계가 얼마나 비좁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부로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반쯤 벗어났다.
반인반신(半人半神)
현재의 내 상태였다.
“경지에 오른 걸 축하한다. 애송이.”
천마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이제야 그의 진면목이 보였다.
늙은 육체 위로 일렁이는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하게 불타는 무도에 대한 순수한 열의가.
뜬구름 같던 그의 강함이 실체화되어 내 손에 잡혔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이제야 천마님과 같은 출발선에 섰다.
마왕 부활까지 [D-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