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0)
미친 토끼에게 어울리는 곳은 스튜 냄비 속뿐이다. 당장은 해롭지 않아 보여도 눈 뒤집어져서 밭을 헤집어놓는 거 조만간이다.
그때 가서 후회 말고 일찌감치 스튜로 만들어 한 그릇 뚝딱하는 게 낫다. 내 말뜻 알겠지? 다시는 네 부하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라.
뭐,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그런 의미였다.
물론 카인 블랙우드는 전형적인 북부 공작 남주인공이다. 그렇기에 놈은 첫 문장만 말하고는 싸늘히 제 갈 길을 갔다.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던져놓고 남이 알아서 움직이길 바라는 게 이들 족속의 특징이다.
‘그런 놈이 윗사람이면 얼마나 짜증이 나게요.’
마리엔은 블랙우드 성에 사는 이름 모를 몇몇 사람을 동정했다. 블랙우드의 보호 아래 사는 사람들은 강인한 주인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숭배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처럼 제정신 똑바로 박힌 인간이 있겠지. 돈은 벌어야겠고, 카인 블랙우드는 싫어 죽겠고. 얼마나 하루하루가 끔찍할까.’
마리엔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비하면 재상부의 업무 환경은 근사하기 이를 데 없다. 바일레온은 처음부터 지시를 명확하게 내려주는 데다, 다른 직원들도 그가 뽑은 사람답게 일 가지고 속을 썩이지 않았다.
일 처리 도중에 질문이 생겨서 재상 집무실 문을 두드려도 괜찮았다. 온화하신 재상님은 누구처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목을 조르거나 하지 않으니까.
‘놈의 면상을 직접 봤더니 확신만 굳어졌어.’
마리엔은 삼십 분째 아치형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뛰어내리려는 건 아니다. 그냥 황궁 안에서도 이 장소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기필코 놈을 끌어내리고 바일레온을 오데트 옆에 세운다!’
사심에서 시작된 남주인공 갈아치우기가 대의명분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마리엔은 오데트의 능력을 믿었다. 오데트는 사랑하는 남편이 선을 넘지 않도록 어련히 알아서 잘할 것이다.
그러나 오데트가 없는 곳에서 황제의 반려를 모셔야 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아랫사람 피를 바싹바싹 말리다가 황제 앞에서만 웃는 놈이 내궁(內宮)의 주인이어선 안 된다. 예로부터 황제의 배우자는 어질고 현명하며 덕망이 높아야 한다고 했다. 아랫사람을 잘 다스려야 함은 물론이다.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말 타고 가면서 봐도 바일레온 비어스만큼 적격인 이가 없다.
‘이젠 원작에 언급되지도 않는 황궁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놈을 치워야겠어.’
문제는 그 재수 없는 놈을 어떻게 치우냐는 것이다. 마리엔이 며칠간 고민하는 사이에 놈은 벌써 수도로 들어와 오데트와 비밀리에 만났다. 그 말인즉, 오데트가 놈의 수려함을 인지했다는 뜻이다.
제대로 보니까 과연 잘생기긴 잘생겼다고. 어차피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면 상대의 외모가 매력적인 편이 낫다고. 그런 면에서 카인 블랙우드는 합격점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오데트가 혼자 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에 마리엔은 가슴이 미어졌다. 바일레온이라는 절세미남을 옆에 두고도 하지 못한 생각을 북부 놈을 보고 하다니.
‘아이는 바일레온도 잘 만들어줄 수 있어요. 황녀 전하, 저 허벅지 두께를 좀 보세요. 허리는 또 얼마나 날렵하면서도 탄탄하게요. 바일레온과 함께라면 친권 포기 서약을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야말로 준비된 내궁의 주인, 가정적인 배우자, 훌륭한 씨 제공자 아닌가요.’
