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01)
바일레온은 놀랠 생각은 없었다며 사과했다. 마리엔은 그의 사과를 구실로 상황을 어물쩍 넘기려 시도했다.
그러나 바일레온에게 사과와 다시 듣기는 별개인 듯하다. 연인이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자연스럽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걸 보면.
“내가 누굴 질투한댔죠?”
“아…….”
어쩔 수 없다. 자의식 과잉 같아도 그냥 말해버리는 수밖에.
“이제 황태자가 되신 4황녀 전하요.”
“그걸 지금에야 알아챘어요?”
“……네?”
마리엔은 눈을 깜박였다. 농담이겠지? 근데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고는 하나, 바일레온의 눈빛만은 더없이 진지했다. 마리엔은 침착하게 표현을 골랐다.
“전하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은 비어스 경이에요. 두 사람은 십년지기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전하는 경의 첫사랑이자 오랜 짝사랑 상대고.”
바일레온이 멈칫했다.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다. 우습게도 그가 순순히 대답하지 않은 점이 마리엔에겐 약간의 위안이 됐다.
바일레온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만 했어도 제 입술이 닷 발은 나왔을 거다.
언제는 바일레온의 일편단심 속성에 빠져놓고, 그와 연인 사이가 되고 나니까 첫사랑이라는 말에도 속이 쓰리게 되다니.
연애란 사람을 얼마나 이상하게 만드는지!
“제가 전하를 질투하는 건 말이 돼요. 다재다능하지. 인내심 엄청나지. 끈기 있지. 게다가 언변도 뛰어나시고 미모로는 황궁 제일인 데다가 그 지략하며…….”
“마리엔, 전하 칭찬을 너무 길게 한다는 생각 안 들어요?”
“가만 계세요. 아직 안 끝났어요.”
가장 중요한 말을 안 했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에게 눈을 흘겼다.
“전하와 비어스 경은 말을 안 해도 다 통하는 것 같아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해서요. 그에 비해 저는 꽤 귀엽고 재치 있지만, 전하의 압도적인 능력에 비하면 하찮을 뿐이에요. 경과 알고 지낸 시간도 전하에 비하면 짧고…….”
이렇게까지 다 털어놓을 작정은 아니었는데. 문득 모든 게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일레온과의 관계, 오데트의 대업.
처음엔 발만 담가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정신 차려보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심이 되어 있달까.
“그러니까 제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전하를 질투하는 게 맞는데. 으음, 경이 전하를 질투한다고 하시니까.”
“이상해요?”
“네.”
바일레온이 웃었다.
“마리엔은 날 정말…… 좋기만 한 사람으로 보고 있군요. 비틀린 집착도 안 하고 남 질투도 안 하는 그런 사람.”
어쨌든 바일레온은 왜 자기가 오데트를 질투하는지 듣고 싶냐고 물었다. 마리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전하는 여자고, 마리엔도 여자예요.”
뭐지. 시작부터 이상한데.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지만 이건 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마리엔은 애써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서로 여자라서 통하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난 죽었다 깨어나도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죠.”
마리엔은 혼란스러웠다. 바일레온은 나랑 생리통에 관한 대화를 하고 싶은 걸까?
일찍 당겨서 해도 짜증 나고, 제때 해도 짜증 나고, 미뤄져도 짜증 나긴 매한가지라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어째서.
“게다가 마리엔은 전하께 너무 물러요.”
“그, 그건 무른 게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예요.”
“무서워하기도 하고 무르기도 해요. 무른 건 나한테만 그랬으면 좋겠는데……. 하긴, 이건 전하의 탓도 있어요. 마리엔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너무 잘 아세요.”
바일레온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빤히 보고 있는 앞에서 당신을 요리조리 구워삶는 전하를 보면 기분이 나빠요. 내 앞에서도 이러는데 내가 없는 곳에선 대체 무슨 말로 당신을 현혹하려나 싶고.”
