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4)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4화(24/200)
4장 발견 : 의심한 망나니
“거기서 말이야, 응? 독침에 당해서 꼼짝을 못하겠더라고. 결국 포기했어. 이렇게 나도 앞서 간 동료를 따라가나 싶었지. 보라머리 하녀에게도 도망가라고 했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갑자기 부단장이 칼을 뽑아들고 ‘북부를 위하여!!!’라고 힘차게 외치더니···”
첫 순찰에서 있었던 일이 레인저 사이에 쫙 퍼졌다.
매복했던 고블린에게 당할뻔한 수색조와 단신으로 고블린 일백 마리를 해치워서 위기를 극복한 부단장 헤논.
실제로 처치한 고블린은 서른이 조금 넘는 수였으나 캠벨은 특유의 입담으로 맛깔나게 에피소드를 포장했다.
“부단장이 나름 신병이라고 교육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교육을 받고 돌아왔지 뭐야.”
“결투 때부터 근성이 있다고는 생각했어. 과연 대단하군. 부단장.”
“나도 다음에는 부단장과 같이 조를 꾸리고 싶어.”
“무슨 소리! 앞으로 부단장은 이 캠벨님이랑 전담으로 수색을 돌 예정이라 이 말이시다!”
나와 같이 수색하겠다는 지원자가 늘어났다.
시온은 모시던 내가 인기가 많아지자 흐뭇한지 엄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는 다른 게 신경 쓰였다.
단장 빅터에게 갔다.
모두가 나를 둘러싸고 있을 때 그는 구석에서 홀로 모닥불을 뒤적이고 있었다.
“단장, 얘기는 들었나?”
“그래. 십년감수 했더군. 살아서 참 다행이야.”
“우리를 습격한 고블린은 평범한 고블린이 아니었어.”
“홉고블린이라도 되었나?”
“그런 문제가 아니야. 매복 전략을 쓸 정도로 지능이 높았고 무엇보다 캠벨 같은 거구를 한 번에 그로기 상태로 만들 독을 사용했다.”
“북부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지.”
“고블린이 그런 수준의 독을 제조할 만큼 특이한 일이 일어나는 곳인가?”
빅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우리 조에게 이 지역을 순찰하라 권한 게 단장이잖아.”
“맞아.”
“분명히 어젯밤에 살펴봤다고 했었지. 그리고 우린 죽을 뻔했어. 제대로 확인한 게 맞아?”
순간이지만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를 파악한 조원들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캠벨이 와서 내 어깨를 감쌌다.
“자자, 단장도 실수할 수도 있지. 결과가 좋았으면 됐잖아. 굳이 날 세워봐야 서로 손해야.”
“아니야. 헤논이 충분히 불만을 제기할만한 사항이다. 이건 명백한 내 실수야. 정식으로 사과한다. 부단장.”
빅터가 쿨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나오는데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알겠어. 다음부터 조심하라고.”
“명심하지.”
* * *
파란만장했던 첫 순찰이 끝났다.
복귀하는 우리에게 북문을 지키던 문지기들이 고생했다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격하게 환영해주는 게 순찰을 마치고 온 레인저에게 보내는 북부만의 전통이란다.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을 보니 시온의 얼굴도 살짝 상기되었고 다른 레인저들도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민 채 당당히 걷고 있었다.
“부단장! 순찰 때 신세를 졌으니 제대로 갚아주지! 바로 블랙허니로 가자고! 내가 쏜다!”
“와아아아!!!”
순찰이 끝나고 모두가 블랙허니로 가는 것도 하나의 전통인가 보다.
“어서오세요!”
블랙허니로 가니 에리카가 미소를 지으며 반겨줬다.
미리 준비했던 듯 탁자에는 빵과 스프, 잘 익은 양고기가 놓여있었고 오크나무로 만든 커다란 맥주잔에는 거품이 보글대는 맥주가 식욕을 돋우었다.
“표정이 밝은 것보니 오늘은 죽은 사람이 없나보네요. 참 다행이에요.”
“크핫하하! 죽은 사람은 없지만 죽을 뻔했지. 오늘 그 이야기를 풀어볼 테니 에리카도 와서 들으라고?”
“이야기가 재밌으면 맥주 한 잔은 공짜로 해줄게요.”
“여기서 마셔주는 술이 얼만데 겨우 맥주 한잔? 통 크게 오크통 하나는 공짜로 해줘.”
“출입금지 명단에 이름 적어 드릴까요?”
“죄송합니다.”
이후로는 계속 술파티였다.
우리 삼인방은 오늘 죽을 뻔했기에 내일 비번으로 정해졌다.
그래서인지 캠벨은 우주 끝까지 갈 기세로 마셨고 흥겨운 분위기에 휩쓸린 시온도 맥주 몇 잔을 마셨다.
