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7)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37화(37/200)
5장 달성 : 끝맺는 망나니
아르니아 대륙의 무인들은 비기너-유저-익스퍼트-마스터-그랜드마스터 식으로 경지를 나눈다고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비기너라고 다 같은 비기너가 아니고 유저라고 다 비슷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는 익스퍼트와 마스터도 마찬가지다. 같은 경지 안에서도 뚜렷한 실력 차이가 존재한다.
허나 아무리 차이가 난다 하여도 경지가 뒤바뀌는 것만큼이나 차이가 날까.
마나 자체를 못 쓰는 비기너와 몸에 마나를 두른 유저, 몸을 넘어서 무기에까지 마나를 담는 게 가능한 익스퍼트, 마나소드를 넘어서 오러 블레이드라는 기예를 펼치는 마스터까지.
경지를 넘는다는 건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바뀌고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것처럼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놀라운 일을 해냈다는 것을 모두에게 당당히 보여줬다.
천마검에서 솟은 은녹색의 마나 소드를 본 빅터가 경악했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놈이군. 분명 처음 볼 때만 해도 평범한 소드 유저였는데, 어느새 익스퍼트라니.”
“원래 세상은 난해한 일투성이지.”
“아니. 그걸 고려하더라도 너는 돌연변이다. 어떻게 익스퍼트에 도달했지?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기연이라도 얻었나?”
“그랬다고 하면 믿을 건가?”
입을 꾹 다문 빅터가 서늘한 시선을 던지며 검을 가로로 세워 나를 겨냥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네가 익스퍼트에 오른 건 제법 변수긴 하나 이제 갓 신세계를 경험한 녀석에게 질 정도로 한심하게 살지 않았다. 네놈을 여기서 도륙하고 네 옆의 하녀도 같이 죽여주마.”
살심을 내비치는 빅터를 경계하며 옆에 있던 시온을 슬쩍 보았다.
평상시에 웬만한 일이 있어도 곧잘 태연함을 유지하던 그녀는 오늘만큼은 포커페이스가 깨졌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련님, 어떻게···”
“나중에 말해주마. 지금은 빅터를 잡는 게 우선이다. 같이 합공한다.”
어쨌든 시온도 겉모습은 하녀이나 알맹이는 하루도 단련을 거르지 않은 어쌔신이다.
바로 단도를 뽑아 역수로 쥐며 빅터의 빈틈을 노렸다.
원래라면 혼자 상대하고 싶었다.
익스퍼트에 올라서 빅터와의 격차를 대략이나마 판단하고 싶었기에.
헌데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다.
도토리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고 멀리서는 아직도 카리나와 니플헤임이 싸우고 있다.
어서 빅터를 마무리하고 그쪽을 지원해야 한다.
“어디 둘이서 덤벼보아라! 모조리 썰어줄 테니!!”
빅터가 쇄도했다.
역시나 재빨랐다.
그런데 왜일까.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쩌어어엉!
침착하게 검을 들어 빅터의 검을 막았다. 내 은녹빛의 마나와 빅터의 흑빛 마나가 부딪치며 굉음을 냈다.
손아귀가 아릴 정도로 마나 소드끼리의 충돌은 강력했다.
이어서 빅터는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검무를 추었다. 경험 많은 용병이 쓸만한 실전검법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나는 천마검의 도움을 받았다.
-왼쪽이다.
-오른쪽이네.
-어깨 노리는 척하다가 다리.
까앙! 깡! 까앙!
이쯤되니 미안하다.
나 혼자 치트 쓰고 게임하는 기분.
시작도 전에 막히는 공격.
빅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런 거지 같은 경우를 보았나! 독심술사냐? 어떻게 칼을 대기도 전에 거기를 막아?”
“우연이겠지.”
“우연은 개뿔! 안 되겠다. 이것만큼은 아껴두려 했는데.”
무슨 수가 있는 건가.
빅터는 몇 걸음 떨어지더니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갑자기 양팔을 좌우로 활짝 벌리며 하늘을 향해 하울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설마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빅터가 원래는 웨어울프였다든지.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빅터의 몸집이 커지면서 근육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손발에는 날카로운 짐승의 손발톱 자라려고 한다.
원래 중간보스들은 다 숨겨진 수가 하나씩 있고 이를 페이즈라 일컫는다.
그래서 페이즈 별로 상대를 뽀개는 방식이 보스레이드의 정석.
하지만 여긴 게임 같은 현실이고 현실 같은 게임이니 굳이 그런 정석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상대를 속박합니다.]늑대인간으로 변신 중인 그를 속박하자 놈이 비웃음을 흘렸다.
