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3)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3화(23/200)
3장 북부 : 뛰어난 망나니
이튿날.
나와 시온을 포함한 레인저는 수색 임무를 나섰다.
날씨는 화창했다.
위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아래로는 기울어진 햇살에 비친 하얀 눈이 반짝였다.
로이드 후작령에 비해서는 훨씬 추운 편이었지만 옷을 두껍게 입어서인지 입김이 나오는 걸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춥진 않았다.
오면서 듣기로 레인저의 임무는 경계선 구축이란다.
여기서 경계선이란 블랙캐슬을 기점으로 북쪽으로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당연히 인간이 거주하진 못한다.
카리나는 북문 너머에 자그마한 장원이라도 만들길 바랬지만 여러 부하의 반대로 안건 자체가 철회되었다고.
대신에 레인저 부대가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며 인간의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었다.
영역을 정하고 그 안으로 몬스터가 활보하면 이를 몰아내고 퇴치한다.
그러나 몬스터들 또한 식량 혹은 영역 다툼을 이유로 이쪽으로 넘어왔으니.
끊임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몬스터와 충돌하는 게 레인저의 숙명이었다.
“여기서 흩어지지.”
단장 빅터의 말이었다.
영역은 넓고 레인저의 수는 적다.
모두 함께 다니는 게 안전을 위해서는 좋았으나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조를 나누어서 각자 다른 지역을 순찰하는 게 보통이란다.
나와 시온, 그리고 캠벨까지 3인 1조로 편성되었다.
“순찰구역을 정해줘, 단장.”
구역 배분은 단장의 몫인 모양.
빅터는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땅바닥에 펴놓은 지도에서 한 곳을 짚었다.
“너희 조는 여기를 순찰해라.”
빅터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확인한 캠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기는 아직 영역이 아니잖아?”
“곧 영역으로 삼을 예정이다.”
“셋이서 가기엔 조금 애매한걸. 이런 곳은 날 잡아서 다 같이 개척해야지.”
“어젯밤에 나 혼자 잠시 나가서 훑어봤다. 괜찮아. 신병 교육하기도 딱이다.”
“단장이 그렇다면야···”
캠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와 시온은 아직 뭘 모르니 가만히 있었다.
떠나는 우리 셋을 보고 빅터가 말했다.
“여차하면 신호탄도 있으니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신호탄을 터트려. 바로 구해주러 가마.”
“알겠수. 늦지마쇼.”
그렇게 나와 시온은 첫 순찰부터 새로운 구역으로 떠났다.
다른 건 몰라도 경치는 좋았다.
걸을 때마다 한껏 쌓인 눈이 자박자박 밟히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아까 들었던 말이 떠올라 캠벨에게 물었다.
“캠벨, 궁금한 게 있다.”
“뭔데?”
“아까 빅터 단장이 밤에 따로 나갔다고 했던데.”
“맞아.”
“그러면 단장은 어제 술집에서 술을 먹고 또 따로 나가서 홀로 순찰을 돌았다는 말인가? 시야도 없는 야밤에?”
캠벨이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단장이 좀 유별나.”
“북부가 위험하다고 하더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군.”
“위험하지. 하지만 단장은 괜찮아. 무려 익스퍼트에 다다른 실력자니까.”
익스퍼트라니.
무기를 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다르고 싶어하는 경지다.
실제로 다다른 사람은 극소수지만.
“레인저 최고참으로 북부에서도 무려 7년 이상을 살아남은 생존자지. 이곳에선 오래 버티는 자가 곧 강자야.”
“그건 들은 것 같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혼자서 자주 어딜 나가더라고. 우리로서는 단장이 영역 내 몬스터를 처리해주니 고마운 일이지.”
성실한 걸까?
아무튼 보기 드문 타입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영역을 탐사해나갔다.
휴식시간 없이 무려 다섯 시간 동안 묵묵히 걸었다.
걷는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거의 반쯤은 뛰는 속도였다.
“후웁, 흡.”
결국 시온이 먼저 가쁜 숨을 드러냈다.
그녀는 평상시에 체력 훈련과 마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상대가 나빴다.
나야 드루이드의 능력으로 비정상적인 체력을 가지고 있었고 손실된 체력조차 실시간으로 회복 중이었다.
시온이 힘들어하자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캠벨은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나를 보고 크게 감탄했다.
“역시 부단장은 대단하군. 보통 신병들은 고산지대에서 두 시간만 걸어도 적응이 안 돼서 헉헉대거든.”
“그런가.”
“보통 세 시간 걸으면 20분 정도는 쉬어. 오늘은 첫날이라 무리한 감이 없잖아 있어. 그쪽 아가씨도 대단한 거야. 심지어 여인이잖아.”
“시온이라고 했습니다만.”
“아, 맞다. 시온.”
시온은 자기 때문에 일행이 멈추었다는 사실이 못내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캠벨은 구석에 있는 나무 앞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뒤적였다.
