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3)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83화(83/200)
11장 엘프 : 알아낸 망나니
결투 재판이 끝난 다음날.
패배한 피엔토 가문은 물의를 일으킨 프랭키를 처형해서 그 목을 효수했다.
따라서 작전 구상을 위해 지휘소로 집합하던 영주들은 프랭키의 머리통을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분위기는 차분했다.
어제처럼 내 혈통을 트집 잡으며 대놓고 무시하거나 빈정거리던 귀족은 전부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끌고 온 푸른매 용병단과 리앙 수호군 숫자는 무려 육천 명.
심지어 피엔토 자작과 일대일을 이겨서 젊은 나이에 익스퍼트에 오른 강자임을 증명했으니 알아서들 눈치 챙겼다.
“지금부터 작전 회의를 시작하지요.”
넓은 탁자에 지도가 펼쳐졌다.
아르니아 대륙 동부 쪽 전체 지도와 몰티 자작령 쪽 세부 지도였다.
동부 대산림 쪽은 지형 정보가 부족해서 따로 지도를 입수하지 못했다.
“보다시피 엘프족은 몰티령의 주요 거점을 모두 점령한 상태입니다. 탈출한 생존자의 증언으로는 그곳은 이미 지옥이라더군요.”
엘프족이 몰티령에서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일전에 나를 습격한 산적 두목을 심문해서 알아냈다.
그의 증언 중 일부만 뽑아서 들려줬다.
몰티령 사람들이 어떠한 가혹 행위를 당하고 있는지 들은 영주들은 아연실색했다.
인간 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쯤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빌어먹을 귀쟁이들의 귀를 모조리 잘라서 소금에 절여야 합니다!”
“그것도 부족합니다. 이참에 엘프의 씨를 모조리 말려야 해요.”
“당장 군사를 진격합시다! 우리는 자그마치 일만 군대요. 숲 속에 살던 놈들이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습니까?”
한동안 소란을 피우던 귀족들은 내가 손을 올려 신호를 보내자 이내 얌전해졌다.
“이제 다들 아셨겠지요. 이 전쟁은 결코 장기전이 되어선 안 됩니다. 짧게 끝내야지요.”
“사령관께서는 당연한 소리를 하시오. 그깟 귀쟁이들이 뭐가 무섭다고. 일주일 안에 몰티성을 수복합시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 일이다.
그 의욕을 결과로 귀결시킬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몰티성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 대신에 두 개의 요새를 돌파해야 합니다.”
몰티 성은 외곽지역을 방비하는 두 개의 요새를 함락시켜야만 비로소 본성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
만약에 요새를 무시하고 몰티 성부터 공략했다간 대기하던 요새 병력에 앞뒤로 포위당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하오.”
“진격로 오른쪽에 레이븐 숲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숲을 뚫으면 굳이 요새를 마주하지 않고도 곧바로 몰티성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선택안을 들은 귀족들은 일제히 첫번째 안을 선택했다.
“레이븐 숲은 안될 말씀이오. 아무리 귀쟁이가 바보여도 숲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종족 아니오?”
“동감이오. 숲은 시야 확보가 안 되고 낮에도 밤처럼 어두워서 소수로도 다수를 상대하기 쉽소. 굳이 그런 패널티를 감수할 필요는 없소이다.”
“게다가 엘프들은 활도 잘 쏘지 않소? 그냥 성을 공격합시다. 공격하다 보면 성안의 인간들도 우리를 도와주겠지.”
나름 엘프에 대해서 조사해온 모양.
그들이 첫 번째 선택지를 고른 이유가 이해가 갔다.
하지만 불안했다.
과연 엘프족이 인간이 쌓은 요새만 믿고 안일하게 적을 기다릴까.
“괜찮은 방안입니다만,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은 전략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병사를 둘로 나눠서 절반은 평원 쪽으로, 나머지 절반은 레이븐 숲을 돌파하는 게 어떻습니까?”
영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한다.
“사령관은 여태껏 무슨 소리를 들었소? 레이븐 숲은 안 된다, 이 말이오!”
“잘하면 통과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군사가 상할 거요.”
