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5)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55화(55/200)
7장 소환 : 정화한 망나니
그믐날.
로잘린은 방 안에서 계속 서성였다.
오두막에서 겪었던 충격적인 일이 머릿속에서 내내 맴돌았다.
‘지금이라도 무를까?’
저주 자체는 괜찮다.
헤논을 죽일 수만 있다면 저주보다 더 악랄한 짓도 할 자신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 저주가 왠지 자신에게 해가 되어 돌아올 것 같았다.
이와 더불어 방법을 제안한 힐튼 가의 책사 또한 이만저만 수상한 게 아니었다.
‘아마 황혼교도겠지.’
그녀가 알기로 아르니아 대륙에서 사람을 죽일만한 저주를 구사하는 흑마법사 단체는 황혼밖에 없었다.
세븐 스타의 아내인 자신이 오히려 황혼의 손을 빌리다니.
속으로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헤논을 죽이려면 이 방법뿐이야.’
이미 로잘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필립이 후작이 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끝낼 때쯤.
덜컥!
창문이 열렸다.
“감시를 피하며 들어오는 게 쉽지 않군요. 특히나 늙은 집사 눈길이 얼마나 매서운지 애먹었습니다.”
예의 그 중절모 사내가 들어왔다.
로잘린이 일부러 도도한 표정을 유지하며 차갑게 응대했다.
“기껏 비워준 방이니 금방 끝내세요. 하녀들에게 이쪽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는 했는데 남편이 올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로이드 후작과 집사장은 곧 자리를 비울 겁니다. 인근 영지에 오우거가 나타날 예정이거든요.”
가면 사내의 말을 들은 로잘린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단순히 저주를 성공시키려고 오우거란 상위급 몬스터를 영지에 풀어놓는다니.
발상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다.
“역시 그쪽은 황혼이 맞았군요.”
“이쯤 되면 모를 수가 없겠군요. 맞습니다. 저는 바알님을 모시는 신도입니다.”
“······”
“제가 황혼교라 마음에 안 드신다면 지금 나가드리겠습니다.”
로잘린도 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퇴로 따윈 없다는 것을.
그녀의 침묵을 무언의 긍정으로 여긴 중절모 신사가 콧노래를 부르며 방 안에 기괴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는 시간 동안 뻘쭘하게 서 있기도 뭐한 로잘린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저를 도와주는 이유는 로이드 가문에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서인가요? 그렇다면 잘못 짚었어요. 겨우 사생아 하나 죽는다고 해서 무너질 정도로 로이드 가문은 약하지 않아요.”
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형체를 갖추어나간다. 마치 예술가처럼 그림에만 몰두하던 탐욕이 로잘린의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한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헤논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헤논 따위를요? 그러면서 사실은 세븐 스타인 제 남편을 노리고 있죠?”
“흐흐흐, 은퇴한 소드마스터야 지는 해인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저희는 뜨는 해를 대비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라면 필립도 견제해야지요.”
마법진을 그리던 탐욕의 손이 잠깐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로잘린을 보던 그가 히죽 웃었다.
“필립 공자의 어머니시니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지만, 저희가 판단하기에 필립 공자님은 그다지 위협이 안 됩니다. 이제 집중해야 하니 말 걸지 말아주십시오.”
달리 말하면 필립은 헤논에게 한참 못 미치니까 건드릴 가치조차 없다는 말이다.
함축된 의미를 이해한 로잘린이 속으로 울컥했으나 인내심을 발휘했다.
지금은 괜히 저 사내에게 화를 내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황혼교는 일단 헤논부터 죽이고 필립을 확실한 로이드 가문의 확실한 후계자로 굳힌 다음에 해결해도 될 문제다.
한동안 방 안에는 탐욕의 마법진 설치하는 소리만 울렸다.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을 내던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죠? 이렇게 오래 걸린단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그때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오늘은 처음부터 그려야 하니까요. 게다가 도움도 없이 저 혼자서요.”
마법진도 조금 이상하다.
오두막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크고 모양도 기괴하다.
불길함이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그만둘 수도 없으니 조급한 마음으로 탐욕을 재촉했다.
“빨리 해요. 이러다가 들킬 것 같아요.”
“다 끝났습니다.”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로잘린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헤논의 머리카락을 탐욕에게 건넸다.
그러자 탐욕이 손을 내젓는다.
“필요 없습니다.”
“네? 저주를 거는데 저주받을 대상의 머리카락이 필요 없다고요? 무슨 그런 저주가 다 있죠?”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거든요.”
아무리 봐도 느낌이 싸하다.
로잘린이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탐욕은 그런 그녀의 심리마저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제물이라면 여기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로잘린의 손목을 잡고 마법진 안으로 던져버린다.
깜짝 놀란 로잘린이 마법진 바깥으로 빠져나오려 했으나 무형의 벽이 그녀의 탈출을 가로막았다.
“이거 안 열어요?”
“크흐흐흐, 이미 늦었다.”
“날 속였구나! 당장 열어라!”
