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2)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82화(82/200)
11장 엘프 : 납검한 망나니
어느 세계에서나 전시상황에서 명령 불복종은 즉결처분감이다.
사령관은 재판 없이 군법으로 휘하 군인을 처벌할 수 있는 재량권이 생긴다.
다만 이를 시행하려면 사령관이 부대 전체를 통솔할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나를 연합군 사령관으로 인정할 생각이 추호도 없던 피엔토 자작은 예상대로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말도 안 되는군! 지금 나보고 직접 조카의 목을 베라는 소리인가?”
“죄는 밝혀졌는데 이를 묵과한다면 부대 전체의 군기가 해이해진다. 피엔토 자작은 이만 결단을 내리도록.”
수작을 부리다가 조카를 잃게 된 피엔토 자작이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설령 조카가 하녀를 건드렸다 해도 귀족이 천한 여인 하나 휘두른 게 무엇이 잘못인지?”
결국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논리적으로 밀리니까 신분 차이를 이유로 들어 억지를 부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다.
“자작님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군요. 그렇다면 프랭키 공자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쥐새끼도 계속 궁지로 몰면 고양이를 무는 법.
숨구멍을 하나 내주기로 했다.
강압적인 어조에서 부드러운 어조로 바꿔서 피엔토 자작을 살살 주무른다.
“어떤 기회 말씀이오?”
“귀족이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합시다.”
아르니아 대륙에서 귀족 대 귀족, 혹은 가문 대 가문의 불화가 벌어질 경우 결투 재판을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곤 했다.
무력으로 정의를 증명하는 행위기에 추가로 왈가왈부할 여지 없이 깔끔하고 확실하게 매듭짓는 길이었다.
내 제안을 들은 피엔토 자작이 이때다 싶어서 냉큼 나섰다.
“좋소! 대신에 프랭키 대신 결투해줄 대전사를 내보내도 상관없겠지.”
“물론입니다.”
“우리 쪽은 조카를 대신해서 내가 직접 나서겠소. 그쪽은 누가 나설 것이오?”
피엔토 자작은 결투재판에 나름 자신 있는 모양이다.
인제 보니 풍기는 기운도 제법이었고 단련된 몸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적어도 익스퍼트는 되어보이는 고수였다.
오늘 희롱을 당해서 화가 잔뜩 나있던 시온이 내게 귀를 대고 속삭였다.
“도련님, 허락만 해주신다면 피엔토 가문의 씨를 말려버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시온 또한 익스퍼트에 오른지 꽤 되었으니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구현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 여자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서지 말라 당부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하녀에 불과한 시온이 뛰어난 무력을 보여준다면 여러 사람들이 놀라겠다만.
그보다는 내가 직접 결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스스로 능력을 증명하는 게 좋은 그림이 될 듯했다.
“이쪽은 하녀 시온의 주인인 나 로이드 자작이 직접 대전사가 되겠습니다.”
내가 나온다고 하자 귀족 진영이 시끄러워졌다.
피엔토 자작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심이오?”
“신성한 결투 재판에서 감히 허언을 하겠습니까? 제 하녀가 봉변을 당했으니 제가 직접 나섭니다.”
“그쪽 나이가 내가 알기로 약관 근처인 걸로 알고 있는데.”
피엔토 자작이 나이를 따지는 이유는 스무살 언저리에 있는 놈이 검을 다뤄봐야 얼마나 다뤘겠느냐를 돌려 말한 거다.
“결투 재판을 하는데 나이가 중요합니까?”
호기롭게 말하는 내 모습을 본 피엔토 자작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실력이 부족한 내가 젊은 혈기만 앞세워서 그릇된 판단을 했다고 여긴 것이다.
“당연히 상관없지요. 결과에 승복만 한다면 로이드 자작님이 나오셔도 괜찮습니다.”
“서약서를 쓰지요.”
“동의합니다.”
입회인이야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니 생략하고 빠르게 서약서를 쓰고 나서 양측이 명예롭게 결투하겠다는 선서를 했다.
서약서에는 내가 승리할 시에는 프랭키 공자를 처형하고 패배할 시에는 시온의 신병을 인도한다 적었다.
10분 간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시온과 캠벨, 라칸과 에이든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리앙과 알버스 성에서 내가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아는 동료들이다 보니 나를 걱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오랜만에 퐁듀나 먹을까?”
“치즈는 느끼합니다.”
“칠면조 구이는 어떤가?”
“신선하군요. 그걸로 가야겠습니다.”
