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5)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5화(25/200)
4장 발견 : 목격한 망나니
카리나와의 대련은 일방적이었다.
그녀는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움직였고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퍼억! 소리와 함께 뒤통수와 복부에 강렬한 충격이 임했고 그럴 때마다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가장 굴욕적인 부분은 카리나가 검조차 뽑지 않은 맨손이라는 점이었다.
“칼을 뽑지 않으십니까?”
“격에 맞는 상대에게만 무기를 보여주는 주의라서.”
돌려말하면 난 그녀가 무기를 뽑을 가치가 없는 상대라는 거였다.
이 정도로 차이가 극심했나.
소드마스터가 대륙에서 손꼽히는 고수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정말 손가락 하나로 농락당하는 수준일 줄이야.
아득히 높은 벽을 마주하자 절망감으로 인해 마음이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라! 애송이! 멍청한 놈! 그러다 심마(心魔)에 잡아먹힌다!
바로 그 순간.
천마의 목소리가 의식을 울렸다.
-최근 너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벽은 높아. 뛰지도 못하는 놈이 왜 날려고 하느냐!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오르거라!
천마 또한 무인인지라 지금 내 심정을 유추하고 나를 수렁에서 건져준 것이다.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털어내서 잡생각을 비우고 다시금 칼을 꽉 쥐고 투지를 불태운다.
눈알에 힘을 팍 줘서 어떻게든 상대의 뒤꽁무니라도 잡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내 변화를 눈치챈 카리나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열정이 꽤 마음에 들어. 아저씨를 많이 닮았어.”
“감사하군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무엇입니까?”
“전에 캠벨과 대련했을 때 말이야. 분명히 땅에서 나무줄기가 올라와 녀석의 발목을 묶었었거든? 혹시 네가 한 짓이니?”
역시나 소드마스터인 카리나는 저번 부단장직을 놓고 벌인 결투에서 내가 드루이드의 능력을 쓴 걸 정확히 목격한 모양이다.
긍정할 수도 있으나 아직 카리나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드루이드와 관련된 사항은 천마검 다음으로 중요한 비밀이라 우선 오리발을 내밀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캠벨의 균형을 잃게한 그 나무줄기는 네 짓이 아니다?”
“금시초문입니다.”
“흐음, 그러면 다른 걸 묻지. 저번에 내가 낸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한 비결이 뭐야?”
이 또한 드루이드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작심하고 엄청난 살기를 쏘아 보냈었고 나는 패시브 스킬로 상태 이상을 해제했었다.
다른 질문이지만 대답은 하나로 귀결되니 이 또한 말해주기가 곤란했다.
“글쎄요. 운이 좋았던 게 아닐지.”
연속으로 두루뭉술한 대답.
카리나는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었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비밀이 많은 남자라 이거지? 나름 흥미롭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놀라운 제안을 했다.
“좋아. 아저씨 아들이니까 특별히 선심 쓰마.”
“무슨 말씀이시죠?”
“네 녀석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어. 솔직히 좀 궁금해. 그러니 이건 어때? 잠깐이지만 매일 이 시간에 너와 대련해줄게.”
엘든 왕국 최고수와 매일 대련하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메리트다.
물론 기브 앤 테이크로 비밀을 털어놓으라 하겠지.
상당히 고민되는 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을 짐작한 듯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일방적으로 네 비밀만 얻자는 말이 아니야. 나 또한 내 비밀을 하나 걸겠어. 나를 세븐 스타로 만들어 준 필살기를 알려줄게.”
꼴깍.
마른침이 넘어갔다.
기대감을 눈치챈 그녀가 피식했다.
“공짜로 주겠다는 건 당연히 아니야. 조건이 있어.”
“어떤 조건입니까?”
“100일. 그 안에 단 한 번이라도 나한테 공격을 성공시켜봐. 그러면 필살기를 알려주지. 대신에 실패하면 네 비밀을 알려줘.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카리나의 몸에 칼을 대는 게 조건이라.
무척이나 어렵다.
만약 내기에서 지면 홀라당 내 비밀만 밝혀야 하니 손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마저 거절하면 아예 오전 대련 자체가 없던 일이 될 터.
그녀로서도 많이 양보한 셈이다.
소드마스터의 비결은 농담으로라도 내기판에 올릴만한 물건이 아니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할까.
신중하게 손익을 따지던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애송이, 저 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여라. 충분히 가능한 조건이다.
천마의 목소리다.
