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6)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36화(36/200)
5장 달성 : 엄청난 망나니
카리나의 검은 특별하다.
고대의 유물까지는 아니지만 이름난 명검으로 무려 화염속성을 다룰 수 있는 검이다.
그녀가 북부의 파수꾼이 된 이유 중 하나도 빙한계열과 상극인 화염검을 다뤄서다.
지금 카리나의 주변에는 시뻘건 불덩이가 휘감겼고 이와 부딪친 얼음이 하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이와 반대로 니플헤임의 능력은 몬스터 세뇌와 얼음 조종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남자를 사랑했는데 속해있는 단체는 사이가 나쁘고 부리는 능력까지 반대니 이건 운명이 이어준 앙숙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언제까지 나랑 대치할 거야?”
거대한 예티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니플헤임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그녀의 손짓 한번에 땅에서 솟은 얼음들이 카리나를 향해 쇄도했다.
여기는 북부였고 사방이 눈이었다.
얼음을 조달할 곳 천지다.
비록 다리가 없다 해도 이곳에서만큼은 카리나에게 질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그녀의 편이었다.
지금도 구덩이 밑에서는 아울베어에 포위된 블랙캐슬의 전사들이 필사의 교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전열을 잘 유지한 채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침착하게 잘 싸우고 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크윽!”
벌써 부상을 당하고 전투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이런 자들이 늘어나고 진형이 무너지는 순간 카리나의 활약과 관계없이 블랙캐슬은 끝장이다.
이를 알고 있기에 니플헤임은 계속해서 회피 위주의 싸움을 펼쳤다.
카리나는 어떻게든 아군을 도우러 가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으나 그런 뻔한 수에 당해줄 빙설마녀가 아니었다.
“슬슬 인정해. 너는 졌어.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테야. 네가 아꼈던 부하들? 모조리 아울베어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되겠지.”
카리나는 극도로 집중하느라 말이 없었다. 어떻게든 전황을 뒤집어보려는 필사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더 발버둥칠수록 그물망과 함께 엉키듯이, 오늘만큼은 소드마스터의 화려한 용력도 빛이 바랬다.
“이제 끝이네. 아래를 봐.”
“속임수 따위에 속지 않는다.”
“정말이야. 공격 안 할 테니까 봐.”
니플헤임이 어깨를 으쓱이자 카리나가 반사적으로 아래쪽을 흘낏했다.
그리고 보았다.
레인저단장 캠벨이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캠벨은 익스퍼트를 눈앞에 둔 고수에다가 가장 체구가 좋아 진형의 핵심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쓰러졌으니 이제 원형방진은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
“캠벨!”
“어딜! 넌 나랑 놀아야지.”
니플헤임이 만든 얼음송곳이 카리나에게 퍼부어졌다.
붉은 머리의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공격을 막았다.
이대로라면 희망이 없다.
그녀의 얼굴에 점점 수심이 차고 어둠이 깃들었다.
“히히히히, 바로 그 얼굴이야! 절망감에 찬 표정! 몇 번을 봐도 질리지가 않아.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정말이지···짜릿해!”
광소를 터트리는 니플헤임.
작금의 상황은 그녀에게 그야말로 만찬이나 매한가지였다.
최대한 천천히 씹고 뜯고 맛보고.
이 순간을 즐기며 만끽하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헤논?”
“거짓말하지 마라. 두 번은 안 통한다.”
미소가 사라진 니플헤임의 중얼거림을 카리나가 무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빙설마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한 곳에 고정되었다. 그러자 카리나 또한 그쪽으로 눈길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두 여자의 시선이 미어캣처럼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거기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훤칠한 키.
하얀 피부.
짙은 눈썹.
우수에 찬 눈동자.
오뚝한 이목구비.
누누히 말했듯 이런 험악한 전쟁터가 아닌 귀족의 파티장이나 어울릴 법한 사내가 옷깃을 펄럭이며 구덩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리나와 니플헤임, 마찬가지로 구덩이 위에서 아래를 지켜보고 있던 빅터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안 돼!”
“헤논이라니.”
“절벽에서 떨어지고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지?”
모두가 헤논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놀랐지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두 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난다.
콰드드드득!!
콰드득!
콰드드득!!
구덩이 아래쪽에 블랙캐슬 병력을 포위하고 있던 수많은 아울베어의 몸을 나무뿌리들이 구속하는 것이 아닌가!
뿌리가 어찌나 질긴지 아울베어의 강한 힘으로도 쉽게 뿌리치기 힘들었다.
한마리가 아니었다.
거진 수십마리가 속박되었다.
니플헤임과 빅터는 당연하고, 이에 맞서는 블랙캐슬 수비대 또한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어?”