그리고 원래 바일레온처럼 점잖게 생긴 남자가 의외로 밤에 뛰어난 활약을 하는 법이다. 마리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는 아니다. 오데트가 육체적 끌림에 잘 반응하는 타입인 것 같아서 덧붙이는 소리다.
“재상부의 디디 보좌관이세요?”
우아한 크림색 아치형 다리 밑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어디 소속인지 몰라도 실용적인 줄무늬 드레스에다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황궁 시녀에게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복장이다. 마리엔은 자신을 어떻게 알아봤냐고 되물었다.
“거기서도 제 배지가 보이나요?”
“아뇨, 안 보여요.”
“그럼 어떻게 아셨죠? 전 당신을 몰라요.”
“어제 짐마차 마부가 제 이모부세요. 전 다과 담당 시녀고요. 어제부터 제가 귀한 손님을 모시고 있는데요. 그분…… 블랙우드 공작님께서 보좌관을 언급하셨어요.”
원수의 이름이 예고 없이 불쑥 들려왔다. 마리엔은 난간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 새…… 손님이 저를 언급했다고요? 기억도 못 할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요. 이미 디디 보좌관의 신상을 파악하셨어요. 아까는 4황녀 전하랑 활쏘기를 하시다가 털이 분홍색인 토끼 가죽 얘기를 하시더라니까요.”
내 가죽을 벗기겠단 소린가. 마리엔은 아연해졌다.
“전하께선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셨죠. 거기에서 디디 보좌관 이름이 나온 거예요. 전 이모부 일도 있고 해서 보좌관에게 죄송하던 차에…….”
시녀가 말을 하다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듣는 귀가 없는지 덜컥 겁이 난 까닭이다.
“아무튼 조심하세요.”
“흐음.”
“다른 애들은 제가 부럽다고 난리인데 전 알거든요. 그분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찍히면 그냥 최대한 빨리 자결하는 게 이득이라.”
시녀는 돌연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마리엔은 귀띔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시녀가 가고 난 후, 마리엔은 생각에 잠겼다.
뜻밖의 전개였다.
“그 얼음덩어리가 나를 기억해?”
차가운 심장을 지닌 북부의 주인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심장이 차가우니까 당연히 뇌까지 얼어붙은 줄 알았지. 힘세겠다, 권력 있겠다. 아쉬운 것 없는 놈답게 어지간해선 상대방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엔 디디가 벌인 어제의 소동도 금방 잊었으리라 생각했다. 이제까지 놈에게 파견된 암살자만 일개 중대는 될 테니까.
바일레온에게 토끼 스튜 어쩌고 한 협박도 같은 맥락이다. 부르르 떠는 것은 마리엔 자신뿐. 정작 협박을 한 당사자는 뒤돌아서자마자 잊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근데 내 신상을 조사했다고 하잖아.”
마리엔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잠깐, 이거……. 의외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는걸.”
왠지 익숙한 전개다. 남자는 여자를 희한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는 남자를 질색하면서 싫어하는 거. 한데 자꾸 둘이 엮이는 일이 발생한다. 점점 서로의 존재가 신경 쓰이게 된다.
흔하디흔한 로맨스 전개인데 심지어 자신은 엑스트라에 빙의한 외부인이다!
“그래. 원작 여주인공 놔두고 빙의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숱하게 봤지……. 게다가 그놈이 날 기억한다잖아. 날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는 모양인데.”
원래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앞뒷면 같다고 했다. 사랑이 지나치게 깊어지면 미워하는 감정이 돋아나기도 하고, 반대로 증오의 대상을 너무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마는 존재가 인간이다.
마리엔은 카인 블랙우드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데에 이미 성공했다. 놈은 건방진 토끼를 혼쭐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놈의 그 결심을 불쏘시개로 삼는 거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거다. 남녀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정 붙기 전에 자신이 끼어들면 어떨까?
“웩.”
마리엔은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이거 생각보다 비위가 좋아야 하는 일이었다.
“집중을 해야…… 우욱!”
