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5)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35화(35/200)
5장 달성 : 도착한 망나니
늘 이런 식이었다.
망나니도 이런 망나니가 없다.
여태껏 힘들게 달려서 북부 제대라는 영예를 얻어내고 황혼 색출이라는 크나큰 공을 세웠음에도 사지가 분명한 곳에 스스로 찾아가겠단다.
사실 시온도 헤논을 만류하면서 속으로는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도련님은 쉬운 길은 절대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누구나가 기피하는 곳을 굳이 찾아가서 온갖 고생을 하며 결국에는 모두가 인정할만한 성장을 이룩해내는 게 바로 도련님이었다.
“정말 가실 겁니까? 가면 돌아오시기 힘들 겁니다.”
“그럼에도 가야 한다.”
“가문의 명예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섭니까? 아니면 북부 제대가 아닌 악마 퇴치라는 공까지 세워 보다 확고한 명성을 채우기 위해섭니까? 그도 아니면 개인의 양심 때문입니까? 알려주십시오.”
그동안 봐왔던 시온의 기억 속 헤논 도련님은 언행 하나하나에는 모두 계산이 깔려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확신한다.
과연 어떤 수를 준비해 두셨길래···
“아니? 거기에 대련 스승인 카리나님과 술친구 캠벨이 있잖아. 둘이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지. 그뿐이야.”
너무나 명쾌한 해답.
시온은 헛웃음이 나왔다.
맞다.
이 사람 망나니였지.
언제는 제국의 행정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치밀한가 하면 또 언제는 동네 파락호만도 못하게 충동적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대답할 말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글쎄, 너는 이곳에 남아···”
“이번에도 뒤에 있으란 말은 하지 마십시오. 말해도 듣지 않을 테니까요.”
이번에 헤논이 실종되었을 때 시온은 깨달았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저 망나니 개차반 도련님이 로이드 후작이 되길 원한다는 것을.
저 망나니가 강력히 원하고 달려나가는 길을 온전히 응원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같이 죽었으면 죽었지, 헤논이 꿈을 이룩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살아서 들을 생각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시선에 담긴 단호한 의지를 도련님도 파악한 듯했다.
“좋다. 따라오도록. 무리는 하지 마. 그 역할은 내 꺼니까.”
“물론입니다. 가시는 길 끝까지 뒤따르겠습니다.”
“어디 상조 회사라도 취직했냐?”
“네?”
“아니야. 방금 한 말은 잊어라.”
여전히 이해 못 할 말을 많이 하시지만.
헤논은 여전히 헤논이었다.
* * *
한편.
카리나는 블랙캐슬의 전 병력을 이끌고 빅터의 초대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초대장은 화살에 꽂힌 종이에 나왔다.
[사령관 카리나. 이미 소식은 들었겠지. 당신과 오랜 시간의 끝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오. 결착을 짓고 싶다면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오시오.참고로 이곳은 최근 우리 블랙캐슬 레인저를 지독히 괴롭혔던 아울베어의 서식지요. 원래 알려주지 않으려 했는데 그간 사령관과의 정을 고려해서 특별히 알려주는 거요. 조만간 뵙기를 바라겠소.
-빅터-]
으드득!
카리나의 이빨이 갈렸다.
그만큼 그녀는 빅터를 신뢰했다.
7년 간 자신의 오른팔이라 여겼던 사내가 배반한 것도 모자라 가장 혐오하는 황혼교도였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도 가서 혹시라도 누구에게 세뇌라도 당한 게 아닐지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령관님! 너무 걸음이 빠릅니다! 조금만 천천히 가주십시오!”
이런.
상념에 잠겼더니 그녀도 모르게 속도 조절을 못했다.
소드마스터의 보폭은 눈 위에서도 바람과 같이 가벼웠지만 그녀를 따르는 많은 부하들은 가쁜 숨을 삼키며 따라와야 했다.
‘부하들을 떼놓고 올 걸 그랬나.’
속으로 생각하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사랑스런 동생들이라도 본질은 북부 사내다. 자신은 부하들을 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충분히 제 역할을 하리라 믿었다.
“그나저나 정말 단장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캠벨의 말이었다.
그는 단장 빅터가 황혼교도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부단장 헤논이 행방불명 되자 임시로 레인저 단장 자리를 맡았다.