어제 결투 재판을 지고 잔뜩 성이 나 있던 피엔토 자작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직 전쟁 수행 경험이 일천해 보여서 하는 조언인데, 알버스 성 같은 요행은 매번 나오지 않습니다.”
개인 능력이 출중하니 이제는 경험 부족으로 뭐라 하는 건가.
이놈의 귀족들은 뭐 하나라도 자기가 우위를 점한 다음 그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상대를 휘두르는 행동이 습관이 되어있다.
“허면 묻지요. 친애하는 영주님들께서는 일만 군사로 정직하게 평원을 밀고 들어가면 알아서 몰티성이 함락되리라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지 않겠소? 그깟 귀쟁이들이 무슨 수로 우리 강군을 막겠소.”
“좋습니다. 영주님들 뜻대로 무사히 몰티성을 함락시켰다고 칩시다. 그런 다음은요?”
내 말을 들은 영주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몰티성을 함락하면 끝이지. 고려할 요소가 더 남았소?”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치 못하는 족속들 같으니.
이러나 저러나 몰티령의 핵심 거점은 몰티성이 맞고, 그렇기에 영주들도 이곳만 되찾으면 전쟁은 종료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달랐다.
과연 몰티성만 점령하면 끝일까?
애초에 이들의 본거지는 깊고 광활한 동부 대산림이다.
옛말에 참초제근이란 격언이 있다.
재앙이나 걱정을 불러올 일은 아예 뿌리째 뽑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번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고 봤다.
예를 들어 엘프족을 몰티성에서 몰아낸다고 치자.
후퇴한 상대는 그들의 보금자리인 대산림에 웅크린 채 숨을 고르겠지.
그러다가 인간의 군대가 약해질 때쯤 호시탐탐 다시 공격할 기회를 노릴 것이다.
나는 이 점을 귀족들에게 주지시키며 영주들을 설득했다.
“군사를 둘로 나눠야 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레이븐 숲은 동부 대산림의 초입부입니다. 레이븐 숲을 통과한다면 상대는 우리가 몰티 성을 노리는 줄 착각하겠죠. 그 사이에 우리는 비어있는 적의 진짜 본진을 치는 겁니다.”
동부 대산림까지 가겠다는 말에 영주들이 펄쩍 뛰었다.
“레이븐 숲도 위험한데 대산림 심부까지 들어가겠다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재고할 가치도 없는 작전이요.”
“아무리 사령관이라 해도 이런 식의 독단적인 지휘를 고집하신다면 우리는 이번 일에서 손 떼겠소.”
“맞소. 우리도 도와주는 입장인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얘네들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는 이치를 모르나.
몰티령에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연합군이 해체되면 그때부터는 자기네 영지가 각개격파 될 텐데 상황파악을 못 한다.
그때 와서 다시 연합군을 모으려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면 이런 방법은 어떻소?”
피엔토 자작이 말했다.
무슨 꿍꿍이일까.
“원래 우리 연합군은 오천 정도였지만 총사령관의 힘으로 일만 군세를 갖추게 됐소.”
“맞지요.”
“그러니까 초창기 연합군이었던 제1군은 평원을 치고 사령관을 따르는 제2군은 레이븐 숲으로 가시오. 어떻습니까?”
피엔토 자작이 말을 이었다.
“대신에 1군이 몰티성을 먼저 점령하느냐, 2군이 대산림 엘프족을 먼저 토벌하느냐로 내기해서 먼저 달성한 쪽이 몰티령 영지 배분의 전권을 갖기로 하지요.”
제법 머리를 잘 굴렸다.
군대를 분리해서 내 지휘를 직접적으로 받는 상황을 피하고 개별행동을 통해 공까지 독식해서 전쟁 이후 몰티령 전체를 꿀꺽하겠다는 속셈이다.
“사령관께서도 군을 두 개로 나누는 걸 좋아하셨잖소? 이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할 듯 싶은데. 어쩌시겠소?”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저 눈빛을 봐라.
몰티령을 먹고 싶어서 환장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말린다고 안 할 놈들도 아니고,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가는 게 더 위험한 일이라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었다.
딱히 몰티령이 탐나지도 않았다.
대륙 멸망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나에게 소왕국 변방 영지 하나는 매우 사소했다.
