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07)
“한데 너, 리셰른이 어디 있는지 아니?”
신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입을 틀어막은 채 제자리에서 방방 뛰던 마리엔은 오데트의 질문에 밝게 대답했다.
“아뇨.”
오데트는 쌓여 있는 서류철 중에서 겉면에 ‘리셰른’이라 적힌 것을 건네주었다. 마리엔은 날듯이 달려가 서류철을 받아 들었다.
자료에 따르면 리셰른은 동부 해안가에 위치하였다.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은 연평균 사백사십만 골드. 항구를 통해 외국인도 자주 드나드는 만큼 사시사철 축제가 열리는 활기찬 지역이란다.
마리엔은 사백사십만 골드라는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다음 페이지에 이어지는 리셰른의 명소나 알아두어야 하는 가문, 유지, 그들 간에 얽힌 이해관계는 뒷전이었다.
“전하, 이대로라면 제 연봉은 이제 사백사십만 골드가 되는 건가요?”
“나한테 세금은 내야지.”
“세후…… 금액이라는데요?”
“그래? 내가 제대로 안 봤군. 그럼 사백사십만 골드가 네 것이야.”
“헉.”
솜털이 바짝 설 만큼 짜릿했다. 하루아침에 후작이 되어 호화 대저택을 갖게 됐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니. 마리엔은 종이 위의 숫자를 보고 또 보았다.
‘나 완전 부자야.’
이런 걸 벼락출세라고 하는 건가. 이런 벼락이라면 몇 번이고 맞겠다. 한편 오데트는 단꿈에 취해 있는 마리엔을 일깨웠다.
“그곳의 관리인이며 하녀장을 싹 다 교체해야 할 테지. 2황자의 수하들이니, 아랫사람을 쥐어짜서 제 이익을 늘리는 데만 능숙한 자들일 거야.”
“아.”
“너만 괜찮다면 내가 적당한 이를 보내주겠다. 수도에 사는 주인에게 보낼 보고서에 장난치지 않을 사람들로.”
“충성충성. 전 전하만 믿겠어요.”
사백사십만 골드의 아름다움에 취해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건만, 역시 오데트 님이 최고이시다. 마리엔은 서류철을 품에 꼭 안은 채 오데트를 바라보았다.
“이만하면 나도 성의를 보인 것 같은데, 넌 받을 게 남은 사람처럼 서 있구나.”
마리엔은 생긋 웃었다.
“전하께서 미천한 소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으니 저 또한 힘껏 보은하고 싶습니다.”
“비어스와 계속 어울려서 그런가. 너도 어째 점점 비어스처럼 말하네.”
“호호, 그런가요?”
“재상은 아첨인지 겸양인지 헷갈리는 방식으로 상대를 교란해서는, 원래 예정된 몫보다 훨씬 많이 받아내지. 방금 너처럼 그렇게 웃는 얼굴로 말이야.”
명재상 바일레온 비어스의 실리 외교에 비견되다니. 마리엔에게는 더없는 극찬이었다.
“그래서 그 보은을 어떻게 하려고?”
“내궁이 비었지 않습니까, 전하아.”
“짧게.”
“전하.”
마리엔은 주군의 말을 잘 듣는 토끼였다. 오데트의 지적에 끝을 길게 늘이며 아양 떠는 말투를 바로 버렸다.
“전하께선 일찍이 블랙우드 공작에게 정궁의 지위, 블랙우드 가의 후계자가 될 첫아이 인계 후 이혼, 100년 치 조세 면제권, 이 세 가지를 약속하셨지요. 후궁을 안 들이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솔직히 블랙우드 말고도 혼인동맹을 맺어야 할 가문이 제국 안팎으로 수두룩하여요. 문제는 이제 그 많은 후보자 중에서 누굴 골라 들일 것이냐인데요.”
마리엔은 적임자가 여기 있다는 듯이 가슴을 내밀었다.
“올해 제국의 꽃 특별심사위원이었던 제게 그 자릴 맡겨주신다면 뼈가 가루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상입니다.”
“…….”