반대로 피엔토 자작 진영은 분주했다.
몇 명이 와서 부지런히 그에게 조언했는데, 아마 내가 어떤 스킬이나 검법을 쓰는지 조언하는 듯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다.
저들은 내가 익스퍼트의 고수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윽고 결투 재판이 시작되었다.
넖은 평원에 원형의 막을 세워서 무대를 꾸몄고 그 위에 나와 피엔토 자작이 나란히 서서 검을 겨누었다.
햇빛이 제법 따가운 날이었지만 결투 재판이 행해지는 장소만큼은 공기가 서늘했다.
“악마살해자라고 들었소.”
피엔토 자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습니다만.”
“대단하오. 젊은 나이에 그런 위명을 얻기는 쉽지 않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칭찬하는 척하던 피엔토 자작이 갑자기 말을 꼬아서 변화구를 던진다.
“얼마 줬소?”
“무슨 말씀이신지.”
“음유시인들에게 얼마를 줬길래 그런 가짜 위명을 만드셨나 이 말이오.”
애초에 소문을 불신했다는 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의심되시면 직접 들어와 확인해 보시지요.”
“사양 않겠소.”
피엔토 자작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과연 익스퍼트의 고수답게 몸이 재빠르고 정석적인 보법을 사용했다.
동시에 내 쪽에서는 천마게이션이 발동했다.
-오른쪽이다.
-왼쪽 막고 다리 쪽 공격.
-정면 찌르기다.
요새 직감 수련을 위해서 천마게이션을 쓰지 않고 대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결투를 구경하는 모두에게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주고 싶어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쓰기로 했다.
훙! 후웅! 후우웅!
피엔토 후작의 검이 허공을 긁었다.
기세 좋게 퍼부었던 맹공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고 관자놀이에 맺힌 그의 식은땀이 점차 굵고 선명해졌다.
“이런 미친!!”
천마게이션을 접한 고객들은 항상 격한 만족감을 표한다.
“독심술이라도 있나?”
“설마.”
“말도 안 된다!!”
“그저 검로가 뻔할 뿐이지요.”
이성이 마비된 상대의 검초는 더욱 흔들리고, 그에 반해 천마에게 배운 내 검격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두 사내의 검무가 격렬해지고 불꽃까지 튀기자 구경꾼들은 입을 헤벌린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럴 수가! 검에 일가견이 있다는 피엔토 자작과 대등하게 겨루다니.”
“검술 하나만큼은 제대로군.”
“악마살해자라는 소문이 진실일 수도 있겠어.”
반면에 아직도 피엔토 자작의 우세를 점치는 우매한 귀족들도 일부 존재했다.
“아직 피엔토 자작께서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어. 마나소드를 썼으면 진작에 끝날 게임이야.”
“주제 모르는 사생아에게 교훈을 주고자 봐주시는 거겠지.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말하는 와중에도 결투의 형세는 급박하게 변화했다.
처음부터 공격 일변도로 진행하던 피엔토 자작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느새 방어에만 급급해졌다.
힘, 기술, 체력, 체격, 순발력 등 모든 요소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익스퍼트란 명함만 가진 채 평화에 젖어버린 귀족과 최근까지 목숨을 오가는 사투를 해오며 가열찬 수련까지 곁들인 자의 차이였다.
“크흑!”
“이제 끝내겠습니다.”
“건방 떨지 마라!”
부우우웅!!!
피엔토 자작의 검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자 마나소드를 꺼낸 것이다. 익스퍼트의 상징을 목격한 귀족과 병사들이 장탄성을 터트렸다.
“오오오!!!”
일반검과 마나소드가 부딪치면 낡은 검은 단숨에 부서지고 평범한 검은 이빨이 나가며 보검은 몇 번 버티다가 검날이 무뎌져 버린다. 이는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 같은 절대 법칙이었다.
“어디서 제대로 배운 티는 나지만 거기까지요. 이만 마무리하겠소.”
푸른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질 때.
눈부신 에메랄드 빛이 치솟았다.
검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피엔토 자작의 마나소드보다 훨씬 짙은 농도를 내뿜는 검기가 천마검을 감쌌다.
“말도 안 돼!!”
“로이드 자작도 익스퍼트였다고!?”
“어떻게 저리 젊은 나이에 고수가 된 거지?”
귀족들의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놀란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내심 나를 사생아라 얕보던 타가문의 기사들과 병사들까지 벙쪘다.