“어…….”
“마리엔은 내 사람인데.”
“어, 네.”
“그럴 때면 전하께 마리엔을 빼앗긴 기분이거든요.”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눈만 깜빡이는 마리엔에게 바일레온이 물었다.
“생각보다 훨씬 유치한가요?”
마리엔은 얼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뇨. 전혀.”
“눈이 또 딴 데를 보는데?”
“오늘따라 하늘이 참 맑고 파래서요.”
바일레온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유치하면 그렇다고 말해도 돼요, 마리엔.”
“솔직히 말하면 유치하다기보다 그냥 좀 이해가 안 돼요. 저는 전하께 밉보이면 안 되니까 그러는 건데 그게 질투가 나신다니까.”
그가 마리엔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물었다.
“별별 것에 다 질투한다 싶죠?”
마리엔은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바일레온이 손가락으로 연인의 말랑한 볼을 콕, 찔렀다.
“그러게 누가 이렇게 귀여우랬어요. 보는 사람마다 당신을 탐내게 만들잖아요.”
“그으건.”
토끼 인형 같은 마리엔이 생긋 웃었다.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마리엔은 그나저나 무슨 일로 자길 찾았느냐 물었다. 바일레온은 창고에 갇혔을 때 한 약속을 기억하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블랙우드가 준 것보다 더 좋은 드레스와 보석을 당신에게 선물하기로 했잖아요.”
“설마 그게 오늘인가요?”
“네, 마리엔. 오늘이에요.”
바일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차를 현관 앞에 대기시켜놨어요. 바로 출발하면 돼요.”
◇ ◆ ◇
“와, 광장에 사람들 몰린 것 좀 봐. 공연이라도 하나 봐요.”
“그러고 보니 아까 하녀가 놀러 나가면서 말하더군요. 한 가족이 들어갈 만큼 큰 비눗방울을 만드는 공연자도 나왔대요. 3미터에 달하는 괴물 복장을 하고 있어서 눈길을 잡아끈다던데.”
“비눗방울요? 재밌겠다. 근데 비어스 경, 의상실 이름을 들어도 전 잘 몰라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비밀.”
“치, 안 넘어가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바일레온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뤼미에 드 샤샤 살롱이냐 물으니까 아니란다.
“블랙우드와 똑같은 곳에서 맞춰주기가 좀 그래요.”
그저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어디냐고 물어도 비밀이라거나 도착하면 알 거라는 답만 돌아왔다.
‘도대체 얼마나 비싼 곳으로 가려고 그래요? 이젠 무섭기까지 해!’
클로이즈가 수도에서 제일 비싸고 유명한 의상실은 뤼미에 드 샤샤 살롱이라고 했다. 한데 더 대단한 곳이 있단 말인가?
마리엔은 우리 혹시 이웃 나라를 약탈하러 가기라도 하는 거냐고 물으려다가 참았다.
‘그래도 바일레온은 이성적이기로 정평 난 사람이잖아. 설마 파산할 지경으로 드레스를 사들이겠어? 나도 적당히 맞춰주고 이번 기회에 드레스에 얽힌 불편한 마음을 털자.’
창밖으로 수도에서 제일 큰 미술관이 보이고, 마차가 그 앞에 멈추기 전까지만 해도 마리엔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 왔어요.”
얼떨떨한 상태로 내렸더니 바일레온이 마리엔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려 했다. 마리엔은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비어스 경, 잠깐만요. 오늘은 국경일이잖아요.”
마리엔은 굳게 닫힌 정문에 걸린 휴관 팻말을 가리켰다.
“닫혔어요.”
“아, 저건.”
“의상실은 핑계고 데이트하러 나오신 거예요? 아쉽지만 미술관이며 도서관도 다 휴관일 테니까 상점가로 가는 수밖에 없겠어요.”
