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22)
두 사람은 이미 국정 회의로 오전을 다 보냈다. 여기서 사담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곤란하다.
주군의 건강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오데트의 수석시녀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녀는 주군의 건강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아직 삼십 분은 더 일할 수 있다는 주군의 말조차 무시하곤 했다.
오데트가 그녀의 말은 듣는다는 점에서 수석시녀를 황궁의 숨은 실세라고 일컬어도 무방할 것이다.
숨은 실세가 그녀라면, 공개된 실세는 누구냐.
제 연인 마리엔이다.
“달죠. 단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요.”
바일레온은 불현듯 뇌리를 스친 생각에 원래 하려던 질문을 잠깐 미루었다.
“혹시 마리엔이 그런 것까지 이야기했습니까? 제가 쪽쪽…… 어떻게 했는지까지?”
“흐음.”
이제껏 잘만 대답하던 오데트가 갑자기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했다. 그래서 바일레온은 알 수 있었다.
‘했구나.’
연인이 제게 어떻게 쪽쪽 했는지 설명할 때의 마리엔은 나름 진지했을 것이다.
바일레온은 절대 혼전순결주의자일 리 없다고.
왜냐면 본인의 순결을 지키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고.
좀 더 오래, 자주, 깊이 키스하고 싶어서 안달인 남자가 어떻게 결혼 전까지 참겠냐고 오데트에게 되물었을 터다.
제가 비어스 경에게 잡아먹히는 중인지 아니면 반대로 경을 잡아먹는 중인지 한 번씩 헷갈릴 때가 있지만요.
중요한 건 그가 제게 얘기를 안 했다는 점이에요.
누군가에겐 되게 중요한 신념일 텐데, 비어스 경은 여태 순결의 ‘순’ 자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어요.
한때는 정말 사랑하는 이를 위해 순결을 지키려고 했으려나?
그래도 그건 예전 일일 거예요.
만약 지금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비어스 경은 분명히 제게 말해줬을 테니까요.
이 자리에 없는 마리엔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저를 물고 빨고 품에서 놓지를 못하는 연인이 실은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려는 신념을 지녔댄다.
마리엔에겐 오데트의 말이 느닷없이 맞은 물벼락이나 마찬가지였을 터다.
마리엔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도 일단 이것저것 예를 들면서 열심히 부정했겠지.
기본적으로는 바일레온을 믿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내 연인은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내게 숨길 사람이 아니라고.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이다.
‘폐하 앞에서 그렇게 대응했어도 진실이 궁금해서 나한테 물어본 거야.’
바일레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답을 듣고는 어찌나 밝게 웃던지…….’
눈에 띄게 안도하는 마리엔은 정말이지 못 견딜 정도로 귀여웠다.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작 하나하나가 저 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여길 보라고.
이렇게 귀엽고 말랑한 존재가 또 없다고.
‘미처 가시지 않은 울음기 때문에 눈이 빨개서는.’
바일레온은 정신없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던 자신을 기억했다.
“생각만 해도 좋아?”
오데트의 물음에 바일레온은 현실로 돌아왔다.
“네?”
“그대 지금 웃고 있어.”
“아…….”
“본인이 웃는 줄도 몰랐구나. 보아하니 애초에 말을 꺼낸 이유도 잊은 듯한데.”
오데트가 말을 이었다.
“디디에게 굳이 그런 얘길 한 의도가 뭐냐. 디디가 또 폐하에게 낚여서 연인 사이의 일을 줄줄 읊을 때, 왜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고 하지 않으셨냐. 대충 이런 질문을 할 생각이 아니었나?”
정확하다.
바일레온은 입가의 미소를 거두고 오데트에게 물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대답해줄 순 있어. 그런데 경이 순순히 안 믿을 것 같아.”
“일단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오데트는 창밖을 보았다. 연회색의 흐린 겨울 하늘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입을 열기 전까지는 조금 주저하는 기색조차 비쳤다.
“경도 알다시피 난 여자 친구가 없잖아.”
그녀는 동성의 또래와 어울리는 기분이 늘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한때는 내게 쌍둥이 자매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도 했어. 잔병치레하느라 맨날 침대 신세인 나와 달리 걔는 건강했다면……. 밖에서 겪은 일들을 내게 들려주지 않았을까. 만약 쌍둥이 둘 다 병약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을 거야. 각자 침대에 누워 떠들면 됐을 테니. 물론 어머니의 육아는 더 고됐겠지만 말이야.”
오데트의 얼굴에 조금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와 디디는 군신 관계이고, 윗사람인 내가 멋대로 착각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디디와 남자 취향이든 뭐든 얘길 하고 있으면…… 좋아. 어릴 때 책에서만 읽었던 여자 친구란 게 이런 건가 싶어.”
오데트가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발했다.
“다정한 미남이 최고라는 소리를 매일 세뇌당하듯이 듣다 보니 약간 혹하기도 하고.”
“…….”
“그렇게 좋은가? 궁금증도 일어.”
바일레온은 이제까지 오데트가 남녀 간의 이끌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로맨틱한 감정의 이끌림이든 육체적인 이끌림이든, 오데트는 어느 쪽도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데트가 절 거절해서가 아니다.
