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199)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99화(199/200)
23장 외전 : 전달한 망나니
#6
갈라나흐.
엘든 제국 기준으로 서쪽, 칼론 제국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땅이다.
도시 자체는 작지만 마수의 숲을 끼고 있어서 땅덩이는 넓다.
원래 갈라나흐는 칼론 제국령이었지만 최근에 어찌된 영문인지 엘든 제국령에 속하게 되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높으신 분들의 협약 때문이라던데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갈라나흐는 예전부터 모험가 길드가 유명한 도시였다.
길드에서 임무를 받은 모험가들은 마수의 숲에 나오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의뢰비를 받았다.
몬스터에게서 나온 부산물을 길드에 파는 식으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갈라나흐 모험가 길드의 역사는 크게 마수의 숲지기 토벌 전과 후로 나뉜다.
숲지기 토벌 전에는 임무 대부분이 숲의 초입이나 언저리에 이루어졌다.
안쪽으로 잘못 들어갔다가는 대량의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숲 중심에서 마기를 풀풀 풍기던 숲지기도 길드 활동을 방해하는 억제기 중 하나였다.
그랬던 숲지기가 어느 날 홀연히 등장한 모험가 칸에게 토벌당했다.
정체불명의 모험가 칸은 길드에 모습을 보인지 몇 달도 안 지나서 단숨에 골드 등급을 찍었다.
이후에 동료의 등급을 올려준다는 이유로 길드에서 반쯤 포기한 임무를 맡았는데, 그 임무가 바로 숲지기 토벌이었다.
모두가 자살행위라고 여겼던 숲지기 토벌에 성공한 칸은 단숨에 오리할콘 모험가가 되었다.
그와 함께했던 파티원 또한 플래티넘과 다이아 등급 모험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숲지기가 사라진 이후로 갈라나흐 모험가 길드는 훨씬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숲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서 의뢰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부산물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 모든 게 모험가 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아르니아 대륙이 용사 헤논의 이름으로 떠들썩한 와중에도 갈라나흐만큼은 칸을 찬양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
“브론, 일어나요. 오늘 중요한 날이잖아요.”
짹짹대는 참새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을 찔렀다.
“으으으···”
“어제 너무 심하게 굴렀어요. 몸 좀 아끼면서 일하라고 했잖아요.”
“어쩔 수 없잖아. 오늘이 길드 마스터를 뽑는 날인걸.”
갈라나흐 출신 모험가 브론.
그는 오늘 인생의 세 번째 전환점을 맞이한다.
첫 번째 전환점은 삼 년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브론은 이름 모를 실버 등급 모험가였다. 무려 십오 년 동안 정체 중인.
보통 한 분야에서 십 년을 일하다 보면 무언가 이루게 마련.
그런데 십오 년이나 제자리였던 브론은 둔재를 넘어서서 바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었다.
만만한 의뢰만 수행하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 와중에 자신보다 낮은 브론즈 등급패 모험가를 가르치려 든다.
그것이 브론의 못난 과거였다.
그랬던 브론에게 기적 같은 인연이 찾아왔다.
바로 모험가 칸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모험가 칸을 만나면서 사람이 달라졌다.
브론은 아직도 무시무시한 숲지기 앞에서 초연하게 검을 뽑아드는 칸의 듬직했던 뒷모습이 잘 때마다 생각났다.
이를 본받아서 브론 또한 더는 뒤로 숨지 않았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자 발버둥쳤다.
“다이아 등급이면 충분하잖아요. 이미 갈라나흐에서 당신보다 강한 모험가는 거의 없어요.”
숲지기 토벌 후에 플래티넘 등급을 받은 브론은 절치부심 노력하여 자신의 모험가 등급이 파티원 덕분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플래티넘을 넘어 다이아 등급까지 얻어낸 브론.
다이아부터는 갈라나흐 길드 지부장 자리에 도전할 수 있다.
나이가 많은 데클린 지부장이 최근 은퇴를 선언했고, 그 자리를 노리고 브론이 지원서를 써낸 것이다.
“리아, 당신도 알고 있잖아. 고드릭도 지부장 자리를 노리고 있어. 그에게는 강력한 파티원이 존재하지. 혼자서 활동하는 나와는 달리 말이야.”
갈라나흐에서 옷가게를 하는 리아.
그녀가 브론의 두 번째 전환점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칸을 보낸 브론은 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동안은 모험가 등급을 올리느라 바빠서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지만, 최근에 리아가 슬슬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당신이 길드 지부장에 오르길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어요. 이미 당신은 이룰 만큼 이룬 사람이잖아요. 뭐가 그렇게 당신을 초조하게 만드나요?”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
브론은 알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꿔줬던 평생 은인.
그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용맹한 모험가 칸.