로잘린이 마법진에 갇힌 채 아우성을 친다. 탐욕은 이를 무시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email protected]@”
마법진에 붉은빛이 차오른다.
로잘린의 떡진 화장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당장 열라고!!”
“단탈레온이여. 강림하소서.”
주문을 외우는 내내 방 안을 가득 채우던 핏빛이 갑자기 한 점으로 모이더니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후에 다가오는 건 천지가 뒤흔들릴만한 어마어마한 진동이었다.
쿠구궁!!!
탁자 위에 놓여있던 화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고 걸려있던 명화가 삐뚤어지더니 이내 바닥에 폭삭 떨어진다.
마법진 중앙으로부터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창문이 버티지 못하고 활짝 열렸다.
결국···공간이 갈라졌다.
근원적 공포.
광활한 혼돈.
끝없는 심연.
차원의 경계가 동물의 내장처럼 꿀렁거린다. 그리고는 끔찍한 지성체가 틈새를 헤치고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크흐흐흐···오랜만의 중간계로구나···
2m 50cm에 달하는 거구였다.
이빨이 날카로운 악마는 온몸이 시커멨다.
이마에는 뾰족한 뿔이 나 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사기만으로 주변은 질식할 것만 같은 역겨움으로 가득 찼다.
로잘린은 난생처음 보는 괴기스러운 광경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
탐욕이 그 앞에서 중절모를 벗으며 인사를 올렸다.
“단탈레온님을 뵙습니다.”
-너는···기억에 있다. 20년 전 바알님의 곁에 있던 가면 놈이군.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바알님은 아직도 잠들어 계신가.
“그렇습니다.”
-무능한 인간 놈들. 우리에게 20년은 짧지만 너희에겐 긴 세월일 텐데. 그동안 뭘 했단 말이냐.
단탈레온의 질책에 탐욕이 깊게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뭐…상관없지. 나는 즐기기만 하고 다시 마계로 돌아가면 되니까.
침을 질질 흘리며 웃던 단탈레온이 탐욕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원래 나는 날 소환한 놈을 먹어치운다. 그런데 넌 기억에 있던 놈이니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주마.
“감사합니다. 대신에 다른 제물을 준비해놨습니다.”
악마의 시선이 로잘린에게 향한다.
“히이익!!”
로잘린이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는다.
어디선가 풍기는 시큼한 냄새.
극심한 두려움에 잠식당한 뇌가 결국 요실금을 유발하고 말았다.
-맛없어 보이는 년인데.
“이래 봬도 이곳에서 알아주는 신분 높은 여인입니다.”
-크르륵···뭐 상관없겠지.
로잘린을 들어올린 단탈레온.
그녀가 허공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댄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흐흐흐, 팔딱대는 꼴을 보니 중간계에 왔다는 게 실감나는구나.”
“아아아악!!!”
콰직! 으드득! 으드득!
머리통이 입안에서 으깨진다.
두개골은 바삭하다.
뇌와 안구는 육즙이 넘친다.
그것이 로잘린의 최후였다.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즐거운 유희 되시길.”
탐욕이 인사를 올리고 사라진다.
남은 건 단탈레온 뿐.
그는 대륙인의 피와 살을 뜯어먹을 생각에 극도로 흥분했다.
우워어어어어!!!!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고.
악마의 광란이 시작되었다.
* * *
내성 동쪽 구역으로 달렸다.
특히 로잘린의 숙소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끼어서 일반인이 접근했다간 원치 않는 화생방을 경험할 듯했다.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느낀 하인과 하녀들이 죄다 숙소에서 나와서 우왕좌왕하다가 날 보고 우르르 몰려왔다.
“도련님!”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모두 성을 빠져나가라! 외성으로 가!”
마나를 가득 담아 웅혼한 목소리로 고막을 때리니 간신히 정신을 차린 사용인들이 비척비척 내성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기 부인께서···”
“부인은 내가 구할 테니 어서 가라고!”
한눈에 봐도 저기에 갔다가는 개죽음을 맞이할 게 눈에 훤하다. 머뭇대던 하인과 하녀들이 이내 내성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 다음 만난 건 내성의 경비를 담당하던 병사들과 코를 골며 자다가 헐레벌떡 나온 기사들이었다.
“공자님, 이게 대체···”
“시간 없으니 빠르게 한 번만 설명한다. 잘 들어. 후작 부인께서 흑마법사의 꾐에 빠져서 악마를 소환하셨다.”
악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기사들이 펄쩍 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악마라니요!”
힌즈 호수에서 잡아온 흑마법사를 기사들에게 던져줬다.
“이놈이 모든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족쳐서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고 있어라. 그리고 당장 모든 내성 인원을 인솔해서 내보내.”
그래도 명실상부한 엘든 왕국 대귀족 가문 직속 기사들이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 명령을 일사불란하게 수행했다.
그 중 짬이 가장 많이 찬 기사가 내게 물었다.
“공자님도 피신하시죠.”
“아니. 누군가는 여기서 저 악마를 상대로 시간을 끌어야 해.”
