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24)
촉이 온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마리엔은 황실 수석보좌관의 끝내주게 화려한 집무실 안을 천천히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북부 놈이 왜 이리 오랫동안 조용할까?
“불안하단 말이지…….”
놈을 반짝반짝 깐 달걀로 만들려던 계획은 폐기한 지 오래됐다.
역시 바일레온의 고백이 전환점이었다.
바일레온은 오데트 로즈가 아닌 마리엔 디디의 연인이 되길 원했다.
그게 바일레온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는데 제가 어떻게 ‘아뇨, 계속 좋아하던 분이나 좋아하세요.’라며 매몰차게 밀어낼 수 있을까.
이게 꿈이라면 절대, 절대 깨지 말아라!
매일 하늘에 감사기도를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어쨌든 바일레온이 쥔 사랑의 작대기가 제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그 말은, 제가 더는 바일레온을 의 남자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데트 곁에서 북부 놈을 찍어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지자, 놈을 향한 마리엔의 관심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루아침에 꺼져버렸다.
햇살 같은 내 님만 쳐다봐도 하루가 훌쩍 가건만 머리 검은 놈에게 나눠줄 관심이 어디 있겠어?
그랬더니 놈은 이상한 포인트에 꽂혀서 역으로 마리엔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마음으로 제가 헛구역질 참아가며 손발 오그라드는 짓을 할 땐 덤덤하기만 하더니.
넘어오랄 땐 안 넘어오고 왜 뒷북치냔 말이다.
이런 게 시간차 공격인가 싶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나마 오데트가 약혼자에게 큰 미련이 없어 보이는 게 마리엔으로서는 천만다행이랄까.
어쨌든 마리엔은 언젠가부터 북부 놈과 엮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그를 피해 다녔다.
그런 점에서 황궁의 비밀 통로가 대단히 유용했다.
북부 놈의 검고 긴 머리가 보일라치면, 마리엔은 냅다 저만의 토끼굴로 튀었다.
체력이 붙을수록 몸놀림 또한 날래졌다.
마리엔의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북부 놈은 좀처럼 마리엔과 둘만 있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마주친 게 로제트 홀에서 열린 새 황제의 즉위식 날이었다.
“그럼 이렇게 말하면 따르겠나? 리셰른 후작, 단둘이 긴히 할 말이 있다.”
어쩜 인간이 그토록 변함없는지.
당시에 마리엔은 화장실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카인이 아무리 미친 자라도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오진 않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결과는 성공.
이상한 건 이다음부터다.
오데트의 즉위식 이후로 제가 카인을 피해 도망쳐야 했던 적이 있던가?
‘없어.’
카인이 이렇게나 오랫동안 얌전히 지낼 인간인가?
‘천만의 말씀.’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이쪽도 슬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슬슬?’
마리엔은 혀를 짧게 찼다.
“어쩌면 벌써 늦은 걸 수도 있어.”
카인 놈이 뒤에서 무슨 꿍꿍이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 마리엔은 휴고를 호출했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제게도 사건 조사를 지시할 수하가 생기니 좋았다.
그 수하가 유능하고 눈치 빠른 휴고라서 더 좋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지푸라기 같은 정보를 긁어모을 동안, 조사관이니 소식통이니 하는 수하들을 통해 엄선된 자료를 받아보는 바일레온과 오데트가 어찌나 부럽던지.
‘그렇지만 이젠 나도 수하 있어. 아직 한 명뿐이긴 해도 휴고는 열 사람 몫을 해내니까!’
한편 생활력이 강한 휴고는 고용주에게 제 지인을 소개함으로써 마리엔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굳건히 했다.
지인을 소개받는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럽던지.
‘잠깐 들를 곳이 있다. 혹시 백작저로 모셔다드리는 길에 들렀다 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니…….’
그렇게 들른 곳은 공교롭게도 그의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개인 의상실이었다.
그렇다.
업계 1위인 뤼미에 드 샤샤 살롱의 자리를 노린다던 바로 그 사촌동생 말이다.