그의 진짜 정체가 용사 헤논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이도 많고 재능도 없다. 하지만 약속했다. 다음에 볼 때는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브론이 생각할 때 그 마지노선이 갈라나흐 길드 지부장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나중에 헤논을 만나더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할 것 같았다.
“브론, 기억해요. 당신에겐 제가 있어요. 혹시 오늘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요.”
“알고 있지. 아무리 지부장이 되고 싶어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야. 리아.”
그녀와의 삶을 위해 칸을 따라가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후회라는 감정이 잠들어 있으니까.
이를 잊기 위해서라도 브론은 리아를 더욱 격렬히 사랑하고 지금의 인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녀와요. 저녁밥 해놓을게요.”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모험가 길드에 도착.
특별한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욱 북적거렸다.
“저기 주인공이 오시는군.”
길드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웅성대는 소리가 뚝 그쳤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초리에 브론은 속이 거북해졌다.
“이게 누구야? 정말로 온 거야?”
쥐상의 사내가 브론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삐딱한 자세와 건들대는 어깨가 인사보다도 시비를 걸려는 목적이 크다.
빈말로도 잘 생겼다고 말 못 할 사내의 이름은 고드릭으로, 브론처럼 갈라나흐에 거주하는 다이아 등급패 모험가였다.
소문으로는 일 년 전 파헬 황태자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진압당한 반란군 출신이라던데 확실치는 않다.
오늘 지부장 자리를 놓고 겨루게 될 고드릭은 사전에 기를 죽여놓겠다는 듯 브론의 앞에서 으르렁댔다.
“꼭 똥을 찍어 먹어봐야 아는 타입이었나? 의외로 무모하네. 나는 플래티넘 동료만 넷이야. 당신은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그만!!”
데클린의 쉰 목소리가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아직까지는 데클린이 지부장이다.
브론을 노려보던 고드릭도 이내 조소를 지으며 한 발짝 물러났다.
“다들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알다시피 내 나이도 있고 몸이 불편해서 이만 은퇴하려 합니다. 뒤를 이을 지부장을 뽑을 텐데, 우선 지원해준 브론과 고드릭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군요.”
브론은 존중의 의미로 데클린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고, 반면에 고드릭은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댄 채로 키득댔다.
“···아무튼 지부장이 되고 싶은 사람이 둘이니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겠습니다.”
“그 기준이란 게 뭔지 좀 알려주쇼.”
“간단합니다. 현재 마수의 숲에 트리플 헤드 오우거가 돌아다니고 있죠. 놈을 처치하고 머리통 세 개를 갖고 오는 사람이 갈라나흐 모험가 길드의 지부장입니다.”
트리플 헤드 오우거.
일반 오우거의 두 배에서 많게는 세 배의 힘과 민첩성을 지닌 녀석으로 몬스터 중에서는 최상위 포식자라 보면 된다.
육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지능도 상당히 높기 때문에 고등급 모험가 여럿이서 힘을 합쳐야만 간신히 잡을까 말까할 수준의 마물.
아무리 다이아 등급이라도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를 알고 있는 고드릭의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어이! 브론 아재,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어때? 괜히 객기 부리다가 오우거 방망이에 찍히지 말고. 으핫하하하!!!”
옆에 있던 동료들이 고드릭을 따라 같이 폭소했다.
“아니면 저기 구경하는 떨거지들한테 동료 좀 되어달라고 구걸하든가. 원래도 똥 냄새나는 브론즈들 많이 데리고 다녔잖아? 혹시 모르지. 갑자기 각성해서 플래나 다이아급 실력을 보여줄지도. 흐흐흐···”
브론은 아내 리아를 떠올리며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꾹 참았다.
고드릭 말대로 트리플 헤드 오우거는 혼자 잡을 만한 몬스터가 절대 아니었다.
지금 와서 동료를 만들어봤자 브론즈 실버가 고작이고 운 좋게 골드를 섭외한다 해도 오우거 상대로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도전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알던 헤논이라면 이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우려 했을 테니까.
브론은 더 이상 제 자신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고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와, 정말 혼자 간다고? 제대로 미친놈이네.”
고드릭의 비아냥을 흘려들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길 때, 등 뒤로 왠지 모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다면 저희 모두 선배의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브론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선배란 단어를 너무 오랜만에 들었다.
그리고 그를 선배라고 부를 사람은 몇 명 없었다.
터질 듯이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구석에 앉아있던 파티 하나가 손을 들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 하나와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내, 작은 키에 지팡이를 든 소녀.
다들 후드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브론은 눈썰미만으로 누군지 눈치챘다.
“너희들···!!”
헤논, 캠벨, 그리고 메리안까지.
브론의 이성이 끈이 잠깐 끊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헤논과 캠벨을 있는 힘껏 껴안고 있었다.
“이 아저씨 징그러운 건 여전하네.”
유독 친했던 캠벨의 목소리를 들은 브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후배님들, 나랑 일 하나 같이 합세. 예전처럼 말이야.”
