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2)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32화(32/200)
5장 달성: 승급한 망나니
트롤의 장점은 명확하다.
오우거에 필적하는 덩치에서 나오는 힘은 웬만한 지형지물은 손쉽게 부숴버린다.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풍압만으로 웬만한 먹이사슬 최하위 몬스터들은 똥오줌을 지린다.
이뿐이랴.
트롤은 미친 재생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이 점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서는 트롤이 유명하다.
트롤은 전투 시에 신체 어느 부위가 절단되어도 머리가 잘린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모두 복구해버린다.
심지어 팔 한 짝, 다리 한 짝이 통째로 잘려도 우수한 트롤들은 금세 회복해버린다는 게 진심 무서운 점이다.
장점만 놓고 본다면 이렇다.
그러나 장점이 확실한 만큼, 트롤의 단점도 그만큼 명확하다.
트롤은 멍청하고 느리다.
적의를 가진 상대를 치명적으로 옭아맬 지능이 없기에 공격은 언제나 직선적이고 단순하다.
물론 저 정도의 거체라면 단순한 공격만으로도 무척 위협적이지만 말이다.
따라서 트롤을 상대할 때는 정면승부보다는 함정을 파놓거나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녀석에게 유효타를 맞지 않는 게 중요하다.
“쿠워어어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곤란하다.
누군가의 장난질 때문에 트롤의 영역 안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30분간 살아남는 게 첫 번째 황금가지를 얻는 조건이란다.
원래의 헤논이라면 어렵지 않은 퀘스트다.
벌써 머릿속에는 공략법이 떠오른다.
우선 트롤의 느린 공격을 민첩하게 피하며 천마검을 이용하여 사각을 공격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약이 바짝 오른 트롤이 나를 죽이겠다고 무지성으로 들이박겠지.
이런 트롤을 우드 컨트롤로 속박한 뒤 멈칫하는 틈을 타서 목을 날려버리면 클리어다.
‘문제는 내가 헤논의 몸이 아니라 이런 꼬꼬마의 몸이라는 것이군.’
트롤의 방망이가 나를 향해 똑바로 내려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몸이 무겁고 느렸다.
게다가 나는 전혀 쫄지 않았는데 빙의한 어린 몸은 본능적으로 경직이 일어났는지 의도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일단은 모든 잡념을 거두어내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서 트롤의 첫 일격을 피해냈다.
콰아아앙!!
내가 있던 자리에 두꺼운 오동나무 방망이가 강타했다.
지면에 균열이 생길 수준으로 강맹한 일격이었으니 저기에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렸을 터.
진짜 힘 하나만큼은 무식하게 세다.
“쿠워어!!”
생존 미션은 이제 시작이었다.
트롤은 자신의 공격이 빗나갈지 몰랐다는 듯 충혈된 눈을 빛내며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쿵쿵대는 소리가 들리며 지축이 울렸고 근처에 있던 참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후웅! 훙! 훙!
방망이가 계속해서 휘둘러졌다. 다행히 트롤의 공격은 어린아이인 내 시점에서도 느린 편이었고 나는 끝까지 집중한 채로 침착하게 회피해냈다.
금세 10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헉! 허억! 헉!”
어린아이의 저질체력이 내 발목을 잡았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과 터질듯이 박동하는 심장이 이미 몸이 한계라는 걸 끊임없이 경고했다.
반면에 트롤은 쌩쌩했다.
사실 녀석은 어린 엘프를 잡는 이 과정을 사냥이자 놀이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간간이 누런 이를 내비치며 비웃는 모습에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저러다가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전력을 다하겠지. 지금 컨디션이라면 단순한 도망으로는 먹잇감이 되어버린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타개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하나의 시험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위기라고만 생각하지 말자. 이건 시험이야. 그것도 드루이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그런 시험에서 단순히 몬스터에게 피하기만 하는 게 정답일까?’
쿵! 쿵! 쿵!
트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반사적으로 드루이드 스킬을 시전해보았다.
[스킬 우드 컨트롤을 시전합니다.] [상대를 속박합니다.]역시나!
몸은 비루하지만 드루이드 스킬만큼은 헤논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시전되었다.