“저희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그저 오래 살아남아서 능력 있고 존경할만한 사내라고만 여겼죠.”
“안다. 매일 북부 산맥을 수색하며 죽음을 넘나드는 너희에게 등을 맡긴 동료를 의심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부단장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앞에서도 그는 몇 번씩이나 빅터를 몰아세웠습니다. 이미 그때 눈치를 챈 게 아닌가 싶습니다.”
캠벨의 말을 들은 카리나는 실종된 헤논의 얼굴이 잠시 머릿속에 어른거렸다.
모두가 스트레스에 못 이겨 밤늦게까지 블랙허니에서 술을 마시고 뻗을 때 그는 똑같이 술을 마시고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검을 휘둘렀다.
자신과 대련을 하면서 피멍이 들게 맞으면서도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배움을 체득했다.
자신이 내려준 가르침을 흡수하고 북부를 순찰하기도 바쁠 텐데 그 와중에 블랙캐슬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암중 조직의 비밀까지 파헤쳐서 결국 꼬리를 잡아냈다.
“···그럼 뭐해. 이미 죽은 사람인걸.”
“부단장 말입니까? 전 믿습니다.”
“무엇을.”
“헤논 부단장은 그렇게 쉽게 갈 사람이 아닙니다.”
“너도 시온과 똑같은 말을 하는군.”
“하녀와 저는 부단장과 가장 가까이 지냈으니까요. 적어도 제 불알을 잡고 이겨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던 사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에 죽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생각이든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카리나는 생각했다.
“네 믿음이 그리 투철하니 나도 믿어보지. 만약에라도 헤논이 살아 돌아온다면 특별히 내가 후견인이 되어주겠다.”
“워후! 그거 엄청나군요. 죽은 헤논 부단장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오겠어요.”
“뭐야? 너 방금까지 헤논이 살아있을 거라고 하더니.”
“헤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겁니다.”
캠벨과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어느새 도착한 곳은 우뚝 솟아있는 산의 초입이었다.
이곳은 블랙캐슬이 수색했던 영역 바깥으로 다음 달에 순찰이 예정되어 있었다.
캐슬로부터 상당히 가까운 거리였기에 아울베어 서식지 위치를 파악한 그녀는 속으로 기가 막혀했다.
빅터는 산중턱 쯤에 우뚝 서 있었다.
주변이 허허벌판이었기에 그의 모습은 하얀 눈과 대비되어 더욱 명확히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줄어들자 빅터가 손을 들어서 더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렇게 양측이 대치했다.
허리춤에 맨 칼자루를 만지작대던 빅터는 카리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군요. 카리나.”
“···빅터.”
“맞아요. 바로 그런 표정입니다. 그 배신감에 물든 얼굴. 그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으하하하!!”
빅터는 양팔을 좌우로 활짝 펼치며 광소를 터트렸다.
카리나는 눈대중으로 그와의 간격을 쟀다. 여차하면 단숨에 박차서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애매했다.
빅터는 카리나가 순간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딱 한 발자국 뒤에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절묘한 위치.
카리나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조절이었고, 그 점이 그녀의 기분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죽고 싶나?”
“마왕님이 부활할 수만 있다면 이까짓 목숨 얼마든지 바치지요.”
“그동안 네가 죽인 북부의 사내들은 네 가족 아니었던가?”
“가족이요? 제게 가족이란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마왕님과 그 권속이라 보면 되겠군요.”
“헤논은 어떻게 됐지? 너를 뒤쫓았다고 했는데.”
헤논의 이름이 나오자 시종일관 여유있던 빅터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예리한 카리나는 그 동요를 눈치챘다.
“그 빌어먹을 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죠. 어차피 절벽에 떨어져 죽은 새끼니까.”
정황을 파악해보니 헤논은 가는 와중에도 빅터에게 한 방을 날렸나 보다.
그만큼 비상한 인재인 줄 알았다면 진작부터 헤논과 좀 더 가까이 지낼 걸.
단순한 대련 지도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관계를 맺어놨다면?
이미 늦었지만 카리나는 괜스레 진한 아쉬움을 삼켰다.
“빅터, 무슨 속셈이냐? 설마 혼자서 나를 포함한 블랙캐슬 전사 전원을 상대할 계획이냐?”
“글쎄올시다.”