“설마 악마와 싸우시겠다는 겁니까!”
내 말을 들은 기사들이 일제히 놀란다.
“그러면 악마를 냅두리? 저 녀석이 내성을 탈출하고 외성구역으로 갔다간 그때야말로 재앙이다.”
내성에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피신이라도 시키지, 거주민만 일만이 넘어가는 외성 구역은 말 한마디로 다 내보낼 수도 없다.
“위험합니다. 우선은 피하시고 후작님을 기다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동안 저 녀석이 우리 영지민의 피와 살로 축제를 벌이는 걸 보고만 있자?”
할 말이 없어진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로이드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다. 영지민들을 지킬 의무가 있고 상대가 악마든 마왕이든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다.”
단호한 결의를 마주한 기사들의 눈빛에서 선망과 존경심이 피어오른다.
“과연 공자님! 그럼 저희도···”
“아니. 내 말 들어.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너희는 빨리 내성민들 다 내보내고 성문을 닫아라. 이곳을 봉쇄해.”
“저희더러 공자님을 악마에게 던져두고 이곳에서 탈출하란 말입니까?”
“상대는 악마다. 머릿수는 의미 없어. 나와 내 직속 수하들이면 충분하니까 내성문을 걸어잠그고 후작님을 기다려라.”
“그럴 순 없습니다.”
하여간 이 똥꼬집쟁이들.
명예를 지키려고 저러는 건 알겠는데 한시가 긴박한 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실패하면 어차피 다음은 너희야. 후작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목숨 걸고 놈이 외성구역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 이건 명령이고 항명은 거부한다. 알겠나?”
명령이란 단어까지 쓰자 기사도 더는 반발하지 못했다. 그저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꾹 참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건투를···빌겠습니다.”
기사들이 일제히 나에게 경례를 했다.
뭔가 그들에게는 감동적인 순간 같았는데, 나에게는 그냥 빨리 보내고 싶은 순간이다.
“알았으니까 빨리 움직여! 뛰어!”
기사와 병사들도 보냈다.
이제 동쪽 구역 바로 앞까지 왔다.
아까 전만 해도 작았던 먹구름은 그새 커져서 구역 전체를 옅은 안개처럼 뒤덮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달리던 시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저희는 악마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잠시 몸을 피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시온 말도 일리는 있다.
기본적으로 악마는 인간보다 강하다.
그렇다고 무적이냐?
그건 또 아니다.
그랬다면 <시온라이크>에서 시온이 처치해야 할 보스 목록 중에 악마가 없었을 테니까.
악마에도 급이 있다.
바알 같은 끝판왕 보스가 있는가 하면 별 볼 일 없는 중하급 쩌리도 있다.
물론 그런 중하급 놈도 웬만한 인간보다야 강하겠지만 적어도 공략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바알 같은 마왕급 악마는 이렇게 간단하게는 소환이 안 된다.
왕국 하나를 완전히 희생시켜도 될까 말까다.
흑마법사에게 듣기로는 이번 악마는 탐욕 혼자서 로잘린 방에서 소환했다고 하니 그리 급이 높지 않은 악마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일은 두려움을 버리는 일이다.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학습한 악마에 대한 공포심을 버리고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어차피 시온과 캠벨도 나를 따라다니면 언젠가 여러 악마를 사냥하게 될 터.
이번 기회를 양분 삼아 다음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는다.
“검을 들어라. 어차피 도망치기는 늦었으니. 저쪽에서 우리를 의식했다.”
콰아아앙!!
첨탑이 부서지고.
시커먼 형체가 땅으로 떨어진다.
워낙 높은 곳에서 낙하해서인지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먼지구름이 훅 올라왔다.
-크크크큭···신선한 인간의 냄새로구나.
모습을 드러낸 악마.
입가가 피로 번들번들하다.
마치 치킨 닭다리라도 되는 듯 인간의 팔 한 짝을 손에 쥐고 있다.
살집이 통통하게 붙은 저 팔이 누구의 것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로잘린다운 최후였다.
-너희는 앞서 먹은 년보단 맛있어 보이는구나.
파아아아!!!
악마의 중심으로 원형의 마기가 퍼졌고, 이에 직격당한 시온과 캠벨이 몸을 비틀댄다.
내 앞에도 시스템창이 떠오른다.
[소량의 마기가 몸속에 침투합니다.] [공포 효과가 발생합니다.] [스텟이 감소합니다.]이래서 인간이 악마에게 저항하기가 힘들었구나.
안 그래도 육체적으로 후달리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디버프까지 잔뜩 먹고 싸우는데 상대가 될 리가.
그러나 나는 예외다.
따뜻한 자연의 기운이 솟아올라 온몸을 감싸며 마기를 정화했다.
[자정 작용이 발동합니다.] [파마의 힘이 작용합니다.] [상태이상에 면역입니다.] [마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다시금 몸이 가벼워졌다.
또렷한 눈으로 놈을 노려보자 악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으음?
그런 녀석에게 칼을 겨누어주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멍멍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