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20)
5년간 서른세 쌍이다.
매해 최소 여섯 쌍의 부부가 클로이즈 비어스를 통해 탄생했다는 뜻이다.
상류층의 결혼은 재산과 작위가 걸린 중대사임을 고려하면 클로이즈의 매칭 성공률은 황실에서도 주목할 만한 수준이었다.
“클로이즈 비어스, 나이도 어린 영애가 굉장한 중매 실력을 지녔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3황비가 클로이즈를 내궁으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바다 건너 동대륙엔 이런 속담이 있다지.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하면 뺨이 세 대라고. 들이는 공에 비해 욕먹기 십상인 일이란 뜻이란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선인의 지혜가 돋보이는 속담이군요.”
“널 부른 이유는 내 아들에게 걸맞은 짝을 찾아낼 수 있나 해서야. 네가 진정 훌륭한 2황자비 후보를 데려온다면 후하게 보상하겠다.”
황위 계승권을 가진 황자의 결혼을 진행해볼 수 있다니.
자칫 흥미롭게 들리기 쉬운 제안이었다.
2황자는 수려한 미남이고, 심복에게 통 크게 베풀며, 매너가 두루 좋다는 평판을 지녔다.
언젠가는 이복형을 꺾고 새 황태자로 책봉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2황자비 후보를 찾기란 클로이즈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제가 별로 동하지 않는 데에 있었다.
‘왜일까?’
제안을 들은 순간 느낌이 딱 와야 하는데, 미남 황자의 신붓감 물색이라는 얘길 들어도 따분하기만 했다.
모범 답안이 이미 나와 있는 이야기라 그럴 터다.
‘느껴지지 않아. 핑크빛…….’
3황비는 로맨스를 바라지 않는다. 정적인 황후 측이 움찔할 만큼 위세 드높은 가문에서 자란 영애, 똑똑하고 눈치 빠르면서도 시어머니에게 순종적인 며느릿감을 원할 뿐이다.
‘재미없어…….’
신분 차를 뛰어넘는 사랑이 얼마나 재밌게요.
복도에서 마주친 맞선 상대의 형제 또는 자매에게 꽂히는 맛은 또 어떻고요.
착각과 오해!
황궁의 수석 주방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요리도 그것만큼 군침이 싹 돌진 않을걸요.
‘3황비께선 내 성공률만 봤지, 그 이면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내막은 모르시나 봐.’
격이 맞는 서른세 쌍의 귀족 부부?
틀렸다.
어마어마하게 흥미로운 서른세 권의 로맨스 소설이다.
질투의 신맛, 설렘의 단맛, 눈물의 짠맛, 위기의 매운맛, 거기다가 균형을 잡아주는 극소량의 쓴맛까지.
‘이런 요소는 무시하고 냅다 내 눈에 찰 만한 며느리 후보를 데려오라 하시면…….’
클로이즈는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원래 광인이란 그런 것이다.
실패할 시 뺨 세 대 맞는 수준이 아니라 다리 하나가 잘리더라도 마음이 동한다면 뛰어들게 돼 있다.
제대로 된 보상?
필요 없다.
상대가 마음에 드는데도 짐짓 아닌 척하면서 표정을 관리하는 두 남녀를 구경하는 것 자체가 제겐 최고의 기쁨이니까.
어쨌든 회상은 여기까지다. 클로이즈는 레이스 부채를 살랑거렸다.
“당시에 요령 좋게 거절하길 잘했지. 하마터면 애먼 영애의 인생을 망칠 뻔했잖아. 역시 광인은 광기가 이끄는 방향으로만 가야 해.”
“아, 비어스 영애를 여기서 뵙는군요.”
그때 휴게실에서 나온 귀족 남자 여러 명이 클로이즈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바일레온 또래의 한 남자는 마침 잘 만났다는 양 품에서 명함첩을 꺼냈다.
“비어스 영애, 혹시 독서 토론에 관심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긴 남자 회원만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아뇨. 그럴 리가요. 저희 모임은 성별 무관하게 가입 가능하답니다. 비어스 영애를 회원으로 모시게 된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음, 고민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클로이즈는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지나갔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은은한 미소는 남자들과 멀어질수록 확신의 웃음으로 바뀌었다.
“후후후.”
방금 제게 명함을 건넨 남자는 가입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독서 토론 모임의 운영진 중 한 명이다.
남자는 아까 성별 무관하게 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로이즈가 수첩에 기록해놓은 바에 따르면 저 모임은 원래 남자 회원만 받는다.
적어도 클로이즈 비어스에게 초대 의사를 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금녀의 구역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인물이 되는 걸까.”
독서 토론 모임 자체는 썩 끌리지 않았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회원을 성별로 가려 받는지.
보나 마나 수백 년 전의 남자 작가가 쓴 고리타분한 책을 두고 열을 올리는 분위기일 게 분명했다.
“그럴 시간에 로맨스 소설을 더 읽고 말지. 최소한 그건 내 인생을 즐겁게라도 해주거든.”
모임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는 점은 중요했다.
저들이 기존의 규칙을 바꾸면서까지 클로이즈를 영입하려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차기…… 비어스 백작……!”
클로이즈는 항상 인기가 많았다. 하나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건 역시 마리엔이 후작위를 받고부터인 듯하다.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후작님이 차기 비어스 백작부인이 되는 게 아니라 오빠가 리셰른 후작 부군이 될 거라고.”
온화하고 다정한 남자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가.
일단 제 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연인을 향한 시선에서 달콤한 꿀 냄새가 느껴진다고 하면, 누군가는 분명히 과장이 심하다며 웃겠지?
그 웃음을 멈추게 하려면 제 오빠 바일레온을 보여주면 된다.