“곰탱이들이 움직이지 못한다.”
“이때다! 빨리 구덩이에서 달아나자!”
“아냐! 싸워야지! 절호의 기회잖아.”
“무슨 소리야? 우린 이미 지쳤어. 아울베어가 잠시 묶여있다 할지라도 저 많은 수를 처리할 동안 절반은 속박을 풀고 다시 우리를 공격할 거다.”
“맞아. 힘이 남아있을 때 부상자를 데리고 이 빌어먹을 구덩이를 탈출해야 해!”
순간 벌어진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레인저와 수비대들.
갑작스레 나타난 헤논은 그들의 고민마저 말끔히 해결해주었다.
콰콰콱!
콰콰콰콰콱!!
얼음으로 둘러싸인 바닥을 뚫고 나온 뾰족한 돌이 나무뿌리에 묶여있던 아울베어의 심장을 직격했다.
끝단이 뾰족한 원뿔 모양의 돌들은 마치 기사들이 기마돌격 시 흔히 애용하는 랜스를 닮아있었다.
그런 랜스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솟아올라 아울베어들을 말 그대로 참살했다.
푹! 푸푹! 푹!
나무뿌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곰들이 잇따라 침묵했다.
그렇게 수십마리의 곰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데에는 단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레인저 서넛이 달려들어야 한마리를 겨우 처치한다는 아울베어.
그런 중상급 몬스터 수십마리를 최근 유저 상위에 올랐다는 젊은 무인 하나가 5분도 안 돼서 참살해버린 것이다.
이건 이변이었다.
아니?
이변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그야말로 역사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상황 전체를 지켜보던 블랙캐슬의 인원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도대체···헤논 부단장은 누구지?”
“내가 알던 그 부단장 맞아?”
“대단해. 저 아울베어 수십마리를 단번에 격살하다니. 사령관님도 저렇게는 못할 거야.”
“헤논 부단장은 마법사가 틀림없어.”
어쨌든 죽기 직전 기적적으로 살아난 셈. 삶을 포기한 이들에게 희망의 동앗줄을 내려준 헤논은 구원자였다.
기세가 오른 레인저들은 병장기를 흔들며 새로운 영웅의 재림을 환호했다.
와아아아!!!!
밑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은 당연하게도 니플헤임과 카리나에게 들렸다.
어느새 둘의 입장은 뒤바뀌었다.
의기양양해진 카리나의 얼굴에는 여유가 깃들었고 반면에 니플헤임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자, 이제 시간은 누구 편이지?”
“으아아아!!! 헤논!!! 감히 네가 내 그림을 망쳐?”
질투의 사도는 히스테릭한 고음을 내뱉으며 헤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으로 화염이 날아와 그녀의 시야를 차단했다.
“뭐해? 넌 나랑 놀아야지.”
니플헤임을 도발하면서도 카리나의 눈은 헤논을 쫓고 있었다.
짧은 등장으로 전세를 뒤엎어버린 놀라운 사내.
과연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아들.
오늘은 저 젊은 소년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빚졌다. 이번 일이 끝나면 오늘 보여준 눈부신 활약에 대해 톡톡히 보답을 해줘야 하리라.
“···그 전에 결착을 지어야겠지.”
“뭐라 중얼거리는 거냐!”
“네년이 숨 쉴 날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의미다.”
결론을 내린 카리나가 니플헤임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격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아까보다는 한결 가벼웠다.
* * *
럴수럴수 이럴 수가.
나조차도 이럴지는 몰랐다.
단지 초급 드루이드로 승급하고 나서 도토리를 먹고 스킬을 썼을 뿐인데.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뒤집힌 역천의 광경이 펼쳐졌다.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바인드를 사용합니다.] [도토리의 효과가 작용합니다.] [바인드가 광역기로 전환됩니다.]그동안 속박 기술 바인드는 단일 개체를 향해서만 썼고 여러 개체를 상대로 썼다간 뇌에 과부하가 왔었다.
하지만 초급 드루이드로 승급하고 도토리 효과까지 받자 기존의 페널티가 사라졌다.
바인드에 적중 당한 아울베어 수십마리가 옴짝달싹 못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게다가 2성(★★)이 된 바인드는 나무줄기가 아닌 뿌리로 속박해서 훨씬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했다.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아울베어조차 뿌리들을 자르고 나오는데 한참 걸릴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런 움직임을 취할 수 없는 상대는 나에게는 떠다놓은 밥상이었다.