“혹시라도 이곳이 아울베어 서식지임을 믿고 덤볐다면 큰 오산이라 말해주고 싶군. 나는 곰탱이 따위 몇백 마리가 달려들든 상관없으니까.”
카리나의 말을 들은 빅터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요. 그럼요. 사령관님의 괴물딱지 같은 무력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걸요.”
“깐죽거리는 게 더는 못 봐주겠군. 그냥 죽여주겠다.”
말을 마치자마자 카리나는 쇄도하려 했다. 이를 예상한 듯 빅터는 손을 빠르게 튕겼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듯이 산 전체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엇!?”
“뭐야! 산이 흔들린다.”
“모두 자세를 낮춰!”
“침착해라!”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북부의 전력이라지만 이런 거대한 자연재해는 처음이었다.
일단 엎드려봤지만 그게 곧 빅터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가장 최선의 수는 카리나만이라도 그곳을 빠져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부하를 책임지는 그녀는 당연히 그곳에 머물렀고, 이내 그녀를 중심으로 반경 100m의 동심원이 그려지면서 지반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우르르르릉!!
콰콰콰쾅!!
귓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었다.
바닥이 없어지며 그 위에 서 있던 블랙캐슬 전력은 일제히 추락했다.
그나마 숙련된 전사들이라서 그런지 떨어지는 와중에 서로를 붙잡으며 최대한 낙법을 시전했다.
눈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진 카리나와 캠벨, 그리고 다른 병사들은 벌떡 일어나 주변을 파악했다.
안쪽은 개미굴을 커다랗게 확대해 놓은 것처럼 여러 동굴이 연결되어 있었다.
카리나는 본능적으로 이곳이 아울베어의 서식지 한가운데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무너진 지반 위쪽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빅터를 향해 일갈했다.
“겨우 이걸 준비라고 해놓은 거냐! 차라리 잘됐어. 당장 아울베어를 모조리 정리하고 올라가서 너까지 끝장내주마!”
카리나는 정말 말한 대로 이루어낼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어디 해봐. 멍청한 년아.”
어딘지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
듣자마자 카리나는 등골에서 정수리까지 소름이 쫙 올라왔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기에.
20년 전 혼란의 시절 매일 같이 지겹게 목숨 걸고 싸우던 악연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니플헤임?”
“그래. 나야. 반갑지?”
예티를 탄 빙설마녀가 구덩이 위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빅터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예를 차렸다.
그 모습을 본 카리나가 분개했다.
“전부 네가 꾸민 짓이었나.”
“맞아. 깜짝 놀랐지? 반응이 조금 심심하네. 이것보다는 더 놀랄 줄 알았는데.”
니플헤임은 위에서.
카리나는 아래에서.
두 여자의 서늘한 눈길이 허공에서 살벌하게 뒤엉켰다.
마스터급 고수가 사정없이 뿜어내는 살기에 주변은 질식할만한 공포감으로 채워졌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드네. 그 눈깔. 정말이지 뽑아버리고 싶어.”
“이하동문이다.”
“오늘 안에 결정 나겠지. 누구 눈깔이 뽑힐지.”
“괜찮겠어? 너 다리 없잖아. 고든 아저씨도 다리 없는 여자는 싫어할걸?”
고든 로이드의 이름이 나오자 니플헤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렇다.
두 여자는 단순히 반대파임을 넘어서 한때 같은 남자를 연모했던 정적이자 앙숙이었으니.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
게다가 서로가 고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흥, 어차피 너도 고든을 갖지 못했잖나? 너나 나나 피차 똑같은 패배자다.”
“아니. 명백히 다르지. 난 최근에도 아저씨와 편지를 주고받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저씨는 무조건 오겠지. 하지만 너는 어떨까?”
커튼 뒤에서 대륙을 좌지우지한다는 황혼의 대간부와 마찬가지로 대륙의 수호자인 세븐 스타의 대화라기엔 너무나도 유치하다.
하지만 원래 그런 법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결국 대화는 돌고 돌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대화의 끝은 결국 카리나의 승리였다.
어쨌든 그녀와 고든 로이드는 같은 편이었고 니플헤임은 적이었기에.
명백한 사실이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딱 꼬집자 니플헤임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리며 질투심을 가득 내뿜었다.
“그래. 맞아. 인정해. 네년이 나보다 고든에게 더 가깝지. 딱 오늘까지는 그럴 거다. 네년은 오늘이 가기 전에 죽을 테니까.”
