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29)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9화(29/200)
4장 발견 : 도주한 망나니
북문에 도착하니 문지기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이게 누구여. 레인저 부단장 아니신가?”
“밤늦게 수고가 많군.”
“흐흐, 우리가 수고랄 게 있나. 이런 야밤에도 순찰 나가는 레인저가 있는데 말이야.”
문지기에게 물어보니 빅터는 5분 전에 북문을 빠져나갔단다.
서둘러 추격할 준비를 했다.
“자네도 빅터 단장을 따라하기라도 하는 건가? 이것 참 별일이군.”
“단장이 솔선수범하는데 부단장이 돼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같이 나가보겠네.”
“알겠네. 그럼 고생하라고.”
북문이 열리자마자 땅을 박찼다.
빅터의 흔적을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뒤쫓는 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안 했는지 족적을 선명히 남겨놨다.
쏟아지는 함박눈이 발자국을 조금 가리긴 했으나 짬밥 먹은 레인저의 눈에는 공룡 발자국만큼이나 커 보였다.
한참을 걸었더니 경계에 도달했다.
여기까지가 인간이 개척한 영역이었다.
빅터의 발자국은 경계선을 넘어서도 이어져 있었다.
“아우우우!!!”
저 멀리서 불길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짧게 고민했으나 정말 잠깐이었다.
나 또한 이내 경계선 너머로 한 걸음을 디뎠다.
온몸이 팽팽히 긴장되었다.
자세를 낮춘 채 바람을 등졌고 사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나아갔다.
다행인 건 교감력이 좋아져서 나에게 닥쳐올 위험을 약간이나마 예측할 수 있는 점이랄까.
영역 바깥으로 나가니 여러 곳에서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냈고 이를 피하면서 빅터의 꼬리를 쫓았다.
마침내 빅터를 발견했다.
그는 예의 그 가죽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팔자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더욱더 숨죽이며 그를 따라갔다.
“응?”
빅터가 코를 킁킁댔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홱 돌렸다.
반사적으로 납작 엎드렸다.
한동안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착각했나?”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허리춤에 찬 천마검이 말을 걸었다.
-애송이.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말씀해주시죠.”
-중요한 일이다. 황금가지에 관한 일이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세계수 가지에 관한 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근처에 황금가지가 있다. 확실히 느껴진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저 사내를 따라갈수록 황금가지의 느낌이 더 강해지고 있다.
잘만하면 빅터의 일과 황금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도 있겠다.
일단은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숲 속 공터였는데, 지구에서 여러 명소를 가본 나로서도 처음 보는 참으로 기이한 장소였다.
“!!”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다른 곳보다 유달리 이곳은 달빛이 더 몰리는 듯했다.
수풀로 둘러싸인 이곳은 마치 얼음으로 빚어진 정원 같았다.
나무도 풀도 땅도 모두 꽁꽁 얼어있었고 곳곳에 얼음으로 된 조각상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달빛에 반사된 얼음들이 반짝거리며 잠깐이지만 이곳이 거친 험지로 불리는 북부임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면 어디가 목적지란 말인가.
예상대로 빅터는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나는 적당한 거리에 있는 얼음 조각상에 등을 기대고 놈을 엿보았다.
털썩
가죽주머니를 땅바닥에 내려놓자 묶어놓은 부분이 풀리면서 안에 있던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예상대로 내용물을 끔찍했다.
고통에 눈을 뒤집은 앤소니의 머리통이 지면을 굴러다녔다.
머리통이 있으니 저안에는 분해된 몸통이 따로 들어가 있을 터.
사령술사 라울부터 시작해서 황혼교도들의 역겨운 짓거리는 정말 신물이 났다.
무심한 얼굴로 바닥에 주머니를 내려놓은 빅터는 무릎을 꿇고 허공을 향해 부르짖었다.
“나의 주인이시여! 황혼의 위대한 7간부이시여! 질투의 사도시여! 미천한 종이 주인을 뵙길 원하나이다!”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빅터의 말을 들은 나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알고 있던 게임 스토리에 따르면 황혼의 7간부는 대륙의 세븐 스타와 대비되는 7대 강자이기 때문이다.
황혼교주는 대륙의 일곱 수호자와 맞서기 위한 대항마로 7명의 강자를 영입해서 간부로 삼았는데 이를 7대 사도라 한다.
탐욕, 질투, 폭식, 색욕, 분노, 오만, 나태.
인간의 기저에 존재하는 7대 죄악을 각각 대표하는 이들은 황혼을 떠받치는 기둥이며 실력을 증명한 이들이었다.
의식주 유지가 힘든 이런 험지에 어찌하여 황혼의 7대 간부씩이나 되는 인물이 있는 걸까.
쿵! 쿵! 쿵! 쿵!
반대편에서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얼음 동상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시야를 확보했다.
