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7)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77화(77/200)
10장 부화 : 도맡은 망나니
드래곤 에그 부화도는 현재 50%로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중급 악마 단탈레온을 흡수하고 30%가 올랐고 보름달 시장에서 얻은 하급 악마의 심장으로 20%가 올랐으니 탐욕이 심혈을 다해 키운 저주 괴물을 흡수한다면 거뜬히 100%를 넘길 듯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내려가겠습니다.”
순례자 톰과 경비대장 에이든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드래곤이 탄생하는 순간만큼은 혼자 지켜보고 싶었다.
“위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우리를 호출하게.”
“알겠습니다.”
시청사 지하로 내려왔다.
유론 시장의 말대로 저번에 봤던 난장판은 전부 치워졌고 드넓었던 공동도 흙더미로 메워져서 열 평 남짓한 공간만 남았다.
가운데 덜렁 놓여있는 관에서는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음산한 귀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온다.
다만 평범한 사람에게나 음산하지, 고소한 냄새를 맡은 드래곤 에그는 벌써부터 아공간 속에서 난리법석을 피워댔다.
“알았다! 알았어.”
아공간 호리병을 개방하자 즉시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 에그가 바닥을 통통 튀어서 관뚜껑을 스스로 열었다.
그리고는 싸늘하게 잠들어 있는 저주 괴물 옆구리에 자리를 딱 잡더니 진공청소기를 최대로 틀어놓은 듯 귀기를 격렬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저주 괴물의 기운은 흡수할수록 더 많아졌지만 드래곤 에그 또한 타고난 먹성을 미친 듯이 뽐내며 먹는 속도를 유지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주 괴물의 시체가 증발했다. 모든 기운이 드래곤 에그에게 먹힌 것이다. 동시에 눈앞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드래곤 에그 부화도 — 100%] [부화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헤츨링이 탄생합니다!]쩌적—! 쩌저적—!
알껍질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눈에 보일랑말랑 한 실금은 거미줄처럼 그 영역을 넓혀가더니 이내 굵어지고 선명해진다.
마침내 껍데기 윗부분이 전자레인지에 넣은 팝콘처럼 팍 튀어 올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껍질이 사방으로 튀었고.
눈부신 빛이 퍼졌다.
번쩍이는 하얀 뇌광이었다.
콰르르릉!!!
때아닌 벼락과 함께 지하 공동이 뒤흔들렸다. 깜짝 놀란 톰과 에이든이 위쪽에서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제지했다.
“전 괜찮습니다! 나중에 올라가지요.”
“정말 괜찮나?”
“그렇습니다!”
오케이 싸인을 듣고 나서야 둘은 다시 올라갔다.
그때쯤엔 제멋대로 뛰놀던 뇌전이 점차 질서를 갖추더니 흐르는 물결처럼 지하 공동을 부드럽게 감싸며 회전했다.
황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라 넋을 놓고 구경했다.
한동안 작열하던 하얀빛은 부름이라도 받은 듯 이내 드래곤 에그 중심부로 소용돌이치며 몰려들었다.
스팟!
마지막 빛 한 조각까지 스며들며.
헤츨링이 부화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의 외형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흑요석을 박아넣은 듯한 피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얀 치아. 힘차게 퍼덕거리는 날개. 반짝이는 눈동자.
아이가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달려든다.
“뀨!!”
내 턱에 머리를 비비는 검은 헤츨링에게서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진다.
영면에 든 드래곤 카일의 말에 따르면 헤츨링은 옛적에 깨어났는데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알 속에 있다고 했었다.
한마디로 요 녀석은 안쪽에서 모든 순간을 나와 함께했다는 뜻.
그동안 아이를 깨우기 위해서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는지, 날 대하는 태도가 살갑기 그지없었다.
“알았다! 알았어.”
“뀨뀨!”
갓 태어나서인지 헤츨링은 아직 강아지 크기였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 집채만하게 성장하겠지. 그때가 되면 타고 다니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코코다.”
피부도 검정색인 데다가 아까 나에게 안겼을 때 달콤한 초콜릿 내음이 풍겨서 초코와 비슷한 발음이 나는 코코로 지었다.
“뀨뀨!”
코코는 내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얀 이를 보이며 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어깨에 코코를 얹은 채로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굉음이 터져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톰과 에이든은 내가 모습을 보이자 냉큼 달려왔다.
그리고는 어깨에 앉은 낯선 생명체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로이드 자작님? 아래에 다녀오시더니 못 보던 친구를 데려오셨군요.”
아직 새끼라서 드래곤이라기보다는 시커먼 도마뱀 같았다. 그러나 순례자 출신 톰은 단번에 코코가 드래곤임을 눈치챘다.
“너 설마···”
손가락을 입에 대서 톰의 입을 단속했다.
“허허, 보면 볼수록 놀랍구나.”
감탄을 터트리는 톰을 데리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내가 갔다 올 동안에도 캠벨은 끊임없이 음식을 먹었는지 식탁 위에 쌓인 그릇 높이가 더욱 높아져 있었다.
