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lure Marquis is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0)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90화(90/200)
12장 잠식 : 내미는 망나니
아멜리아를 추격해온 엘프 전사들은 우리를 한참 얕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 전사들은 무려 서른 명이었고 무기도 제대로 갖춘 반면에 우리 일행은 빠른 속도로 숲을 돌파하느라 반쯤 거지꼴이었다.
“아멜리아, 인간에게 붙어먹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포위망을 형성한 채 천천히 조여오는 전사들.
옆에 있는 사샤에게 물었다.
“사샤, 저들은 모두 강화전사야?”
사샤가 잠시 집중하더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다면 저들을 구원할 방법은 없다.
여기서 살려줘도 세례자들은 끝까지 인간과 싸우다 죽어갈 테니까.
사샤의 도움으로 제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안식을 부여하는 게 가장 최선이었다.
“여러분! 지금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닙니다. 정신 차려주세요!”
사샤가 앞으로 나서자 강화전사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화전사 중 한 명이 사샤에게 버럭 화를 냈다.
“주술사께서는 대장로님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쫓겨났으면 목숨이나 보전할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분탕을 치십니까?”
“이미 인간과 같이 있는 시점에서 주술사 대접해줄 필요 없다. 아멜리아와 똑같은 여자야.”
“맞다. 어차피 집단 세례식이 끝나고 나면 리처드 대장로님이 새로운 주술사를 세우신다고 하였다. 이제 저 여자는 죽여도 돼.”
사샤는 강화전사들의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캠벨에게 눈짓하자 무언의 메시지를 알아들은 그가 사샤를 뒤로 빼서 보호했다.
시온은 혹시 모르니 계속해서 아멜리아를 누른 채 제압해두었다.
상황이 이러니 적과 싸울 사람은 나뿐이었다.
혼자 전면으로 나서자 강화전사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뭐냐? 왜 혼자 나와.”
“너희 같은 바보들은 나로 충분하다.”
살짝 도발해주자 상대는 저들끼리 마주보다가 이내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핫하하하!!!”
“키키키킥!!”
“미쳐도 단단히 미친 놈이군.”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혈기 넘치는 엘프 한 놈이 칼을 뽑아 검날을 혀로 핥더니 곧이어 우리 쪽을 향해 쇄도했다.
눈을 회까닥 까뒤집고 달려오는 폼이 광전사 그 자체다.
격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놈에 비해 나는 굉장히 차분했다.
적과의 거리가 코앞까지 좁혀졌는데도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엘프 전사는 내가 싸우기를 포기했다고 여겼는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래! 그렇게 꼼짝 말고 있어라. 단숨에 팔 한쪽을 잘라···으갹!!”
퍼억!
적이 유효사거리 안쪽으로 진입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이 무턱대고 들어오자 첨마검을 검집째로 휘둘러 뒤통수를 거세게 후렸다.
그 일련의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는지 상대는 반응조차 못했고.
기세 좋게 달려오던 엘프는 딱 한 대를 얻어맞더니 실 끊어진 목각 인형처럼 팔다리를 허우적대다가 풀썩 쓰러졌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왜 자기 혼자 쓰러져?”
“지금 개그하는 건가?”
이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다른 강화전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눈 좋은 놈이 하나 있었나 보다.
녀석이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키더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읊조렸다.
“저 인간 상당한 고수다.”
“뭐라고?”
“안 그래 보이는데.”
“멍청한 놈들! 방심하지 마. 전부 다리에 힘 빡주고 한꺼번에 덮쳐!”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진지한 얼굴로 접근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이번에는 내가 공격할 차례였으니까.
[우드 컨트롤] [바인드 발동]나무뿌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옭아매는 바인드 기술은 드루이드로 각성하고 나서부터 내가 제일 많이 썼던 기술이다.
그런 만큼 숙련도도 제일 높고 응용 방식도 처음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발전했다.
콰콰콰콱!!!
적재적소.
땅에서 솟아난 나무뿌리가 가장 성가신 놈들 먼저 공략했다.
상대는 발목부터 허리까지 휘감은 단단한 나무뿌리를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어엇!?”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질겨!”
드루이드와의 전투를 처음 경험하는 강화전사들이 당황해 할 때쯤엔 이미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다.
뒷목을 강하게 쳐서 기절시켰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서 다른 놈들에게도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우드 컨트롤] [바인드 발동] [스톤 컨트롤] [스톤랜스 발동] [스톤실드 발동]우드 컨트롤과 스톤 컨트롤을 적당히 섞어 써주자 상대로선 죽을 맛이었다.
마나소드로 성가신 나무뿌리를 간신히 자르고 뒤로 빠지려니 비석처럼 생긴 넓적한 돌이 도주로를 틀어막는다.
