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4)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34화(34/200)
5장 달성 : 구하는 망나니
황금가지를 찾은 후 뜻밖의 기연을 얻어서 기뻐하기도 잠시, 나는 부랴부랴 유적지를 나왔다.
익스퍼트의 경지를 밟은 건 경사지만 일단은 블랙캐슬에 가서 상황을 보고해야만 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일은 벌어졌을지도.
질투의 사도와 빅터도 나를 발견했으니 계획이 들통 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을 테니까.
‘서둘러 가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나는 크레바스에 뛰어들어서 드래곤 레어에 도착했다.
이러니 복귀하려면 저 까마득한 천장단애 절벽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축하한다. 애송아. 드디어 어디 가서 무인이라고 부를만한 수준까지 올랐구나.
그때, 유적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찾은 천마검이 말을 건네왔다.
“감사합니다. 천마님. 모두 천마님 덕입니다.”
-크크큭, 거기서 용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네놈에겐 행운이 알아서 따라붙는구나.
천마와 새로운 경지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일단은 절벽 등반에 집중하기로 했다.
-네놈이 잘하는 것 있잖느냐? 벽에다가 나무를 소환해서 이를 손잡이 삼아서 올라가거라.
그가 추천하는 방법도 제법 괜찮은 방안이었으나,
“이번에 새롭게 얻은 기술을 써보려 합니다.”
바로 순보.
바람의 힘을 이용해 공중을 박차는 기술이었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윈드 컨트롤 발동.] [기술 순보를 발동합니다.]발목에 부드럽게 감기는 풍(風)의 기운을 느끼며 땅을 박찼다.
공중에 떴는데 묘하게 몸이 가벼웠다.
예전에 수없이 연습했는데도 감도 못 잡았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팡! 팡! 파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
반동으로 하늘을 날았다.
순보는 과연 사기적인 기술이었다.
거리를 좁히는 것이 필수인 검사가 공중을 날 수 있는 이동기를 익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기술을 개발한 장본인인 카리나도 이단 점프 이상은 못하는데 나는 연속으로 공중을 박차며 절벽을 타고 오르니.
카리나가 이 장면을 본다면 아무리 나보다 경지가 높은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샘을 내겠다 싶었다.
‘중요한 건 이 순보가 겨우 별 하나. 일성★기술이란 거지.’
앞으로 순보가 이성, 삼성으로 발전하면 안 그래도 사기인 이동기가 어떤 식으로 더 괴랄하게 발전할지 기대됐다.
차가운 공기.
풀벌레 우는 밤.
반짝이는 밤하늘.
푹푹 꺼지는 눈밭을 밟으니 드디어 다시 북부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체감되었다.
하도 순보를 많이 썼더니 머리가 띵했다.
가만 보면 드루이드력은 마나는 안 쓰는데 정신력을 상당히 많이 소모한다.
머리는 멍해도 몸은 멀쩡하니 최대 속력으로 블랙캐슬을 향해 뛰었다.
* * *
블랙허니.
안쪽에는 종업원 에리카가 생활하는 자그마한 원룸이 있다.
침대에는 에리카가 실신해 있었고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의 이마에는 물수건이 올려져 있었다.
에리카의 침대맡에는 시온이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안색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도련님, 도대체 어디 계시는 겁니까?’
빅터의 집을 수색했던 충격적인 밤.
그녀는 헤논의 말대로 바로 사령관을 찾아가 일의 전모를 모조리 고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카리나도 시온의 안내를 받아 빅터의 숙소 밑에 있는 지하실을 목격하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블랙캐슬이 발칵 뒤집혔다.
추가적인 황혼 교도를 잡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수사가 이루어졌다.
가장 의심받았던 건 그와 내연관계였던 에리카였으나 시온이 그녀를 변호해줘서 넘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에리카는 빅터의 정체를 알고 크게 충격을 받고 앓아누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날 밤의 주인공들이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밤순찰을 나간 빅터가 복귀하지 않았고 이를 따라나간 헤논까지 행방불명된 상태.
카리나는 드물게 자신이 직접 수색대를 이끌고 영역 바깥까지 몇 번이나 나갔으나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아울베어들이 집단으로 블랙캐슬을 공격해올 기미를 보여서 가장 중요한 전력인 그녀는 더더욱 캐슬에 못 박혀 수비에 전념해야만 했다.
대기 시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시온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차 말라갔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도련님을 생각했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왔다.
원래 그녀는 매일 같이 헤논의 죽음을 바라왔다.