땅바닥에서 솟아오른 나무줄기들이 트롤의 무릎께까지 꽁꽁 묶어버렸다.
“크와아아악!!”
나를 사냥한 이래 처음으로 반격 당한 트롤이 흉포하게 울부짖으며 속박된 나무줄기들을 완력으로 모조리 찢어버렸다.
속박으로 인해 생긴 잠깐의 시간은 너무나 달콤했다. 이 틈에 조금이나마 녀석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트롤이 추격해오고 나는 우드 컨트롤로 묶은 다음에 도망치고. 녀석이 재차 쫓아오고 나는 속박 후 도주의 반복. 이런 식으로 10분을 더 벌 수 있었다.
이쯤 돼서야 비로소 시험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평상시 헤논은 검술에 매진하며 검과 하나가 되어왔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달랐다. 오로지 드루이드 능력만으로만 저 트롤을 상대해야 했다.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의심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행동할 때다. 머리를 비우고 거듭해서 속박을 걸었다.
몇 번 움직임을 제약당한 트롤은 같은 패턴이 반복되자 나름대로 학습했는지 쉽게 나무줄기를 풀어버리고 나에게 돌진했다.
아무래도 똑같이 지면을 밟고 있으니 불리한 듯했다.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주위를 살폈다.
마침 족히 수천년은 넘은 듯한 굵은 느티나무가 보였다. 몸통이 어찌나 두꺼운지 저 괴물딱지조차 어쩌지 못할 것 같은 거목이었다.
이거다 싶은 마음에 나무에 손을 대고 우드 컨트롤을 시전했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딛고 올라갈 계단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은 드루이드의 영역인 숲이었고 나무는 내 생각을 짐작한 듯 나뭇가지를 내밀어 줬다. 트롤 놈이 오기 전에 재빠르게 디딤대 삼아서 밟고 느티나무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크아아아아!!!”
약이 바짝 오른 트롤이 느티나무에 대고 사정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굵은 거목임에도 불구하고 트롤이 전심전력을 다해 쳐대자 중심이 흔들리며 조금이지만 서서히 기울었다.
남은 시간을 확인해봤다.
아직도 10분은 더 버텨야 했다.
나무 위에서 버틸 수 있을까.
대답은 불가(不可)였다.
나무가 먼저 쓰러지겠지. 다음에는 단단히 열 받은 트롤의 방망이에 곤죽이 될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체력도 이미 한계다. 나무가 쓰러지면 도망갈 여력조차 없었다.
결국 결론이 나왔다. 나는 느티나무 위에서 어떤 식으로든 트롤이 더는 나무를 공격하지 못하게 방어해야만 했다. 지금 이 상황만 보자면 느티나무는 하나의 성채였고 나는 공격군인 트롤로부터 성을 지켜야 하는 성주였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드루이드 능력뿐. 그것도 잠시 상대를 속박하는 정도. 하지만 그뿐이라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무언가 다른 수를 써야만 한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서 드루이드 능력은 상대를 옭아매는 속박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무기가 검술이었기에 드루이드력은 이를 보조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은연중에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험은 내게 묻고 있었다.
진심으로 드루이드가 될 생각이 있느냐고.
단순히 적을 방해하는 군중제어기로 사용할 게 아니라 드루이드로서 자연과 소통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좋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자연은 나무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다양한 구성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완벽한 균형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하나이자 여럿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자연이었다.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흐르는 물.
살랑거리는 바람.
단단한 돌.
오랜 기간 나는 나무라는 한정적인 요소만 사용해왔다.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유일하게 가진 액티브 스킬조차 우드 컨트롤이 아니던가.
이제 다른 구성요소도 이용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친숙하게 여기며 가장 접근하기 쉬웠던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석재.
즉, 돌이었다.
트롤이 나무를 때리며 목숨을 노리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집중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안 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드릴 모양의 뾰족한 송곳이 튀어나와 트롤을 찌르는 상상을 말이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펼쳐진 수면. 예전에 우드 컨트롤을 얻었을 때의 심상 세계와 동일했다. 다만 그때보다 수면을 덮는 얼음막의 두께는 얇았으며 수심도 그리 깊지 않았다.
