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0화(20/200)
3장 북부 : 결투한 망나니
캠벨은 레인저단의 부단장이다.
그는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같이 순찰을 나갔던 단원 한 명이 눈앞에서 아울베어에게 사지가 찢겨 죽었기에.
이런 일을 처음 겪은 것도 아니고 늘상 있는 일이라지만 매번 겪을 때마다 기분 잡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러운 곰탱이 새끼들! 빌어먹을 북부! 눈 좀 그만 내려라!”
레인저들이 쓰는 숙소로 들오자마자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외부 임무를 나간 단장 빅터를 대신에 부단장인 자신이 단장 대리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단원의 죽음이 괜히 자기 탓 같아서 더욱 기분이 별로였다.
“부단장 잘못 아니야. 죽은 놈은 그냥 운이 없었던 거야. 이 바닥이 원래 그렇잖아.”
같이 순찰을 나섰던 단원이 와서 위로해줬으나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그때였다.
오늘 비번이었던 다른 단원이 숙소 안으로 들어오며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급보! 급보! 따끈따끈한 소식이오.”
“뭔데? 블랙허니 에리카한테 깍지라도 생겼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병 들어왔답니다. 그것도 우리 레인저에 말입니다.”
“뭐? 신병?”
레인저단은 모두가 기피하는 부대였기에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배치된 사람 절반은 1년 안에 죽어나간다.
지옥 같은 1년을 견디고 나면 그때부터는 생존율이 조금 올라가지만 그다지 위안 삼을만한 수치는 아니다.
결원이 항상 발생했고 늘 신병을 갈구하지만 신병이 좀처럼 오지 않는 부대가 바로 레인저단이였다.
“그런데 이 신병이 좀 골때립니다.”
“어째서?”
“귀족입니다.”
신병의 특별한 이력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확실해? 대가리에 칼 맞지 않고서야 귀족이 왜 레인저에 지원해?”
“문지기 제프리가 신병이 가문의 문양이 찍힌 마차를 타고 들어오는 걸 봤답니다. 심지어 예쁜 하녀 한 명을 데리고 다닌다더군요.”
“하녀를 데리고 레인저에 지원한다고?”
“그렇습니다. 여자도 레인저랍니다.”
순간 숙소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윽고 캠벨이 광소를 터트렸다.
“크핫! 크하하! 크핫하하하!!!”
미친듯이 웃어젖히는 캠벨을 보며 단원들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저런 웃음은 부단장이 정말 화가 났을 때만 보이는 징조라는 걸.
“이런 씨발!”
결국 캠벨이 굵직한 팔로 탁자를 엎어버렸다.
그 바람에 올려져 있던 무기와 방어구들이 와당탕탕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콧김을 씩씩 뿜으며 숙소를 돌아다니던 그가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 달에만 다섯 명이 죽어나갔어. 단 한 명도 편안하게 죽지 못했지. 죄다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다가 찢겨나갔다.”
“맞지.”
“그런데 뭐? 이런 곳에 여자를 끌고 와서 희희낙락하겠다고?”
그 귀족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올지는 뻔했다.
보나마나 자기가 영웅인 줄 아는 혈기 넘치는 애송이겠지.
북부에서도 가장 정예라는 레인저단에 와서 몇 번 깔짝대다가 나중에 온갖 허세는 다 부릴 놈이다.
“여기가 무슨 소꿉장난 하는 데야?”
캠벨 같은 평민이 북부에서 피똥 싸면서 지켜낸 평화로 내지에 계신 높으신 나리들은 잘 먹어서 기름똥을 싼다.
그것도 배 아파 죽겠는데 이제는 눈앞에서 갑질을 하겠다니.
그가 손가락에서 우드득 소리를 내며 살기를 뿌리자 숙소 분위기가 무겁게 잠겨 들었다.
“부단장,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하긴. 신병 교육부터 해야지. 어디 와보라고 해. 북부가 어떤 곳인지 똑똑히 알려준다.”
부단장이 저렇게 한 번 급발진하면 단장 빅터 외에는 누구도 못 말린다.
머리 뚜껑이 열린 캠벨을 보며 단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새롭게 온다는 귀족 신병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불쌍하게 되었군.”
“하루도 못 버티고 나갈 게 분명해.”
“바지에 오줌이나 안 지리길 바라자고.”
* * *
카리나의 집무실을 나섰다.
약속대로 그녀는 나와 시온을 레인저단으로 배치해주었다.
마침 단장 빅터와 동행했으니 그에게 안내를 맡겼다.
빅터는 자기가 시험을 친 것도 아닌데 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했다.
“대단하군! 나도 카리나님이 작심하고 뿜어내는 살기에서 그토록 자유롭진 못할 것 같은데 말이야.”
“상당히 쉬운 시험이었다.”
“흐흐, 자신감은 좋아.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가?”
“비전기술이다.”
드루이드의 능력을 비전기술이라 얼버무렸다.
시온은 예전부터 내게 숨겨진 능력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어서인지 그다지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사령술사 라울의 전투에서도 저주받은 마목을 조종하는 장면을 봤었으니까.
