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3)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63화(63/200)
9장 유물 : 계약한 망나니
납치되었던 노인의 정체를 알아낸 나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시라고요?”
“맞네. 내가 리앙의 시장, 유론일세.”
“하지만 지금 시장은 계시는데?”
“내 행세를 하는 가짜네.”
왠지 그 가짜가 누군지 알 것 같다.
저번 영지전에서도 그렇고 악마 소환 때도 그렇고 힐튼 가의 책사로 위장하고 뒤로 온갖 추잡한 짓을 다 꾸민 황혼의 대간부가 있었잖는가.
의문의 젊은 사내 파헬이 전해준 정보대로 탐욕은 리앙에서 꽤 높은 권력자로 행세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꽤 높은 게 아니라 제일 높았지만 말이다.
이어서 유론은 자신이 당한 짓을 상세히 고했고, 나는 이를 빠르게 정리했다.
“한마디로 정체불명의 세력이 시장님에게 노예시장을 열어달라 제안했고, 이를 거절했더니 험한 짓을 벌였다는 말이군요.”
“그렇네.”
시장의 사정은 잘 알았다.
그러자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리앙을 노예거래의 메카로 삼았다는 계획은 알겠는데, 그러면 그 많은 노예들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분명 대광장에 노예를 끌고 다니던 사람이 종종 보이긴 했어도 지금 말만 들어도 한두 명 거래되는 게 아닌데 노예시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나?”
답을 알고 있는 하만에게 묻자 녀석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뻗댄다.
솔직히 말해서 팔딱 뛰는 날생선 같은 하만의 반응이 반가웠다.
입을 닫은 자와 진득한 대화를 나누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최대한 천천히 말하도록. 밤은 기니까 천천히 즐겨보자고.”
고문이 시작되었고.
하만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한 시간 뒤.
집무실 바닥은 엉망이 되었다.
하만이 쏟은 피땀과 배설물.
끔찍한 장면을 본 유론의 구토물.
고문이 지루했는지 깜빡 졸던 캠벨이 흘린 침까지.
각종 오물로 범벅되었다.
“후욱, 말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주십시오.”
“아냐. 더 버텨도 돼. 아까부터 태연하길래 하루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백기를 들면 재미없잖아? 조금만 더하자.”
“아닙니다! 모두 실토할 테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입에 모터라도 달린 것마냥 자기가 아는 사실을 횡설수설 모조리 토해낸다.
“그러니까···해저동굴?”
“맞습니다. 공급받은 노예들을 모두 해저동굴 안에 가두어 보관 중입니다.”
“그러면 노예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곳까지 가? 잠수 관련 스킬이라도 있나?”
“리앙의 남쪽 지역에는 초생달 모양의 만이 있는데 이곳은 조수차가 심합니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썰물이 끝까지 빠져서 안에 해저동굴이 보이지요.”
“보름달에만 입장할 수 있는 동굴이라. 그때만 출입구가 열리니 안에 갇힌 자들을 감시하기도 쉽겠어.”
“맞습니다.”
이밖에도 하만은 노예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증표가 필요하고 노예뿐만 아니라 각종 희귀한 물품을 파는 암시장의 성격이 더 짙다고 덧붙였다.
“좋아. 어떤 느낌인지는 알았어. 그러면 유론 시장님 행세를 하고 있는 탐욕에 대해서 설명해봐.”
빠르든 늦든 간에 조만간 탐욕과는 부딪쳐야 하니 이참에 약점이라도 알아서 공략법을 만들고자 했다.
“사도께서는···아니 탐욕은 저주와 소환의 대가입니다. 특히나 그의 환술은 신의 경지에 달해있는데, 그와 눈을 마주치면 원하든 원치 않든···커허어억!!”
갑자기 하만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처음에는 엄살을 부리나 싶었는데 허공을 바라보며 얼굴을 쥐어뜯는 폼이 너무나 리얼했다.
“도대체 무슨 일···”
“모두 떨어져라!”
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와 캠벨이 하만으로부터 거리를 벌렸고, 시온도 유론을 옆구리에 끼고 뒤로 뛰었다.
그와 동시에 하만의 몸뚱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잔인하게 터졌다.
퍼어어엉!!!
오장육부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끔찍한 광경.
이런 끔찍한 저주를 다른 사람에게 걸 수 있는 탐욕의 정신상태가 심히 궁금했다.
바닥에 쏟아져 있는 하만의 잔해를 발로 훑은 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낙인의 저주다. 주인에게 해가 되는 정보를 타인에게 뱉는 순간 트리거가 활성화되어 몸을 터트리는 종류지.”