[스톤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스톤 랜스를 사용합니다.] [도토리의 효과가 작용합니다.] [랜스가 광역기로 전환됩니다.]드래곤 레어에서 치뤘던 황금가지의 시험에서 무려 트롤을 해치웠던 스톤 랜스였으니 파괴력과 관통력만큼은 보장된 공격 스킬이다.
이 녀석이 단일기도 아니고 광역기가 되어서 묶여있던 수십마리의 아울베어를 모조리 저격해버렸다.
제아무리 아울베어가 강한 몬스터라 할지라도 트롤보다 덩치도 작고 재생력도 약하니 랜스에 뚫린 놈들 전부 토벌되었다.
일련의 활약이 5분 안에 벌어졌다.
내가 해놓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어땠겠는가.
옆을 슬쩍 봤더니 시온이 드물게 표정 관리를 못하고 있었다.
“어떠냐. 시온.”
“···도련님, 그동안 이런 힘을 숨기고 있으셨던 겁니까? 이 정도면 후작이고 뭐고 왕국 정벌도 하겠는데요.”
“너무 갔군.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어쨌든 도토리는 개수가 한정된 귀물이다.
필립과의 대련.
사령술사와의 생사결.
그리고 오늘.
벌써 세 개나 먹었으니 남은 일곱 개는 아껴서 먹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위기는 계속 닥쳐올 테고 보아하니 드루이드로서 성장할수록 도토리의 효력도 같이 상승하니 말이다.
아울베어를 해치웠으니 지금부터는 뒤처리를 할 차례다.
구덩이를 내려다보니 옆구리에 피를 흘리는 캠벨이 보였다.
“캠벨! 괜찮나!”
“쿨럭! 쿨럭! 제길슨! 내가 저럴 줄 알았지! 살아있을 줄 알았어! 내 불알을 만진 녀석이 그렇게 쉽게 갈리가 없지.”
변태 녀석이 뭐라는 거지.
“여기는 신경 쓰지 마라. 알아서 수습하고 올라갈 테니! 그리고 오늘 블랙허니에서 회식 있으니 빠지지 말라고! 오늘도 빠지면 짝부랄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옆구리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술을 마시겠다니, 하여간 저 호탕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모를 성정은 인정해줘야 한다.
아무튼 저렇게 농담을 할 정도면 죽을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아울베어도 소탕되었으니 알아서 부상자를 수습하고 올라오겠지.
문제는 따로 있다.
“도련님! 조심하십시오!”
아까부터 경계하고 있었기에 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달려든 빅터의 기습을 슬쩍 움직여서 피했다.
까앙!
쇳소리와 함께 시온의 검과 빅터의 검이 부딪혔다. 힘에서 밀린 그녀가 다섯 발자국을 밀려났다. 역시 빅터는 익스퍼트의 고수. 여기에 더해 힘까지 좋다.
“하녀가 귀찮게 하는군.”
“빅터, 감히 에리카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나? 계집 둘이서 수다를 떨다가 내 꼬리를 잡았구나.”
머리가 비상한 빅터가 단순에 내가 그를 쫓았던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 뭐해.
이미 니플헤임과 빅터의 노림수는 파훼되었는 걸.
분노로 인해 눈에 핏발을 세운 빅터가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헤논, 난 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면 말을 하지.”
“별 것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눈치만 빠른 놈. 살려두라는 사도님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해체했을 거야.”
“오우야. 그것참 무서운 소리군.”
진심인 빅터에 비해 나는 귓구멍을 후비며 빈정거리는 태도를 취했다. 내 태도가 그를 더욱 자극했는지 잔뜩 화가 난 빅터가 검날을 내 쪽으로 향했다.
“무슨 사술을 벌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네놈의 능력 파악은 끝냈다. 나에게는 안 통한다. 그때 절벽에서 끝맺지 못했던 일을 오늘 마무리해주마.”
빅터는 자신감을 가질만했다.
어쨌든 내가 가진 드루이드의 스킬은 몬스터처럼 지성이 없거나 나보다 현격히 약한 적을 상대하기 좋았다.
빅터급 되는 익스퍼트 상대로는 조금 귀찮게 하는 수준이니, 결국 이놈을 상대로는 검술로 승부를 봐야 한다.
스르릉
검을 뽑아 마주 겨누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빅터의 입가에 비웃음이 머물렀다.
“그래 봐야 소드 유저. 넌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빅터의 검에 옅은 흑색 마나막이 코팅됐다.
“크크큭, 어디 온갖 잡수를 다 부려봐라. 나에게 통하나. 그 나무 찌꺼기와 돌쯤은 마나소드로 모조리 잘라···”
빅터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맞은편에 서 있던 내 검에서 밝은 은녹색의 검기가 터져 나왔기에.
바로 익스퍼트의 상징인 마나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