망나니 사생아.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
무책임한 남녀의 하룻밤 불사랑.
헤논이 저지른 행패가 어디 한두 개던가.
모든 영지민이 그를 싫어했으나 그를 가장 가까이 모셨던 그녀보다 더 헤논을 증오했던 자는 없었을 것이다.
사생아인 순간부터 영주 후보로는 탈락인데 행실마저 그따위니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음식이 목구멍에 걸려서 죽었을 때도 섭섭함보다는 시원함이 앞섰고 솔직히 기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그녀가 후작님에게 문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시 살아 돌아왔을 때는 지독한 실망감 때문에 그녀답지 않게 표정관리를 못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도련님이 완전히 바뀌었지.’
영혼이 바뀌기라도 했나.
단순한 변심인 줄 알았는데.
홀로 검술을 익히고.
야망을 드러내고.
영지민에게 인정받았다.
‘시온, 네 무례를 벌해주마.’
언제나 거칠다.
하지만 온도가 다르다.
말은 틱틱대도 죽음에서 돌아온 이후에 도련님은 항상 자신을 배려해주고 신경 써주었다.
게다가 그와 수련을 하면서 그녀는 막혔던 경지를 뚫고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사령술사를 벌하고.
북부에서 같이 고생하고.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진심으로 헤논을 걱정했다.
‘도련님, 어서 돌아오세요. 로이드 후작이 되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이대로 사라지는 건 도련님답지 않습니다.’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시온.
그런 그녀의 상념은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깨졌다.
“들어가겠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낯선 신발이 들어왔다.
“도련님?”
“미안하군. 네가 원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들어온 사람은 블랙캐슬의 주인인 사령관 카리나였다. 시온이 일어나서 예를 갖추려하자 카리나가 손을 내저었다.
“아아, 됐어. 잠깐 시간이 나서 들렀으니까.”
카리나는 열병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에리카의 이마에 살짝 손을 올렸다. 그런 그녀에게 시온이 말했다.
“혹시 헤논 도련님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
카리나가 회의적인 어조로 답했다.
“몇 차례 수색을 나가봤지만 소득이 없더군. 아마도 영역에서 한참 바깥까지 나간 것 같아. 설사 빅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사망했겠지.”
“아뇨. 도련님은 살아계실 겁니다. 무조건이요.”
시온이 단호한 얼굴로 카리나의 말을 부정했다.
카리나의 눈빛에 이채가 띄었다.
예로부터 아랫사람을 보면 윗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
그런 면에서 저 하녀는 자신의 주인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헤논을 가르쳐 본 사람으로서 녀석이 비범하다는 건 안다. 허나 이건 실력의 유무와 관계 없다. 녀석이 생존할 확률은 희박해.”
“아뇨. 도련님께서는 자신의 말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스스로 살아 돌아오겠다 말씀하셨고요. 그분께선 절대 죽지 않으십니다.”
“꽤나 믿고 있군. 너처럼 예쁘고 실력 있는 하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실을 알면 헤논도 꽤 기뻐하겠어.”
밤이라서일까.
타오르는 양초에 비친 시온의 얼굴이 유달리 붉어보였다.
카리나가 등을 돌리고 나가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내일 나를 포함해서 블랙캐슬의 전병력은 아울베어를 토벌하러 간다. 빅터가 서식지 위치를 알려주고 그곳에 있겠다고 초대장을 보내왔거든.”
시온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인가요?”
“그래. 내일 빅터를 만나게 되겠지. 놈에게 헤논의 행방을 물어보겠다. 그 녀석이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실낱 같은 희망 정도는 있겠지.”
“아···”
“아니면 네가 직접 나와 동행해서 물어보는 방법도 있다. 네 실력은 북부 기준으로 수준급이니 큰 도움이 될 게다.”
잠시 고민하던 시온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끝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도련님은 분명 살아계십니다. 꼭 요새로 돌아오시겠지요. 그때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알겠다.”
카리나도 시온이 이렇게 행동할 걸 예상한 듯 쿨하게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런 그녀의 등에 대고 시온이 소리쳤다.
“사령관님!”
“용건이 남았나?”
“괜찮으신가요. 빅터의 초대장은 함정이 분명합니다.”
“뭐야. 내 걱정이었나.”
카리나가 피식 웃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에는 짙은 마나로 인한 광망이 일렁였다.
“우리 쪽은 걱정하지 마라. 함정? 그까짓 거 부숴주면 그만이다. 내가 돌아왔을 때 헤논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리나는 사라졌고. 창밖으로 북부의 찬바람이 유독 심하게 불었다. 시온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몸을 잘게 떨었다.