오데트에겐 그런 남녀 문제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그녀가 붉은 벽돌 저택에 갇혀 살 땐 그 일거수일투족이 숙부를 거쳐 황제에게 보고되었다. 내궁에 들어간 후엔 또 다른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적들의 감시 속에서 은밀히 진행하는 복수와 대업.
강인한 심신으로도 하기 힘든 일이건만 오데트는 선천적으로 병약했다.
아마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한 동안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채 탑에 갇혀 있어서일 터다.
오데트는 가끔 꺼져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했다.
“복수를 끝낼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바일레온의 눈에 비친 오데트는 뛰어난 정신이 병약한 몸에 구속당한 사람이었다.
오데트 본인도 이 점을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
아무튼 오데트는 제 병약함과 타협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그 첫 번째가 본인의 감정과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었다.
“내겐 내 기분까지 고려할 여력이 없어. 괜찮아. 이편이 내 타고난 성정과도 어울리니까.”
오데트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을 복수의 완성에만 할애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처음에 바일레온은 그런 주군이 안쓰러웠다.
그 말을 할 당시, 오데트는 겨우 열네 살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바일레온 또한 감정 문제에 엮이길 원치 않는 오데트에게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제가 아예 잊어버린 모양이다.
오데트가 처음부터 무감정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경은 디디의 비밀에 대해서 벌써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고 답하자 오데트가 슬며시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 두 사람 사이엔 정말 비밀이 없는 것 같더라. 이간질이 먹히지 않는 재미없는 커플이야.”
“그 비밀, 폐하께서 먼저 알아채셨다고 들었습니다.”
“경은 제 사람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생겨도 상대가 스스로 내켜서 말할 때까지 기다리잖아. 한데 난 그대와 달라.”
오데트가 담담히 말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어. 그렇다면 내가 제일 먼저 알아내서 이후의 일까지 생각해야지.”
이어서 오데트는 제 어머니가 하만 왕국 출신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고향 이야길 많이 해주셨거든. 믿든 안 믿든 네 자유지만 세상엔 별별 일이 다 있다는 것만은 알아두라고 항상 덧붙이셨지.”
덕분에 오데트는 마리엔이 겪은 현상이 무엇인지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좋겠어, 비어스. 기억을 잃은 채로도 한결같이 경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만나서.”
오데트는 책상에 팔꿈치를 세우고 턱을 괴었다. 그러고는 바일레온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디디와 함께한 후로 경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괜히 심사가 꼬여.”
“…….”
“비어스마저 행복의 나라로 떠나려나. 나만 이 겨울에 남겨두고. 시끌벅적 화기애애한 제 가족과 굉장히 비슷한 사람의 손을 잡고 가버리려나……. 질투 나, 하고.”
오데트가 엷게 웃었다.
“한데 그대는 그만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다행이지.”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난 내 사람들이 나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행복을 느껴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어떤 순간에 드는 어떤 느낌이더라? 아예 감도 잡히지 않아.”
그런데 말이야, 하고 오데트가 말을 이었다.
“상식 밖의 저 마리엔 디디와 그대, 이렇게 셋이서 얘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슬쩍 새어나오거든. 당근 좀 흔들었다고 대번에 속아 넘어가는 디디도 웃기고, 그에 따른 경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어. 그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오데트가 천천히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지금…… 즐거운가 보다.”
오데트답지 않게 확신이 없는 말투였다.
“내가 이런 기분을 누려도 되나? 감정을 통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주변이 안전한가?”
오데트는 황위에 오르고 나서야 조금 더 편하게 제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 그녀는 모름지기 통치자라면 일신의 행복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하나 이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손을 뻗어서 잡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면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겠다고.
“그래서 디디를 내궁 총책임자에 임명했지.”
다소 먹먹한 심정으로 듣고 있던 바일레온은 돌연 전환된 분위기에 눈을 깜빡였다.
“천직이란 게 뭔지 보여줄 기세더라고.”
“그렇겠죠…….”
“제법 기대돼. 경의 연인이 과연 어떤 남자들을 골라 바칠지 말이야.”
오데트가 눈을 가늘게 휘며 미소 지었다.
“본인 취향인 갈색 머리 미남으로만 뽑을까? 하긴 그것도 볼만하겠어. 내궁이 바일레온 비어스 닮은 꼴로 가득 차면, 꼭 경을 대동하고 우리의 총책임자를 치하하러 가야지.”
바일레온이 대꾸했다.
“세간에선 그걸 악취미라고 부릅니다.”
“역시 경도 좋아할 줄 알았어.”
오데트가 이만 물러가라 손짓했다. 바일레온은 의자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디디에게 잘해야만 할 거야, 비어스.”
고개 숙인 바일레온에게 오데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작의 입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면 내가 경을 가만두지 않아.”
“예, 폐하.”
“그리고 후궁 선발은 오는 1월에 하기로 했어. 신년 행사로 괜찮을 것 같아. 후보들을 홀딱 벗기든 무릎 꿇리든 네가 필요로 하는 자질 검사는 다 해보라고 디디에게 전권을 일임했으니까.”
“…….”
“경은 미래의 후작 부군으로서 아내 될 사람을 힘껏 지지해주었으면 해.”
“…….”
“비어스?”
“……네.”
“황제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