유일하게 태연한 건 내가 악마 단탈레온과 싸운 장면을 본 후작성 경비대와 동료들 뿐이었다.
쨍강—!
부러진 검날이 공중을 날았다.
내 마나소드와 정면으로 충돌한 피엔토 자작의 검이 부서진 것이다.
눈앞에 일어난 광경을 믿지 못한 자작이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에 천마검을 갖다 대며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십니까?”
“······”
묵묵부답.
굳이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납검하고 몸을 홱 돌렸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시길.”
결투장에서 내려가자 우글거리던 인파가 일제히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이로써 로이드 가문의 사생아는 거느린 세력도 많고 개인의 능력까지 출중하다는 게 입증되었고.
멀어져가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봉신들의 눈빛은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 * *
몰티 영지는 장미꽃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가문의 문양마저 하얀 장미꽃인 이곳은 영지 곳곳에 색색의 장미들이 만개하여 영지민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요새는 달랐다.
순수함을 상징했던 하얀 장미는 타락하여 끈적한 혈향을 풍기는 붉은 장미로 변한지 오래였다.
“제발! 살려주십쇼! 제발!”
“자신의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족은 살 가치가 없다. 이만 죽어라.”
촤아악—!!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고.
목이 사라진 인간의 몸이 무너졌다.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몰티 영지민이 절규했다.
“아이가 굶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빵 한조각이라도 먹이고자 우발적으로 훔친 겁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위대한 엘프족이시여.”
“그것이 바로 너희가 열등하다는 증거. 너희의 생사여탈권은 우리에게 있음을 똑똑히 새겨두어라.”
심장에 칼이 박히고 화살이 눈알을 꿰뚫었다.
몇몇 엘프는 이미 죽은 사내의 시체를 몇번이고 난도질하여 가학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얼굴에 튄 핏방울을 손등으로 스윽 닦으며 히죽대는 그들의 모습은 마계에서 올라온 악마와 흡사했다.
인간사냥.
요근래 엘프에게 점령당한 몰티 영지 전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엘프족은 점령지의 인간에게 엄격한 법률 준수를 요구했고 이를 어긴 죄인들을 한데 모아서 숲에 풀어놓은 다음 칼과 화살로 사냥하는 의식을 치렀다.
그리고 이러한 야만적인 의식을 언덕 위에서 지긋이 주시하는 자가 있었으니.
엘프 대장로 리처드였다.
지팡이를 들고 흰수염을 쓰다듬던 그는 인간이 모조리 사냥당한 후에야 집무실로 복귀했다.
실내로 들어오니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엘프 전사 한 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수석전사 스콧이었다.
“대장로를 뵙습니다.”
“무슨 일이지?”
“인간의 군대가 인근까지 왔습니다.”
“숫자는?”
“그게···”
스콧이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대략 일만 명입니다.”
“뭐라?”
예상보다 적어도 오천은 많은 수다.
“갑자기 군대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나?”
“거의 그런 셈입니다. 정찰대가 파악한 바로는 헤논이란 인간이 육천 명의 추가 군사를 이끌고 왔답니다.”
“헤논? 로이드 가문의 후계자 말인가?”
“맞습니다.”
“그 인간이 무슨 수로 그 많은 대군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
“거기까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리처드 대장로가 흰수염을 쓰다듬었다.
“리앙에서 소식은 없나?”
“인간족 지배를 반대하던 배신자들을 팔아넘겼으나 수금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래서 인간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
원래 대장로의 계획은 자신의 뜻에 반하는 엘프들을 노예로 팔아넘긴 뒤 그 돈을 받아서 점령지를 운영하는데 쓸 예정이었다.
그러나 리앙의 노예시장에서는 어떠한 돈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거래가 된 셈이다.
“대장로님.”
“왜.”
“혹시 사샤님에 관해서는···”
“그 얘기는 이미 끝났다.”
“죄송합니다.”
하이엘프 사샤 이야기가 나오자 리처드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럴 때 더 파고들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걸 체감한 스콧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깟 돈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어도 그만이었어. 그보다 인간족 군대를 물리칠 방법을 강구해라.”
“이미 방법은 세워두었습니다.”
스콧이 당당히 가슴을 폈다.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본 리차드 대장로의 눈이 흥미로 물들었다.
“어떻게 할 계획이지?”
“군부대가 다 똑같죠. 지휘관을 처치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입니다.”
“지휘관이라 하면···”
“헤논 로이드.”
스콧의 두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정예 암살단을 보내서 쥐도새도 모르게 놈을 없애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