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0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00화(200/200)
23장 외전 : 동행한 망나니(完)
#7
“예? 안 그러셔도 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네. 사양하지 말게.”
오랜만에 케이브 장원에 갔다.
케이브 장원이 어디냐면 로이드 후작성에서 하루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장원이다.
지금은 내 이동 속도가 빨라져서 1시간이면 도착한다.
언뜻 보면 별것 없는 장원이지만 예전에 이곳에서는 큰 일이 있었다.
황혼교에서 흘러나온 라울이라는 사령술사가 마을 사람들을 납치해서 구울로 만들고 이도 모자라 여러 신체 부위를 붙여서 키메라를 만들었다.
장원 촌장 해리슨도 사령술사에게 아들 제이콥을 잃고 말았다.
당시 초급 드루이드였던 내가 도토리의 힘을 빌려가며 라울을 처치했으나, 죽은 아들이 되돌아오진 못했다.
그때 일이 마음에 걸려서였을까.
이후로도 나는 틈날 때마다 케이브 장원에 들렀고 술을 좋아하는 해리슨과도 친분을 다졌다.
마왕을 처치하고 백수가 된 이후로는 더욱 자주 방문했는데, 오늘은 색다른 화제가 나왔다.
“바다를 가보고 싶다라?”
“하하하! 주정뱅이의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넘기시면 됩니다. 제 나이에 어딜 더 가겠습니까? 꿈이라도 꾸는 거지요.”
해리슨은 가볍게 말하고 넘겼다.
반면에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갈만한 곳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장 짐 챙기게.”
“예?”
“산골 장원에 살았으니 평생 바다라곤 못 봤을 것 아닌가? 바다를 보여주겠네.”
“어이쿠! 안 그러셔도 됩니다요.”
“소영주로서 명령일세. 짐 챙기게. 나머지 마을 사람들도 원하는 사람은 나오라고 하게.”
그렇게 즉석에서 여행 패키지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물론 가이드는 나였다.
“바다는 여기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곳 아닙니까?”
“괜찮아. 다 방법이 있으니까.”
정말로 방법이 있다.
최근 톰의 도움을 받아 웜홀 생성기로 뚫어놓은 곳이 있었다.
로이드 후작령과는 거리가 있어서 갈라나흐를 중간에 거쳐야 했지만, 어쨌든 웜홀을 두 번 타면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쏴아아아아!!!!
시원한 파도소리와 눈부신 백사장.
짠내 나는 바람이 혀를 어루만졌다.
쨍하니 내리쬐는 햇살과 후작령에서는 볼 수 없던 야자수가 우리를 반겼다.
“여기가···바다?”
해리슨이 멍하니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다.
바다를 처음 보았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 간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저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포세이돈 랜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알로하~”
뚜루뚜루뚜루~~
미역 해초로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소고를 두드리는 어인족이 훌라댄스를 추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뒤를 따라오던 아이 어인족이 산호와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나와 케이브 장원 사람들의 목에 걸어주었다.
촌장 해리슨은 멍하니 목걸이와 어인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 누구시죠?”
“저는 포세이돈 월드에서 일하는 직원이고요. 이쪽은 제 보조원들입니다.”
“아니···그게···”
“일리나에게 안내해주겠나?”
정신을 못 차리는 해리슨을 대신해서 내가 말했다.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요? 누구시죠?”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살펴보던 어인족이 이내 펄쩍 뛰었다.
“용사님! VVVIP셨군요! 회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해변가에 미리 배치된 수중 엘리베이터를 탔다.
기다란 원통형의 승강기는 부력으로 유지된다.
초고밀도 액체 금속을 빼면 지하로 내려가고, 다시 주입하면 지상으로 올라가는 원리.
드래곤본 소드를 만들어줬던 순례자 장인분과 내 드루이드 능력, 오르네오 현자님의 지혜, 아슬란 제국의 합작품이랄까.
특별히 승강기 벽을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서 아래로 내려갈 때 아름다운 바다를 시각적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우와!! 물고기가 엄청 많아요!”
“바다는 이랬구나.”