처음에는 볼일을 보는 줄 알았는데 그가 우리를 불렀다.
“둘 다 이리 와봐.”
가까이 가보니 캠벨은 땅바닥에 손가락을 댄 후에 입에다 가져가서 쪽쪽 빨아먹었다.
“음, 짭짤하군.”
“뭐지? 나무 열매라도 얻었나?”
“아니, 고블린 똥.”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
“고블린 똥이라고. 주변에 고블린이 있나본데.”
시온의 얼굴이 처참히 구겨졌다.
나도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레인저가 되려면 몬스터 똥까지 찍어먹어봐야 하나?”
“꼭 그럴 필욘 없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1년 이상 살아남은 레인저들은 전부 똥을 찍어먹어 본 사람들이더군. 히히.”
짖궂게 웃음 짓는 캠벨을 보자 절로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어쨌든 근처에 고블린이 있다니 조심해야 했다.
캠벨은 크게 경계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고블린은 북부에서 가장 흔한 몬스터야. 먹이사슬 최하위 놈들이지. 그리 걱정할 건 없어.”
“아하.”
“주로 영역 다툼에 밀려서 오는 경우가 많으니 우리가 정리해주면 돼.”
얼마 안 가 정말 캠벨의 말대로 고블린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숫자는 겨우 다섯.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만한 머릿수였다.
하지만 왜일까?
느낌이 안 좋았다.
뭐라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겠군. 신병들은 잘 보라고. 솜씨를 보여줄 테니.”
“잠깐.”
나서려는 캠벨을 제지했다.
“무슨 일이지?”
“이만 돌아가자.”
“뭐라고? 다 차려놓은 밥상이 앞에 있는데 이걸 걷어찬다고? 이유가 뭐야?”
“그게···”
뭐라고 설명할까.
뚜렷하게 표현을 못하겠다.
하지만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기에 들어가면 곤란하다고.
“잘 모르겠다.”
“너무 설득력이 없는걸? 앞으로 나 말고 다른 조원하고도 많이 활동할 텐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누구도 부단장의 명령을 듣지 않을 거야.”
“도련님 말씀 들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쪽 아가씨도 모시는 주인이라고 일방적으로 편들지 말고. 그게 더 안 좋아.”
“시온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지요. 이제 이름 좀 외우시죠.”
“아, 맞다. 미안.”
시온이야 내가 몇 번이나 보여준 이적 때문인지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주지만 캠벨로서는 저게 당연한 반응이다.
“알겠다. 말릴 명분이 없군. 뒤에서 여차하면 도와주겠다.”
“크핫하하! 금방 처리해줄 테니 걱정 붙들어 매셔. 솜씨를 보여주지.”
캠벨이 땅을 박찼다.
쇄도하는 모습이 마치 들소와 같았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글게 모여있던 녀석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고 우왕좌왕했다.
“요놈들! 잘 걸렸다!”
캠벨의 창이 횡으로 크게 휘둘러지면서 고블린 두 명의 목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이어서 창대로 다른 놈의 옆구리를 쳐서 기절.
과연 용맹무쌍했다.
이대로 정리되나 했는데···
시온의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련님! 저기!”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건너편 수풀 사이에서 빼꼼 드러난 대나무 대롱이 보였다.
인제 보니 매복해있던 고블린들이 기다란 원기둥 모양의 대롱을 입에 대고 독침을 쏘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심해! 기습이다!”
외치는 동시에 이미 대롱에서 투사체가 발사되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도 캠벨은 창을 풍차처럼 돌리며 뛰어난 반사신경을 보여줬다.
그러나 모든 독침을 막아내진 못했다.
독침 하나가 어깨에 정확히 들이박혔다.
“끼룩! 끼르륵!”
“끼르르륵!!”
이때다 싶은 고블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충 봐도 서른이 넘는 수였다.
“제기랄!”
천마검을 뽑아들고 뛰어들었다.
뒤에서 시온도 나를 따라왔다.
독침에 마비 효과가 있는지 캠벨이 비틀대며 영 힘을 못 썼다.
나머지 고블린들은 오로지 나와 시온이 처리해야만 했다.
“시온! 캠벨을 지켜라.”
“네!”
나무등걸에 몸을 기댄 캠벨과 그 앞을 지키는 시온.
그리고 나는 반원형의 포위망을 좁혀오는 고블린을 상대로 홀로 고군분투했다.
그야말로 종횡무진 휘저었다.
체내에 마나를 돌리자 몸에 활력이 솟았다.
팔을 자르고 머리를 날리고 어깨로 들이받고 발로 가슴을 걷어찼다.
역시 고블린들은 손쉬운 상대였다.
“도련님, 조심하세요! 독침을 쏩니다!”
이것들은 방심할만하면 꼭 한 수를 보여준다.
분명 대롱을 가진 고블린부터 처리했는데도 한 마리가 남았었나 보다.
