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19)
“이모!”
마리엔은 다락 계단을 다다다 내려갔다. 어른들이 봤으면 계단에서 뛰면 안 된다고 한소리 했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이모! 이모부! 이모!”
모리츠 부부는 여전히 주방에 앉아 있었다. 마리엔을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약간의 주저함이 묻어났다.
말도 못 붙였던 한때의 첫사랑 따로.
나이 들어서 만난 현재의 사랑 따로.
각기 별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우리 조카는 이 나라 재상의 오랜 스토커였다.
점찍은 대상을 무려 10년 동안 은밀히 따라다닌 끝에 결국 손아귀에 넣고 만.
‘마리엔, 그렇게 안 봤는데…….’
‘이모랑 나란히 앉아 오렌지나 까먹던 애가…….’
‘어쩌다가…….’
‘물론 재상님이 드물게 잘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10년을.’
‘10년을.’
소리 내서 말만 안 하면 뭐 해? 무슨 생각 중인지 훤히 보인다고요.
마리엔은 속내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제 특징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조카를 그만 경계하시고!”
“우, 우리가 언제.”
“널 경계했다고.”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이젠 한 문장을 나눠서 번갈아 말하고 있다.
마리엔은 모리츠 부부에게 사흘 전 재상부로 소포를 부쳤냐고 물었다. 정확히는 바일레온에게 제 초상화를 보낸 게 그들이 맞냐고.
“아니, 작년에 네가 날짜까지 딱 정해주면서 부치라고 하지 않았니. 근데 그게 네 초상화였어?”
“내용물은 확인 안 한 거야?”
“안 했지. 할 리가 없지. 네가 처음부터 포장까지 다 한 물건을 건네줬잖니. 뜯어보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으면서.”
“아하.”
미스터리는 해결되었다. 그것도 깔끔하게.
마리엔은 방긋 웃었다.
소포 역시 검은머리파뿌리 작가님이 안배해두신 거였다.
아마 이쯤이면 마리엔과 바일레온의 관계도 많이 진전됐겠지. 연인의 비밀을 슬슬 공유받을 때랄까.
‘수고를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바일레온과 훨씬 수월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다.
바일레온도 과거의 인연을 어느 정도 떠올린 후에 마리엔을 따라서 온 거니까.
한결 기분이 좋아진 조카와 달리 모리츠 부부의 경계심은 한층 강해졌다.
“트렁크와 마찬가지로 그땐 영문 모르고 받아뒀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직 교제하기도 전의 사람에게 네 초상화를…….”
“미래의 연인에게 보낸다, 뭐 그런 건가…….”
마리엔은 눈을 도르르 굴렸다.
“아, 말끝 좀 그만 흐려! 비어스 경은 내막을 다 알고도 괜찮다고 했다니까? 어쨌든 나 다시 올라가요. 방해 금지.”
마리엔이 자리를 뜨자마자 모리츠 부부는 아까 느꼈던 기시감을 재차 느끼며, 입을 모아 중얼거렸다.
“다 알고도 괜찮다니 재상님도 보통 이상한 분이 아니시네…….”
◇ ◆ ◇
마리엔은 오데트가 제 비밀을 알고 있다는 말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하면서 깨달았는데, 오데트가 제게 하만 왕국의 책을 낭독하게 한 것이 뜻밖의 도움으로 작용했다.
제국 내에서 출판된 책이란 책은 다 읽어본 듯한 바일레온.
그건 마리엔 혼자만의 착각이나 콩깍지가 아니었던 거다.
책 제목을 말했더니 이제껏 조용히 듣고만 있던 바일레온이 말했다.
“나도 그 책 읽어본 적 있어요.”
“정말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더더더 쉬워지는데. 와……. 이래서 선생님들이 자꾸 책을 읽으라고 하셨나 봐요.”
이후에 마리엔은 클로이즈가 푹 빠져 있는 로맨스 소설이 저쪽 세상에도 존재하는 장르라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빙의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입에 올렸다.