이로써 깨달았다. 그간 북부 산맥에서 생고생하며 획득한 경험치는 스톤 컨트롤을 쓰기에 차고 넘칠 수준이었다.
단지 한 발짝 앞으로 나설만한 적절한 순간과 깨달음만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었다.
콰지직!!
빙막을 깨고 솟아오르자 전신의 모공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지를 지탱하는 단단한 돌의 원소가 스며들었다. 이와 동시에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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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돌’을 깨우칩니다.] [액티브 스킬 목록]1. 우드 컨트롤
2. 스톤 컨트롤
3. 잠김
4. 잠김
5. 잠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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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컨트롤을 획득했다.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서둘러 심상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정신을 차리니 다시 시험 속이었고 트롤은 느티나무를 거의 쓰러트리기 직전이었다.
“쿠워어어!!”
조금만 더하면 자신의 보금자리를 침범한 녀석을 응징하고 먹잇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 포효하는 트롤을 차가운 눈길로 직시했다.
가벼운 수인을 맺으며 교감력을 발동했다.
일단은 속박부터.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상대를 속박합니다.]땅에서 나무줄기가 튀어나와 트롤을 묶어버렸다. 이제 이런 공격은 익숙한 듯 트롤이 힘을 이용해 나무줄기를 끊어버리려 하였다.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롭게 얻은 스킬을 바로 활용했다.
[스톤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상대를 공격합니다.]땅에서 튀어나온 돌이 트롤의 복부를 향해 쏘아졌다. 돌의 모양은 끝단이 뾰족했다. 마치 가시와 같았고 기사들이 들고 돌격하는 기다란 창인 랜스와도 닮았다.
안 그래도 나무줄기에 의해 묶여있던 트롤은 갑작스러운 변수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고 뾰족한 돌이 물렁한 피부를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크아아아!!!!”
고통을 느낀 트롤이 비명을 지르며 발광했다. 승기를 잡은 순간부터 내 공격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스톤 컨트롤을 시전했다.
푹! 푹! 푸욱! 푹!
돌로 된 창. 스톤 랜스가 트롤을 중요 장기들을 착실히 파괴해나갔다.
아무리 트롤의 재생이 뛰어나다지만 지속해서 입히는 데미지에는 장사 없다. 게다가 끊어진 나무줄기도 계속해서 재생해서 녀석을 묶어나갔다.
거듭된 드루이드력 사용으로 머리가 띵하고 코피가 흘러 입술을 붉게 적셨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거듭 우드 바인드와 스톤 랜스를 병행해서 사용했다.
그 결과.
쿠웅!!
가해지는 피해가 트롤의 재생력을 아득히 추월하는 순간, 커다랗고 강대했던 몬스터는 작은 하프엘프 어린애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와 동시에 약속했던 30분이 딱 지나갔다.
“저기! 저기에요! 저기에 멀린이 빠졌어요!”
“어떡하죠? 저희끼리 놀다가 그만···”
“트롤이 엄청 커다랬어요!”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엘프 아이들과 활을 든 전사 무리가 언덕 위로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이들은 현장을 목격했다.
온몸에 숭숭 구멍이 뚫린 채 죽은 트롤과 그 위에 오연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 세상에! 지금 멀린이 혼자서 트롤을 잡은 거야?”
“어떻게? 무슨 수로?”
“운이 좋았겠지.”
“트롤이 운으로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던가? 저런 어린아이가?”
“잘 생각해. 저 녀석은 잡종이야. 인간과 교배되는 과정에서 어떤 저주를 품었을 수도 있어. 그 힘으로 트롤을 제거한 게 분명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누구도 내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혐오감, 경멸감 가득한 시선만이 나에게 쏟아졌다.
이와 동시에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아름다운 활엽수 숲이 점차 바깥에서부터 조금씩 부서지더니 이내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곤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첫번째 시험-드루이드의 기억Ⅰ을 클리어했습니다.] [황금가지를 획득합니다.] [승급완료!] [초급 드루이드로 승급하셨습니다.]스파아앗!!!