시온과 캠벨은 순진무구하게만 보였던 소년 톰이 갑자기 웬만한 현자처럼 이야기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나는 톰이 외모만 저렇지 안에는 20년 넘게 묵은 경력자임을 알기에 침착하게 물었다.
“톰, 그러면 저주 때문에 하만이 죽었는데 탐욕이 이쪽에 이상이 생겼는지 알 수는 없는 겁니까?”
“정확히는 몰라도 이상함은 감지했을 거다. 당장 연락용 수정구가 울리잖나?”
과연 연락용 수정구에 빛이 번쩍이고 있다. 캠벨이 소매를 걷으며 수정구 쪽으로 향했다.
“제길! 저걸 부숴버려야겠어.”
“가만둬라.”
톰의 진지한 목소리는 소년처럼 여리여리했으나 알게 모르게 거역하기 어려운 기이한 힘이 담겨있었다.
캠벨을 만류한 톰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마치 피부에 바르는 보습 크림 같았다.
크림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톰이 마지막으로 죽은 하만의 머리카락 하나를 꿀꺽 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톰의 얼굴이 하만과 똑같아졌다!
“으헉!”
너무 놀란 캠벨이 말을 더듬었고 평상시에 침착한 리액션으로 소문난 시온도 조금은 눈이 커졌다.
하만의 얼굴을 한 톰이 수정 구슬을 가까이 대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구슬이 켜지면서 중절모를 쓴 신사가 건너편에 모습을 보였다.
처음 본 얼굴인데도 본능적으로 녀석이 탐욕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톰은 수정구에 얼굴을 바짝 붙여서 건너편에서 이쪽이 보이지 않는 센스를 발휘했다.
“하만입니다.”
이럴 수가.
목소리까지 하만과 똑같다.
저 크림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효과는 정말 죽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나?
“암시장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무 이상 없습니다. 보름달 뜬 날에 정상적으로 개장할 예정입니다.”
화제 돌리는 것까지 능수능란하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하만으로 분장한 톰이 너무 태연자약하자 탐욕도 헷갈렸는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알았다.
“편히 쉬십시오.”
-잠깐.
서둘러 통화를 끊으려는 톰을 탐욕이 붙잡는다.
“하명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번 경매에 나온다는 하이엘프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이름이 뭐지?
하이엘프라니, 금시초문이다.
당연히 톰으로서도 처음 들어보는 말일 터.
위기의 상황에도 톰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
“사도님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사샤입니다.”
-…그렇군. 거래가 끝나고 시장실 지하로 남은 노예들을 모두 이송하도록.
“알겠습니다.”
뚝
교신이 끊겼다.
그동안 숨까지 참던 일행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톰, 보통 소년이 아니었군요.”
시온과 캠벨이 톰을 보며 각각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톰의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만 향해있었다.
“헤논, 넌 대충 내가 누군지 아는 것 같던데. 맞나?”
“그렇습니다.”
“흠···아마 그 검이 알려줬겠지?”
천마검의 정체까지 알고 있다.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다.
톰은 내게 손을 까딱였다.
“단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오게.”
톰과의 독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시온과 캠벨에게 시체청소와 시장의 인도를 비롯한 각종 뒷처리를 맡긴 뒤, 나는 톰과 함께 빈 방에 들어갔다.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 얼굴을 내민 톰이 뒷짐을 진 채 침묵을 유지했다.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신기한 크림이군요. 어떤 원리로 얼굴이 바뀌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리앙에는 왜 왔나?”
상당히 단도직입적이시군.
그렇다면 나도 돌직구로 가기로 했다.
“탐욕의 추적. 그리고 황금가지 발견.”
내가 드루이드라는 사실은 대외비였지만 왠지 톰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직감이 속삭였다.
“탐욕의 추적은 얼마 전 로이드 영지에서 출몰한 악마와 관계가 있겠군. 그리고 황금가지라 하면···자네는 드루이드인가?”
역시 황금가지와 드루이드의 연관성을 알고 있다.
“맞습니다. 그런데 너무 제 얘기만 하는 것 같군요.”
“신경 쓰인다면 하나씩 질문해서 대답하는 거로 하지. 방금은 내가 질문했으니 이번엔 자네가 질문하게나.”
“아까 전 사용하셨던 크림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어렵지 않은 질문이군. 고대의 유물이다.”
고대의 유물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당장 나만 해도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아공간 호리병이 고대의 유물 아니던가.
“고대의 유물이란 무엇입니까?”
“질문 하나 끝났고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네. 자네가 정말로 악마를 살해한 게 맞는가?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냐는 말일세.”