이미 견적을 냈다는 말투다.
그리고 그의 계산은 나보다도 정확하다.
고민을 끝내고 내기를 수락했다.
“좋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승낙의 뜻을 표하자 카리나가 입가에 호선을 그린다.
“후훗, 너라면 받아들일 줄 알았어. 아직 10분 정도 시간이 남았으니 더 해볼까?”
“아뇨. 오늘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야. 내가 부족해. 아직 손맛을 덜 봤거든. 그럼 간다?”
그녀가 번쩍이며 시야에서 사라졌고.
블랙캐슬의 사령관이 상당한 변태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른다.
기후가 온난한 로이드 후작령은 지금쯤이면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 날씨가 시작될 즈음이다.
이에 반해 북부는 항상 겨울이다.
춥고 눈 내리고 손 시리고 자다가 입 돌아가고.
듣기로는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같은 지역도 여름철에는 지표면이 살짝 녹는다던데.
무자비하게도 북부 산맥은 그런 곳조차 없다.
날씨가 똑같아서인지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상이 반복됐다.
새벽에 기상.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다 보면 어느새 산책 나온 카리나를 만난다.
카리나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천마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피드백을 받는다.
훈련이 대충 끝나면 레인저들과 함께 북문을 나선다.
영역 안쪽을 순찰하기 위해 조를 나누는데 요새는 3인 1조가 아니라 2인 1조로 변경되었다.
2인 1조가 더 위험하지 않냐고?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몬스터에 의한 사상자와 탈영병이 급증해서 부득이하게 2인 1조로 바꾸었다.
그래서 캠벨을 보내고 시온과 단둘이 순찰을 돌았다.
“제기랄! 부단장과 같이 순찰할 때가 좋았는데 말이야.”
캠벨은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눈치였으나 이걸 어쩌겠나.
나로서도 드루이드 능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시온과 순찰을 나서는 게 편했다.
게다가 그와 같이 있으면 진짜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어진다.
죽음이 지척에 머무른 험지까지 온 이유.
바로 천마의 봉인을 풀 열쇠이자 나의 성장을 도와줄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찾기 위해서이다.
나는 시온과 순찰을 하면서도 천마표 네비게이션으로 황금가지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순찰지역에 황금가지와 관련된 뚜렷한 단서가 나오진 않았고 천마도 확실할 때 알려주겠다고 했다.
사그락 사그락
푹푹 들어가는 눈을 밟으면서 시온과 할당구역을 정찰했다.
이제는 하도 순찰을 돌다 보니 이 짓도 이골이 난 상태다.
특히 몇 시간을 몸을 초긴장시킨 상태로 주변을 살피는 과정에서 자연과의 교감력이 크게 늘었다.
지금도 봐라.
특정하긴 힘들지만 어느 방향에 불길함이 풍겨오는지는 대충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쪽으로 가면 어김없이 몬스터 똥이 나왔다.
초창기에 고블린 똥을 찍어 먹던 캠벨을 욕했었는데 그것도 다 초짜의 추억이다.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일부분을 떼어 혀에 갖다 댔다.
쌉싸름하면서 역한 맛.
“아울베어다.”
“요새 많이 나오는군요.”
“빅터의 말로는 최근 서식지를 블랙캐슬 인근에 옮겼다더군.”
아울베어는 참 골치 아픈 녀석이다.
일반적인 곰이라 여기면 오산이다.
산속에서 야생곰을 만나도 대처하기 힘든 마당에 아울베어는 힘과 민첩이 두 배는 뛰어나서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심지어 털도 흰색이라 사방이 눈밭인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보호색으로 무장했다.
“순찰구역에 들어왔으니 처리하고 간다.”
“위험합니다. 지원을 요청하는 게 어떠신지.”
“그러다가 괜한 목숨 더 버릴라. 우리끼리 처리하는 게 제일 최선이야.”
배설물과 발자국, 부러진 나뭇가지, 벗겨진 나무껍질, 먹다 버린 몬스터 고기.
이곳에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힌 추적술로 놈들의 발자취를 쫓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드루이드의 직감이 녀석이 있는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결국 발견했다.
아울베어의 개체는 총 3마리.
가운데 오크의 사체를 둘러싸고 한바탕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오크만 해도 평균 신장 2m에 인간을 상회하는 근력을 갖추고 있으나 거친 북부에서는 먹이사슬 하위권이다.
눈을 감고 집중하며 주변을 살폈다.