아이들은 신나서 펄쩍 뛰었고 어른들도 입을 떡 벌리고 구경하기에 정신없었다. 감수성 넘치는 몇몇 아주머니는 장관을 마주하고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장 지하층에 오자마자 직원이 안내한 곳은 과거 내가 들렀던 왕궁이었다.
왕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창을 들고 눈을 부라리던 문지기들은 어디로 갔는지 전부 사라졌다.
그 대신에 안내 직원과 마찬가지로 미역 해초로 만든 치마와 조개 목걸이를 한 어인족이 건치를 내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알로하~”
왕궁 정문에 달린 간판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포세이돈 월드 인포메이션 센터]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이곳에 와주세요.] [직원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딸이니 욕설과 폭언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알현실에 도착했다.
실내의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
황혼의 대간부 식탐 때문에 산처럼 쌓여있었던 음식들.
전부 없어졌고 그 자리를 해목지(바다 나무로 만든 종이. 해저도시에서만 사용한다.)가 대신했다.
서류가 어찌나 많은지 저번에 봤던 대신들은 진땀을 흘리며 정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알현실 한쪽에서는 인간과 어인 간의 기묘한 대화가 오갔다.
“그래서 해마차는 언제 온답니까?”
“기사님에게 연락 넣었고요. 10분 후에 오신답니다.”
“여기 지도는 없나요? 길을 잃으면 어떡해요?”
“지도 여기 있으시고 관광 명소마다 인포메이션 센터 있으니 그곳에서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거 기념품을 불량을 팔면 어떡합니까? 기껏 20골드나 주고 샀는데 금세 망가졌어요.”
“어느 가게에서 사셨죠? 가게 이름 알려주시면 저희가 연락해서 새 제품으로 교환해 드릴게요.”
일리나는 알현실 위쪽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근무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뿔테 안경을 낀 그녀는 결재서류에 도장을 꽝꽝 찍어댔다.
방 한쪽에는 금화와 보석이 산처럼 쌓여있었고,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바로 오르네오 영감님과 테오도르였다.
“영감님, 오랜만입니다?”
손을 들어 인사하자 코코넛 음료를 마시던 오르네오가 벌떡 일어났다.
“이게 누구야! 포세이돈 월드 초대 이사 아닌가?”
“낯 뜨거운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실래요?”
“초대 이사 맞잖는가. 자네의 아이디어와 드루이드력이 아니었으면 해저도시를 이런 관광지로 꾸밀 엄두도 못 냈을 테니 말이야.”
자꾸만 엉기는 오르네오 영감님을 살짝 밀어내고 테오도르에게 말했다.
“테오도르, 오랜만이다. 날쌘바람 부족은 잘 지내지?”
“물론이다. 너무 잘 지내서 문제다. 인간이 가져온 물건 편리하고 유용하다. 우리 부족 완전히 바뀌었다.”
“그것참 다행이군.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말해라.”
“여기 계신 분은 해리슨. 우리 영지민이다. 이들에게 특급 코스로 패키지 투어 해줄 수 있겠나?”
“흐흐흐, 당연하지. 이 테오도르님은 포세이돈 시티에서도 S급 가이드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신이 난 테오도르가 해리슨과 케이브 장원 사람들을 이끌고 집무실을 나갔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
일리나가 안경을 벗고 피로한 눈을 비볐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시죠.”
“누구 덕분에 바빠져서요. 정말 고맙네요.”
살짝 가시 돋힌 말에 괜스레 뒤통수가 간지러워졌다.
해먹에 누워서 팔자 좋게 코코넛을 빨아먹던 영감님이 곤란해하는 나를 도와줬다.
“그래도 헤논 아니었으면 어인족은 영원히 대륙과 단절된 채로 살았을 걸세. 대륙이 발전할 동안 따로 동떨어져 도태되었겠지.”
“저도 그 점에 대해선 공감합니다. 은인에게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고요. 하지만···너무 피곤하네요.”
“대신에 돈을 갈퀴로 쓸어모으고 있잖는가. 내가 저번 달에 뭍에 올라갔는데, 제국 귀족 중에 포세이돈 투어 안 갔다 온 사람은 이야기에 끼지도 못한다네.”
마왕을 처치하고 나서 일리나 총리가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원한 건 지상인과의 화합이었다.
