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8화(8/200)
1장 빙의 : 똥싸는 망나니
‘망나니가 필립 공자를 정면대결로 꺾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이변이 일어났다.
필립이 바닥에 쓰러지고 난 이후로도 연무장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던 탓이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나도 꿈인 것 같은데···”
“망나니가 저렇게 강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자님을 이길 줄이야.”
모두가 혼란스러워 할 때.
장내를 정리한 건 역시나 로이드 후작이었다.
“필립이 맨바닥에 쓰러졌는데 멍하니 보고만 있을 텐가? 당장 침실로 옮겨라!”
“네, 넷!”
“영지는 언제나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평소대로 다름없이 훈련하고 근무한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주위를 단도리한 후작이 이번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너, 헤논. 넌 날 따라와라.”
“네, 후작님.”
절뚝거리는 후작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처음 방문하는 아버지의 업무 공간이었다.
후작의 집무실은 무척 검소했다.
선반에는 귀족들이 장식용으로 놓는 흔한 사치품 하나 없이 휑했다.
다만 벽면에는 다양한 종류의 철검이 걸려 있어서 후작이 검술에 관심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상석에 앉은 로이드 후작이 맞은편에 자리를 권했다.
세바스찬이 따뜻한 차를 가져와서 우리 앞에 각각 하나씩 놓아주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차를 호로록 한모금한 후작이 입을 뗐다.
“제대로 사고를 쳤더구나.”
“언젠가 닥칠 일이었습니다.”
“후계자가 되려고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여태까지의 네 망나니짓은 위장이었다는 말이냐? 그러기엔 조금 과한 연기가 아니었나 싶은데.”
“······”
손가락 끝으로 찻잔을 톡톡 치던 후작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많이 힘들어질 거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사서 고생하는구나.”
다시 오는 어색한 침묵.
부자 사이가 원래 이렇다.
하물며 얼마 전까지는 망나니로 불렸던 아들이었으니 말 다했지.
이쯤 해서 나는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저···후작님.”
“말하거라.”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더냐?”
“비밀창고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
후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문의 비고는 로이드 가문에서 수집한 온갖 귀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심지어 그의 오른팔이 세바스찬도 이곳만큼은 출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곳에 꼭 들어가야만 했다.
애초에 필립과 대련까지 하며 판을 키운 데는 비고에 들어갈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안 되겠습니까?”
“특별히 그곳에 들어가려는 이유가 있나?”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후작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장소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다.
비고에는 내가 애타게 원하는 아이템이 하나 있다.
그렇다고 본심을 꺼내서 후작의 의심을 사고 싶진 않으니 그저 호기심이라고 둘러댔다.
“전 오늘 필립 형님을 이김으로써 후계자 경쟁에 설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도와주십쇼!”
냉큼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후작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문가에 서 있던 세바스찬이 피식 웃는 소리는 들은 것 같았다.
“네가 비밀창고에 무슨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긴 뭐 거창한 게 있진 않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들어가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로이드 후작은 볼을 긁적거리며 고민했다.
아마 나를 비밀창고에 데리고 가는 행동이 후계자 경쟁에 관여하는 짓인지 판단하는 거겠지.
후작은 둘 사이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러나 세력을 달라는 것도 아니요, 영지를 달라는 것도 아니요, 금은보화를 달라는 것도 아닌데, 단지 창고 출입 정도면 부담스러운 부탁도 아니다.
역시나 로이드 후작은 선선히 승낙했다.
“좋아. 딱 하나. 비고에서 네가 원하는 걸 들고 가게 해주겠다.”
“혹시 두 개는 안 됩니까?”
“취소할까?”
“하나만 가져가겠습니다.”
괜히 흥정 좀 해보려다가 본전도 못 찾을 뻔했다.
* * *
비밀창고는 위치는 놀랍게도 로이드 후작의 개인 침실이었다.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상수리나무가 그려져 있었다.)를 옆으로 밀어내니 달칵! 소리와 함께 한쪽 벽면이 회전했고 그 너머에는 숨겨진 공간이 보였다.