제목도 처음으로 언급했다.
“비어스 경 같은 이를 만년 서브남이라고 불러요. 서브남은 서브남주의 줄임말인데요. 말 그대로 남주인공에 버금가는 조연을 뜻해요.”
마리엔은 최대한 담담하게 이어갔다.
“여주인공의 소꿉친구, 부드러운 갈색 머리, 전장을 누비는 무관이 아니라 책상 앞에서 일하는 문관, 온화한 성정……. 이렇듯 절대 남자주인공이 될 수 없는 조건을 다 갖춰서 경의 앞에 ‘만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거고요.”
그는 10년 동안 오데트의 곁을 지켜왔지만, 정작 오데트가 강렬히 끌린 상대는 동맹 파트너 카인이다.
마리엔은 그 점이 너무 속상했다고 털어놓았다.
“바일레온 그대의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그대는 안 돼. 폐하께서 싫다고 한 모든 부분이 전 좋았어요.”
물론 이젠 저도 어째서 오데트가 바일레온을 거절했는지 안다.
오데트는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동맹 파트너로 원했다.
일에 감정을 섞지 않고 본인을 협상 상대로만 대할 사람. 피붙이가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만에 하나 계획이 실패할 경우 상대의 가족까지 엮여서 반역죄로 처단당할 테니까.
남자가 영주라면 황실의 군대가 들이닥치는 날, 성 전체가 짓밟히고 불탈 것이다.
그 정도 각오가 서 있어야 했다. 오데트 로즈의 동맹 결혼 상대가 되려면.
그러므로 바일레온은 탈락이었다.
오데트는 좋은 남편이 안겨주는 행복을 바란 적 없으니.
좋은 남편이 되어줄 게 분명한 좋은 사람, 더군다나 화목한 가족까지 딸린 좋은 사람은 그녀의 남편 후보군에서 제일 끝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했다.
자, 그러니까 말을 정확하게 해야겠지.
오데트가 싫다고 한 당신의 모든 점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여러모로 다행이라고.
“제가 블랙우드 공작의 머리카락에 집착한 이유를 아직 안 알려드렸죠? 그것도 책에 나온 내용이에요. 공작은 머리카락을 자르면 힘을 잃어요. 그게 그의 비밀이고요.”
“머리카락과 힘이…….”
“선뜻 믿기지 않으시죠? 참, 블랙우드의 비밀은 폐하도 알고 계세요. 저번에 제가 다급한 나머지 발설해버려서요.”
바일레온은 뭐가 그리 다급했냐고 물었다.
이에 마리엔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연인의 망설이는 기색을 바일레온이 알아차렸다.
“방금 마리엔은 우리가 책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고백했어요. 블랙우드 공작의 머리카락을 자르면 그가 괴력을 잃는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나요?”
네.
마리엔은 속으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완전, 네.
“어……. 왜냐면 그때 블랙우드가 동맹 계약서의 조건을 다 포기할 테니까 저를 정부로 달라고 폐하께 청해서.”
“…….”
“숨 안 쉬고 말하기 힘드네요.”
“…….”
“비어스 경, 괜찮으세요?”
바일레온의 녹색 눈동자에 분노로 감지되는 기운이 끓어올랐다. 그가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마리엔의 연인으로서의 자아와 재상으로서의 자아가 충돌 중이에요. 마리엔의 연인으로서는 지난여름에 못다 갚은 복수를 제대로 하고 싶고.”
바일레온이 카인의 이름을 잘근잘근 씹듯이 발음했다.
“카인 블랙우드…….”
하나 마리엔은 영 엉뚱한 포인트에 꽂혔다. 자아 충돌이란 그의 말에 무도회장 피습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마리엔에게 있어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에 대단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아무런 유감이 없었다.
그래서 마냥 해맑게 외칠 수 있었다.
“연인과 재상의 입장 충돌! 꼭 저번의 무도회장에서처럼요?”
바일레온의 안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듯이 보였다.
“혹시 마리엔은 그때도 일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어요?”
