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18)
마리엔 디디님, 기억을 완전히 되찾으심을 축하합니다.
기념으로 깜짝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선물의 또 다른 이름은 ‘환장하겠네’입니다.
제 눈에만 보이는 문장이 허공에 짠, 하고 나타난 기분이었다. 마리엔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이모부, 어디까지 말했어?”
“응? 어, 그게…….”
“비어스 경, 어디까지 들으셨나요?”
“아, 그게요…….”
“이모?”
마리엔은 모리츠 부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조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리츠 부인이 말했다.
“재상님이 네 첫사랑을 똑 닮았다는 데까지 이야기했지!”
검은머리파뿌리 작가님과 몸이 바뀌어 있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가족을 보는 것은 햇수로 5년 만이다.
낡은 트렁크 속 추억을 돌려받은 지금, 마리엔은 가족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내려왔다.
보고 싶었다는 말은 무조건 금물이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울음보가 터져버릴 것 같으니까.
정 안 되겠으면 오늘은 가족들과 밝은 이야기만 하고 돌아가자고 다짐했건만.
‘정말 상상도 못 한 전개야. 눈물이 쏙 들어가다 못해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나려는데.’
마리엔은 이모를 보며 활짝 웃었다.
“우리 이모가 내 과거를 모조리 불어버렸구나.”
“쑥스러워서 그러니? 그렇지만 나쁜 이야기도 아니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뿐인데.”
“공부 이야기만 한 거 아니잖아.”
“공부 이야기를 주로 했다니깐. 어, 물론 네 한결같은 취향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지.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10년 전 그 남학생 이야기가 나와서…….”
마리엔이 끼어들었다.
“10년 전 남학생 이야기는 어쩌다가 나왔는데?”
“어? 그건……. 아, 맞다. 네가 어릴 때부터 잘생긴 남자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바일레온도 제 연인이 미남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그냥 아는 것과 연인의 가족에게서 걘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재확인당하는 것은 다르다.
마리엔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모, 오렌지 압수야. 나 이따 돌아갈 때 오렌지 다 갖고 갈 거야.”
“어머, 그걸 네가 왜 갖고 가니? 재상님께서 나 주신 건데.”
“압수야, 압수!”
“얘가 귀족이 되더니 벌써부터 악행을 저지르네.”
“먼저 악행을 저지른 게 누군데? 이모거든? 그리고 대대로 귀족이었던 비어스 경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고.”
모리츠가 바일레온에게 조용히 한마디 건넸다.
“저희 마리엔과 결혼하려면 이런 정신없는 분위기에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바일레온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이런’ 분위기의 집에서 나고 자랐답니다. 정신없기로 따지면 비어스 가가 더할걸요. 일단 인원수부터 많으니까요.”
“호오.”
모리츠는 의외라는 듯 반응했다.
“재상님이 워낙 점잖으셔서 가족분들도 비슷한 줄 알았지요.”
“다들 모리츠 씨처럼 생각하시죠. 그래서 전 가끔 제가 비어스 가의 별종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가끔이요?”
말끝을 슬쩍 올리는 모리츠는 조금 즐겁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바일레온이 제 대답을 정정했다.
“실은 매일이요.”
“헛허허.”
“조금 더 어렸을 땐 확실히 그랬죠. 그게 한…… 열 달쯤 전인데요.”
“재밌군요, 재상님. 아주 재밌어요.”
바일레온과 모리츠가 미소 띤 얼굴로 속닥속닥하는 동안, 조카와 이모 사이에선 높은 언성이 오가고 있었다.
마리엔은 모리츠 부부가 끝내 깨닫지 못한 진실을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이모는 아직 그 남학생과 비어스 경이 같은 사람이란 걸 모르나 봐. 근데 모르는 것치고 내 과거를 상당히 잘 털어버린 듯하네.”
“……뭐?”
모리츠 부인이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
“……뭐라고?”
관망 중이던 모리츠도 얼떨떨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난 철면피처럼 비어스 경을 다락으로 데리고 가는 수밖에.”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팔짱을 끼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비어스 경, 따라오세요. 보여드릴 게 있어요.”
모리츠 부부는 마리엔과 바일레온이 다락으로 올라가고 난 후에야 서로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마리엔이 좋아한 남학생과 재상님이…… 같은 사람이라고?”
◇ ◆ ◇
마리엔은 다락방 문을 닫기 직전까지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
새침하게 내리깐 눈이며 야무지게 다문 입술이며.
표정만 보면 바일레온의 에스코트를 받아 무도회장으로 들어서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달칵.
그러나 문을 닫기 무섭게 마리엔은 연인의 팔을 놓고 낡은 트렁크 뒤로 달아났다.
‘이모 미워. 이모 미워. 이모부도 똑같아. 이모부랑 이모 완전히 환상의 짝꿍.’
이 정도면 잡화점 문밖에다 안내문을 내걸어야 하지 않을까?
환영합니다.
사람 보는 눈썰미는 없으나 물건은 좋은 것으로 들여놓는 모리츠 부부가 운영하는 잡화점입니다.
이 가게의 장점은 1년 넘게 매주 들락거려도 손님의 신상정보를 캐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단골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한다네요!
마리엔으로서는 정말이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둘이 동일인임을 몰라? 갈발 녹안의 미소년이 갈발 녹안의 미남자로 컸잖아. 키가 훌쩍 더 자라고 어깨가 더 넓어지고 가슴근육이 더 탱탱해졌을 뿐인데. 그 밖에는 크게 변한 게 없다고.’