다행히도 금화를 두둑히 받은 데다가 리앙 시장이 귀빈이라고 인증해줘서인지 주인 아주머니는 아예 가게 문을 닫아걸고 제대로 솜씨를 발휘하셨다.
맞은편에서 포크로 닭고기롤 깨작대고 있던 시온이 내가 오자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도련님, 오셨군요!”
시온의 눈동자가 저절로 내 어깨에 앉아있는 코코에게 향했다.
“도련님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뀨우!”
걷는 내내 내 주변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코코가 이례적으로 펄쩍 뛰어서 시온에게 붙었다.
그러고 보니까 시온은 드래곤 에그를 햇볕에 꺼내놨을 때 가끔씩 와서 손수건으로 문질러주고 세심하게 돌봐줬었다.
당시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코코가 시온에게는 호감을 품었나 보다.
“···귀엽군요.”
암살자답게 격한 반응은 없었으나 새빨개진 얼굴이 속으로는 얼마나 코코를 귀여워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평범한 귀족 영애였으면 진작에 코코를 껴안고 방방 뛰고 난리가 났으리라.
“어? 그 도마뱀은 뭐시여?”
드디어 식사를 마쳤는지 캠벨이 통통한 배를 두드리며 다가왔다.
전에 말했다시피 코코는 알 속에 있었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인 즉슨 캠벨이 드래곤 에그를 계란 후라이로 튀겨먹으려던 행동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뜻.
역시나 코코는 캠벨에게 명백한 적의를 드러냈다. 갑자기 달려든 녀석이 캠벨의 손가락을 콕 문다.
“오! 힘이 넘치는 도마뱀이군! 고아 먹으면 맛있겠어.”
문제라면 갓 태어난 헤츨링의 연약한 이빨에게 캠벨의 두꺼운 손가락은 너무 버거웠달까.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을 간식 취급하는 캠벨에게 열이 받았는지 코코의 온몸에서 파지직거리는 전류가 터져 나왔다.
“어엇!”
물리공격에는 끄떡없던 무식한 캠벨도 전기 속성을 띠는 원소공격만큼은 따끔했는지 화들짝 놀랐다.
캠벨에게 한 방 먹인 코코가 다시 내 어깨로 올라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인다.
“전기도마뱀 쪽인가? 맛은 있으려나.”
캠벨은 여전히 꿀꺽할 생각에 입맛을 다셨고 코코는 재차 이를 드러내며 캠벨에게 전기를 튀기려 한다.
아무래도 저 둘이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헤논, 잠시 나 좀 볼 수 있겠나?”
그러던 차에 톰이 나를 따로 불렀다.
코코를 시온과 놀게 냅두고 객실로 올라가서 단둘이 자리를 잡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가져다 준 맥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토벌 작전 이후로 자네도 바쁘고 나도 바빠서 제대로 감사인사를 전할 기회를 못 잡았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유론 시장님과 함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민망하니 그만 띄워 주셔도 됩니다.”
“유론 시장이야 전투의 끝 부분만 봤잖는가? 반면에 나는 작전 전체를 함께 했기에 자네가 얼마나 대단히 활약했고 또 자네가 없었으면 결과가 얼마나 나빠졌을지도 확신하지.”
확실히 시청사 지하에서 톰은 내내 탐욕의 계략에 빠져서 허우적댔다.
야심차게 준비한 봉인전물 유물 아이언 메이든은 탐욕이 속임수로 배치한 대역에게 낭비해버렸고, 막상 본인은 촉수감옥에 갇힌 채 탐욕과의 전투에서 완전히 제외됐었다.
심지어 촉수감옥을 간신히 빠져나온 후에는 저주 괴물의 디버프와 강자멸시라는 사기급 고유 특성에 발이 묶여버렸으니, 운이 나빴다고는 해도 세븐스타라는 대륙 최고 명함을 가진 능력자치고 조금 애매했던 건 사실이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톰님이 주신 오러블렛이 아니었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었던 싸움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에게 그 오러불렛이란 걸 선물로 주고 싶네.”
가슴 속에서 6연발 리볼버를 꺼낸 톰이 총신 부분을 잡고 손잡이 부분을 앞쪽으로 해서 총을 건넸다.
“탐욕이 썼던 무기네. 살펴보니까 내가 가지고 있던 마공학 도구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더군. 여기에 순례자 모임에서 얻어온 여섯 발의 오러 불렛을 넣어놨다네.”
오러불렛이라니.
아직 소드마스터에 오르지 못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없는 나에겐 이보다 더 유용한 선물이 없었다.
게다가 오러 불렛은 어린아이도 조준만 잘하면 30년 차 고참 용병도 죽일 만한 즉사기인데 그런 무기를 6발이나 아무에게나 줄 리 없지.
그만큼 톰이 나를 강하게 신뢰한다는 뜻이며, 총알을 얻기 위해 그가 순례자 모임에서 어찌나 나를 칭찬했을지 눈에 선했다.
“감사합니다.”