“안녕하세요! 리셰른 후작님이신가요? 휴고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주먹도 잘 쓰고 화술도 뛰어난 분이라고요.”
“아, 네. 안녕하세요.”
“날도 추운데 안에서 차 한 잔 들고 가지 않으시겠어요?”
“아.”
“후작님께는 특별히 연유 넣은 밀크티를 대접할게요. 따끈하고 달콤한 차 한 잔 드시면 몸이 사르르 녹을 거랍니다.”
사실 따뜻한 음료가 필요할 만큼 춥지는 않았다.
오데트가 하사한 제 마차는 창틈으로 바람 새어 들어올 걱정 따윈 없는 튼튼한 새것이었다.
게다가 보온용 물주머니와 담요가 제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사양 말고 들어오세요!”
“아……. 흐음……. 그럼 휴고가 일 처리할 동안만 안에 있을게요. 혹시라도 손님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상냥하기도 하셔라. 발밑 조심하시고요.”
“네, 근데 휴고의 사촌동생이지 않나요? 방금 오빠를 이름으로 부르기에.”
“제 사촌의 몹쓸 병이 도졌군요. 전 고작 2개월 늦게 태어난 것뿐이랍니다. 휴고의 말은 절반쯤 흘려들으세요. 안 그럼 현란한 말재간에 홀려서 정신 차려보면 무슨 종신보험 계약서에 서명이라도 하고 계실지 몰라요.”
“휴고가 보험 판매 일도 했나요?”
“아뇨, 보험은 그냥 예시예요. 그런데 워낙에 비밀이 많은 인간이니 어디서 저 몰래 해봤을지도 모르죠.”
마리엔은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아가씨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마차에서 내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찻잎으로 만든 밀크티가 나왔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두 번 자연스러웠다간 간이 홀랑 빼 먹힐 정도랄까.’
어쩌다가 제가 거울 앞에서 신체 치수까지 재게 됐는지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튼 마리엔은 그날 의상실에서 바지 정장 세 벌을 맞췄다.
지금 입고 있는 비둘기색 긴 조끼와 코트도 그날 맞춘 옷 중에 하나다.
가장자리를 따라 섬세한 제비꽃 자수를 놓고, 타원형의 유백색 오팔 단추를 달아 장식성을 더한 A라인 코트는 마리엔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마리엔의 마음에 쏙 든 것은 바지의 실용성이었다.
전 드레스를 입고도 잘만 뛰었다. 이제 바지를 입었으니 날아다닐 것이다.
“높은 담도 훌쩍 넘을 수 있……. 아니, 난 왜 자꾸 사서 고생하려고 하지? 담장을 넘긴 왜 넘어. 그런 불길한 예시는 들지 말자.”
밖에서 휴고가 문을 두드렸다. 마리엔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절 급히 찾으셨다고요.”
그러면서 잠금쇠를 눌러 문을 잠갔다.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마리엔은 순간 뭐가 이상한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문은 왜 잠가요?”
이 질문을 하기까지 십 초나 걸렸다는 뜻이다.
“절 그냥도 아니고 급히 찾으셨다면서요. 시키실 일이 있는데 남들이 내용을 알면 안 되니까 일단 후작님께 와서 들으란 의미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그럼 당연히 문을 잠가야죠. 비밀 이야기잖습니까.”
“흠.”
이유가 타당하다. 반박 불가. 다만 대화 중 바일레온이 불시에 방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본론부터 말할게요. 카인 블랙우드 공작이 날 손에 넣으려고 은밀히 무슨 짓을 벌이고 있지는 않은지 휴고가 조사해줬으면 해요.”
마리엔은 이뿐만 아니라 카인의 대략적인 근황도 알고 싶다고 덧붙였다.
“무도회에 참석했다, 이런 소식 말고요. 교류한 적 없는 누군가를 남몰래 만났다든가……. 무슨 뜻인지 알겠죠?”
“표적수사군요.”