일전에 캠벨이 매복에 당할뻔한 뒤로 이러한 과정은 습관이 되었다.
오감을 비롯한 드루이드의 직감에도 걸리는 것이 없자 비로소 아울베어 세 마리에게 집중했다.
“시온, 녀석들이 식사에 집중할 때 기습한다.”
“알겠습니다.”
호흡을 멈춘다.
공기의 흐름을 읽는다.
놈과의 나의 거리는 단 열 걸음.
빈틈이 보이는 순간 덮치려 했으나.
“쿠워어어어어!!!”
놈들 중 한 개체가 난데없이 옆에 있는 동족을 습격하는 게 아닌가!
오크의 사체가 뼈만 남자 벌어진 일이었다.
아울베어가 보이는 이상행동 때문에 나와 시온은 돌격을 멈추고 일단은 숨죽인 채 대기했다.
“쿠워어어!!!”
“쿠워!!”
그야말로 아비규환.
동족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서로의 가죽을 찢고 그 살을 탐했다.
누가봐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목을 물어뜯고 뼈를 부러트리고.
심지어 허벅지가 뜯겼는데도 그 와중에 다른 동족의 옆구리를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시온이 말했다.
“몬스터들이 왜 저럴까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저들의 눈을 봐라.”
아울베어의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붉은 핏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지간히 담력이 센 시온도 비명이 나올까 스스로 제 입을 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유추하는 와중에, 천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충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다. 봉인되기 전 대륙을 돌다가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적 있어.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애송아. 본좌의 연륜을 헛으로 보는 게냐!
“그런 말은 한 적 없습니다만.”
-크흠흠, 아무튼 저건 세뇌의 부작용이다. 정신이 붕괴되어서 일반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게지.
천마의 말을 듣자 한 가지 의문이 샘솟았다.
“그러면 이 근처에 세뇌를 주무기로 하는 흑마법사라도 있단 말씀입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아느냐! 보이는 장면으로만 판단하면 그렇다는 거지!
이상하다.
북부는 블랙캐슬을 제외하고는 의식주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런 곳에서 몬스터를 세뇌할만한 능력자가 홀로 기거한다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상념에 잠긴 채로 있다보니 어느새 동족상잔이 끝나있었다.
최후의 승리자는 나머지 두 명의 사체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차마 봐주기가 힘든 꼴이라 안식을 주기로 했다.
“시온, 처리한다.”
“네.”
시온도 같은 생각인 듯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동족의 살을 퍼먹던 녀석은 살기를 느끼고는 우리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 포효했다.
“쿠워어어어!!”
튼실한 곰발바닥이 크게 휘둘러졌다.
빠르긴 했지만 피하기 어렵진 않았다.
물도마뱀 발걸음으로 가볍게 회피한 시온이 녀석의 발목을 단검으로 그었다.
기동력부터 제거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서걱!!
고통의 비명이 메아리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드루이드 스킬을 썼다.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상대를 속박합니다.]이것도 자주 쓰다보니 숙련도가 많이 늘었는지 나무줄기가 빠르게 치솟아서 아울베어를 꽁꽁 묶었다.
옴짝달싹 못하는 곰탱이의 목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몬스터는 머리가 몸에서 분리된 뒤에야 충혈된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말 도련님의 속박 기술은 봐도 봐도 대단하군요.”
순찰 중에 내 스킬을 여러 번 견식한 시온조차 매번 볼 때마다 사기라고 여겨지는지 혀를 내둘렀다.
“칭찬을 마다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방금 처치한 아울베어는 크게 엇나간 녀석이었다.”
“그래도 엄청난 발전입니다. 남부에서 누가 이렇게 아울베어를 능숙하게 잡겠습니까? 한 마리만 나타나도 유저급 기사들 여러 명이서 용을 써야 할 겁니다.”
침묵으로 시온의 말에 긍정했다.
만약 후작령에 갑자기 아울베어가 나타나면 필립이 잡을 수 있을까.
혼자서는 못 잡고 우르르 몰려들어서 겨우 잡겠지.
혹시라도 여러 마리가 달려든다면?
후작이나 세바스찬이 직접 나서야 하리라.
그런 아울베어를 나는 드루이드 스킬을 써가며 한 마리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그뿐이랴.
홀로 서너 마리까지 상대할 경지까지 올랐으니 시온이 감탄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일단은 복귀한다. 이 사태에 대해 보고 해야겠어.”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