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4)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64화(64/200)
9장 유물 : 버티는 망나니
조합장 하만을 처리한 다음날.
나와 캠벨, 그리고 시온과 톰은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고 건물을 이틀간 봉쇄했다.
시간이 끌리면 위험하겠지만 어차피 오늘이 보름날이고 속전속결로 움직이면 이틀이 지날 때쯤엔 모든 상황이 끝나있을 것이다.
건물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있던 나는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문 열려있습니다.”
들어온 사람은 톰이었다.
아침에 잠시 외출한 톰.
어딜 갔다 왔는지 그의 손에는 황금가지가 들려있었다.
눈부신 황금빛을 발하는 가지를 본 내 눈이 몽롱해졌고 심장이 미친듯이 두방망이쳤다.
뱀파이어가 본능적으로 인간의 피를 탐하듯 나 또한 드루이드로서 온몸이 강렬하게 황금가지를 원했다.
“눈에서 꿀 떨어지겠다.”
“추태를 보였군요.”
“아니다. 드루이드에게 세계수의 가지란 그런 존재지.’
민망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톰이 왜 탐욕을 노리는지 이유를 못 들었군요.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습니까?”
내 물음에 톰이 어깨를 으쓱했다.
“개인적인 원한은 아니고 내가 속해있는 조직 때문일세.”
“순례자 말입니까?”
“그래. 순례자들은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걸 즐기지만 그렇다고 연대감이 없는 건 아니거든.”
톰이 알려준 순례자의 임무는 고대 제국 아슬란의 흔적 추적과 아슬란에서 비롯된 유적과 유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거란다.
“그런데 30년 전인가? 마일로라는 소년이 순례자로 들어왔네. 오랜만에 받은 신참이라 우리 모두 들떴었어.”
“좋은 일이었겠군요.”
“아니. 그때부터 문제였지. 마일로는 정신 나간 놈이었어. 애초에 순례자 모임에 들어온 것도 노리던 유물이 있어서였네.”
“어떤 유물입니까?”
“피의 성배. 지성체의 영혼이 녹아든 피를 채워서 저주를 강화시키는 아슬란에서도 상당히 꺼렸던 고대유물일세.”
저주와 관련된 유물이라니.
왠지 마일로란 소년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마일로가 탐욕이었습니까?”
“맞네. 놈은 동료 순례자를 살해하고 성배를 갈취한 뒤에 도망쳤네. 그리고 10년 후에 대간부 탐욕이 되어 나타났지.”
“안타까운 사연이군요.”
“20년 전 최후의 대전투 때는 마왕 바알의 성세가 강해서 처치하지 못했지. 이후 마왕이 죽고 난 뒤에는 자취를 감춰서 잡지 못했고.”
그랬던 탐욕이 이번 로이드 영지 악마 소환으로 인해 꼬리가 잡혀서 톰이 직접 리앙으로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고맙네.”
“제 덕분에 마일로의 행방을 알아서 말입니까?”
“그렇지. 원래도 자네를 나쁘게 보지 않았네. 망나니다 뭐다 했을 때도 나에게는 최후의 전투 당시 등을 맡겼던 고든 형님의 아들이었으니까.”
“감사한 말씀이군요. 헌데 그런 마음이 있으셨으면 황금가지와 유물 몇 개 정도는 그냥 챙겨주셨으면 됐을 텐데요.”
“흐흐흐, 그건 안 될 말이지. 순례자는 계약과 약속에 엄격한 편일세. 공과 사를 확실히 구별해야지 마음이 편해.”
아무튼 황금가지를 얻게 되었으니 불만은 없다.
드래곤 레어에서 봤을 때처럼 따스한 금빛을 풍기는 가지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이와 동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익숙한 시스템창.
[황금가지를 발견하셨습니다.]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세계수의 시험을 치르시겠습니까?] [Y/N]저번에 봤을 때와 같은 메시지다.
바로 예스를 선택했다.
파아앗!!
사방에 금빛과 녹빛이 뒤섞인 신록의 정광이 물결쳤고.
하늘을 뚫을 듯한 세계수의 커다란 환영이 떠오르며 따스하고도 포근한 아름다움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아아!”
오죽하면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경험을 했던 순례자 톰마저도 자연의 고고함 앞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을까.
눈물 맺힌 눈으로 황금빛 은하수를 바라보던 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빛이 점멸했다.
파앗!!!
그리고는 눈을 떴다.
헤논답지 않은 마른 몸.
창백하다시피 하얀 피부.
적어도 5년은 어려진 듯한 외모.
‘멀린의 기억이군.’
첫 번째 시험 당시에는 내가 빙의했던 이 유약한 소년의 이름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천 년 전에 등장했던 드루이드이자 반인반마인 천마를 상대로 봉인까지 성공시킨 전설적인 존재.