“배반자 마일로를 잡아주고 그가 저지른 악행까지 다 처리해준 시점에 자네는 이미 순례자나 다름없지. 그에 합당한 호의를 보였을 뿐이네.”
이어서 톰은 손바닥 크기의 원형판 여섯 개를 내게 건넸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오러불렛으로 입을 딱 씻기가 부끄러워서 말이지. 이건 내 개인 소장품인데 특별히 주겠네.”
원형판의 겉모습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니 새겨진 룬문자라든지 은은하게 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자네 혹시 텔레포트라고 알고 있나?”
“순간이동 말씀이십니까?”
“맞네. 현재 아르니아 대륙 기술로 단거리는 몰라도 장거리 순간이동은 무리지. 하지만 아슬란 시대 기술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일세.”
“이 원형판으로 텔레포트가 가능하단 말이군요.”
“그렇지. 이동하고 싶은 지점에 설치하면 원형판끼리 연동해서 공간에 통로를 형성하지. 전문 용어로는 웜홀이라 하는데 그곳을 통해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네.”
유럽 중세 시대와 비슷한 아르니아 대륙에서 장거리 순간이동 능력은 욕을 먹어도 반박하기 어려운 사기 중의 사기 능력이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선물이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방패 위에 칼과 총이 X자로 교차하는 브로치를 주었는데, 아슬란 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이란다.
“대륙의 순례자라면 모두 이 브로치를 가지고 있네. 한마디로 우리 순례자 모임은 자네를 정식 순례자로 인정하는 셈이지. 그저 별 볼 일 없는 집시들끼리 놀자고 만든 장신구니까 부담 없이 받아두게나.”
“아닙니다.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겸손한 모습에 톰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망나니라고 들었는데 새삼 예의 바른 청년이었구먼.”
“로이드 후작님이 돈하고 밥하고 선물 주는 사람에겐 함부로 까부는 거 아니랬습니다.”
“크하핫! 제대로 된 교육자시군.”
“귀한 선물을 받기만 하니 참으로 송구하군요. 저와 같이 로이드 후작령으로 가시죠. 거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리앙에서 만난 이래로 항상 거침없던 톰이 처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아냐. 난 괜찮아.”
“제가 불편해서 그럽니다.”
“나도 불편해서 그래.”
“제가 불편하십니까?”
“고든 아저씨 말하는 거야.”
톰이 내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천마검을 힐끗대며 말했다.
“내가 저 검을 대륙제일검이라 사기치고 바가지 씌워서 팔았거든. 헤헤.”
즉시 의식 속에서 불같이 분노한 천마의 목소리가 울린다.
-저 껍데기만 젊은 늙은이가 뭐라는 게냐! 당연히 나는 대륙 제일 검이다!!
“아슬란 제국의 유믈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냥 여자만 밝히는 변태검이었어.”
이럴 수가.
나 말고 천마검의 비밀을 또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톰이 고든 아저씨에게 천마검을 팔았을 때부터 궁금하긴 했는데 여기서 동지를 발견하자 안 그래도 호감이었던 톰이 극호감으로 변했다.
-뭐? 변태검? 애송아, 당장 나를 뽑아 저 녀석을 베어버려라!
“처음에는 에고 소드라 해서 엄청 기대했지. 그런데 24시간 내내 여자 손에 쥐어달라는 뻘소리만 해서 검 좋아하는 고든 아저씨한테 적당히 처리했다.”
-그러면 부드러운 여인네 손을 좋아하지 굳은살 박힌 우둘투둘한 사내 손을 좋아하겠느냐!
“게다가 천마니 중원이니 무림이니 알 수 없는 소리만 온종일 늘어놓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너는 용케도 그 검을 가지고 다니는구나.”
“하하하···”
멋쩍은 웃음으로 어물쩍 넘겼다.
톰이 식견이 넓은 순례자라 해도 저 멀리 중원 대륙을 언급하는 천마는 미친 사람으로 비칠 만했다.
당장 나였어도 지구에서 얻은 무림 지식이 없었다면 진작에 천마검을 힌즈 호수 밑바닥에 빠트렸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헤논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선물 보따리를 받고 사소한 부탁 안 들어주는 건 염치가 없지요. 뭐든지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제 능력이 닿는 한에서 최대한 들어 드리겠습니다.”
“자네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부탁은 간단하네. 사샤를 책임져주게.”
하이엘프 사샤는 시청사 지하 전투가 끝난 후 그녀의 외모와 종족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순례자와 어울릴 듯하여 톰에게 잠깐 맡겼었다.
“나는 그녀를 제자 삼아서 새로운 순례자로 만들려 했었어. 마침 우리 쪽에 엘프 순례자도 있었고.”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봅니다.”
“문제라기보다는, 밥도 안 먹고 너한테 가겠다고 온종일 가만히 있는데 내가 어찌하겠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원래도 나에게 좋은 냄새가 난다며 꼭 붙어있긴 했는데 이 정도로 날 원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차피 탐욕과의 전투 관련해서 물어볼 것도 있었으니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사샤는 제가 맡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