크라켄에게 긴 세월 고통받았던 어인족은 더 이상의 분란과 전쟁을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지상이 있는 걸 알았는데도 지하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서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해저도시의 관광화였다.
문화 차이가 극명한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서 두 지역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추구한다.
이는 지구에서도 많이 써먹던 방식이었다.
내 아이디어를 받은 일리나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일 년 만에 해저도시는 아르니아 대륙 최고의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돈을 버는 건 2차 목적일 뿐. 진짜는 관광하면서 대륙인의 머리에 어인족에 대한 호감 이미지를 심어놓는 거다.’
지금이야 대륙에서 해저도시로 넘어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상으로 진출하는 어인족도 많아질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진출하면 엘프와 인간처럼 종족 간에 갈등을 겪을 수도 있지만 이런 관광 사업을 몇 년 진행한 후에는 대우가 완전히 달라지겠지.
패키지 투어를 올 정도면 귀족이나 왕족 등의 고위층일 테고, 해저도시 뽕맛을 본 그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어인족의 보호를 자처할 테니까.
“총리님.”
“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구에 계신 어떤 목사님의 명언을 빌려보자.
“무슨 꿈이십니까?”
“언젠가는 어인족 아이와 인간족 아이, 그리고 엘프족 아이까지. 형제자매로서 손을 맞잡으리란 꿈이 있습니다.”
“아···”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종족적 우열도 없을 것이며, 오로지 사랑만이 존재할 겁니다. 그것이 제 꿈입니다.”
“아아···”
일리나는 감동에 젖은 눈망울로 나를 응시했다. 솔직히 베낀 거라 약간은 찔리지만 좋은 뜻으로 말했으니 괜찮겠지.
“역시 용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오늘도 은인의 큰 뜻을 배워갑니다.”
“너무 치켜세우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요새 격무로 인해 잠시 고마움을 잊고 지냈습니다. 아무리 지금이 힘들어도 크라켄이 있을 때만 하겠습니까? 은인께서 꿈꾸는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 힘내보겠습니다.”
일리나가 다시 서류에 집중했고.
오르네오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영감님이 손에 들고 있는 코코넛 음료가 자꾸 탐난다.
조금 있다가 나도 한모금 마셔봐야겠다.
#8
황혼이 저무는 바닷가.
황금빛 파도가 백사장을 두드렸다.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
그곳에 서 있는 두 사내.
나와 천마 영감님이었다.
마왕을 처치하고 난 후 몇 달 동안 천마님은 행적이 묘연했다.
알고 보니 아르니아 대륙을 떠돌아다니셨단다.
검에 갇힌 기간 동안 쌓였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여행을 한꺼번에 몰아서 했다나 뭐라나.
그 심정을 이해했기에 편히 여행하시라고 내버려두었다.
어디 가서 때리면 때렸지 맞고 다닐 영감님도 아니시니 걱정도 안 됐고 말이다.
전 대륙을 구경하고 돌아온 천마님은 두 달 정도 후작성에서 쉬다가 딱 한마디 하셨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광활한 동부 대산림을 가로질렀다.
엘프들도 감히 지나지 못한 곳에는 강력한 괴수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나와 천마님에게는 아침 운동 수준이었다.
동부 대산림을 빠져나오니 서쪽과 다를 바 없는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그곳에 조각배 하나를 띄운 천마가 사뿐히 위에 올라탔다.
“정말로 가십니까? 재고해주시죠.”
“무려 천 년이다. 이 정도면 서대륙에 충분히 있었어. 적어도 내 인생의 마지막은 내가 비롯된 곳에서 맞이하고 싶구나.”
검은 도복을 입고 삿갓을 쓴 천마님의 흰수염이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이별의 순간이 오니 가슴이 뭉클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마님 덕분이었다.
마왕을 처치하는 오랜 여정을 영감님과 함께하면서 수도 없이 신세를 졌다.
천마게이션으로 위기를 알려준 적만 수천 번이었고, 당신의 검술 지도는 아르니아 대륙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던 양질의 교육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검에서 탈출하고 싶은 영감님의 바람과 강해지고 싶은 내 열망이 빚어낸 일시적 동맹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이상의 감정이 끼어들었다.
“절 받으십시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총 아홉 번의 절을 올렸다.
구배지례(九拜之禮).