“제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나요? 내궁 담당자로 일하고 싶어요.”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오데트는 한동안 말없이 마리엔을 쳐다봤다. 침묵이 길어지자 마리엔은 혹시 제가 선을 넘었나 하고 걱정했다.
내궁 담당자는 연수입 사백사십만 골드의 후작위보다 훨씬 가벼운 요구가 아닌가?
선선히 허락해줄 것 같았는데 왜 빤히 쳐다보기만 하지?
아니면 따로는 괜찮은데 둘 다 시켜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였나?
오데트 눈에 지나치게 탐욕스러워 보였다면 유감이다. 하나 마리엔은 둘 다 놓치기 싫었다.
내궁 담당자는 하늘이 저를 위해 내린 천직 같다. 그렇다고 후작위를 포기하기엔 마리엔 디디는 이미 마음만은 30년 동안 리셰른 후작이었던 듯해서 아쉽달까.
그런데 정작 오데트 입에서 나온 말은 영 딴소리였다.
“너도 말을 그렇게 조리 있게 할 수 있었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하. 방금 제 화술이 비어스 경을 닮아간다고 칭찬하셨으면서 그런 이상한 감탄을 하시다뇨.”
마리엔은 입술을 샐쭉거렸다.
“저야 늘 말을 조리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아니, 딱히 안 그런 것 같거든.”
오데트가 갑자기 작게 웃었다. 그녀는 마리엔에게 내궁 담당자가 될 각오는 되어 있냐고 물었다.
영향력으로 따지면 내궁 담당자는 마리엔이 받은 후작위보다 더 대단한 자리라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공작위보다 대단할 거라고. 단순히 미남 품평을 하는 보직이 아니란다.
“이제 미혼의 아들 가진 부모라면 다 네게 차를 대접하려 들 거야. 제 아들을 내궁에 넣어달라며 널 들들 볶겠지. 한편 내궁에서는 온갖 희한한 암투가 벌어질 테고…….”
오데트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 후궁들도 서로 피부를 상하게 하거나 불임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려나?”
부, 불임?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낯선 두 글자에 마리엔은 눈을 깜빡였다.
“성별이 바뀌어도 내궁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비슷하겠지…….”
오데트는 혼자 납득하더니 마리엔에게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어쨌든 난 심각한 사건이 아닌 다음에야 내궁 일엔 깊이 개입하지 않을 생각이야. 후궁들은 네 말대로 혼인동맹의 상대일 뿐이지.”
“네네.”
그래도 기왕 동맹을 맺는데 상대가 절세미남이면 좋지 않나. 마리엔은 혼자만의 생각을 가슴에 고이 묻었다.
“황제가 이렇게 나오면 다들 내궁 담당자를 붙잡고 늘어질 텐데……. 네가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지 궁금하기도 하네. 좋아. 리셰른 후작이 어떤 남자들을 내 침대에 들이미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꾸나. 재밌겠는걸.”
허락이 떨어졌다!
마리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리엔은 저만 믿고 맡겨달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오데트는 씩씩하게 문으로 향하는 마리엔의 등에 대고 말했다.
“참, 리셰른 후작은 수도에도 집을 한 채 갖고 있거든. 주소를 알려줄 테니 언제 시간 나거든 비어스와 구경 가보렴.”
나한테 집 한 채가 더 있다고? 못 살아. 나 심각하게 부자야.
마리엔은 살맛 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주 확실하게 체감했다.
◇ ◆ ◇
클로이즈는 마리엔이 후작위를 받았다는 소리에 낯빛을 달리했다. 영애가 호들갑을 떨 줄 알았던 마리엔의 예상이 빗나갔다.
“디디 보좌관님……. 아, 아니지. 후작님. 전하의 숨은 뜻을 모르시겠어요?”
역시 전하가 맞았구나. 물어보니까 양위 조서를 받았더라도 즉위식 전까지는 전하라고 부른단다.