포근한 빛이 터져 나오며 몸을 적셨다. 고양감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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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바람’을 깨우칩니다.] [액티브 스킬 목록]1. 우드 컨트롤
2. 스톤 컨트롤
3. 윈드 컨트롤
4. 잠김
5. 잠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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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스킬을 획득합니다.] [기존 스킬이 강화됩니다.] [액티브 스킬이 세분화됩니다.]——————–
1. 우드 컨트롤
-바인드(★★)
-우드골렘(★)
2. 스톤 컨트롤
-스톤 랜스(★)
-스톤 실드(★)
3. 윈드 컨트롤
-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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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를 얻고 승급한 나에게 떨어진 보상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가장 큰 변화는 나무와 돌에 이은 새로운 원소 바람을 깨우쳤다는 점이다.
사실 바람은 시험 당시 쓴 적도 없는데 어째서 해금됐는지 처음에는 아리송했으나 관련된 스킬을 살펴보니 단박에 이해가 갔다.
바람의 힘을 받아 공중에서 박차는 이동기인 순보는 사령관 카리나에게 배운 이후 꾸준히 연습했었던 스킬이다.
아무래도 그간 축적했었던 잠재력과 경험치가 초급 드루이드로 승급하면서 터진 걸로 보였다. 어쨌든 세번째 원소까지 해금했으니 앞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더욱 다양해졌다.
또한 돌의 원소를 깨우쳐 드루이드로서는 처음으로 공격 기술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톤 실드를 통해 넓적한 돌을 소환, 방어는 물론이거니와 다방면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나무 원소 쪽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1성이었던 속박기술 바인드가 업그레이드해서 2성이 되었고 골렘 소환이라는 신기술이 생겼다. 상향된 바인드의 효과와 우드골렘의 성능은 나중에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 돌아왔는가.
내 시험을 옆에서 지켜본 드래곤 카일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
-기운이 달라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도 신묘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황금가지가 너의 영혼의 격을 올려주었구나.
황금빛을 뿌리며 제단 위에 둥둥 떠있던 세계수 가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시험에 통과한 순간 내 몸에 저절로 흡수된 모양이다.
드루이드의 승급 장면은 수천년을 산 드래곤에게도 처음 보는 진귀한 광경이었는지 그의 눈빛에는 감탄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겠는가?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드래곤은 볼을 긁적이며 자신의 추측을 풀었다.
-멀린이라···예전에 그런 드루이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다. 레어에만 머물러 있던 내 귀에 들어올 정도면 인간들 사이에선 많이 유명했겠지.
“그렇습니까?”
-황금가지는 멀린이란 녀석의 영혼의 조각, 즉 화신(化身)일 가능성이 높다. 그랬기에 영혼의 기억과 흡사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시험이 됐을 테고.
과연 방대한 지식을 가진 드래곤이라는 건가. 놀랍게도 카일은 내가 던져준 몇 개의 단서만으로 황금가지에 대한 대략적인 뒷배경을 추측해냈고 그 가정은 내가 생각했던 추론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렇다면 제가 시험에서 겪었던 일은 멀린이란 드루이드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지.
부모의 종족이 다르다고 해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까지 배척당하다니. 순혈에 대한 엘프족의 집착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린 나이에 죽을 위기까지 겪은 그 심정이 어떠할지 당최 상상이 안 간다.
모두에게 경멸과 멸시받는 모습이 헤논의 과거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본래 하프엘프들은 이런 운명을 타고 나는 걸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복잡한 문제는 뒤로 하고.
황금가지를 찾았고 승급도 했으니 이제는 블랙캐슬로 복귀할 시간이다. 무엇보다 시온을 통해 빅터의 정체를 고발했으니 지금 캐슬은 난리가 났을 터.
거기에 황혼의 7간부 중 하나인 질투의 사도까지 근처에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더 얹으러 가봐야 했다.
“위대하신 존재여, 비록 짧았지만 만나 봬서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중하게 인사하고 물러나려 했다. 몸을 돌려 유적지를 벗어나는 와중에 등 뒤로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추거라.
멈추라는데 멈춰야지.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드래곤이 말했다.
-네게 부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