밤눈이 밝아서인지 다가오는 상대가 확실히 파악되었다.
거대한 예티.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설인이 보였다.
크기는 오우거를 방불케 했다.
질긴 피부와 단단한 근육이 녀석이 얼마나 민첩할지 보여줬다.
만일 저런 예티가 남부의 어느 영지 하나만 침범해도 웬만한 중소영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예티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해서 저놈이 7대 사도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짜 사도는 바로 예티의 오른쪽 어깨에 타고 있는 작은 앉은뱅이 여자였다.
머리부터 속눈썹까지 푸른색인 그녀는 무릎 아래가 없었는데,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저 여자를 보자마자 이 기이한 얼음정원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최대한 기척을 가리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쪽과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고 방심한 상태여서 들키지 않았다.
“나의 주인을 뵙습니다.”
빅터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티가 머리를 들이밀고 빅터의 냄새를 킁킁 맡더니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빨에서 뚝뚝 떨어지는 고인 침을 보자 익스퍼트인 빅터조차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기야, 쟤는 먹이가 아니야. 옆에 있는 밥 먹으렴.”
차가운 목소리.
얼음이 목소리로 형상화되었다면 이럴까.
목소리톤이 고저가 없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소 인간미 없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예티는 빅터의 옆에 있는 가죽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우적우적우적
한때 앤소니였던 것이 예티의 입속에 들어갔다.
그동안 빅터의 지하실에서 해체된 불쌍한 사람들은 저 무지막지한 예티의 식량이 되었나 보다.
예티가 식사 삼매경일 때.
두 남녀는 대화를 나눴다.
“슬슬 북부에서 철수한다.”
“드디어 마왕님의 봉인지를 찾은 겁니까!”
빅터의 말을 통해 저들의 목적이 마왕의 봉인지 탐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황혼교는 마왕 바알을 추종하는 단체고 그런 그들이 용사 카일과 마왕 바알의 일기토가 벌어졌던 북부 산맥에 봉인지가 있을 거라 유추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찾았기도 하고 못 찾았기도 하지.”
“소인이 우매하여 높으신 분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
“북부 산맥에 마왕님의 봉인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봉인의 형태가 아니다.”
“그 뜻은···”
“북부 산맥 전체가 바알님의 봉인지라는 뜻이다.”
“그런!!”
빅터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시온라이크를 하면서 대략적인 스토리만 읽었기에 굵직한 것들은 알지만 이런 세세한 속사정까지는 몰랐다.
그런데 장기간 북부에서 탐사한 황혼의 중요한 인사가 엄청난 비밀을 말한 것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바람을 타고 전해져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도대체 용사 카일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일개 인간이 어떻게 드넓은 산맥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마왕님을 가둘 생각을 하였는지···”
“괜히 용사라 불리는 게 아니겠지요. 어쨌든 놈은 마왕님을 봉인하고 실종되었으니 우리에게는 잘된 일입니다.”
“맞지. 그리고 봉인을 풀 방법을 찾았다. 알고 보니 열쇠가 있더구나.”
“무엇입니까?”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불리는 황금가지다. 정확히 몇 개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를 다 모으면 마왕의 봉인이 풀린다.”
“!!”
얼음마녀의 입에서 거듭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황금가지는 마왕의 봉인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고 오히려 천마의 봉인을 푸는 열쇠인데 아무래도 황혼 쪽에서 착각한 듯했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황혼교와 내가 동시에 황금가지를 노리는 셈이다.
“허면···”
“황금가지를 다 모으지 않고서는 북부산맥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철수한다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물러나기 전에 해치울 사람이 있다.”
“누구입니까?”
“카리나. 그년만큼은 이번에 확실하게 해치운다.”
얼음마녀의 입에서 카리나의 이름이 나오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정말입니까? 몇 년간 곁에서 지켜본바, 카리나는 강합니다. 의심이 많아서 좀처럼 틈을 내주지도 않고요.”
“걱정하지 마라. 이미 아울베어 서식지를 블랙캐슬 근처에 만들어 놨으니. 네가 카리나를 그쪽으로 인도만 하면 내가 알아서 카리나를 처치하겠다.”
최근 블랙캐슬 주변에 자주 출몰하던 아울베어가 인제 보니 얼음마녀의 계획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시온과 함께 목격한 동족포식 아울베어도 저 여자 작품이겠지.
세뇌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울베어 같은 상급 몬스터를 부족째로 부릴 수 있다니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아무튼 우연찮게 북부에서 암약하는 황혼교를 목격했고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까지 파악 완료했다.
넘칠 만큼 충분한 소득이니 블랙캐슬로 귀환해서 사령관께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복귀하려는데···
“너 어디 가니?”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얼음마녀가 빅터에게 한 소리겠지.
나는 완벽하게 기척을 숨겼으니까.