막말로 아공간 호리병을 열어서 무지성으로 황금을 퍼부으면 영지 전체를 구매하는 것도 가능했으니.
지금 당장은 향후 위협이 되는 엘프의 공격을 저지하고 로이드 가문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흐흐흐···사령관께서 직접 말씀하셨으니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습니다.”
피엔토 자작을 위시한 영주들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천막에는 시온과 캠벨, 에이든과 라칸만 남았다.
“자작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라칸의 말이었다.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제가 봐도 레이븐 숲은 좀 위험해보입니다. 제가 오랜 용병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소수의 엘프들은 하나같이 숲에서 일당백이었습니다.”
반면에 시온과 캠벨은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에이든이 물었다.
“시온님과 캠벨님은 별말씀이 없으시군요. 레이븐 숲으로 가도 괜찮으신가 봅니다.”
“아뇨. 저 또한 평원에서 요새를 공략하는 계책이 더 상책 같습니다.”
“허면···”
“하지만 전 도련님을 믿습니다. 숲으로 가신다고 했으면 어려움을 타개할 적절한 방책이 분명 있으신 겁니다. 저희는 그동안 그렇게 악마를 잡고 저주를 막고 성을 무너트렸습니다.”
역시나 시온과 캠벨은 나를 따른 기간이 있어서인지 짬밥 자체가 다르다.
맞다.
난 방법이 있었다.
엘프족이 숲에서 유리한 건 인정한다.
인간보다 열 배쯤은 유리하겠지.
그러나 나는 드루이드다.
드루이드는 숲에서 얼마나 유리할까?
엘프가 숲에서 유리하다면 드루이드는 숲 그 자체다.
적어도 숲에서만큼은 싸움에 질 자신이 없었다.
* * *
그날 저녁.
오늘도 어김없이 사샤를 찾아갔다.
원래는 평범한 소녀인 사샤에게 이런 전쟁터는 위험하다 판단하여 두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사샤는 동족의 일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애걸복걸해서 하는 수 없이 데려왔다.
데려오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바쁘고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서 아기용 코코를 온종일 놀아줬다.
그리고 코코도 사샤가 마음에 드는지 곧잘 따랐다.
“뀨!”
“아저씨!”
내가 오자 사샤와 코코가 동시에 안겼다.
달콤한 초콜릿 향과 은은한 라벤더 향이 코를 간질거렸다.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사샤와 코코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별일 없었지?”
“응. 아저씨는?”
“나도 별일 없었다.”
“오늘 작전은 어떻게 되었어?”
아직 미성년자인데 작전을 알려줄 필요 있나 싶었으나 어찌보면 당사자이기도 하니까 레이븐 숲을 통해 대산림으로 직접 쳐들어갈 계획이라고 일러주었다.
“잘 생각했어. 내가 봐도 그게 최고의 작전이야.”
오늘 처음 진심으로 내 작전에 찬성하는 사람이 나왔다. 시온과 캠벨마저 나를 믿은 거지, 작전을 믿진 않았는데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내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사샤가 말을 이었다.
“대장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동안 사샤는 자기 부족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고 나도 따로 캐묻진 않았다.
저렇게 어린 소녀가 노예로 팔릴 사연이면 본인에게도 상처일 텐데 굳이 그 부분을 들쑤시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풀었다.
“대장로?”
“응. 대장로 리처드.”
“그 사람이 누군데?”
“이 전쟁을 일으키고 나를 노예로 팔아버린 사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샤의 설명은 이러했다.
“우리 엘프족에는 [생명의 샘]이라고, 대대로 내려오는 신령한 연못이 있어. 오직 샤먼의 피를 이어받은 주술사만이 생명의 샘을 관리해.”
“혹시 네가···”
“맞아. 내가 엘프족의 주술사야. 맡은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십 년 넘게 공석이었거든.”
사샤 같은 소녀가 부족 전체를 대표하는 주술사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탐욕과의 전투에서 그녀가 특출남을 보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대장로가 엘프 한 명을 생명의 샘으로 데리고 오더니 이상한 의식을 치르게 했어.”
“의식?”
“응. 자기 말로는 세례라고 하더라고.”