니플헤임이 손을 한 번 휘저었다.
동굴에서 그르렁거리는 음산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카리나와 블랙캐슬의 병사들은 둥글게 원형 방진을 형성한 채 사방에서 모습을 보이는 아울베어들을 대비했다.
숫자만 기백이 넘어갔다.
예상을 가뿐이 넘는 수에 북부 병사들의 입에서 침음이 흘렀다.
무엇보다 눈빛이 새빨갛고 침을 뚝뚝 흘리며 흉험한 살기를 드러내는 모습이 단지 서식지를 침범당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카리나가 보기에는 명백한 세뇌였다.
‘그래서 헤논이 그런 보고를 했군.’
항상 헤논이 아쉽다.
그 젊은 녀석의 말, 행동, 하나하나 허튼 게 없었으니.
후회는 아무리 해도 늦는 법이다.
“이깟 곰탱이로 날 어찌할 순 없다.”
“당연하지. 넌 내가 따로 상대해줄게. 그동안 곰탱이에게 네 부하가 학살당하는 장면을 마음껏 구경하라고.”
카리나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전세는 명백히 불리했다.
이윽고 니플헤임의 손이 내려가고.
북부의 운명을 건 대난투가 벌어졌다.
* * *
시온과 함께 블랙캐슬을 떠났다.
카리나와 캠벨을 맹렬히 뒤쫓았다.
추격은 어렵지 않았다.
매일 같이 흔적을 찾고 뒤따라가는 건 레인저의 전문분야였으니까.
그러나 왜일까.
조바심이 났다.
“좀 더 빠르게 가야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내 직감이 더 늦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윈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바람이 이동을 도와줍니다.]굳이 순보가 아니라도 바람을 다룰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발목에 휘감긴 옅은 산들바람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시온은 거의 날듯이 걷는 내 속도와 보조를 맞추느라 티를 내진 않아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은연중에 나도 그녀의 속도에 맞추고 있었고.
소드 유저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고 암살자들의 보법인 물도마뱀 발걸음까지 익힌 그녀였으나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고 바람까지 이용하는 내 속력을 따라오긴 부족했다.
“도련님, 더 빨라지셨군요.”
나와 매일 붙어있었던 그녀는 어딘가 달라진 내 상태를 바로 눈치채고 혀를 내둘렀다.
평상시라면 그런 시온에게 장단을 맞춰졌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했고, 이대로 가면 큰일나겠다 싶어서 시온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었다.
“도련님!?”
화들짝 놀라는 그녀.
어째 얼굴이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자신의 장기인 스피드에서 밀려서 창피해서겠지.
제대로 자극받았으니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나면 시온은 물도마뱀 발걸음을 좀 더 치열하게 수련할 것이다.
결국 결전 장소에 도착했다.
제대로 도착했는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막을 두드리는 소음과 생사를 넘나드는 피땀이 저 멀리에서부터 생생히 느껴졌다.
일단은 근처에 숨어서 사태를 파악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저절로 침음이 흘렀다.
“으음···”
드루이드의 직감은 확실했다.
과연 더 늦으면 안 될 뻔했다.
빙설마녀 니플헤임.
사령관 카리나.
푹 파인 구덩이 위에서 두 여자가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아울베어에게 포위된 북부의 전사들이 필사의 저항을 했으나 전황은 역력히 불리했다.
이대로 가면 블랙캐슬은 누가 보아도 전멸이었다. 승패의 향방을 바꿀만한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한마디로 내가 그 변수가 돼야만 했다.
‘익스퍼트가 되고 드루이드로서도 크게 성장했지만 저곳은 소드마스터들이 날뛰는 장소다. 처음부터 풀파워로 간다.’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뒀던 도토리를 꺼내서 망설임 없이 씹었다.
까득!!
오랜만에 느끼는 딱딱한 식감과 함께 충만한 신록의 기운이 온몸을 타고 치솟았다.
[도토리를 섭취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이 강화됩니다] [스태미나가 대폭 상승합니다] [마나 재생량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드루이드에게만 적용되는 효과입니다] [제한시간 30분]역시 내가 초급 드루이드가 되니 도토리의 효과도 더 극대화되었다.
오감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아니다.
이를 뛰어넘는 또다른 초감각.
육감이 열린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나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