나 같은 경우는 캠벨과 보조를 맞추어서 오크통 하나를 통째로 비우는 기염을 토했다.
주변에서 다들 잘 마신다며 떠받들어줬지만 사실 난 멀쩡했다.
[스킬 자정작용이 발동합니다.]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입니다.] [술기운을 해독합니다.]드루이드의 능력 때문에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캠벨이 누웠다.
다른 사람들도 대취하여 뻗어버렸다.
뒤처리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인제 보니 현실 세계나 이세계나 술자리는 똑같다.
술로 떡이 된 놈들을 모조리 숙소로 옮겨주고 문앞에 주저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담배 하나가 딱 당길 타이밍이긴 한데 아쉽게도 북부에는 담배가 없었다.
듣자하니 칼론 제국에는 길거리 거지들도 담배를 피운다고 하던데 엘든 왕국에서는 아직 귀족들만 피는 사치품이란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온이냐?”
“예.”
정말이지 소리소문없이 나타난다.
부전여전인가.
어째 시온이 아버지 세바스찬을 닮아가고 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밤바람이 찹니다. 들어가시죠.”
“숙소가 불편하진 않나? 너 혼자 여인의 몸으로 가림막도 없는 곳에서 사내들과 생활하기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내일 빅터에게 말해서 너랑 나는 독립하겠다 말하마. 단장인 빅터도 따로 숙소를 쓰고 있으니 부단장인 나도 그 정도 권리는 있겠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시온도 어지간히 불편했던 듯 얼굴이 환해졌다.
“시온, 오늘 순찰 건과 관련해서 너에게 의견을 구하고 싶다.”
“무엇입니까?”
“빅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단장 말입니까? 비정상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정상인 같습니다.”
“그런가? 내 의견은 조금 달라.”
고블린에게 당했을 때부터 쭉 이어져 오던 불쾌한 의문 하나가 온종일 뇌리를 떠돌았다.
지난밤 빅터가 미리 확인했던 구역에서 이곳에서 몇 년을 근무한 캠벨도 처음 보는 고블린이 나왔다.
고블린은 마치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매복을 펼쳤다.
그뿐이랴.
2m가 넘는 거구에 상위 유저급 고수를 단번에 전투불능에 이르는 독을 사용했다.
인간 중에서도 이런 독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고블린은 어떻게 이런 독을 손에 넣었을까.
‘설마 빅터가 나와 시온을 함정에 빠트려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닐까?’
빅터와 나는 아무런 은원이 없다.
즉, 그에게는 차도살인지계를 펼칠 동기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남부에는 누구보다도 애타게 내 죽음을 바라는 자가 있잖은가.
바로 내 계모인 로잘린 로이드와 이복형 필립.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빅터가 그 두 모자와 내통하는 관계라면?
‘심지어 빅터를 처음 만난 곳도 북부가 아닌 남부지역이었지.’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가정.
피해의식에 따른 과민반응.
···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특유의 직감이 내 뒷목을 뻣뻣하게 했다.
내 얘기를 들은 시온의 얼굴도 덩달아 딱딱해졌다.
“도련님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빅터가 살인청부를 받았다면 굳이 이런 식으로 어렵게 일을 꾸몄을까요? 그냥 처음 만난 날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으면 저흰 끝장이었을 겁니다.”
시온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캠벨은 익스퍼트에 이른 고수다.
만약 북부로 가는 마차에서 캠벨이 칼을 뽑아들었으면 나와 시온이 살아날 확률은 희박했겠지.
내가 예민했던 걸까.
“그러나 정황만 따져보면 충분히 의심스럽군요. 제가 감시해볼까요?”
“됐다. 너도 나와 같이 하루 내내 수색을 나가야 하는 처지인데 감시임무까지 병행하면 몸이 축난다. 쉴 땐 쉬어라.”
“아닙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내 귀가 쫑긋 섰다.
“어떻게?”
“사실 오늘 북부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친구? 이거 놀랍군. 설마 캠벨인가?”
“그런 짐승 새끼랑은 친구 안 합니다.”
시온의 거부 반응이 격렬했다.
나도 궁금했다.
과연 어떤 사내길래 시온이 친구를 하겠다 마음먹었을지.
“사내가 아닙니다. 오늘 에리카와 친구가 되어 여자들만의 토크를 꽤 길게 나누었지요.”
아하.
오늘 술자리에서 시온이 화장실을 간다며 길게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취해서 정신 차리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그때 에리카와 친분을 다지고 있었구나.
시커먼 사내만 득시글대는 벽지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를 마주하니 에리카도 시온도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나 보다.
“에리카와 수다를 떨다보니 본의 아니게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습니다.”
“무엇이지?”
“알고 보니 에리카가 빅터와 내연 관계더군요.”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말해 드리는 겁니다. 비밀로 해주십시오.”
