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10)
“오늘부로 리셰른 후작님의 전담 마부이자 경호원으로 배정되었습니다. 후작저로 거처를 옮기시기 전까지는 제가 매일 출근시간에 맞춰 이곳으로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를 찾는 손님이 현관 밖에서 기다린대서 나와봤더니 아는 사람이었다. 마리엔은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보기보다 생활력이 강하네요, 휴고.”
“칭찬 감사합니다.”
“소속이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거라더니 빈말이 아니었네.”
황태자궁에 마련된 마리엔의 호화 집무실을 둘러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는 생활력뿐만 아니라 행동력도 남달랐다.
“휴고는 재상부에서 내 경호원이었는데 이제 거기에 마부 일까지 하겠다는 거예요?”
“클럽 블루밍에서의 부업도 끝났으니까요.”
휴고가 쓸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진행한 위장잠입 건 중에 부가수익이 가장 높았던 일이었답니다…….”
저렇게나 아련한 여운이라니. 마리엔은 유감을 전했다.
“거길 망하게 해서 미안해요.”
“물론 망해야 하는 곳이긴 했습니다. 후작님도 격투장을 봤으니 아시겠지만, 거기선 사람이 예사로 죽어나갔거든요. 그 밖에도 차마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했죠. 관계자들이 처벌받아서 다행입니다.”
말은 모범답안처럼 하면서 왜 눈빛은 공허한 건데.
마리엔은 맨몸에 검은 실크 조끼 차림이던 그날의 휴고를 떠올렸다.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위안을 얻고 싶게 만드는 자태였다.
이미 본인 입으로도 말했지만 휴고가 전용구역에서 받은 팁만 해도 거금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후작저로 옮기기 전까지는, 이라니. 그 말은 휴고도 앞으로 후작저에서 나랑 같이 산다는 뜻이에요?”
“네, 다른 고용인들과 마찬가지로…….”
“그걸 비어스 경이 허락하던가요?”
휴고가 마리엔에게 친절히 호신술을 가르쳐줬다는 이유로 종이에 ‘휴고 해고’를 끄적이던 바일레온이?
작전 종료 후 클럽 블루밍을 나서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오라며 휴고를 콕 집어 말하던 그 바일레온이?
후작저에 휴고처럼 미끈한 금발 미남을 들이도록 허락했다고?
“전 더 이상 비어스 경의 지시를 받지 않습니다. 이제 재상님은 제 고용주가 아니기 때문이죠.”
휴고는 재상부의 마리엔 디디 제3보좌관을 경호하는 내용의 계약은 어제부로 해지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새 고용주인 마리엔도 모르게 소속을 옮기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누구요?”
“제가 이 근사한 마차를 누구에게서 받아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휴고가 제 등 뒤의 마차를 가리켰다.
로열블루 바탕에 문손잡이를 포함한 마차 테두리, 바큇살까지 은빛으로 빛나는 사륜마차는 황실에서나 쓸 것처럼 보였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지붕 장식 때문에 더 화려한 느낌이다. 절대 일상용은 아니고 무도회 갈 때나 타야 할 분위기랄까.
마차 문의 중앙에는 덩굴장미에 둘러싸인 새 두 마리를 형상화한 가문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거 은장이 아니라 백금입니다.”
휴고가 문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마리엔의 눈이 커졌다.
“배, 백금이요?”
“예.”
“그런 걸 마차에 달고 다녀도 돼요? 잠깐 세워놨을 때 누가 떼어 가면 어떡해.”
마리엔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화려한 지붕 장식을 올려다봤다. 그럼 저것도 백금이라는 소린가? 마차만 팔아도 한 재산 나오겠다.
“……폐하를 직접 찾아뵀군요.”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에 마리엔은 눈앞의 남자를 다시 봤다.
‘수완이 좋네.’
즉위식 이후로 오데트는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친부가 위신 때문에 벌여놓기만 한 일들을 처리하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릴 것이다.
물론 황제가 됐다고 해서 선천적으로 병약한 몸이 뿅, 하고 좋아질 리 없다.