“크크큭! 이따위 나뭇가지로 날 어쩌지 못한다는 걸 보여줘야···컥!?”
푸욱!
빅터의 배를 뚫고 나온 단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시온이 물도마뱀 발걸음을 최대로 사용해서 먹인 기습이었다.
변신 중인데다가 내게 온 정신이 팔린 바람에 허용한 일격이기도 했다.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빅터가 거칠게 울부짖었다.
“이런 치사한 놈! 변신 중에 건드리다니!”
“응, 나는 건드려~”
여기가 드래곤X이나 디지X 같은 소년 만화도 아니고.
상대가 강해질 타이밍을 기다려 줄 이유가 없다. 시온의 공격에 연계하여 드루이드 스킬을 썼다.
[스톤 랜스를 시전합니다.]땅에서 솟은 돌이 그의 허벅지를 관통하려 하자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기민한 반사신경으로 몸을 뒤틀어 회피한다.
그럼 뭐해.
이미 나는 지척인걸.
천마검이 가볍게 횡으로 그어졌다.
후웅! 뎅겅!
빅터의 목이 허공을 난다.
그 모습이 조금은 비현실적이다.
어찌 보면 허무하다.
하지만 이게 진짜 전투고 전쟁이다.
실제로는 뭣도 못하고 사라지는 생명이 부지기수인 리얼한 난투.
그렇게 블랙캐슬의 범죄자이자 충성스러운 황혼교도였던 빅터는 제대로 힘도 못 써보고 최후를 맞이했다.
“잘했다. 시온.”
우선 빅터의 방심을 철저하게 이용한 시온을 칭찬해주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너는 구덩이 쪽으로 가서 블랙캐슬의 인원들을 구조해라.”
“도련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나는 사령관님을 돕겠다.”
시온은 걱정스러운 기색이었으나 내가 연이어 보여준 기적 때문인지 더는 막지 않았다. 그저 당부의 말을 할 뿐.
“무사히 돌아와 주십시오.”
“물론이다.”
“그럼 저는 부상자와 전사들을 데리고 블랙캐슬로 귀환하겠습니다.”
시온이 멀어지자마자 두 마스터의 격전지를 향해 달렸다.
그곳은 이미 화염과 얼음의 충돌로 인해 거대한 수증기가 뭉게구름이 되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흡사 자연재해와 같으니, 마스터급 고수만 되어도 인간을 넘어선 초인이라 부를 만하다.
[도토리 제한시간-20분]20분이면 충분하다.
연기를 헤치고 중심부로 진입하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두 여인이 보였다.
한쪽은 붉은 머리 한쪽은 푸른 머리.
극명하게 대비되는 머리카락 색을 지닌 이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내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빅터는 어쩌고 너 혼자 왔지?”
“빅터는 죽었다.”
“이런 쓸모없는 놈!”
니플헤임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만했다.
스파이 짓을 하다가 내게 꼬리가 잡히고, 날 잡아오라 했더니 죽었다고 했던 내가 살아오고, 마지막 전투에서까지 내게 당했으니, 나한테 완전히 물먹었다고 볼 수 있다.
“니플헤임 다 끝났다. 그만 항복해라.”
“···헤논.”
조용히 내 이름을 뇌까리는 얼음마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직시한다.
“아무리 사생아라고는 해도 고든의 씨앗인데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다. 심지어 본교가 찾던 드루이드였다니.”
내가 드루이드라는 사실이 들킬 거라곤 예상했다.
아울베어 수십마리를 나무로 묶고 돌로 찔렀는데 들키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전에 토벌했던 사령술사 라울이 일러준 대로 황혼교도는 날 찾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이 자리에서 반드시 니플헤임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야 황혼의 수뇌부에 내가 드루이드라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 테니까.
혹여 전해진다면 황혼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내 신병을 확보하려 시도할 테고, 그렇게 된다면 애꿎은 로이드 후작령이 피해를 볼지도 몰랐다.
한편, 카리나는 내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고래 싸움에 끼어든 새우였다.
“헤논, 돌아가라. 질투의 사도는 나 혼자 처치할 수 있다. 여기 있으면 신경 쓰이고 방해된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한 몸 건사할 능력은 있습니다. 붙지 않고 멀리서 지원 정도만 해드릴게요.”
그와 동시에 내 검에서는 은녹빛의 검기가 흘렀다.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카리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한창 싸워대느라 나와 빅터 쪽을 보지 못했던 두 여자는 내가 익스퍼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익스퍼트? 어떻게···”
“대단하군. 역시 비범해. 저 정도면 고든을 능가할지도. 흐헤헤!”
니플헤임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혀로 입술을 훔쳤다.
시선이 묘하게 끈적거렸다.