“좋습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드릭이 미간을 구기며 헤논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봐, 어디서 굴러들어온 벌레인지는 모르겠는데, 줄 잘못 섰다 피똥 싸지 말고 가라.”
헤논이 앞으로 나섰다.
태어날 때부터 기감이 민감했던 고드릭이 재빨리 헤논을 위아래로 살폈다.
느껴지는 기운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눈앞에 보이는데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
차라리 뒤에 있는 덩치가 더 강해 보였다.
“오지랖이 넓은 성격인가? 남 걱정할 시간에 네 할 일이나 잘해라.”
“흐흐흐, 기껏 충고를 해주는데도 안 듣는 태도가 딱 브론즈나 실버로군.”
“말이 안 통하네.”
무시하듯 등 돌린 헤논.
화가 난 고드릭이 달려가서 그의 옷깃을 붙잡고 억지로 돌려세웠다.
“감히 벌레 따위가 내 말을 무시···”
땡그랑!
고드릭의 힘에 옷깃이 뜯어지며 모험가 등급패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실은 헤논이 일부러 떨어트렸지만, 어쨌든 남들이 보기에는 우연히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바닥을 놓인 흑색 등급패.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오리할콘 등급패였다.
“···오리할콘?”
다이아 모험가인 고드릭이 이를 몰라볼 리 없다.
꽁꽁 얼어버린 고드릭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보던 헤논이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미리 위장해둔 선 굵은 칸의 얼굴이 모두에게 드러났다.
“오랜만에 왔더니 길드 기강이 엉망이군.”
길드 사무소 전체가 들썩였다.
“칸이다!”
“진짜 칸이야. 마수의 숲지기를 잡은 그 칸!”
“나 오리할콘 모험패 처음 봐. 저렇게 생겼구나.”
“하도 소식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니.”
“나머지 모험가들도 숲지기를 토벌했던 그때 그 멤버야.”
주변의 반응이 어떠하든 간에 헤논은 침착했다. 그가 데클린을 보며 말했다.
“길드 일에 손 뗀지 오래되긴 했는데, 우리가 들어가도 상관없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여전히 명단에 등록되어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전설의 모험가 칸과 그 동료가 브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숲지기도 잡았던 이들이 오우거 하나를 못 잡을까.
다리에 힘이 풀린 고드릭이 엉덩방아를 찧었고.
승부는 시작도 전에 이미 정해졌다.
* * *
마수의 숲 중심부.
바닥에는 목 없는 오우거의 시체가 놓여있었고 머리를 담은 봉지 세 개가 브론의 앞에 놓였다.
“고맙네.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 처지에 또 은혜를 입다니.”
브론이 울먹였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어김없이 와서 도와주는 천사 같은 후배님들.
덕분에 브론은 인생의 세 번째 전환점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은혜라니요. 이제 지부장님이 되실 텐데 저희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가끔 돈 벌러 올 계획이거든요. 그리고 결혼식 못 가서 죄송합니다.”
“맡겨만 두게. 결혼식 얘기는 하지도 말어. 그보다 끝나고 우리 집으로 올 수 있나? 내 입으로 자랑하긴 뭣하지만 내 아내 음식 솜씨가 제법 괜찮아.”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오랜만에 술파티다! 으핫하하하하!!”
그 날을 기점으로 브론은 갈라나흐의 모험가 업무를 총괄하는 지부장이 되었다.
그는 지부장에 임명된 지 일년 후 쌍둥이 아빠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헤논에게 고마워했다.
* * *
브론네 집에서 광란의 술파티가 벌어진 후.
죽자살자 마신 캠벨과 브론이 가장 먼저 뻗었다.
패시브 스킬 때문에 멀쩡한 나는 바람이나 쐬고자 마당에 나와서 밤하늘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 마침, 뒤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메리안?”
“네, 저예요.”
메리안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쌩쌩했다. 애초에 성녀가 술에 취할지도 의문이다. 술독조차 신성력으로 정화할 수 있으니까.
“좀 쉬지그래.”
“저도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헤논님이랑 단둘이 있겠어요.”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메리안과 무려 한 시간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메리안이 성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녀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기나긴 침묵은 메리안 쪽에서 깨졌다.
“혹시 하실 건가요?”
“아니.”
짧은 대화였지만 의미는 전달됐다.
나는 방금 그녀가 제의한 교황 자리를 거절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메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힘들게 신성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허탕을 쳤네요.”
“미안해.”
“괜찮아요. 왠지 거절할 것 같았거든요.”
메리안은 바쁜 몸이다.
무려 한 나라를 책임지는 성녀이자 교황의 역할도 겸하고 있으니.
아마 오늘 하루도 간신히 일정을 내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녀가 집 밖으로 나섰다.
신성국으로 복귀하기 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교황 자리는 비어 있어요. 벨라누스 신성국은 언제나 용사님을 기다리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