꽤나 뜻밖의 소식이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원래 미국 드라마에서도 풋볼 선수단 주장하고 치어리더 단장이 꼭 커플이잖는가.
이 동네도 형태는 다르지만 가장 정예라는 레인저 단장과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인 에리카라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관계다.
“앞으로 블랙허니에 자주 들를 테니 그때마다 에리카를 통해 빅터에 대해서 캐보겠습니다. 그녀도 남자친구 얘기만 나오면 사족을 못 쓰니 정보를 얻는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잘 된 일이다.
다시 한 번 시온을 북부로 데려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부탁하마.”
* * *
다음날 새벽.
어제 그렇게 술을 퍼마셨고 오늘은 순찰도 나가지 않는 비번이지만 이런 자투리 시간조차 수련에 투자해야 한다.
해가 뜨기도 전에 천마검을 들고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수련하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 느낌은 뭐였을까?’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난 분명히 캠벨이 고블린을 공격하기 전에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캠벨을 말렸고 내 말을 무시했던 그는 실제로 고블린의 매복을 받아 죽을 뻔했다.
단순히 미래를 보는 예지나 예언 종류의 능력이라기엔 애매했다.
애초에 그런 쪽으로는 소질이 없기도 하고.
내 추측으로는 드루이드의 능력이 발전하면서 자연과의 교감력이 늘어난 게 아닐까 싶다.
교감력이 늘어나니 주변 환경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 거겠지.
그래서 고블린이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어도 어렴풋한 존재감까지는 눈치챈 듯했다.
‘드루이드력이 성장할수록 탐지력에 기반을 둔 직감도 좋아지는 걸까?’
황금가지를 얻게 된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 예상되었다.
아마도 나무나 벌레, 동물, 땅, 정령 등과 소통하면서 정보를 얻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야와 탐지 능력만큼은 그야말로 사기급이 되는 셈이다.
상상해 보자.
남들은 오감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하는데 그들이 밟고 있는 땅, 지나가는 새, 등을 기댄 나무가 나에게 모든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을.
이에 기반한 직감이 벌써부터 물밑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직감 수련에 대해서는 따로 커리큘럼을 짜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는 표현이 맞다.
무공 수련에 아낌없이 조언해주던 천마도 이 부분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나는 무인이지 드루이드가 아니다. 짐작 가는 부분을 말해줄 수 있지만 면밀하게 진단해줄 순 없다. 그 길은 너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다.
일단은 거듭 순찰을 나가며 주변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순찰 과정은 위기의 연속이고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그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드루이드 특유의 직감도 향상될 것이다.
결론을 내리고 재차 검을 휘두를 무렵,
“헤논.”
바로 옆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지척에 와있을 때까지 눈치를 못 채다니.
화들짝 놀라며 등골이 서늘해졌는데 누군지 확인하고 납득했다.
“사령관을 뵙습니다.”
블랙캐슬의 사령관 카리나.
북부의 파수꾼이자 세븐 스타.
그녀는 새벽바람에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었다.
“꽤나 열심히구나. 일찍부터 나와서 수련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감사합니다. 헌데 무슨 일이신지.”
“산책 중이었다. 동트기 전에 블랙캐슬을 한 바퀴 도는 걸 좋아하거든.”
“그렇군요.”
“방해하지 않으마. 그럼 수고하도록.”
대화를 나누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녀에 대한 정보가 핑핑 돌았다.
전성기 로이드 후작에 비해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현시점에서는 엘든 왕국에서 가장 강한 검사.
이런 고수와 검을 맞대는 건 얼마나 큰 수확일까.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상황에 눈앞에 걸어가는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우매한 짓이다.
“잠시만요! 할 말이 있습니다.”
카리나를 붙잡았다.
뒷짐을 진 채 날 지나치던 그녀가 그 자세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무슨 일이지?”
“혹시 바쁘십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연상이 취향이야.”
독특한 유머코드.
짖궂은 북부식 농담일까.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취향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지요. 사령관님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북부에 너 같은 신병이 많다. 여자가 없으니 에리카한테 치근덕대다가 정신줄 놓고 나한테까지 다리를 놓지.”
“그러면 받아주시는 편입니까?”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허리춤에 꽂힌 칼자루를 툭툭 건드리며 싱긋 웃었다.
“당연하지. 난 남자를 좋아한다고.”
카리나에게 들이댄 신병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 갔다.
떡이 되도록 처맞았겠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 또한 그러한 신병 중 하나가 되려고 한다.
쥐고 있던 천마검의 검끝이 카리나를 향했다.
“진한 사랑 한 번 견식하고 싶군요.”
“그토록 원한다면야···후회하지 말도록.”
번쩍이며 카리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단 일분 만에 그녀를 멈춰 세운 걸 후회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