반쯤 맛탱이가 가있는 시선을 마주하자 그녀가 뒤틀린 소유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카리나도 이를 눈치채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든을 안 되니까 이제는 아들을 노려? 추잡한 줄 알아라!”
대답은 없었다.
니플헤임의 손짓 한번에 땅에서 커다란 얼음손이 등장하여 날 붙잡으려 했다.
그 손바닥이 얼마나 큰지 거인족의 손 같았다.
“헤논!”
카리나가 다급히 날 도와주려 했지만 얼음손은 이미 날 덮치는 중이었다.
피하기는 늦었다.
막아야 한다.
바로 도토리의 힘을 최대로 활성화했다.
[스톤 실드를 발동합니다.] [상대의 공격을 차단합니다.]처음으로 쓰는 돌 방패였으나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모든 교감력을 집중했다.
거기에 도토리 버프까지.
그렇게 만들어진 돌 방패는 얼음손과 밀리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로 솟아서 니플헤임의 공격을 저지했다.
쿠콰콰콰콰!!!
돌로 만들어진 원형 방패와 얼음손이 부딪쳐서 우르르 무너졌다.
그 광경은 흡사 카리나와 니플헤임이 이전에 만들었던 자연재해와 비슷했다.
그제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깨달았다.
내가 비록 이제 막 익스퍼트에 오른 새내기이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할 만큼 약하지 않다는 걸.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다급해진 건 니플헤임이었다.
“예티!”
말만 들어도 교감이 되는지 예티가 갑자기 니플헤임을 붙잡더니 카리나의 반대편으로 힘껏 던졌다.
어찌나 힘이 센지 순식간에 외형만큼은 작은 소녀인 얼음마녀가 저 멀리 훨훨 날아간다.
“어딜 도망가려고!”
카리나도 추격하려고 땅바닥을 박찼다.
소드마스터의 도약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거대한 예티가 있는 힘껏 던진 거리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문제는 이곳은 공중이란 점.
아직도 니플헤임은 평행하게 날아가고 있었고 카리나는 중력의 힘에 이끌려 떨어진다.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가르쳐줬던 필살기 ‘순보’를 시전했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
다시 한 번 재도약해서 니플헤임에게 접근했다.
카리나의 두 눈이 투지로 불타올랐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주마!”
오러가 섞인 붉은 화염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니플헤임을 향해 떨어졌다.
이에 맞서서 니플헤임은 손에서 얼음꽃을 그려내며 응수했다.
다가오는 화염폭풍을 환영하는 듯 활짝 만개하는 빙설화(氷雪花).
충돌과 함께 폭음과 터졌다.
반동으로 인해 카리나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도주에 성공했다 판단한 얼음마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흐흐흐, 제법 용을 썼다만 또다시 나를 잡지 못했구나. 카리나 넌 다음 기회에 처리해주마. 그리고 고든의 아들이자 드루이드인 헤논도···응?”
얼음마녀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겨우 피라미에 불과한 내가 공중을 박차고 그녀의 턱밑까지 따라붙을 줄은.
[윈드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스킬 순보를 사용합니다.] [스킬 순보를 사용합니다.] [스킬 순보를 사용합니다.]팡! 파팡! 팡!
숨을 들이쉰다.
몸이 가볍다.
바람 발판을 박찬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회오리치는 바람을 이용하여 공기를 박차던 나는 오히려 카리나보다도 더 가까이 니플헤임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지척에 가까워지는 목표물.
이런 내 앞에는 장기간의 전투에 지치고 카리나의 일격을 막느라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질투의 사도가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어떻게 분 단위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저승에 가면 알려주마.”
은녹빛을 뿜어내는 천마검과 신검합일의 자세로 쏘아졌다. 분명 절체절명의 위기인데도 니플헤임의 표정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흐흐흐, 정말이지 탐나서 미치겠단 말이야. 여기서 빠져나가면 넌 무조건 내가 가져줄게.”
니플헤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순간 머리가 띵했다.
이게 뭔지 알았다.
바로 아울베어와 예티를 조종했던 세뇌능력이었다.
“내 세뇌능력은 대등한 상대에겐 안 통하지만 너 같이 약한 애들에겐 아주 제대로 먹히지. 공중을 나는 기술은 제법 신기했지만 여기까지···”
[패시브 스킬 자정작용 발동.] [모든 상태이상의 면역입니다.]결국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니플헤임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허공에서 얽혔다.
그 순간 질투의 사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눈동자는 광기에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서걱!!
은녹빛 지나친 자리에는 옅은 핏방울이 배어있었다.
황혼의 7대 간부.
질투의 사도.
얼음마녀 니플헤임.
그녀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