세례. 의식. 봉양. 축복.
황혼교와 자주 얽히는 요근래 이런 종류의 단어가 좋게 들린 적이 없다.
“세례를 받은 엘프는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졌어. 진짜 신기했어.”
“세례를 받았더니 강해졌다?”
“응. 웬 나뭇가지를 생명의 샘에 담그더니 엘프더러 생명수를 마시게 했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단어가 등장했다.
“잠깐, 방금 나뭇가지라고 했나?”
“맞아. 황금빛이 나오는 나뭇가지였어.”
이럴 수가.
세 번째 황금가지가 엘프의 숲에 잠들어 있었다니.
그것도 사샤의 이야기를 듣다가 우연히 발견한 게 기가 막힐 정도로 신기하다.
물론 실제로 확인해야겠지만 아르니아 대륙에서 신비한 능력을 가진 나뭇가지가 흔하진 않을 테니 정황상 황금가지가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세례가 좀 이상했어. 생명의 샘을 마시고 강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간과 전쟁을 벌이고 싶어서 안달을 내더라고. 당장 대장로만 해도 그랬고.”
“그래서 인간과의 전쟁을 계획했다?”
“응. 나는 반대했어. 나중에는 생명의 샘 출입을 통제시켰어. 그랬더니 대장로가 나를 팔아버렸어···흐앙!!”
울먹이는 사샤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여태껏 티는 안 냈어도 얼마나 부담되고 힘들었을지 절절히 느껴졌다.
“뀨우···”
똑똑한 아기용 코코도 날개를 퍼덕거리며 사샤의 머리를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다.
얼마나 달래줬을까.
사샤가 진정될 때쯤, 바깥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를 좀 가지고 왔습니다.”
마침 차를 마실 시간이 되긴 했다.
사샤도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조금은 진정되겠지.
“들어와라.”
머리에 두건을 쓴 하녀가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들고 들어왔다.
평상시에는 시온이 차를 갖다 주는데 오늘은 처음 보는 하녀가 대신한다.
“시온은 바쁜가 보지?”
“그렇습니다.”
걸어오던 하녀의 시선이 사샤에게 꽂혔다. 그 순간 하녀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발을 헛디디고 휘청였다.
“아앗!”
재빨리 몸을 움직여 한 손으론 하녀를 붙잡아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흔들리던 쟁반을 손바닥으로 받쳤다.
“저런. 조심해야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침착하게 대답하던 하녀를 지긋이 응시하다가 차를 꿀떡 마셨다.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감과 동시에 무섭게 떠오르는 시스템창.
[마비독에 중독되셨습니다.] [자정작용 발동] [상태이상 면역] [독을 정화했습니다]그럼 그렇지.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품속에서 비수를 꺼낸 하녀가 나를 향해 번개같이 휘두른다.
정확히 목젖만 가르는 깔끔한 궤적.
-암살자가 제법이로구나.
천마의 목소리가 의식을 울린다.
마비독에 중독됐으면 꼼짝없이 당했겠지만 멀쩡한 상태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슬쩍 고개를 젖혀 가볍게 피하자 암살자가 크게 놀라며 몸을 움찔 떨었다.
“어떤 놈이 보냈느냐? 피엔토 자작이냐?”
암살자는 대답이 없었다.
나 또한 굳이 대답을 바라고 질문하진 않았다.
무력으로 알아내면 될 일이기에.
[윈드 컨트롤] [순보]파앙!!!
파공성과 함께 내 신형이 주르륵 늘어났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속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암살자는 주저 없이 바닥에 몸을 굴려 간신히 치명타를 회피했다.
“어쭈? 이걸 피해?”
순보 일격을 피할 레벨이면 진짜 실력자란 말인데.
피엔토 자작에게 이만한 사람을 고용할 능력이 있었나 싶다.
의문은 곧 풀렸다.
바닥을 격하게 구르느라 하녀로 위장했던 암살자의 두건이 벗겨졌고.
동시에 앙 옆으로 뾰족한 두 귀가 튀어나왔으니까.
굳이 심문하지 않아도 그녀의 소속이 드러나 버렸다.
“엘프였군. 대장로가 보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