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40화(40/200)
6장 탈환 : 환향한 망나니
주위가 침묵에 잠겼다.
누구도 갑주를 갖춰입은 기사가 웬 정체모를 검사에게 일격에 당할 줄은 몰랐기에.
게다가 기사는 말을 타고 돌격하는 자세였으니,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하나 운으로라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네 녀석은 누구냐?”
추격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낯선 실력자의 행색을 훑었다.
지금 보니 옷이 땀으로 젖어 후줄근해 보였을 뿐 마감이 잘 되어있었다. 들고 있던 검도 심상찮아 보였다. 꽤 고가의 물건.
“웃기는 놈이군. 남의 땅에 들어왔으면서 먼저 신원을 묻는 거냐? 얼마나 로이드 가문이 우스웠으면 이런 짓을 벌이지?”
“로이드 가문을 경시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쪽이 로이드란 이름을 사용해도 되는 사람인지가 궁금하군요.”
갑자기 존댓말이라니.
기사들의 태세전환이 우스웠다.
게다가 놈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신원을 밝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저 눈빛을 봐라.
아직도 스산한 살기가 번뜩인다.
“피차 말이 길어질 필요는 없을 듯하군. 누누이 말하는데 도망가지 마라. 귀찮으니까.”
“신원을 밝히지 못하는 것을 보니 살고 싶어서 로이드 이름이나 주워섬기는 용병 나부랭이인 모양이구나. 죽여라!”
또다른 기사 둘이 말을 박찼다.
이들은 첫 번째 기사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방심에서 기인했다고 여겼는지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렇게 그들은 또다시 오판했다.
나는 우선 놈들을 말에서 떨어트리기로 했다.
[우드 컨트롤을 시전합니다.] [상대를 속박합니다.]도토리를 먹었을 때처럼 아울베어 백마리를 한꺼번에 속박하는 기사는 벌이지 못한다.
그래도 초급 드루이드로 승급하면서 업그레이드 된 바인드 스킬로 다가오는 말 두 마리의 발목 정도는 가볍게 묶어버렸다.
히이이잉!!
썩어도 준치라고.
말이 넘어졌어도 그 위에 타고 있던 적들이 민첩하게 굴러서 낙상을 피했다.
그럼 뭐해.
이미 게임 끝인걸.
그들의 낙마 위치를 예상하고 쇄도하여 번개같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두 명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이제 남은 기사는 겨우 다섯.
찬물을 뒤집어쓴 듯 녀석들이 움츠린다.
뒷목을 움직여 우두둑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북부에서 사냥하던 놈들에 비하면 너무 쉬워서 우스울 지경이군.”
“!!!”
기사들의 동공이 커졌다.
“북부!”
“과연, 그쪽 출신 용병이었나.”
“그렇다면 저 실력이 설명된다.”
“단지 운이 좋은 거 아닙니까? 말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한데.”
대혼란에 빠져든 기사들.
그러자 아까부터 맨 뒤에서 무게 잡고 있던 기사가 나선다.
“어쩔 수 없지. 처리하고 간다.”
그러는 대장 놈의 검에는 옅은 마나가 씌어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였던 것이다.
“그저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본 네 불운을 탓해라. 개인적은 감정은 없다.”
“지랄 똥을 싸고 있네.”
“···용병답게 말투가 천박하군.”
익스퍼트 대장 놈은 아까 말에서 떨어져 죽은 부하들을 보고 학습했는지 말에서 내린 채로 나에게 뛰어들었다.
마나소드와 일반검이 정면으로 부딪치면 웬만큼 검이 좋지 않은 이상 일반검은 부러져 버린다.
대장은 그걸 믿고 정면승부를 걸어왔다.
문제는···
-왼쪽.
-오른쪽.
-오른쪽 치는 척하다가 위.
천마게이션이 정상작동하고 있달까.
솔직히 없어도 이길만 했는데 천마까지 가세하니 이건 뭐 식은 죽 먹기다.
나와 몇 번 합을 겨뤄본 기사단장이 어처구니없는 얼굴이 되었다.
“넌 대체 뭐냐? 왜 내가 공격할 길을 이미 막고 있는 거지? 심지어 이쪽을 공격하겠다고 생각도 하기 전에 미리 그곳을 점하다니. 대체 정체가 뭐···”
그게 대장의 유언이었다.
목이 달아난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익스퍼트의 기사가 일격에 떨어져 나가자 여기까지 쫓겨왔던 의문의 사내가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럴 수가! 리만 경이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죽다니!”
나머지 떨거지들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 이제 그들은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은녹색의 검기가 화려하게 뿌려진다. 내 진짜 경지를 목격한 적들의 사기는 더더욱 떨어졌다.
그리고···
“엥? 이것들은 뭐야?”
“소음이 들리길래 왔더니 불청객이 와 있었군요.”
캠벨과 시온이 싸늘한 표정으로 한쪽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으니, 유일한 장점이었던 수적 우위마저 사라졌다.