“소문은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단탈레온을 처리했죠. 아까 질문 다시 하겠습니다. 고대의 유물은 무엇이죠?”
“지금으로부터 수만년 전 존재했던 아슬란 제국. 그때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귀물이라 보면 되겠네.”
신기하다.
내 시스템 창이 고대의 유물에 유독 반응하는 이유도 아슬란이란 나라의 기술과 관계가 있을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아까 탐욕과의 대화에서 하이엘프의 이름은 어찌 아신 겁니까?”
“하는 질문마다 어째 영양가가 없군. 내가 질문할 차례긴 한데 별것 없는 질문이니 대답해주겠네. 자네가 하만을 고문하고 있을 때 나는 방을 수색하고 있었네. 그리고 노예장부를 발견했지. 사샤라는 이름은 거기서 알았네.”
“그랬군요.”
“마찬가지로 탐욕은 하이엘프의 이름을 알고 있었네. 단지 낙인의 저주가 풀렸기에 나를 의심해서 확인해봤겠지. 그래서 탐욕에게 아는 질문이지만 대답하겠다는 분위기를 풍겼던 걸세.”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톰이란 사람이 껍데기만 소년일 뿐 현자에 가까운 통찰력을 지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드루이드란 사실에 상당히 흥미를 보였으면 드루이드에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주로 물었다.
그래서 나는 땅에서 나무줄기를 솟게하는 바인드와 땅에서 돌창이 솟는 스톤랜스를 시범으로 보여줬다.
한편, 내가 예상한 대로 톰은 세븐 스타 중의 하나였다.
20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소년의 외형으로 최후의 전투에 참여했다고 했다.
한동안 옛 전우인 고든과 카리나에 대해서 묻던 톰은 즐거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색하고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고 싶군.”
“어떤 제안이신지.”
“황금가지. 그걸 자네에게 주겠네.”
입이 떡 벌어졌다.
첫 번째 황금가지만 하더라도 크레바스에 빠진 다음에 온갖 고생을 해서 겨우 얻어냈다.
그런데 두 번째 황금가지는 그냥 톰이 가지고 있다니 얼떨떨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고대제국 아슬란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자라네. 전대륙을 다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 우연찮게 황금가지를 얻을 기회도 있었지.”
그랬구나.
황금가지를 얻을 기대에 가슴이 부풀었다. 이런 내 심리를 눈치챈 톰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하지만 황금가지는 현재 내 수중에 없어. 따로 꺼내와야 해.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자네에게 줄 생각이 없네.”
“어째서입니까?”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게. 그러면 황금가지를 주겠네.”
역시나 쉽게 줄 리가 없지.
부탁이 무엇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자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는 부탁은 아니네.”
“어떤 부탁인지 궁금하군요.”
“탐욕을 척살하는데 힘을 보태주게.”
놀랍게도 톰의 목표 또한 탐욕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제 목표는 탐욕을 잡는 게 아니라 단서를 찾는 것까지였습니다. 로이드 후작께서 맡기신 제 임무는 여기서 끝났다고 볼 수 있죠.”
“알고 있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탐욕을 처단해야 하네. 그런데 상황을 살펴보니 나 혼자 해결할 사이즈가 아니야. 기왕 동행한 김에 자네가 마무리까지 도와줬으면 하네.”
톰의 판단은 정확했다.
지금 당장은 하만이 죽었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며칠만 지나도 이상한 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터.
그렇게 되면 의심 많은 탐욕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지원세력을 불러올 시간조차 없으니 당장 여기 있는 인원만으로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했다.
“좋습니다. 탐욕의 척결은 저도 원하는 일이니까요.”
“좋네. 그러면 내 계획을 말해보겠···”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냥은 못 도와주지.
톰에게 조건을 걸었다.
“말해보게.”
“황금가지를 미리 주십시오.”
선금을 받겠다고 하니 톰의 눈빛이 가늘어진다.
“황금가지만 받고 입을 씻진 않을 겁니다. 제 가문을 걸고 맹세하지요. 무엇보다 저는 황금가지를 획득할 때마다 강해집니다. 드루이드의 특성 때문이지요. 탐욕을 상대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싶을 뿐입니다.”
내 주장은 그럴듯했다.
어느 정도 납득하는 톰.
“좋네. 미리 황금가지를 주지. 여기에 더해서 만약 탐욕을 잡는데 성공하면 자네에게 제법 쓸만한 유물을 선물하겠네.”
“고맙습니다.”
“아니야. 오랜만에 고든 형님의 아들을 봐서 나도 즐거웠어.”
나는 톰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계약 성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