* * *
드디어 블랙캐슬에 도착했다.
펄럭거리는 왕가의 깃발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가웠다.
빅터에게 쫓길 때는 몰랐는데 내가 빠졌던 크레바스와 블랙캐슬은 완전히 정반대 방향이여서 캐슬로 복귀하는데 한참 걸렸다.
거리가 멀기도 멀었거니와 인간이 개척한 영역이 아니다보니 계속해서 몬스터를 만나서 더 지체되기도 했다.
만약 익스퍼트에 오르지 못하고 끈질긴 생명력 스킬로 체력 회복을 못했더라면은 중간에 낙오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
어쨌든 목적지에 다왔다.
본래라면 좀 쉬어야했으나 할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황혼의 7대 간부 중 하나인 질투의 사도, 즉 니플헤임의 등장을 사령관께 보고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였다.
그래서 블랙캐슬의 북문에 다가갔는데···
“잉?”
문이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몬스터라도 들어오면 어쩔려고 이렇게 무방비하단 말인가.
혹시 이미 늦었나?
니플헤임이 블랙캐슬을 함락시킨 걸까.
불안감에 빠르게 북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건축물이 파괴되거나 불탄 식의 전투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다 어디갔는지 휑했다.
원래는 카리나를 먼저 보려고 했으나 분위기가 이상해서 목적지를 내가 머물던 숙소로 틀었다.
우선 시온을 보고 자초지종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정면에서 시온이 침대맡에 앉아서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벼락 맞은 것처럼 우뚝 멈춰섰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예정보다 많이 늦긴 했다.
“음. 시온. 나 왔다. 조금 늦었지? 미안···”
내 말은 품에 와락 안긴 시온의 행동에 끊겼다. 놀랍게도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물기로 가득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미안하구나. 다음에는 일찍 오겠다.”
“도련님은 정말 나쁜 사람이세요.”
“잘 알고 있다. 망나니가 원래 다 그렇지.”
“차라리 제게 검을 겨누세요. 이런 식으로 소식도 없이 도망가는 건 정말이지 심하게 비겁하니까요.”
이후로도 시온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었다. 나는 기쁘게 이 시간을 감수했다. 진짜로 집으로 돌아왔다는 느낌도 들었고 그녀가 나에게 이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는 게 기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잔소리가 끝난 다음에는 빅터에 대한 카리나의 대응과 블랙캐슬이 왜이리 휑한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에 대한 시온의 답변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캐슬의 전병력이 아울베어를 소탕하러 출동했단 말이야? 사령관님까지?”
“네. 그동안 레인저들이 아울베어 때문에 고생이 많았잖아요. 빅터를 처리할 겸 골칫거리를 한 번에 정리하신다 하셨습니다.”
누가 봐도 함정이다.
그러나 카리나 사령관은 세븐 스타 출신 실력자니까 빅터의 함정 쯤은 쉽게 타파하겠다 여기셨겠지.
빅터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니플헤임의 존재를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계산이다.
“큰일났군.”
시온에게 빅터를 쫓다가 니플헤임을 만난 일을 간략하게 말해줬다. 사정을 알게된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련님 말씀대로 니플헤임이 카리나님에게 필적하는 고수고 이곳 북부와 어울리는 특이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블랙캐슬의 전병력은 큰 곤경에 빠질 겁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녀가 얼굴을 굳히고 내게 제안했다.
“도련님, 이만 돌아가요.”
“어디로?”
“로이드 후작령으로요.”
역시 시온은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이 정도면 저희는 할만큼 했습니다. 그동안 북부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까? 적어도 엘든 왕국에서 군경험으로 도련님을 무시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캐슬의 식구들이 위험하다.”
“그쪽은 이미 늦었습니다. 괜히 구하러 갔다간 저희까지 당합니다. 무엇보다 구할 능력도 부족하고요. 차라리 이 소식을 후작님께 전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시온의 의견은 일견 듣기에는 타당했다. 아니, 원래라면 그녀의 의견대로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고작 유저급 무인 둘이 간다고 해서 마스터급 고수가 판 함정에 빠진 군대를 구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난 다르다. 익스퍼트로 올랐고 드루이드 쪽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전력을 다해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작심하고 온 힘을 다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건 몰라도 내 ‘직감’은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온, 마음을 정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후작령에 돌아가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면 후작님께서도 도련님에게 높은 점수를 매겨주실…”
“아니.”
그녀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나는 사령관님과 캐슬 식구들을 구하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