“들어오거라.”
솔직히 뭐가 있을지 기대됐다.
콩닥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들어가 보니···
“와아!”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보석.
집무실에 걸린 철검과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질 좋은 보검.
그 밖에 다양한 무기와 방어구.
내 키보다 높게 쌓인 금화.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
별것 없다는 후작의 말과는 달리 여기가 바로 노다지였다.
후작은 검소한 게 아니었다.
검소한 척하는 구두쇠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마왕으로부터 대륙을 구한 세븐 스타 중 일인인데 이 정도 재산은 있어야지.’
갑자기 의욕상승 확 된다.
여태까지는 헤논의 생존과 더불어 게임 속 세상에서 나가고 싶어서 움직였다.
그런데 여기를 보니 그냥 후작령에 눌러앉는 것도 괜찮을지도?
헤논 로이드 후작.
얼마나 간지나는 이름인가!
“어서 하나 골라라.”
-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후작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나 여기 들어온 목적이 있었지.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나는 헤논 로이드도 아니고 헤논 트리스다.
로이드란 성조차도 못 받은 사생아.
양손을 뺨으로 탁 쳐서 이성을 되찾은 후 비밀창고를 둘러보았다.
원하던 물건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찾았을까?
창고 맨 구석에서 보자기에 꽁꽁 묶여있는 길쭉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다른 물건들은 번쩍거리며 광택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후줄근한 느낌이 가득해 보였다.
‘저거다!’
한눈에 내가 찾던 물건임을 직감했다.
홀린 듯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작님, 저 검은 무엇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군요.”
“나도 모른다.”
후작의 대답은 놀랍게도 모른다였다.
“옛 동료가 재밌는 검이라면서 나에게 맡기고 갔다. 아주 괴짜 같은 녀석이지.”
“검이면 그냥 검이지, 재밌는 검도 있습니까?”
“그놈 머릿속을 어찌 알겠나? 일단 보관해두는 중이다.”
낡은 보자기를 벗기니 투박한 롱소드 한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함 그 자체.
그러나 나는 이 검을 모를 수가 없었다.
시온라이크에서 주인공 시온이 휘두르던 바로 그 검이었으니까.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정말이냐?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내가 너라면 돈 되는 물건이라도 챙겨서 미래를 준비하겠다.”
“동질감이 들어서 말입니다.”
“무슨 의미냐?”
“화려함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낡은 보자기에 싸여있는 모습이 제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후작은 말이 없었다.
이내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그걸로 하거라.”
* * *
시온라이크의 도입부는 이렇다.
로이드 후작성 정원에서 사령체가 된 헤논이 난동을 부린다.
이를 막으려다가 로이드 후작과 집사 세바스찬이 전사한다.
시온은 다 무너져가는 후작성에서 우연히 비밀창고를 발견하고.
급한대로 낡은 검을 하나 꺼내서 헤논과 대적하게 된다.
헤논은 로이드 후작과 세바스찬의 일전으로 큰 부상을 당한 상태.
시온은 검의 도움을 받아 첫번째 보스를 무사히 토벌하게 된다.
이후로도 그녀는 계속 그 검을 들고 다니며 보스 레이드를 진행한다.
‘겉보기에는 이래도 사실 이 검이 에고소드란 말이지.’
에고소드란 영혼이 봉인된 검을 말한다.
비록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나, 고작 유저급 무인에 불과했던 시온이 강력한 사령체였던 헤논을 처치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에고소드의 조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에고소드가 현재 헤논의 손에 들려있었다.
“저기요? 들리시나요?”
통통.
두드렸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게임사에서 공개한 스토리에는 에고소드에 대한 정보는 적었다.
어쨌든 이 게임의 주인공은 시온이었고 그녀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가야 했으니 말이다.