아무튼 그녀가 추운 북부까지 와서 나와 같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한마디 해주었다.
“시온, 날 따라다니느라 고생이 많다. 앞으로 더 고생길이 펼쳐질 텐데 수고하도록.”
지나가는 듯이 한마디 하자 시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망나니로 유명한 내 성격에 이런 격려의 말을 할 줄 몰랐겠지.
그동안 시온과 보낸 시간이 있으니 이 정도 말은 해줘도 되겠다 싶었다.
“도련님을 모시는 게 제 임무인걸요. 가시는 길 끝까지 뒤따르겠습니다.”
그녀가 깍듯이 고개를 숙인다.
예전 같았으면 어땠을까?
의심의 눈초리로 날 바라보며 자신을 놀리거나 희롱한다 생각했을 거다.
지금은 확실히 나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서인지 무뚝뚝한 말 사이에 숨겨져 있는 진심을 알아챘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로군. 하지만 지금 너희끼리 꽁냥거릴 때가 아니야.”
옆에서 빅터가 끼어들었다.
“어째서지?”
“전에도 언급했듯이 우리 부대원들은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난 네가 마음에 들지만 다른 단원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야.”
“네가 단장인데 뭐가 문제지? 단원들을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음, 우리 부대는 위계에 민감하지 않아. 각자 알아서 잘하는 분위기지.”
“그러면 문제될 게 없는데?”
“다만 북부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녀석들이 널 축출할 거다. 기준치 이하의 인원에겐 한없이 가혹한 게 이쪽 세계니까.”
한마디로 텃세를 부린다는 말이었다.
빅터는 손가락으로 시온을 가리켰다.
“심지어 젊은 여인을 보기 힘든 북부에 귀족 출신 신병이 예쁘장한 하녀를 데리고 온다? 벌써 소문 쫙 퍼졌을걸? 모르긴 몰라도 네놈을 단단히 벼르고 있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병사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던 참이었다.
아무리 후드로 깊게 눌러써도 그사이로 삐져나오는 시온의 긴 보랏빛 머리카락은 눈에 띄었다.
“빅터, 네가 말하는 그런 불필요한 시비에 안 휘말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간단해. 시간을 보내서 짬을 채우면 돼. 이곳은 오래 살아남을수록 우대받는 곳이니까.”
“어쨌든 짬이 차기 전까지는 계속 고생해야 한다는 말이군. 마음에 들지 않아.”
툴툴대는 나에게 빅터가 대안을 제시했다.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지. 그다지 추천하진 않지만.”
“뭐지?”
“레인저의 단장이나 부단장이 돼. 그러면 굳이 짬을 채우지 않고도 우대받을 수 있다.”
아무래도 그쪽 방안이 나에게 더 좋아 보였다.
“좋아. 단장이나 부단장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지?”
“당연히 결투 아니겠나. 위아래를 확실히 구분지을 방법이니.”
레인저 단장은 빅터라고 했다.
나는 빅터를 훑으며 가늠해보았다.
드루이드가 되면서 교감력이 늘어서인지 서글한 인상 뒤에 숨겨진 강한 힘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천마 또한 빅터가 나보다는 몇 수 높다 했으니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부단장을 노려볼 수밖에.
“부단장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아, 캠벨 말인가?”
캠벨을 떠올리는 빅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는 말로 정의하기 힘든 사람이지. 직접 보고 판단하게. 벌써 숙소에 도착했으니.”
어느새 레인저 숙소에 도착했다.
블랙캐슬에서 가장 앞장서서 순찰을 나서는 군인들의 숙소였음에도 이들의 숙소는 단출했다.
통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목조 건물이었고 그마저도 벽 사이에 나무판자로 잔뜩 덧댄 흔적이 보였다.
빅터의 말에 따르면 원래 숙소가 이렇진 않았단다.
그런데 레인저들이 하도 벽을 부숴대서 이런 임시 오두막집으로 옮겼다고.
어찌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부서진 벽을 대강 막은 나무판자가 한겨울 외풍을 막는 데는 무용지물일 듯했다.
문을 열고 숙소로 들어갔다.
실내 내부는 딱 중세식 내무실이랄까.
가운데 복도가 나 있고 양쪽으로 침대와 관물대 역할을 하는 선반이 놓여있었다.
침대가 군데군데 비어있는 걸 보니 결원이 많다는 빅터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여, 단장 왔나, 오랜만이여. 남쪽 바람을 쐬더니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레인저 한 명이 빅터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좋기는 개뿔.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오히려 살이 빠졌어.”
“그래도 북부에서 뺑이치는 것보단 나았을 거 아녀.”
“그건 맞지. 흐흐흐흐···”
“젠장, 나도 남쪽에 내려가 봤으면.”
단원과 투닥대던 빅터는 숙소 중앙에 섰다.
“모두 주목!”
굳이 주목이라 외치지 않아도 단원들의 시선은 이미 나와 시온에게 꽂혀 있었다.