이걸 간신히 부순다 해도 끝단이 날카로운 스톤 랜스가 연속해서 급소를 노리고 날아온다.
이것마저 검으로 쳐내도 끝이 아니다.
끝판왕인 내가 천마검을 맹렬하게 휘둘렀으니, 강화전사 중 그 누구도 이 연속 콤보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차례로 쓰러졌다.
“세상에···”
시온에게 손발이 구속당한 채 땅바닥에 엎드려 전투를 구경하고 있던 아멜리아는 침이 줄줄 흐르는지도 모르고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했다.
그동안 로이드 자작이 머리도 똑똑하고 일신의 무력 또한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상식을 벗어난 수준일 줄은 몰랐던 탓이다.
“도련님의 강함을 아시겠습니까?”
옆에서 시온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아멜리아는 대답조차 못할 정도로 혼이 나가있었다.
이쯤 되니 아멜리아는 그와의 첫만남에서 어째서 암살에 실패했는지 깨달았다.
암살 실패는 너무나 당연했고, 오히려 저 미친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게 용한 일이었다.
단 15분.
엘프족의 정예라 불리는 강화전사 일개 조가 제압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심지어 사망도 아니고 전원 생포였다.
“제법 힘들었군.”
온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비록 반푼이라고 해도 나름 익스퍼트 전사들이다.
몸도 날랬고 싸울 줄 아는 놈들이어서 드루이드 스킬을 쓰지 않았더라면 애 좀 먹었을 듯했다.
“고생했어. 아저씨.”
사샤가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이슬을 떨굴 것처럼 위태로웠기에.
밧줄 대신 바인드 스킬을 써서 나무뿌리에 꽁꽁 묶인 엘프 전사를 처연히 바라보던 사샤가 그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어머니의 품에서 안식을 찾으시길.”
사샤는 강화 전사의 뇌에 연결되어 있던 검은 실선을 차례로 제거했다.
그녀의 손길이 오간 강화전사들은 제정신을 차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을 감싸며 절규했다.
“끄아아악!!!”
“어째서 내가 그랬단 말인가!”
“쭉 기분 나쁜 꿈을 꿨습니다.”
“아아···이럴 수가···”
반응은 상이했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동일했다.
이들 모두 트윈테일 협곡에서 사로잡았던 엘프 전사처럼 칠공에 피를 흘리더니 털썩 쓰러져 절명했다.
강화전사들이 연이어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가자 아멜리아는 혼란스러워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죠? 사샤님, 혹시 아시는 바가 있다면 가르쳐주세요.”
“그저 리처드 대장로가 행한 세례식의 숨겨진 이면이야. 불편한 진실이지.”
사샤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는 아멜리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꼬옥 껴안아주었다.
“아멜리아는 세례를 받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동안 버텨줘서 정말 고마워.”
담담한 어조 속 깊은 한을 느낀 아멜리아도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샤님, 죄송합니다···흐흑···제가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바보 같았어요.”
시온이 슬며시 아멜리아를 풀어주었고 둘은 한참을 껴안고 감정을 공유했다.
이 감동적인 순간을 깨트리고 싶진 않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리처드 대장로는 세례식을 벌이고 있을지 몰랐다.
“사샤, 이제 움직여야 해.”
“응, 알았어.”
사샤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아멜리아도 이번 일에 한해서 협력하기로 했다.
“착각하지 마라. 아직도 난 트윈테일 협곡에서 죽어간 동지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단지 사샤님께 충성하는 것뿐이다.”
“어련하시겠어.”
말투에 가시가 박혀있긴 했으나 그녀의 합류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일신의 무력이 뛰어난 전사였고 무엇보다 엘프의 안식처로 향하는 샛길을 빠삭히 외우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은밀하게 안식처까지 침입했다.
외부에서 입장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들어오니까 내부는 한산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한산한 정도가 아니라 어슬렁대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현재 부족 내 모든 엘프는 집단 세례식을 위하여 최소 경비인력만 제외하고 마을 광장으로 집합했단다.
“이대로라면 손 쓰기도 전에 세례식이 거행되겠군.”
“아저씨, 어떡하지?”
사샤가 목소리가 불안감에 떨렸다.
원래라면 여기서 웜홀을 설치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일단은 세례식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중앙 광장 인근에 도착한 나는 일행에게 손짓해서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다들 수준이 높아서인지 감쪽같이 은신했고 세례식에 정신이 팔린 적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가운데 제단에는 풍채 좋은 노인 하나가 화려한 로브를 입고 서 있었는데, 딱 봐도 저 노인이 리처드 대장로였다.
“대장로님을 뵙습니다!”
“위대하신 대장로님!!”
“아아!!!”
제단을 둥글게 둘러싼 엘프족이 광신도마냥 엎드린 채 리처드 대장로를 추앙했고, 이 모습을 대장로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이어진 찬양은 그가 손을 올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조용해졌다.