자,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킁킁.
나죠, 꿀 냄새?
심지어 제법 찐득거리죠?
“가만 보면 눈도 못 떼고 손도 못 떼는 것 같아. 언제라도 시커먼 독수리가 날아와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후작님을 채어 갈 듯이 군다니까.”
설령 그런 상황이 발생한들 마리엔은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텐데 말이다.
“후작님은 토끼 같은 순발력으로 몸을 피하실 거야. 무도회장 피습 사건 때도 활약이 대단하셨다고 들었어. 당시에 몸을 피하기 바빠서 내 눈으로 못 본 게 한이지만……!”
여하튼 바일레온은 아직 마리엔과 연인 관계임을 공표한 적이 없다.
다만 온 세상이 다 알도록 행동했을 뿐이다.
“후후, 나야 좋기만 한걸. 혈육이 더는 가망 없는 짝사랑에 목매지 않지. 거기다 예비 새언니는 폐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고.”
더구나 두 사람의 연애는 어찌나 파란만장한지. 옆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응?”
클로이즈는 복도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순간 제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왜 저런 차림으로?’
앞섶을 여미지 않은 실크 가운 사이로 맨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의는 잠옷으로나 적당한 통 넓은 검은 바지였다.
옷을 그렇게 입었는데 신발이라고 제대로 신었을 리 없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죽 슬리퍼가 바닥에 끌렸다.
당연히 맨발이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이지?’
이 시간까지 늦잠을 잤을 순 있다. 빨리 일어나라고 그를 채근하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귀족 나리께서 늦잠을 주무시겠다는데 뭐.
그렇지만 대낮의 황궁을 저런 모습으로 활보하는 것은 좀 많이 곤란하다.
‘나처럼 순진무구한 귀족 영애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클로이즈는 저도 모르게 레이스 부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를 복도에 멈춰 서게 만든 자는 유유히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감췄다.
클로이즈 비어스.
로맨스 소설을 탐독하는 짝짓기 광인인 동시에 황실 수사관으로 이름을 떨쳤던 폰테 후작의 후손이다.
핏줄은 못 속이는 법이라고 해야 하려나.
‘저렇게 수상한 모습으로 어딜 가는 걸까?’
클로이즈는 발소리를 죽인 채 그의 뒤를 밟았다.
모퉁이 너머를 빼꼼 내다보자 가까운 방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틈은 대략 손가락 두 마디쯤.
클로이즈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살핀 후, 조심스레 방문으로 다가갔다.
제가 알기로 여긴 황궁 시녀들이 휴게실로 썼던 곳이다.
잠깐 짬이 나서 눈을 붙이려는데 숙소까지 가기엔 너무 머니까 이 방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고 들었다.
왜 과거형이냐면 이제 더는 시녀 휴게실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황궁엔 이처럼 노는 방이 많았다.
‘다른 노는 방과 이곳의 차이점이라면…….’
클로이즈는 문틈에 눈을 갖다 대기 전에 재차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
‘파티션으로 가려놓은 침대와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있어서 밀회 장소로 애용된다는 점이랄까.’
그가 정말 이 방으로 들어갔다면 클로이즈는 그의 밀회 상대가 누군지 꼭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야겠어. 왜냐면 이건 내 전문분야니까!’
방 안에 있는 남자가 제 숨소리를 감지할까 걱정스러웠다. 클로이즈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 정도로 진심이었다.
‘이 각도에서는 사람이 안 보이는데.’
아주 쪼끔만 더 열어볼까? 어차피 이곳에 밀회를 즐기러 온 이상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 들키겠다 싶으면 왔던 길을 얼른 되돌아 달아나면 된다.
모퉁이만 돌면 염탐꾼을 잡으러 뛰어나온 자의 시야에서 1차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클로이즈에게 묘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
제 머리카락은 마리엔처럼 멀리서도 눈에 띄는 딸기우유 색이 아니다. 제 ‘평범한’ 갈색 머리는 신원 특정을 더욱 어렵게 해줄 터다.
‘좋았어.’
마음을 정했다. 클로이즈는 문틈을 더 벌리기 위해 손을 뻗었다. 문득 막내 데이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였더라. 몇 주 전에 가족들이랑 추리 게임을 했을 때인 듯하다.
“언니, 생각해봐. 두 사람은 사전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했어. 그날, 그 시간에, 그 장소로 오는 사람은 상대방뿐임을 이미 알고 있단 말이지. 한데 굳이 문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은밀히 진행해야 하는 작전인데, 그랬다가 행인이 별생각 없이 들여다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손끝에 문이 닿았다. 이제 살짝 힘주어 밀기만 하면 된다. 하나 클로이즈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예상과 다르게 열려 있는 문, 그러니까 그건 덫이란 뜻이야.”
뻔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상세히 풀어서 설명해줘야 하느냐 묻던 데이지.
“언니의 약속 상대는 높은 확률로 벌써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거나 아니면 고문 끝에 변절해서 언니를 팔아넘겼을 거야. 여기서 높은 확률이란…… 99.9퍼센트 정도를 뜻해.”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클로이즈는 어깨를 움츠렸다. 본능이 제게 경고하고 있었다.
‘여길 벗어나야겠어.’
그리 결심하고 손을 거두려는 순간이었다.
문이 홱 열리더니 안쪽에서 단단한 팔이 뻗어나왔다. 상대는 클로이즈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사람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듯한 힘에 클로이즈는 순식간에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다.
저항은커녕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제 코와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읍!”
클로이즈가 보는 앞에서 문이 닫혔다. 이어서 딸칵, 하고 잠금장치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쪽으로 속절없이 끌려가는 동안 데이지의 말이 제 귓가에 맴돌았다.
“언닌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