몇 명의 매니악한 유저가 시온라이크 게시판에 에고소드의 정체에 대해 물었을 때, 운영진으로부터 이런 답변이 왔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 이스터에그로 남겨놓겠습니다^^’
그 이후로 검에 관한 얘기는 쏙 들어갔다.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신작이기도 했고 밸런스가 똥망이라 초반 스테이지에서 죄다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그저 게임 내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성별이 남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봐요!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어요.”
통통.
다시 두드렸는데도 응답이 없다.
조금 당황했다.
게임에서는 시온이 검을 잡자마자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주던데.
어째서 나는 무응답인 걸까?
그러고 보니 로이드 후작도 이 검이 에고소드라는 걸 모르는 눈치던데.
“안녕하세요, 저는 후작가의 개망나니 헤논이라고 합니다.”
자기소개도 하고.
“무엇을 썰고 싶으세요? 동물? 인간? 언데드? 몬스터?
잡담도 걸어보고.
“오오! 위대한 성검이여! 그 영광 길이길이 남으리~”
노래도 불러보고.
“야 이 멍청하고 띨빵한 검아! 생긴 것도 구려서 어디 써먹기나 하겠냐?”
욕설을 퍼부으며 도발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마침내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검은 에고소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착각하고 다른 검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 이래도 답이 없으면 후작성 인근에 있는 힌즈 호수에 갖다 버리자.
“좋아. 그냥 검이라 이거지?”
나는 검을 들고 문밖을 나섰다.
마침 복도를 걸어오던 시온과 마주쳤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그 검은 무엇입니까?”
“알 것 없다. 그보다 내성에 너희 고용인들이 쓰는 변소가 따로 있는가?”
“그렇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해라. 오늘은 그곳에서 볼일을 보고 싶구나.”
내 말을 들은 시온이 난색을 표했다.
“도련님, 그곳은 상당히 더러운 곳입니다. 관리도 안 하고 대충 막 쓰는 공간이라 벌레도 많이 나오지요.”
“괜찮으니까 안내해.”
시온은 ‘저 망나니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라는 표정을 지으며 하인들이 쓰는 변소로 날 안내했다.
“여긴가?”
“그렇습니다.”
과연 질색할만했다.
멀리서부터 풍기는 똥내에 시온이 얼굴을 찌푸렸다.
상하수도도 없는 시대다.
당연히 이런 공중변소는 푸세식일 수밖에.
“사실 저희 하녀들도 요강을 쓰지 이곳은 거의 안 옵니다. 비위 좋은 하인들만 가끔 와서 싸지르고 가지요.”
“그런가. 더 잘됐어.”
“네?”
“이만 가 봐.”
“그래도···”
“왜, 내가 똥 싸는 모습 보고 싶어? 문 열고 쌀 테니 잘 봐.”
머뭇거리던 시온이 내 말을 듣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변소로 들어가자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수준의 악취가 반겼다.
후각은 인간의 오감 중 가장 빨리 적응하는 감각이라던데.
여기 와서 냄새 맡아보니 다 헛소리다.
그뿐이랴.
바퀴벌레, 지네, 똥파리, 모기 등 온갖 벌레들의 핫플레이스가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변소 위는 약과다.
진짜 지옥은 변소 구멍 아래.
시커먼 구멍 밑에 쌓여있는 저 똥이 얼마나 잘 발효됐는지는 위에서도 충분히 보였다.
드디어 왔다.
나는 변소 구멍 근처에 엉덩이를 대지 않고 쭈그려 앉았다.
아직도 검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늘은 왠지 볼일을 보다가 실수로 변소 구멍에 검을 떨어트릴 것 같은 날이군!”
그리고는 변소 구멍에 슬쩍 검을 갖다 댔다.
어쭈.
이래도 가만히 있어?
“나 진짜 떨굴 거야. 진심이야.”
여전히 침묵.
어쩔 수 없지.
“5, 4, 3, 2, 1···잘 가라.”
그렇게 검을 손에서 놓으려는 찰나,
머릿속에 벼락처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야, 이 씨빰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