그래서 수석시녀가 두 시간 간격으로 쏘른 홀에 쳐들어간다고 들었다. 일 중독 황제를 어르고 달래서 잠시라도 책상 앞을 떠나게 만든다고.
한데 휴고는 그 틈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갔을까. 정식 공무원도 아닌 그가 황제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바일레온의 이름을 팔았을까? 아니면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마리엔의 이름을 댔으려나? 어느 쪽이든 휴고의 수완이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든 최고책임자와 직접 얘기하는 게 빠르죠.”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휴고가 마차 문을 열었다. 그는 마리엔에게 내부도 구경해볼 것을 권했다.
이 마차는 공무용이다. 개폐식 지붕의 나들이용 마차, 지붕에 짐을 올릴 수 있는 장거리 출장용 마차, 좁은 길도 다닐 수 있는 2인승 마차가 추가로 지급될 것이다.
마리엔은 휴고의 설명을 흘려들었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 때문이다.
“휴고는 교활한 2황자 커플의 감시하에서도 온갖 기밀을 빼냈잖아요. 그런 인재에게 리셰른 후작의 연 수입 알아내기쯤은 일도 아니겠죠.”
마리엔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래선가요? 고용주를 바꾼 이유가? 비어스 경보다는 내 뒤로 줄을 서는 게 장기적으로 더 이득일 것 같았어요?”
“아닌데요.”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후작님의 연 수입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겠어요.”
“재상부 제3보좌관의 연봉은 알고 있었잖아요.”
“공무원 연봉과 귀족의 연 수입은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른 정보거든요. 후자는 가주의 세무사 정도나 돼야 파악 가능합니다.”
“어쨌든 방법을 알긴 아네요.”
네트 너머로 빠르게 공을 주고받는 듯한 대화가 잠시 중단됐다. 마리엔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휴고에게 미끼를 던졌다.
“십만 골드밖에 안 돼요.”
“…….”
“물론 십만 골드도 충분히 큰 금액이긴 하지만.”
“…….”
“생각보단 적죠? 폐하께서 후작위에 저택 두 채까지 줬는데 돈까지 많이 주면 너 감당 못 할 거라면서 금액을 깎으셨어요. 아마 나보다 더 버는 귀족이 넘쳐날 거예요.”
“……앞에 사백삼십만은 떼고 말씀하시네요.”
도저히 그냥 들어줄 수가 없었는지 휴고가 끼어들었다.
낚였구나, 요놈.
마리엔은 휴고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알면 안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면 좋잖아요. 왜 거짓말해.”
“사백사십만 골드라니.”
휴고는 여전히 딴청을 피웠다.
“나중에 구경이라도 시켜주세요. 대체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감도 안 오네요.”
자꾸 대답을 피한다 이거지? 마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우리 수완 좋은 금발 미남 경호원님의 목표는 나를 통해 내궁 들어가기려나?
하긴 마리엔의 측근이 되면 확실히 이점이 많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오데트가 하루에도 몇 번씩 호출하는 이가 바로 마리엔이니까. 마리엔 제 옆에 있으면 자연히 황제 오데트의 시야에도 노출된다.
‘요령 좋은 미남인 휴고라면 카인 놈이 정궁으로 있는 내궁에서 살아남을지도.’
마리엔은 앞으로 쏘른 홀에 불려갈 때마다 곱게 꾸민 제 경호원을 데리고 가야 하나 고민했다.
달빛 같은 은발의 황제와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인상적인 금발 미남.
“그림이 나쁘지 않아…….”
“무슨 그림이요?”
휴고가 웃자 보조개가 폭 패었다. 오늘따라 그의 눈빛이 평소와 좀 달라 보인다면 제 착각일까.
‘어쩌면 목표는 폐하가 아닌 나……?’
리셰른 가의 고용인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후작저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살던 곳에서 계속 가족들과 지내며 출퇴근해도 된다. 오히려 그쪽이 더 마음 편할 터다.
그러나 휴고의 선택은 마리엔과 한 지붕 아래 사는 거였다. 전담 마부이자 경호원이 고용주와 같이 살기까지 하면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자의식 과잉을 방지하자.’