자신의 영혼을 매개체로 황금가지를 일곱 개로 나누어 전 대륙에 퍼트린 장본인.
드루이드 멀린의 기억 속에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래도 첫 번째 시험에서 만났던 멀린보다는 조금 성장했다.
트롤을 처치했을 때는 2차 성징조차 안 온 꼬꼬마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제법 키도 크고 턱도 살짝이지만 까슬했다.
대충 13~15살 정도일까.
‘별다른 징조는 없군.’
첫 번째 시험 때도 당장 뭔가를 하라고 임무를 내려주지는 않았다.
기억의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특정한 상황이 주어졌고 이를 타파하는 게 시험의 일환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유추했다.
‘우선 주변을 둘러보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목나무 향기가 그윽하니 방안을 채웠고 작은 양초가 옅은 불길로 주위를 은은하게 밝혔다.
한눈에 멀린의 방이라는 걸 깨달았다.
숲 한복판에 떨어졌던 저번과는 달리 시작이 안정적이다.
새삼스럽게 저번 시험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친구라는 가면을 쓴 소악마들이 멀린을 트롤의 서식지에 밀었고 그가 드루이드가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렇게 살인미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온 어른들은 오히려 멀린을 괴롭힌 애들을 감싸고 트롤 서식지에 떨어졌던 멀린의 부주의를 탓했었다.
‘문제가 많은 마을이었지.’
아마도 이번 기억도 마을 사람들과 관계되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하던 차에, 방문 바깥으로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며 여인의 미성이 들렸다.
“멀린, 들어가도 되겠니?”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미녀였다.
엘프족은 본래 외모가 우수하다지만 눈앞의 여인은 그중에서도 미모가 수위권일 게 분명했다.
아마도 멀린의 어머니로 보였다.
“네, 어머니.”
멀린이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따돌림을 당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인간과 정을 통했기 때문이다.
반은 인간의 피, 반은 엘프의 피.
하프엘프였기에 드루이드가 되었지만 마찬가지로 하프엘프였기에 온 마을 사람들이 그를 혐오한다.
제삼자인 내가 보기엔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있다.
“멀린, 사랑한단다.”
“저도요.”
어머니와 아들이 따뜻한 포옹을 한다.
현재 이 공간은 멀린의 오래된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가상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린에게 빙의된 나는 어머니와 포옹할 때 그가 느끼는 안정감과 행복감이 어느 정도는 공유되었다.
포옹을 한 지 3초나 되었을까.
드디어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다.
바깥에서 누군가 쿵쿵대며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걸쭉한 아저씨들의 고함.
멀린을 안고 있던 어머니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손끝을 가늘게 떤다.
“멀린, 잠시만 기다리렴.”
어머니가 나서서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 찾아온 아저씨들과 말다툼이 시작됐다.
방문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 중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렴한 욕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윽고 뺨 때리는 소리와 어머니의 비명, 가구가 부서지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 사내들이 내는 외설적인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오른다.
[두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1차 클리어 조건을 공개합니다.] [침입자를 제거하세요.]1차 클리어 조건?
저번 시험에서는 클리어 조건이라고만 떴는데 이번엔 ‘1차’라는 글자가 붙었다.
이 말인즉슨 이번 시험은 여러 개의 상황을 클리어해야 한단 의미인가.
어쨌든 당장 눈앞에 닥친 시련부터 해결해야 한다.
방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바깥에 펼쳐진 광경은 가관이었다.
집 전체가 폭풍이라도 들이친 듯 엉망이 되어있었고 한가운데에는 어머니가 머리카락이 봉두난발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얼굴이 불콰하게 취한 아저씨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니, 굳이 묻지 않아도 매우 역겨운 상황이었다.
“뭐야? 잡종 새끼 아니야?”
“처맞기 싫으면 들어가 있어라.”
“아니야. 차라리 저놈 먼저 손보는 것도 괜찮겠어.”
엘프 하나가 손가락에 우두둑 소리를 내며 내게 접근했다.
헤논이었으면 주먹 한 방에 보내겠지만 유약한 멀린의 몸으로는 저런 건장한 아저씨를 감당하기 힘들다.
따라서 저번 시험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드루이드 능력만으로 양아치 놈들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동안의 수련으로 드루이드 능력도 많이 길러뒀지.’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바인드를 시전합니다.]이제 나무뿌리로 속박하는 정도는 우습다. 게다가 상대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기에 저항도 제대로 못하고 묶여서 허둥댔다.
“어? 이거 안 놔!”
“놓으란 말이다!”
[스톤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스톤 랜스를 시전합니다.]촤악! 촥!
땅바닥에서 솟아오른 돌창이 취객들의 심장을 단숨에 뚫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어머니를 막대하던 놈들은 바닥에 피를 뿌리며 침묵했다.
무겁게 깔린 분위기.
시체들을 본 어머니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멀린의 손을 덥석 잡는다.