카인 놈이 오데트에게 한 짓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벽치기, 손목 낚아채서 끌어안기, 남들 보는 앞에서 일부러 혀 밀어넣고 키스하기.
“웨엑.”
또 뭐가 있더라. 아아, 그렇지.
영역 표시하듯이 동네방네 내 여자라고 티 내기, 본인 취향의 드레스 입히고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며 앞으로는 쭉 이렇게 입으라고 밀어붙이기, 약혼자 말대로 꾸미고 나간 오데트에게 귀족 청년들이 관심 보이니까 인상 쓰기, 질투심에 눈 돌아가기, 눈 돌아가서는 복도에서 폭력적인 키스하기.
“이 새끼는 감방 보내야 돼.”
마리엔이 치를 떨었다.
“소름 돋는 점은 저게 오데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저지른 짓이란 거야. 하……. 연인 아낄 줄도 모르는 버러지 놈. 남주인공 자리 박탈로 되겠어?”
마리엔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벌써부터 이성을 잃어선 곤란하다. 카인 놈의 관심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것. 일단은 그 문제에 관해서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흔히 빙의한 이에게 잇따르는 행운이 마리엔 디디에게도 임하면 좋겠다.
“한데 만일 작전이 성공해서 그놈이 날 좋아하게 되면 말이야. 오데트에게 했던 짓을 나한테도 하겠지?”
마리엔은 오데트가 아니다. 놈이 혀 밀어넣는 순간 앞니 닫아서 두 동강 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자신은 당분간 인내할 것이다. 오데트와 카인 놈의 계약이 깨지기만을 기다리며 바일레온을 전력 지원할 거다.
갑자기 바일레온 생각을 하니까 애틋한 한숨이 나왔다.
다정한 사람. 한없이 다정한 사람. 바일레온은 키스할 때 다짜고짜 혀를 집어넣지 않을 텐데. 그는 여태껏 키스를 해본 적이 없지만, 그가 하는 첫 키스는 본인의 성품만큼이나 부드럽고 달콤할 게 분명했다.
“앞으로 내가 당할 키스와는 하늘과 땅 차이겠지.”
혀 넣고 에벌레에벌레. 개중에 다행이라면 카인 놈이 결벽증에 가까운 청결함을 유지한다는 거다. 최소한 이는 닦고 하겠군. 마리엔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생각했다.
“고전적인 충격요법으로 가볼까?”
첫 만남부터 널 부숴버리겠다고 달려들던 인간이 느닷없이 구애를 퍼붓는다. 그럼 북부 공작은 어떻게 반응할까.
제정신 아닌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고 경악하려나? 좋다. 경악, 충격, 당황, 어이없음. 장기적으로 보면 다 긍정적인 반응이다. 아무튼 무관심하지만 않으면 된다.
마리엔은 두 주먹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상상도 못 한 매운맛을 카인 블랙우드에게 선사할 작정이었다.
그놈이 난생처음 당하는 방식의 구애에 속수무책으로 휘감기면 좋겠다. 계약 상대와 자꾸 엮이는 여자가 있다는 점에 불쾌해진 오데트가 얼른 카인 놈을 정리하면 좋겠다.
“그러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후다닥 비어스 경 등 뒤로 숨어야지.”
다정한 바일레온. 나만 믿어요.
내 이 한 몸 희생해서 당신에게 행복을 안겨줄게.
당신 소원이 곧 내 소원이니까요. 당신의 사랑이 이뤄지면 나도 뿌듯한 마음으로 원래 살던 곳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결혼식까지는 보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일 테지. 마리엔은 흰 예복을 입은 바일레온의 미소를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가슴 한구석에서 풀벌레가 찌르르 우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바일레온은 진심을 다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니까. 도와줘서 고마워요, 디디 보좌관. 예식 도중에 자신에게 잠깐 머물다가 지나갈 따스한 눈빛.
마리엔 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