“너 말하는 거야 너.”
그래.
이대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돌아가면···
-피해라! 오른쪽으로 굴러!
천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바닥을 굴렀다.
쩌저저저정!!!
내가 있던 자리에 얼음 칼날이 쏟아졌다.
단 0.1초라도 멈칫했으면 그대로 온몸이 찢어발겨진 채 꽁꽁 얼어붙었으리라.
“호오? 제법 빠른 쥐새끼였잖아? 못 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낭패다.
나름대로 기척을 숨긴다고 숨겼는데도 황혼의 간부 상대로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무엇보다 여기는 저 얼음마녀가 만든 공간이었고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는 밤이었는데 너무 방심했다.
모습을 드러내자 나를 빅터가 알아보았다.
“네놈! 나를 따라왔구나!”
“아는 얼굴이니?”
“물론입니다. 저 녀석은 사생아이긴 하지만 고든 로이드 후작의 아들입니다!”
내 출신성분이 밝혀지자 마녀의 얼굴이 기쁨의 미소가 맺히면서 두 눈동자에는 광기가 일렁였다.
“네놈이 고든의 아들이라 이거지? 잘됐어. 아주 잘됐어. 흐히히히히히.”
미칠듯이 광소하는 여자를 보니 턱 끝을 타고 식은땀이 떨어졌다.
천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뭣 하는 게냐! 도망쳐라!
이대로 잡힐 순 없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뛰었다.
“빅터, 저놈을 잡아라! 절대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
그나마 얼음마녀가 앉은뱅이인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녀가 타고 있는 흉악한 예티도 식사 중이라 날 쫓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익스퍼트인 빅터 혼자로도 충분히 떨쳐내기 힘든 상대다.
저들도 그걸 아니까 굳이 얼음마녀가 움직이지 않는 거겠지.
새삼스럽게 카리나가 알려준 비전 기술 순보를 마스터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거기 서라!”
그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유저 최상위까지 올라섰고 익스퍼트 초입에 있는 빅터와 많이 가까워졌지만 두 등급 간의 경계는 여전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
빅터의 추격 속도는 굉장했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데도 좀처럼 떨쳐내기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이지만 따라잡히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순순히 포기하시지.”
정신없이 도망쳤다.
빅터는 영악하게도 인간의 영역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점점 블랙캐슬로부터 멀어졌다.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발을 들이밀었다가는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니 진퇴양난이었다.
한참을 쫓기던 내가 마주한 곳은 거대한 절벽, 즉 크레바스였다.
갈라진 빙하 틈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심연이 마치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아귀와도 같았다.
도약한다고 넘을만한 틈이 아니었다.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장애물을 앞에 두고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온 빅터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겨우 여기까지 오려고 그렇게 열심히 도망쳤나?”
이제는 싸워야 한다.
천마검을 뽑고 빅터를 겨누자 그가 짝다리를 짚으며 빈정댔다.
“무의미한 저항이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널 제압할 수 있거니와 그냥 시간만 끌어도 된다. 곧 사도님께서 너를 직접 잡으러 오실 테니 말이다. 사실 목숨을 붙여놓으란 말만 없었어도 넌 진작에 내 손에 죽었어.”
빅터의 말대로 승산이 전무했다.
혹시라도 행운이 겹쳐서 도토리 먹고 빅터를 물리친다 해도 얼음마녀가 오면 끝장이었다.
그가 뒷목을 붙잡고 우두둑 소리를 내며 말했다.
“헤논, 처음 본 순간부터 널 죽이고 싶었다.”
“어째서지?”
“눈치가 지나치게 빨랐거든. 덕분에 활동하기 불편했어. 빌어먹게도 말이야.”
“넌 북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사령관님도 널 신뢰하고 있지. 너와 같이 근무한 동료와 상관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나?”
“크크큭, 나에겐 마왕 바알님의 부활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다.”
“완전히 망가졌군.”
“마음대로 생각해. 너 또한 사도님께 교육받으면 그분의 위대함을 알게 되겠지.”
아무래도 잡히면 세뇌당해서 죽느니만 못한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다.
검을 들고 전력을 다해 최후를 장식하려 할 때, 천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송이, 잠시 멈춰라. 황금가지가 느껴진다. 바로 지척이다.
돌격하던 자세 그대로 멈칫했다.
그럴만한 사항이었다.
“어딥니까?”
-네 뒤에서 느껴진다.
“제 뒤는 절벽입니다만.”
-그래, 거기다.
그간 황금가지를 찾기 위해 온갖 뻘짓을 다하며 동분서주했으나 약간의 단서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절체절명의 순간, 크레바스 틈새에서 발견되다니.
과연 못 찾을만 했다고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해졌다.
상상하기도 싫은 방법이 떠올라서였다.
천마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뛰어내려라. 애송이. 그 방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