뒷목이 따끔했다.
황급히 상처 부위에 손을 갖다 댔더니 검게 변색된 독침 하나가 딸려 나왔다.
“오, 신이시여. 끝났군.”
마비독에 당해 움직이기 힘들었던 캠벨은 내가 독침을 맞는 광경을 보고 신을 찾았다.
나까지 당하자 시온만으로 이 많은 고블린을 처리하지 못할 거라 여긴 모양이다.
“여자. 나와 부단장은 버려라. 너만이라도 빠져나가. 민첩해 보이니 독침만 조심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안전지대에 도착하면 신호탄으로 지원을 요청해. 그러면 구조대가 오겠지.”
회의적으로 말하는 캠벨을 보며 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정말 머리가 나쁜 건가요? 이름 좀 외우세요. 제 이름은 시온입니다.”
“죽는 마당에 이름이 무슨 상관···”
“상관있습니다. 당신은 죽지 않거든요.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도련님을 좀 믿으시죠.”
그들에게 펼쳐진 광경.
독침을 맞은 내가 들짐승처럼 날뛰는 장면이었다.
캠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부대장에겐 독침이 들지 않는 건가? 어떻게 된 몸이야?”
[마비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스킬 자정작용이 발동합니다.]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입니다.]눈앞에서 띠링거리며 계속해서 시스템창이 올라왔다.
따끔거리는 통증도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 움직임이 둔해지진 않았다.
처음과 똑같았다.
흥분 상태여서 그런지 오히려 더 빨라진 것 같기도.
“끠룩!”
“끠루룩!”
비장의 무기가 무효화된 고블린들은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그런 녀석들에게 공평하게 칼침을 놔주었다.
움직임도 느리고 마나를 쓰지도 못하는 하급 몬스터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슬슬 뒷걸음질치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물론 가만히 놔둘 내가 아니다.
“전부 잡아주마! 흐랴앗!”
포효하며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사파리 초원에서 숫사자는 아무리 많은 하이에나가 덤벼도 상관치 않는다 했던가.
마치 내가 그 숫사자가 된 기분이었다.
도망가는 고블린들을 거진 다 잡았다.
한 마리를 제외하고.
영악한 놈이 죽은 척을 하다가 내가 멀어지니까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원거리 무기가 없으면 잡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그때 나는 액티브 스킬을 활성화했다.
[스킬 우드 컨트롤을 시전합니다.] [바인드(vind)가 발동합니다.]땅밑에서 솟은 나무줄기가 고블린의 발목을 휘감았다.
도주하느라 정신없던 녀석은 볼썽사납게 넘어졌고 그런 녀석에게 천마검을 던졌다.
쐐애애액! 퍽!
완벽한 마무리였다.
“와···”
지켜보던 캠벨에게서 감탄사가 나왔다.
내 주변에는 고블린 시체 수십구가 널려있다.
기어이 매복해있던 고블린까지 모조리 처치한 것이다.
시온은 예상했던 결과인 듯 평온한 기색이었다.
그 사이에 마비독이 조금 풀렸는지 캠벨이 비틀대며 내 쪽으로 왔다.
“너무 무리하지 말지.”
“괜찮아. 이 정도는 멀쩡하다고. 그건 그렇고, 정말 부대장은 대단하구먼.”
“기습이 아니었다면 너도 할 수 있었던 일이다. 띄워 줄 필요 없어.”
“아냐, 고블린을 처리한 거야 그렇다 쳐도 독침을 맞고도 멀쩡한 것과 무엇보다 마지막에 고블린을 잡아놓은 건 대체 뭐였지?”
“그저···운이 좋았다.”
드루이드라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으니 운으로 퉁쳤다.
그보다 짚고 넘어갈 점이 있었다.
“원래 고블린들이 너 같은 상위 마나유저도 마비시킬 만큼 고급 독을 쓰나? 북부의 고블린들은 조금 다른가 보군.”
내가 아는 고블린은 조잡한 무기를 사용하고 지능도 낮은 몬스터였다.
그런데 오늘 만난 고블린들은 달랐다.
캠벨을 마비시킬만한 독을 썼고 심지어 매복까지 했다.
마치 우리가 올 걸 사전에 알고 있던 것처럼.
“나도 그게 좀 이상해. 모든 고블린이 오늘 만난 고블린 같았으면 레인저 중 절반은 이미 시체가 되었을 거야.”
“그러니까 이곳에서 몇 년 근무한 너도 처음 본다는 말이지.”
“맞아.”
뭔가 이상했다.
첫 순찰을 나간 날에 특이 고블린에게 매복 당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물론 북부가 워낙 험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지만 불쾌한 직감이 뒷골을 살며시 간질였다.
“다들 기다릴 테니 일단은 복귀한다.”
몸을 돌려 현장을 떠났다.
몇시간 후.
몰아치는 눈보라가 이곳에서 벌어진 일이 꿈이었다는 듯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