“그동안 제자나 다름 없는 가르침을 받았으면서 제대로 인사조차 올리지 못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예를 갖추는 불초 제자를 용서해주십시오. 사부님.”
늘 영감님 내지는 천마님이라 부르던 천마에게 처음으로 사부님이라 불렀건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 마음속에 천마는 이미 훌륭한 사부님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흘흘, 이렇게 너를 마주하니 처음에 나를 똥통에 빠트리려던 네놈의 간악함이 생각나는구나.”
“이런 순간에 꼭 그 얘기를 꺼내야겠습니까?”
“그때만 해도 검에서 나가면 널 단칼에 베어버리려고 했다.”
“······”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안 그랬으면 마왕을 잡고도 죽을 뻔했으니 말이다.
“허나 애송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철이 들었는지. 이 정도 세월을 살았음에도 세상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그냥 제가 잘난 걸로 퉁치고 끝내죠.”
“그냥 여기서 생사결 한판 시원하게 때릴까?”
“아뇨. 제가 잘못했으니 그 검 넣어두세요.”
피식
나도 웃고 천마도 웃었다.
찐한 포옹 한 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나 천마는 이미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간다.”
“꼭 돌아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노를 저어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던 천마가 갑자기 뒤로 돌아 한마디 덧붙였다.
“애송아.”
“예?”
“심심하면 동대륙으로 넘어와라. 이곳도 나름 재밌는 게 많다.”
“조만간 놀러 가지요. 그때까지 자리 잘 잡고 계십쇼.”
“흐흐흐, 천 년 만에 돌아온 마귀라···무림 공적으로 몰릴 것 같긴 하다만, 그것 또한 재미 아니겠느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마님은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설사 무림 공적이 되더라도 사부님이 당하실 일은 없겠지.
갑자기 동대륙에 가고 싶어졌다.
왠지 모르게 언젠가 한 번쯤은 그곳에 들를 것 같다.
드루이드 특유의 강렬한 예감이었다.
#9
천마님도 가고.
대륙도 얼추 안정되었다.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주변 지인들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불렀다······.
‘밥을 먹고 싶다.’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다.
여기에는 쌀이 없으니까.
밀이 주식인 빌어먹을 아르니아 대륙.
드디어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지구로 돌아갈 순간이다.
흰 쌀밥에 얼큰한 김치찌개, 여기에 반숙 계란후라이를 곁들여야만 살 것 같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주변에 모두 인사를 마쳤다.
내가 워낙 싸돌아다녀서 이번에도 어디 훌쩍 다녀오겠거니 생각한다.
여행이 맞긴 맞는데 이번엔 규모가 좀 크다.
해외여행도 아니고 무려 차원 여행.
[라이프 컨트롤] [세계수 소환]이그드라실은 언제봐도 웅장하다.
이제 세계수에 접촉해서 지구로 보내달라고 하면 끝이다.
살며시 손을 대려는데,
“정말 가십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하녀 시온이었다.
“말했잖아. 간다고.”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놀랍게도 시온이 따라온단다.
“너를? 지금 내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고 말하는 거야?”
“모릅니다. 하지만 도련님이 가는 곳엔 하녀인 제가 마땅히 따라가야지요.”
시온이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그드라실이 보내주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니까. 마침 내 생각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 이그드라실의 목소리가 의식으로 퍼졌다.
[한 사람 정도는 더 보낼 수 있습니다. 대신에 좌석은 이코노미석이 되겠군요.]이코노미든 삼코노미든 가기만 하면 저가항공이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완전히 낯선 이세계야. 기존의 모든 상식이 뒤집히고 통하지 않을 거야. 최악의 경우 마나도 못 쓰고 일반인이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그럴 위험이 있다면 더더욱 동행해야겠군요. 저에게는 도련님을 지킬 의무가 있으니까요.”
시온.
이 여행의 시작을 같이한 동반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잠시 깜빡했다.
내가 이 여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이 여자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일부러 떨구고 가는 것은 그녀에게 폭력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미안해. 같이 가자.”
“···네!!”
이제야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온.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마왕을 처치했을 때 봤던 바로 그 미소였다.
[지구로의 전송을 시작합니다. 원하실 때 얼마든지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편안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