바일레온이 의미 모를 웃음을 짓더니 마리엔에게서 팔을 뺐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 문에 대고 짧게 노크했다.
“비어스 경, 휴관이라니까…….”
덜컥.
마리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제복 차림의 관리인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재상님. 그리고 보좌관님. 아무쪼록 천천히 구경하십시오.”
바일레온이 어서 오란 손짓을 했다. 마리엔은 누가 볼세라 얼른 미술관으로 쏙 들어갔다.
“왜 그렇게 서둘러요?”
바일레온이 뒤따라오며 물었다. 그사이에 문은 닫혔고, 관리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환히 불 켜진 미술관에 바일레온과 단둘이 남았다.
“사람들이 미술관 문 연 줄 알고 따라 들어올까 봐서요. 오늘은 우리 둘만 들어올 수 있는 거죠?”
바일레온이 그렇다고 대답하며 팔을 내밀었다. 마리엔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재상 직권을 남용했거든요.”
“휴일인데 나오신 관리인님은…….”
“그 재상으로부터 특근 수당 조로 두툼한 봉투를 받겠죠?”
말이 특근 수당이지, 보통은 뒷돈이라고 한다. 바일레온은 직원 주머니에 뒷돈을 찔러주고 미술관을 전세 냈다.
어차피 휴관일이라 헛걸음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규칙 위반인 건 사실이다.
“비어스 경, 벌써부터 이러시면 어떡해요. 우린 전하의 측근이에요. 우릴 주시하는 눈이 많다고요.”
“마리엔, 이런 걸 융통성이라고 해요.”
“헉, 지금 그 표현마저 너무 자기합리화하는 특권층 같았어.”
바일레온이 나직이 웃었다.
“기억나요? 저번에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고 싶은 데가 있다고 했잖아요. 여기였어요.”
마리엔은 연인과 팔짱을 낀 채 아름다운 복도를 거닐었다. 미술관 내부는 국경일을 맞아 떠들썩한 바깥과 천지 차이였다.
소장품을 보존하기 위해 완벽하게 관리된 온도와 습도 속에서 또각또각 걷고 있자니 마리엔 저 또한 금빛 액자 속 미술품처럼 고상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동행한 바일레온은 큐레이터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하긴 바일레온은 그림을 잘 그리지. 오데트의 생일마다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고.’
그가 매혹적인 저음으로 이어가는 그림 설명이 어찌나 재밌는지. 마리엔은 평생 관심 없던 미술에 갑작스러운 흥미를 느꼈다.
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조각상의 방을 지나자, 이 미술관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 나타났다.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의 황족과 귀족 초상화가 벽을 따라 걸려 있었다.
‘다들 귀한 신분이라 그런가 자기애가 넘치시는구나. 제일 크고 화려한 방에 본인들 모습을 걸어놨네.’
이 방에서 가장 작은 작품이 문짝 두 개를 붙여놓은 크기다. 마리엔은 드레스의 물거품 같은 레이스 소매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집요함에 고개를 저었다.
그때 바일레온이 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 들었다.
“마리엔, 디자인만 골라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모름지기 초상화를 그릴 땐 남녀불문하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는 법이죠. 여기 이분들이 오늘의 의상 모델이에요. 300년 전 스타일도 있고, 외국 출신 황비가 모국 복식의 특성을 가미해 지은 것도 있어요.”
바일레온이 손에 쥔 연필을 까닥거렸다.
“내가 옆에서 받아 적을 테니 개수 제한 없이 마음껏 골라요. 그럼 마리엔의 치수에 맞춰서 의상실에서 만들어줄 테니까.”
마리엔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바일레온의 말을 듣고 나니 수십 개의 초상화가 걸린 이 방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여기에 초상화를 건 사람들은 죄다 황족과 고위 귀족이라 장갑 하나도 예사롭지 않건만, 바일레온은 무려 개수 제한 없이 마음껏 고르란다.
“물론 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