“도망가자. 마을에서 빠져나가야 해. 여기서 잡히면 우리 둘 다 죽은 목숨이란다.”
어머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스템창이 떴다.
[2차 클리어 조건을 공개합니다.] [1시간 동안 추적을 따돌리세요.] [제한시간 1:00:00, 0:59:59···58···57]이번에는 적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도주하라는 임무인가. 일단은 어머니와 함께 수풀을 헤치며 달렸다.
“헉! 허억! 헉!”
어머니도 그렇고 멀린도 그렇고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시작한지 5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저 뒤로 횃불의 향연이 펼쳐졌다.
“결국 그놈이 사고를 쳤군.”
“당장 찾아내!”
“잡아라!”
횃불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멀린과 어머니는 아녀자와 소년이고 저쪽은 전사들인데 속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사들은 이 근방을 매일 순찰하던 베테랑일 터.
이대로 평범하게 도망만 친다면 1시간은커녕 15분도 안 돼서 미션 실패다.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해.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에 저들로부터 거리를 벌릴 수 있는 기술이 없을까?’
하나가 있다.
윈드 컨트롤 순보.
바람을 박차고 하늘을 나는 기술이라면 저들을 따돌리고 도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순보는 혼자서 쓰는 기술이지, 지금은 옆에 어머니가 같이 있다.
시스템창에서는 따돌리라고만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머니를 버리고 멀린 혼자만 살아나가는 게 성공일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
무슨 수라도 내야 했다.
그때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내 의식을 벼락같이 스쳤다.
‘순보의 효과를 줄이는 대신 둘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현재 내가 얻은 순보는 지나치게 좋은 스킬이다.
성급하게 스킬 효과를 100% 살려가며 다수에게 적용할 생각부터 하지 말고, 우선은 효과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스킬을 너프해서 적용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한 번 해보자. 어차피 뒤는 없어.’
눈을 감고 집중했다.
여느 때보다도 육감을 곤두세워서 바람을 느끼려 노력했다.
“멀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단다.”
잔뜩 긴장한 어머니의 재촉마저도 의식의 바깥으로 튕겨져나갔다.
바람. 바람. 그리고 또 바람.
공기의 흐름을 그윽이 만끽한다.
좀 더 깊이, 미시적 세계를 탐험한다.
바람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이마에 새겨진 주름처럼.
계곡을 흐르는 물길처럼.
잘린 나무의 나이테처럼.
뇌리를 간질이던 감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해지며 나를 향해 천천히 흘러들어왔다. 어느새 내 몸은 작게나마 두둥실 떠있었다.
“머, 멀린!”
놀란 어머니의 소리가 들린다.
순보와는 다르다.
공기를 거칠게 박차기보다는 부드럽게 포용하며 풍선처럼 두둥실 떠있다.
고작해야 땅에서 10cm 떨어진 수준이지만 순보와는 결정적인 큰 차이가 있다.
동행하던 어머니도 나와 같이 10cm가 떠있으니 말이다.
[윈드 컨트롤 발동.] [헤이스트를 시전합니다.]헤이스트.
마음에 쏙 드는 기술명이다.
그렇게 멀린과 어머니는 발목을 감싸는 바람의 힘을 받아 훨씬 빠르게 달렸다.
다가오던 횃불이 점점 멀어졌다.
“멀린, 너는 대체···”
어머니의 놀란 소리.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헤이스트를 썼다지만 기본 속력 자체가 워낙 차이가 난다.
엘프 전사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다.
[제한시간 15:00···14:59···14:58···]무려 45분을 지났으니 많이 버텼다.
추격대 쪽도 바짝 약이 올랐겠지.
그래도 15분이나 남았다.
포위망은 좁혀질 대로 좁혀진 상태.
“잡히기만 해봐!”
“몸 성할 생각은 버려라!”
“망할 발목부터 끊어놓자고.”
어떻게 해야 할까.
포위망을 뚫을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상대의 동선을 체크할 수만 있다면 빈 공간을 쥐구멍 삼아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야밤의 깊은 숲에서 상대가 어디서 오는 줄 안단 말인가.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순간,
시야가 회까닥 돌았다.
이어서 떠오르는 상태창.
[라이브 컨트롤 발동] [시야 공유를 시전합니다.] [공유체 — 보통 활엽수]정신을 차린 내 눈앞에는 뜨거운 기운이 일렁였다. 바로 엘프 추격대가 들고 있는 횃불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이건? 설마?’
믿기지 않지만 안 믿을 수도 없다.
나는 지금 엘프 추격대 근처에 있는 나무에 빙의해서 그 나무의 시야를 훔친 것이다.
당연히 상대는 내가 그쪽을 훤히 관찰하는 줄 모른다.
이렇게 신기한 스킬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희망이 생겼다.
상대의 움직임이 모조리 파악된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했기에.
‘15분 버티기.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