“결과만 알고 있었어요. 4황녀 전하에게 달려드는 습격자를 막으려고 비어스 경이 끼어든다는 것까지만요. 따지고 보면 저도 그때 경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었으니까.”
마리엔은 연인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더 환하게 웃었다.
“우리 둘 다 똑같았다고 치죠.”
“아니에요. 내 잘못이 훨씬 커요.”
바일레온은 다시 제대로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데 그에 앞서 제가 당시 오데트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야겠다고 했다.
“폐하께선 이미 마리엔을 눈속임용으로 결정했죠. 그렇게 결정한 폐하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었어요. 재상 바일레온에게 얘기해서 계획을 더 철저하고 안전하게 만들까. 아니면 재상에게는 감추고 블랙우드에게 재상을 힘으로 잡고 있다가 적시에 놓아주라고 할까.”
오데트는 바일레온에게 제 계획을 숨긴다면 다시는 그가 제 편에 서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바일레온은 오데트가 한번 결정한 이상, 어떤 방법을 동원한들 제 주군의 뜻을 꺾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오데트의 계획을 적에게 노출이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난 이런 걸 알고 있었지만 마리엔은 몰랐잖아요. 그러니 내 잘못이 더 클 수밖에요.”
“전 정말 괜찮은데……. 폐하는 본디 그런 분이고, 비어스 경도 최대로 애썼잖아요.”
마리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제가 사과를 받아들여야 우리 다정한 바일레온 님께서 마음의 짐을 좀 더시겠죠?”
바일레온이 흐린 미소를 지었다. “당신 눈이 빨개요.”라는 그의 말에 마리엔은 어느새 제 눈가도 바일레온처럼 촉촉해졌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두 사람은 모리츠 부부가 더 큰 혼란에 휩싸이기 전에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바일레온이 먼저 다락방 문을 열고 앞장서서 내려갔다.
“비어스 경, 좀 뜬금없는 질문인데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마리엔이 코를 훌쩍였다.
“물론이죠.”
“정말 혼전순결주의자세요?”
하마터면 바일레온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 ◆ ◇
“비어스 영애, 안녕하세요.”
“비어스 영애, 오랜만에 뵙네요. 폐하의 즉위식 이후 처음이죠? 우리 언제 차라도 같이 마셔야 하는데.”
“비어스 영애는 오늘 어쩐 일로 황궁에 오셨나요?”
클로이즈 비어스는 사교계의 꽃이다.
언제부터 그랬냐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사교계에 데뷔한 후부터 쭉 그랬다.
다들 그녀의 오빠 바일레온을 좋아했고, 클로이즈를 좋아했다.
해사한 웃음을 띤 명문가 출신의 영애.
사교계에 갓 입성한 데뷔탕트답지 않게 깐깐한 귀부인들의 말 상대도 곧잘 하는 데다 예법에도 정통했다.
당연히 데뷔 직후부터 혼담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에 대한 클로이즈의 대답은 일관적이었다.
뜻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열여섯 살인 그녀가 미혼의 즐거움을 더 만끽하고 싶은가 보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된 후에도 클로이즈의 답은 한결같았다.
열여덟 살, 열아홉 살일 때도 똑같았고 스무 살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클로이즈가 스물한 살이 되자 사교계 사람들은 비로소 모종의 사실을 받아들였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데뷔 전부터 클로이즈를 제 며느릿감으로 탐내던 도브레 자작부인이 드디어 미련을 거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작부인은 그 사실을 인정한 최후의 1인이었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비어스 영애의 관심사는 본인의 결혼이 아니라 남의 결혼임을 말이다.
“후후.”
짝짓기 광인 클로이즈 비어스.
연애가 시작되려는 냄새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자.
당사자들조차 서로를 향한 호감을 자각 못 했을 때도 멀리서 지켜보던 클로이즈는 알고 있었다.
물론 광인 타이틀은 이 정도로 획득할 수 없다.
클로이즈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려는 핑크빛 기운을 감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접점 없는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렇게 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