“축복받은 숲의 아이들이여, 나무에서 비롯된 신실한 영혼들이여, 나 리처드는 오늘 그대들 앞에 선 것을 크나큰 영예라 생각한다.”
리처드 대장로는 굉장한 달변가였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자니 어딘가 빠져드는 면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바보같이 숲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조차 모르는 미개한 인간족이 대륙을 망가트릴 때까지 말이다.”
“우우우!!!”
인간족을 향한 야유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이처럼 대장로가 던진 작은 돌덩이는 크게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내 집단 전체의 광기로 변모했다.
“인간은 허약하고 멍청한 데다가 욕심만 많은 열등한 종족이다. 우리 엘프 족은 상위 종족으로써 하위 종족을 교화시키고 진리를 일깨워줄 의무가 있다.”
“옳소!!”
“오늘은 저 무지몽매한 존재들을 계몽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첫걸음을 떼는 날이다. 신성한 세례식을 받고 진정한 엘프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와아아아아!!!”
먼저 세례식을 받은 리처드 대장로의 친위대가 힘찬 함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물론 모든 엘프가 여기에 동조하진 않았다.
몇몇은 초조한 얼굴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반동분자를 감시하고 있던 강화전사들이 눈알을 부라리자 이내 억지 웃음을 띠며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례식을 거행하겠다. 사전에 지급한 번호 순서대로 앞으로 나오도록.”
제단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반짝이는 은빛을 발하는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예전에 사샤가 말했던 생명의 샘에서 담아온 신비한 액체인 듯했다.
1번을 받은 엘프는 이제 열 살이나 됐을 법한 어린 소년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마른 침을 꿀떡 삼키는 어린아이의 정수리를 리처드 대장로의 주름진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늘부로 너는 진짜 엘프로 다시 태어난다.”
표주박을 항아리에 넣어 생명수를 한가득 담은 리처드 대장로는 품속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오는 가지를 꺼냈다.
그러자 강화전사들 쪽에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신의 조각에 경외를!”
“자연의 정수에 존경을!”
“어머니의 손에 사랑을!”
표현은 각자 다르나 강화전사 전원이 나뭇가지를 자신의 마음 속 절대신으로 여기는 듯했다.
이와중에 나는 침착했다.
의식 속으로 천마에게 진품 여부를 질문했다.
천마의 대답.
-황금가지가 분명하다. 저 노인으로부터 익숙한 기운이 흘러나와. 빌어먹을 드루이드 놈의 기운이다.
천마가 일천 년 전 마주했던 멀린의 향수를 맡았다면 그토록 찾아헤매던 황금가지가 확실하다.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것 없지.
저 황금가지는 내가 접수해야만 한다.
“시온.”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믿을만한 시온을 불렀다.
“예, 도련님.”
“이걸 받아라.”
그녀에게 건넨 건 웜홀 생성기였다.
동그란 원판을 받은 시온이 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원판의 작동 방법은 알고 있지?”
“저번에 사용하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좋아. 오늘 밤 웜홀 생성기는 네가 작동시킨다.”
놀라는 시온.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도련님은 어쩌시려고요.”
“나는 세례식을 막는다. 단 한 명이라도 무고한 엘프가 대장로에게 희생되는 걸 막아야지.”
“아저씨···”
옆에서 내 다짐을 들은 사샤가 감격에 젖은 목소리를 낸다.
시온 또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아. 캠벨하고 코코는 웜홀을 설치하는 시온을 보호해줘. 설치하는 동안 공격받지 않게 막아주고.”
“맡겨만 달라고, 부단장.”
“뀨뀨!!”
남은 건 아멜리아와 사샤.
“아멜리아는 사샤를 최우선으로 보호한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다.”
역할을 분담하는 동안.
1번을 받은 소년에게 세례식이 거행되었다.
“여기 모인 전원 1번 형제가 진실한 엘프로 거듭나는 걸 축하해주도록. 그러면 세례식을 시작하겠다!!”
리처드 대장로가 표주박에 담긴 은색 액체에 황금가지를 집어넣고 휘젓자 은색과 황금색이 섞여서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화려한 빛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검은 실선을.
불길한 기운은 뱀처럼 꿈틀대며 먹잇감을 노렸다.
“멈춰어어어!!!!”
배에 힘을 힘껏 주고 고함을 질렀다.
마나가 실린 함성이 중앙 광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에너지 가득 담긴 음성이 파도처럼 울렁대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례식 도중 난입한 불청객.
이를 보는 엘프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린다.
“인간이잖아?
“인간이 왜 여기에 있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웅성대는 소리가 커지고.
당혹은 당황으로, 이내 혼란으로 번져간다.
리처드 대장로가 이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놈을 향해 피식 웃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야, 그거 네 거 아니다.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