“변수다. 후퇴한다.”
넘버투로 보이는 기사가 몸을 돌리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나와 캠벨이 검기를 뿌리며 달려들었고 시온이 물도마뱀 발걸음을 번뜩였다.
남은 기사들의 실력은 우리 셋 중 한 명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 정리는 순식간이었다.
“말도 안 돼···힐튼 가의 기사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당신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입니까?”
“이것들이 아까부터 남의 땅에 들어와 놓고 누구냐고 묻고 있네? 저놈부터 포박해라. 내가 친히 살을 발라내며 누군지 알아낼 테니.”
고문을 하겠다는 말의 낯선 사내가 기겁하며 재빠르게 대답한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로이드 후작가 산하 알버스 남작님의 아들 피터 알버스라고 합니다!”
칼을 들고 사내에게 향하던 시온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원하신다면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브로치라도 보여드리겠습니다.”
“하여간 널 증명할 수 있는 건 다 꺼내. 판단은 우리가 한다.”
3분 간의 짧은 수색.
복면 기사들에게 쫓기던 낯선 사내가 피터 알버스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조금 설명이 필요할 듯하군. 그 전에···꼬라지가 말이 아니군. 일단 따라와라.”
* * *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케이브 장원의 파티는 중단됐다.
피터는 남은 음식으로 요기하고 목욕까지 마친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대면했다.
새옷까지 입혀놓으니 확실히 곱게 자란 귀족티가 났다.
“헤논 로이드란 말씀이십니까? 유명한 로이드 가문의 망···”
“뒷말을 잘 끝맺는 게 네 신상에 이로울 거다.”
“···귀한 자제분이셨군요. 최근에 북부에서 엄청난 위용을 보였다는 소문이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피터.
확실히 북부에서 거친 사내들만 만나다 보니 오랜만에 보는 남부 녀석들이 왠지 모르게 순진해 보인다.
“그래서, 왜 죽기 직전인 상태로 우리 영지에 있었는지 설명해 보실까?”
“그게···흐흐흑···”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다.
처음에는 사내새끼가 우냐고 타박하려 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네 숙부가 알버스 남작을 처형하고 남작령을 홀라당 힐튼 백작에게 넘겼다?”
“그렇습니다. 저희 가문이 대대로 로이드 가문을 섬긴 건 헤논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힐튼 백작가라···”
엘든 왕국은 수백 개의 가문이 땅을 잘게 나누어 통치하는 구조다. 그래서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는 누구인지 모를 수많은 가문이 부지기수다.
그런 와중에 고고하게 빛나는 소수의 대가문이 있는데 힐튼 백작가는 그중에 하나였다.
힐튼 백작가는 엘든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성세를 자랑하며 세력의 크기는 대륙의 세븐 스타라는 로이드 후작가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수준이다.
게다가 영지조차 맞대고 있으니 두 가문이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알버스 영지는 두 세력의 영향권 딱 한가운데에 있는 영지였다. 아무래도 좌우로 영향을 받을 수 받게 없는 위치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 듯했다.
“새롭게 알버스 남작이 된 제 숙부는 아버지에 이어 저까지 처리하려고 힐튼 가의 도움을 받은 겁니다. 방금 도련님께서 잡은 놈들이 바로 힐튼 가의 사냥개들이었고요.”
“그랬군.”
“솔직히 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을 줄 알았습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헤논님께서 단독으로 죽인 놈은 그쪽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인데···”
“제법 잘 아는군.”
“저희 가문이 살려면 힐튼 가문과 로이드 가문 둘 다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요. 그 결과 이렇게 됐습니다만···으흐흑···”
다시 눈물을 쏟아내는 피터.
일단은 후작성으로 돌아가서 이 상황을 아버지께 보고하기로 했다.
금의환향을 하려던 차에 이상한 일에 휘말려버렸다.
* * *
어쨌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기를 잘 견디고 명예롭게 북부에서 생환했다.
후작성에 도착하니 성문은 활짝 열려있고 사람들이 좌우로 늘어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다!! 헤논 도련님이다!!”
“만세!! 북부의 영웅!”
“황혼의 간부를 처치한 불살자!”
“불살자! 불살자!!”
황혼의 대간부를 처치한 건 아무래도 큰 영예이기도 하고 주민들의 사기를 올려줄 만한 소식이니 엘든 왕국 전체가 빠르게 소문을 퍼트린 모양.
그리고 내 이명은 불살자로 굳어진 모양이다.
“쳇! 불살자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옆에서 같이 환호를 받던 캠벨이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부단장의 인기가 좋은 것 같네. 원래도 이렇게 좋았나?”
“다른 의미로 좋았지.”
“아하.”
옆에 있던 시온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헤논을 향한 경멸과 멸시의 시선은 언제나 자동 옵션이었으니까.
심지어 시온 자신도 그런 시선을 던지던 사람 중 한 명이었건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니, 천지가 뒤바뀌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길에 떨어지는 꽃가루를 밟으며 내성 쪽으로 향하니 로이드 후작이 직접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나를 본 후작은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었다.