그리고 오데트의 즉위식은 다름 아닌 내일이다. 심약해진 황제의 집무실에 쳐들어가 양위 조서 받아내기, 조서 발표, 새 황제 즉위식까지 고작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사흘을 위해서 오데트는 십수 년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것이다. 그러다가 기회를 잡자마자 단숨에 몰아붙여 복수를 완성하다니.
마리엔은 원작 여주님의 폭풍 같은 추진력에 새삼 감탄했다.
아무튼 오데트의 작위 하사에 숨은 뜻이 있다고? 그냥 내가 잘해서 한자리 내준 거 아냐? 마리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국법에 따르면 부부는 어느 한쪽의 성을 취하게 되어 있어요. 이때 부인의 성을 따르느냐, 남편의 성을 따르느냐는 중요치 않아요. 문제는 후작님과 저희 오빠처럼 두 작위가 충돌하는 경우인데요. 보통은 작위가 더 높은 사람의 성을 따라가죠.”
클로이즈의 목소리가 차츰 흥분으로 물들었다.
“그 말은 곧!”
클로이즈는 손에 쥔 레이스 부채를 착, 소리 나게 접었다. 다분히 연극적인 몸짓이지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저희 오빠가 리셰른 후작 부군이 되면요. 아, 오빠는 후작님만 있으면 다 좋은 사람이니까 당연히 후작님의 성을 따라가겠죠? 어쨌든 그렇게 되면요. 이후에 오빠가 물려받을 예정이었던 비어스 백작위는 자연히 계승 서열 2위에게 넘어가는데요.”
마리엔은 클로이즈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광채에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게 누구게요?”
“비어스…… 영애?”
“후후, 후후후후, 후후.”
클로이즈가 부채로 입을 가리면서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오빠가 없는 이 집에서는 제가 맏이죠. 그래도 남자인 가렛이 받아야 하지 않겠냐며 고리타분한 소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뭘 모르는 소리예요. 가렛은 얼굴이야 반반하지만, 저희 아버지를 닮아 은둔자 성향이 있거든요. 그런 애에게 비어스 백작위는 가당찮아요.”
“그래도 동생인데 평이 인정사정없군요.”
“사실인걸요? 본인도 동의할걸요? 그러니까 제 말뜻은, 은둔자인 가렛보다는 사교계의 빛인 제가 차기 비어스 백작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이며 바로 그게! 전하께서 의도하신 바라는 것이죠.”
막힘 없이 제 의견을 줄줄 말하던 클로이즈는 새삼 감격스럽다는 듯이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전하께선 제가 비어스 백작이 되길 원하세요. 세상에나, 나도 신임받고 있었어……!”
예비 시누이가 이렇게까지 백작위에 진심인 줄 몰랐다. 마리엔은 오데트가 제게 높은 작위를 내려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으면 어느 날 비어스 영애가 계승 서열 1위인 오빠를 치우는 일이 일어났을지도.’
마리엔은 여전히 허공을 쳐다보며 감격에 젖어 있는 클로이즈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날 밤.
마리엔이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을 무렵이었다. 또렷한 정신으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빗질을 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졸음이 쏟아졌다.
잠의 요정이 마법의 가루를 눈에 뿌리기라도 한 듯이 자꾸만 눈이 감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화장대에 얼굴을 부딪치기 직전까지 고개가 확, 내려갔다.
그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분명 아까까지는 없던 문제집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어디서 튀어나온 문제집인지 몰라도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가득했다.
제국의 역사, 연도표, 문항 위아래로 빼곡하게 붙여놓은 조그만 메모지.
‘뭐지? 헛것이 보이나?’
눈을 힘껏 감았다가 떠도 문제집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꺼운 문제집 위로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기만 했다.
‘코피?’
마리엔이 제 코밑을 더듬기도 전에 붉은 핏방울은 어두운 밤색으로 변했다. 문제집도 사라졌다. 마리엔은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친 소녀는 마리엔과 몹시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저에 비해 여덟 살 이상 어려 보였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에 염색물이 들기를 기다리던 소녀는 두꺼운 뿔테안경을 시험 삼아 눈앞에 대어보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날 알아보지는 않겠지?”
소녀는 쑥스러운 양 배시시 웃었다.
“선배님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