마리엔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바로 그거예요. 놈이 나쁜 짓을 꾸미는 중이라는 가정하에 조사하면 돼요. 휴고 눈에 조금이라도 수상하게 보이면.”
“빼놓지 않고 보고하겠습니다.”
휴고는 더 분부할 일이 없냐고 물었다. 마리엔은 우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블랙우드 공작은 후작님과 앙숙지간이 아니었나요? 비어스 경을 위해 수년째 잠입조사만 하던 제가 경호원을 겸하게 된 것도 블랙우드 공작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휴고가 이상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그가 후작님을 위협해서요.”
“그랬죠.”
“후작님은 그를 여전히 앙숙으로 여기는데, 저쪽의 마음이 바뀐 거군요.”
“휴고.”
“네, 후작님.”
“내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캐묻지 않는 게 조사관의 미덕일 텐데요.”
“이제 제법 고용주처럼 말씀하시네요.”
“제버업?”
“무례한 언사에 사과드립니다.”
휴고가 슬며시 웃음을 머금은 채 사과했다.
“그럼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금 잠시, 라고 했어요?”
마리엔은 반신반의하며 휴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빨리 가능해요?”
“가짜 신분을 만들어서 조직에 잠입하는 것도 아니고 황궁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보는 건데 며칠씩이나 걸리면 곤란하죠.”
휴고는 보조개가 폭 패도록 웃었다.
“한 시간 안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가 집무실을 나갔다. 마리엔은 휴고가 사라진 방향, 즉 닫힌 문을 지그시 쳐다봤다.
“저 보조개 웃음.”
마리엔은 느릿느릿 턱을 문질렀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보여주는 것 같단 말이야…….”
은근히 야심만만한 금발 미남 경호원.
처음에 그가 후작저까지 따라 들어가 살겠다고 했을 때 마리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 휴고가 저를 발판 삼아 오데트의 후궁이 되려나 보다.
밀착 경호랍시고 마리엔 옆에 붙어 다니면 자연히 오데트의 눈에도 들게 될 테니까.
“한데 어쩜 이 남자의 목표는 폐하가 아닌 나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을 바꾼 이유도 바로 저, 보조개 웃음 때문이었는데.”
그러나 가능성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오그라들었다. 아무래도 자의식 과잉인 듯했다.
마리엔은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라는 경고를 끝으로 휴고의 저의에 관한 의혹을 접었다.
“혹시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다면? 실은 내 직감이 맞았던 거라면?”
휴고의 목표는 까다로운 황제 폐하보다 훨씬 구워삶기 쉬운 마리엔 디디였던 것인가.
“나야 구워삶기 쉬운 거 인정.”
아니라고 잡아뗄 수가 없다. 그러기엔 전 이미 휴고의 사촌이 지은 옷을 입고 있다.
“하나 바일레온은 만만하지 않을 텐데.”
바일레온은 어떤 면에서 카인보다 어려운 안주인이 될 소지가 다분한 남자다.
게다가 바일레온에게 있어 휴고는 다년간 중요한 임무를 맡겨온 수하인 동시에 본인이 직접 뽑은 마리엔의 경호원이었다.
“그랬던 휴고가 이제 내…… 두 번째 남자의 자리를 노린다?”
과연 우리의 바일레온 비어스 재상님께서 그 꼴을 가만두고 보시려나.
뭐, 휴고의 도전정신은 응원한다만.
“여하튼 내 경호원에겐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재주가 있어.”
마리엔은 시계를 보았다. 휴고가 고용주를 헷갈리게 하긴 해도 공수표를 남발할 사람은 아니다.
그가 한 시간 안으로 알아 온다고 했으면 그런 거다.
“흥, 이젠 나도 두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겠어.”
휴고는 정확히 사십일 분 후에 복귀했다.
이게 전문가의 실력이구나!
마리엔은 감탄했다. 수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려는데 휴고가 손을 들었다. 나중으로 미루란 뜻이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짧게 보고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