“고생했다! 정말로 고생 많았어!”
아버지의 포옹이 조금은 어색하다.
어깨너머로는 필립과 로잘린의 모습을 보았다.
원수나 다름없음에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긴 반가웠다. 똥 씹은 표정을 해서 더 반가울 걸지도.
“···헤논, 소식은 들었다. 제법 이름을 날렸더구나. 그러나 자만하진 말거라. 너처럼 젊은 나이에 큰 유명세를 탔다가 고꾸라지는 녀석들을 자주 봤으니 말이다.”
역시 로잘린은 돌려 깎기 장인답게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비꼬았다. 그에 반해 필립은 죽상이 돼서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화려한 귀환을 마쳤다.
성에 들어와보니 하인들과 하녀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아직까지는 경외보다는 불신이 더 컸다. 내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간 저지른 내 패악질을 가까이서 봤기 때문이다.
도련님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게 낯설었겠지. 하지만 점차 그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벌써 몇몇 하인들의 나를 향한 적개심이 확연히 줄어든 게 느껴졌다.
저녁 만찬장.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다양한 음식이 식탁을 수놓았다.
추수감사절도 아닌데 식탁 한가운데에는 맛깔나 보이는 칠면조 고기가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는 미디엄 스테이크. 가운데에는 은은한 양초빛이 주위를 밝히고 그 빛에 반사되는 반짝이는 은식기들이 돋보였다.
오늘은 가족들 외에도 특별히 캠벨과 시온도 식사자리에 초대받았다. 비록 신분은 귀족이 아니지만 그간 나를 보필한 공과 명예로운 북부 제대인에 대한 예의라고 로이드 후작이 명령한 일이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시작은 로이드 후작의 찬사였다.
“나는 그저 네가 후방에서라도 살아 돌아와도 대단한 일이라고 여겼다. 북부는 그런 곳이니 말이다.”
“정말 대단한 땅이긴 하더군요.”
“맞다. 나 또한 북부를 경험했으니 그곳이 얼마나 척박한 험지인지 잘 알고 있지. 헌데 그곳에서 살아남는 것도 모자라 황혼의 대간부를 잡다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사실 사령관님이 다했는데 거기에 살짝 발만 걸쳤지요.”
“아비를 놀리는구나. 그게 운이 좋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고하거라.”
이야기는 제법 길어졌다.
처음 적응에 고생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빅터의 정체, 니플헤임을 발견하고 닥친 위기, 결국 극복해내고 북부의 영웅이 되기까지.
내가 이야기를 하다가 막히면 시온과 캠벨이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을 보충하거나 더 띄워졌다.
“아아, 부단장은 대단했습죠. 특히 그 아울베어를 모조리 처치했을 때는 용사 카일의 환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도련님은 레인저의 부단장으로써도 우수하셨습니다. 늘 단원들을 다독이고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솔선수범해서 수색을 나서시더군요.”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양초빛에 음영이 뒤흔들릴 때.
음식을 다 먹고 디저트로 따뜻한 차를 한모금 하던 후작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가문을 빛낼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저녁식사 내내 필립과 로잘린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후작가를 뒤이을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기 때문이겠지.
저렇게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지금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런 그들에게 한가지 폭탄을 더 얹어주기로 했다.
“그걸 까먹었군요.”
“무엇이더냐?”
“북부를 떠나기 전에 변경백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후작님께 편지를 전달해 드립니다.”
카리나의 편지를 넘겼다.
로이드 후작은 편지를 읽더니 미미한 미소를 띠다가 나중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지? 이게 진실이냐?”
“편지에 뭐가 적혀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설명을 해주시지요.”
“카리나가 네 후견인이 되어준다고 하더구나.”
“!!!”
쨍그랑!
로잘린의 와인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하녀가 재빠르게 바닥을 치웠다.
그만큼 변경백의 후견인 자청은 엄청나게 놀라운 얘기였다. 게다가 카리나는 결혼조차 안 한 독신 아니던가. 커다란 뒷배가 되어줄 것이 확실했다.
“얼핏 그런 얘기를 한 것도 같군요.”
“허허···”
후작조차 헛웃음을 지었다.
“너에게 큰 상을 내리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무슨 상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버지가 되어서 카리나보다도 좋은 상을 못 내려서야···”
“괜찮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로잘린과 필립의 신경이 곤두선 게 느껴졌다.
이들이 여태껏 꾹 참고 내 무용담을 들은 이유는 과연 후작이 나에게 어떤 상을 내리는지 듣고 싶어서였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난감해하는 것 같길래 끼어들었다.
“후작님, 제가 원하는 바가 하나 있는데 말해도 되겠습니까?”
“오, 무엇이더냐! 말해 보아라.”
내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제시하자 반가웠는지 덥석 무는 후작.
그에게 미리 준비해왔던 용건을 꺼냈다.
“알버스 남작가를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