또 다른 가정을 해보던 마리엔은 상대에게 들킬세라 얼른 머릿속을 비웠다.
이게 다 저 남자들 때문이다. 카인 블랙우드와 레슬리 아나이스.
전자는 마리엔이 첫 만남부터 대놓고 싫어했건만 어느 순간 카인 저 혼자 이상한 소유욕을 불태웠다.
그런가 하면 후자는 마리엔에게 약간의 흥미 정도만 품고 있으면서, 음란한 본성을 주체 못 하고 기회만 되면 귀여운 자매님이라는 둥 뻐꾸기를 날렸다.
특히 레슬리는 며칠 전에 쏘른 홀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오데트가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폐하의 즉위식 후로 처음 뵙는군요. 이 벚꽃을 닮은 머리카락과 속삭이는 입술이 무척이나 그리웠답니다, 자매님.”
그걸 본 오데트는 또 “후작의 매력이 치명적이긴 한가 보다.” 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구니 마리엔 제 감각이 좀 이상해질 만도 하다. 여기까지는 인정.
‘그래도 휴고도 날 좋아하나 의심하는 건 진짜 자의식 과잉이야.’
정신 차려야 한다. 휴고는 그저 똑똑한 사회인일 뿐이다. 힘든 계약직 두 개를 병행하는 걸 관두고, 돈 더 잘 줄 듯한 직장으로 이직한 거다.
‘무슨 등장하는 미남마다 죄다 날 좋아하는 세계관이냐고. 착각은 금물! 착각은 금물!’
마리엔은 스스로를 다잡았다.
“시승해보시겠습니까?”
휴고의 권유에 마리엔은 현실로 돌아왔다. 마침 오늘 방문할 곳이 있던 참이다. 이렇게 타이밍이 절묘할 수가.
걸어서 가기엔 먼 데라 전세 마차를 잡아타려 했는데, 무려 폐하께 마차를 하사받았으니 첫날 바로 써드려야겠다.
마리엔은 얼른 손가방을 챙겨 나와 마차에 올라탔다. 털썩 앉는 순간 엉덩이에 느껴지는 엄청난 쿠션감이라니!
좌석과 비슷한 높이의 발 받침대에 다리까지 올리자 부러울 게 없어졌다.
마리엔은 창턱에 팔 한쪽을 걸치고 씩씩하게 외쳤다.
“제국 아카데미로 가요!”
◇ ◆ ◇
이게 금의환향이라는 거다.
마리엔은 귀빈실 소파에 앉아 차를 홀짝였다. 테이블에는 갖가지 다과가 올라간 2단 트레이도 놓여 있었다.
아까 제가 교무처에 들러 졸업생의 재학 당시 학생기록부를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직원은 신분부터 밝히라고 했다.
이에 마리엔은 손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황실 수석보좌관 겸 내궁 총책임자
마리엔 디디 리셰른 후작
명함을 확인한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다음부터는 마리엔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헐레벌떡 교장실로 올라가는 직원, 그 직원을 뒤쫓아가며 무언가를 외치는 직원, 마리엔을 귀빈실로 안내하는 직원, 그리고 이동하는 중 외부인을 힐끔거리는 학생들.
똑똑.
귀빈실 문이 열렸다. 리셰른 후작이 아카데미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서둘러 내려온 교감 뒤로 셋이나 더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교무처장, 5학년 주임, 여자기숙사 사감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교장선생님은 외부 일정 때문에 아침부터 자릴 비우셔서 제가 대표로 내려왔습니다.”
교감이 양해를 구했다. 그는 차를 더 들 것인지 물었다.
마리엔이 괜찮다고 사양하자 테이블 건너편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선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경직된 미소를 지었다.
차를 거절했어!
거절하셨어!
어떡해?
흔들리는 시선에서 그들의 당황이 느껴졌다. 마리엔은 다소 의아스러웠다.
‘왜들 이렇게 바짝 긴장한담?’
단순히 귀빈을 대하기 때문이라기엔 뭔가 이상했다. 그때 교감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후작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