이모는 바일레온처럼 숨이 멎을 만큼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남자가 하늘 아래 둘이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엇보다 저 눈썰미로 어떻게 가게를 20년 가까이 꾸려온 거지?’
놀랍게도 모리츠 잡화점은 꾸준히 잘되는 편이었다.
점주가 절 알아보길 원치 않는 극극극내향인 손님이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그리고 그런 손님이 죄다 모리츠 잡화점을 찾는 모양이고.
‘다 좋다 이거야. 한데 바닥에 떨어진 내 사회적 체면은 어떡하라고!’
마리엔은 몸을 웅크렸다. 담요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럼 전 머리끝까지 담요를 뒤집어쓰고, 바일레온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대화할 것이다.
하나 세상은 마리엔 디디에게 잔인했다.
이 넓은 다락에서 제 쪼끄만 몸 하나 숨길 데가 없다니. 담요 비슷한 덮개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리엔은 쪼그린 무릎 위로 두 팔을 얹고는 거기다가 얼굴을 파묻었다.
“마리엔, 우는 거 아니죠……?”
바일레온이 마리엔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마리엔은 푹 숙인 고개를 필사적으로 도리도리 저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이번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바일레온은 연인이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말없이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기. 원래 제가 잘하는 일이라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오 분쯤 지났을까.
마리엔은 영원히 트렁크 뒤에 쪼그리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반만 들어서는 바일레온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언제나 해말갛기만 한 마리엔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갰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까지 귀여울 수가 있어요?’
아마 마리엔은 제 연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우선은 모르게 두는 편이 좋겠다.
왜냐면 마리엔은 지금 토끼굴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하고 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연인으로부터 귀엽다는 말을 들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터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지.
“이제 조금 얘기할 기분이 들어요?”
“으아니요…….”
마리엔이 웅얼거렸다. 너무 귀엽게도 발음이 뭉개질지언정 대답만은 꼬박꼬박 했다.
“그럼 더 기다릴게요.”
“일하는 도중에 나오셨잖아요. 천년만년 기다리시게 할 수 없어요…….”
“왜 없어요? 난 마리엔의 연인인데. 연인에게 그 정도는 기다려달라고 해도 돼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마리엔이 입술을 샐룩거렸다.
“이 수치심이 다 사라지려면 진짜 천년 정도 걸릴 거라고요.”
마리엔은 겨우 반쯤 들었던 고개를 도로 파묻으려 했다.
“이모한테 전부 들으셨다면서요. 말 한마디 안 건네고 혼자 좋아하다가 진로를 완전히 바꿔서는 비어스 경만 따라다니다니. 절 섬뜩한 스토커라고 여기시면 어떡해요…….”
당신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당신을 섬뜩하게 여길까 봐.
나의 사랑스러운 마리엔.
아직도 나란 사람에 대해서 잘 몰라요?
“글쎄요. 난 아까부터 내 잘생긴 외모에 감사하는 중인데요.”
다시 땅굴을 파고 들어가려던 마리엔이 분홍색 눈썹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터다.
“물건 사러 온 나를 지켜보기만 하면서 좋아했다는 것은. 음, 어쨌든 이 얼굴로 마리엔을 반하게 만든 거니까…….”
마리엔이 눈을 깜빡였다.
“다행이에요.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새삼 감사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제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전혀요.”
“전 비어스 경이 이상해요.”
바일레온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비슷한 형태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나보다 힘든 시간을 거쳐서 끈기 있게 내 곁으로 와주었다는데. 바일레온 비어스가 오싹해하겠어요?”
“…….”
“좋아 죽지.”
“……역시 이상해.”
바일레온은 또다시 낮게 웃었다.
“맞아요. 난 이상해요. 동시에 아주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죠.”
당신이 내 연인이니까.
마리엔은 이걸 좋다고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린단 얼굴로 잠깐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까 보여줄 게 있다고 하지 않았냐는 바일레온의 질문에 날카로운 숨을 들이쉬었다.
“원래는 좀 더 진지한 분위기에서 알려드리려고 했는데요.”
마리엔은 트렁크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가 낡은 트렁크 뚜껑을 열 때까지만 해도 바일레온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짐작하지 못했다.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으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은 찰나, 마리엔이 다급히 외쳤다.
“안 돼요. 그건 나중에 보세요. 더 나중에.”
이것부터 살펴보라며 그녀가 내민 것은 두 권의 노트였다.
“둘 다 ‘마리엔’이 쓴 거예요.”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차이점을 알아보시겠어요?”
바일레온은 노트에 빼곡한 필기를 들여다봤다. 둘 다 동글동글한 마리엔의 글씨체였다.
왼쪽은 눈앞의 마리엔이 쓴 게 확실하다. 오른쪽은 언뜻 비슷하나 미묘하게 달랐다.
저는 이런 글씨체를 최근에 본 기억이 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바일레온은 낮에 받은 소포 포장지의 일부를 안주머니에서 꺼냈다.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잘라내 따로 보관해둔 터다.
그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가 적힌 포장지를 오른쪽 노트에다 갖다 댔다.
글씨체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오른쪽 노트의 주인이 마리엔을 사칭해서 제게 어릴 적 그녀의 초상화를 보낸 자다.
‘그런데 이것도 마리엔이 쓴 거라고?’
한편 마리엔은 바일레온이 꺼낸 낯선 종이 쪼가리를 보고 의아해하던 차였다.
한데 거기엔 이모네 주소가 적혀 있었다.
바일레온은 필적을 대조하는 수사관처럼 종이 쪼가리를 오른쪽 노트에다 가져다 댔고.
두 글씨체는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처럼 딱 들어맞았다.
“바일레온.”
마리엔은 연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이,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