“우리 부대에 신병이 들어왔다. 신병들은 각자 소개하도록.”
이제 내 차례인가.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헤논 로이드. 로이드 가문의 사생아다.”
짧게 말했지만 그 파장은 컸다.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로이드 후작? 은퇴한 소드마스터?”
“세븐 스타 중 한 명이잖아.”
“그런데 사생아라니.”
“사생아라도 귀족은 귀족이야.”
“맞아. 배 곪을 일 없이 편히 살아왔겠지.”
다음은 시온 차례.
“시온이라고 합니다. 도련님을 모시는 하녀입니다. 잘 부탁드···”
“이런 씨이팔!!!”
쾅!
시온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숙소 제일 구석에서 거친 욕설과 함께 굉음이 들렸다.
선반을 발로 걷어찼는지 와장창 박살 나서 바닥에 나뭇조각이 흩어지고 작은 먼지 구름이 훅 올라왔다.
소란을 낸 자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는데, 내 기준으로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태평양 같은 등빨과 그 등에 수없이 새겨진 고난과 역경의 상처들이 얼마나 많은 생사를 넘나들었는지 방증했다.
“뭐? 하녀? 도련님을 모셔? 소꿉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여기가 무슨 놀이터인 줄 아나.”
빅터의 말대로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시비이자 텃세.
저렇게 난리를 쳤는데 넘어간다?
다른 놈들에게까지 무시당한다.
그래서 조금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유치하군.”
“뭐?”
“귀가 먹었나? 유치하다고 했다.”
그제야 시비를 건 사람이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고 몸을 돌렸다.
처음 그를 마주하자마자 촉이 딱 왔다.
녀석이 빅터가 말하던 부단장 캠벨이었음을.
‘무지막지한 놈이군.’
정말 어마어마한 덩치였다.
게다가 키도 2m가 넘었다.
180후반으로 대륙에서도 상당히 큰 축에 속하는 내가 고개를 올려봐야 했다.
“다시 말해봐라. 신중히 생각하고 내뱉어.”
“음···내가 실언을 했군. 미안하다.”
한 발짝 뒤로 빼자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던 레인저원들이 김이 팍 샜는지 자세를 풀었다.
‘그럼 그렇지.’ ‘저 덩치를 보고도 배짱을 부릴 만한 놈은 없지.’ ‘귀족 나리도 결국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겁쟁이구먼.’ 히죽거리며 비웃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뒷말을 덧붙이기 전까진 말이다.
“네놈의 못생긴 얼굴을 보니 하녀는커녕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본 게 분명하군. 네 외모에 애도를 표하며 사과한다.”
“푸합!!”
“푸핫하하하!!”
레인저들이 저도 모르게 웃다가 캠벨의 살벌한 시선과 마주하고는 합죽이가 되었다.
“너 같은 철부지 귀족 놈을 많이 만나봐서 잘 안다. 헛된 명예욕에 휩싸여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날뛰다가 사라지지.”
“그렇군. 난 너 같이 못생긴 평민은 처음 만나봐서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덩치 큰 놈의 얼굴이 울그락붉그락해졌다.
주먹을 부들거리는 게 휘두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 듯했다.
“딱 한 번 친절하게 말해주지. 꺼져라. 후방부대로 가든지 북부에서 꺼지든지 거기까진 모른 척 해주마. 하지만 레인저단에는 얼쩡거리지 마라.”
“싫다면?”
“맞고 가고 싶다는 말로 알아듣지.”
캠벨의 최후통첩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근데 좀 이상하군.”
“뭐가 이상하지?”
“어째서 부대 내에 몬스터가 활보하는 거지? 미처 퇴치하다 남은 오크 한 마리가 내 눈앞에 보이는데?”
황금가지를 찾아야 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최후통첩 따윈 걷어차 버렸다.
숨 막히는 침묵.
먼저 웃은 건 캠벨이었다.
“큿, 크핫, 크핫하하하!!!”
“푸하하하하!!”
호탕하게 웃길래 나도 따라서 웃어줬다.
서로를 마주 보며 한참 웃기도 잠시.
내 얼굴로 솥뚜껑만한 주먹이 날아온다.
손을 X자로 교차해서 막았다.
이윽고 온몸을 휩쓰는 강렬한 충격.
콰아아앙!!
등에 부딪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인제 보니 캠벨의 주먹을 막았을 뿐인데 벽을 뚫고 바깥까지 밀려난 것이다.
‘이래서 숙소에 나무 판자로 덧댄 흔적이 많았구나.’
방금 캠벨의 주먹에는 마나 따윈 실려있지 않았다.
순수한 근력으로만 날 날려보냈다.
오크란 말은 취소다.
오우거를 방불케 하는 괴력이었다.
구멍난 벽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캠벨이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축하한다. 너는 역대 레인저 중 나를 가장 열 받게 했어. 적어도 다리 하나는 부러트려서 북부가 어떤 곳인지 깨닫게 해주마.”
나도 대답했다.
“캠벨,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한다. 너를 이기고 레인저 부단장 자리를 가져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