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26)
“왜 웃어? 내 말이 웃겨?”
마리엔이 묻자마자 카인은 금세 입꼬리를 내렸다.
“내가 언제 웃었다고.”
“이젠 본인이 웃었는지조차 인지 못 하는구나. 상태가 정말 심각하잖아.”
“안 웃었다니까.”
카인은 정색하며 말에 오르려고 했다. 그랬더니 이 겁을 상실한 토끼가 어찌한 줄 아나? 말과 카인 사이에 끼어들며 그를 막아섰다.
카인은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울컥했다.
“말 옆에서 얼쩡거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모르나?”
카인의 흑마는 자존심이 세고 성격 나쁜 것까지 주인을 빼닮았다.
그렇기에 카인이 아닌 다른 사람은 태우려고 하지 않았다. 어쩔 땐 접근조차 허용치 않기도 했다.
흑마는 쪼끄만 마리엔 디디는 혼자서 등자에 발도 못 디딜 만큼 거대했고, 지금 제 주인을 밀어낸 인간에게 상당한 불만을 느끼는 중이었다.
콱 걷어차버릴라.
카인은 디디에게 밀려나는 순간 말의 몸에 손을 얹었다.
지그시 눌러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제가 그러지 않았다면 마리엔은 벌써 저만치 날아가 헝겊 인형처럼 땅에 풀썩,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뒷발에 걷어차이거나 말발굽에 짓밟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한 적군이 셀 수 없이 많건만.
“누가 사람을 무시하래? 대답 안 하고 가려고 하니까.”
“내가 언제 널 무시했지?”
“방금 했잖아.”
“했다 쳐도, 함부로 말을 자극하는 건 위험해. 내 말은 특히나 더.”
카인은 이놈 발길질에 죽은 병사가 몇이나 되는 줄 아느냐며 마리엔에게 경고했다.
하나 마리엔은 안 믿는 눈치였다.
“빤드르르하니 예쁘기만 한데.”
군마라서 그런지 본인의 마차를 끄는 말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고도 했다.
“확실히 크긴 크네.”
감상이 그게 전부인가?
다른 이들은 몸집만 보고도 덜컥 겁을 집어먹는 흑마를 두고, 크긴 크다?
카인의 흑마도 어이없는지 콧김을 흥, 내뿜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이 녀석, 마리엔을 완전히 얼간이 취급하고 있군.’
그나저나 사람은 머리카락 색으로 차별하더니 동물한테는 안 그러나 보다.
카인은 저와 같은 검은색이면서도 마리엔에게 예쁘다는 평을 들은 제 말을 흘낏 쳐다봤다.
‘으음…….’
이쯤에서 생각을 멈춰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으로서, 주인으로서의 체면이 있으니.
“약혼녀가 있는 몸으로 다른 이에게 구애하는 건 아무래도 양쪽 모두에 예의가 아닌 듯해서 이참에 정리했어.”
“뭐?”
“마리엔 디디, 넌 내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만 한다며 싫어했지. 가만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더군.”
값비싼 드레스와 보석을 안겨주어도 거절하기에 마리엔은 원래 그런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비어스가 맞춰준 드레스 수십 벌을 기쁜 마음으로 받고, 날마다 신나게 갈아입는 것을 보았다.
“문제는 선물이 아니라 그걸 준 인간이었던 거지. 아무튼 내 방식이 네게 통하지 않는 건 확실히 알았어.”
카인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턴 방법을 좀 바꿔보려고.”
“……바꾸면 내가 널 좋아하게 될 것 같아?”
“글쎄, 어떨까.”
카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쉽게 마음을 돌릴 것 같진 않군. 그래도 지금보다 날 더 싫어하지는 않겠지.”
카인은 우선 그 정도로도 만족할 거라고 덧붙였다.
“여하튼 넌 비어스와 조만간 식을 올릴 테지. 청첩장을 보내도 난 참석하기 어려우니 그리 알도록.”
마리엔은 핏, 실소했다.
“누가 너한테 청첩장을 보낸대?”
“넌 안 보내겠지만 비어스는 보낼걸.”
그야 바일레온은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라고 대꾸하려는 순간이었다.
“네 남편이 될 사람, 뒤끝이 길거든.”
마리엔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제가 보기에도 바일레온은 뒤끝이 상당히 긴 듯하기에.
일단 무엇이든 끈기 있게 하는 편인 것 같다.
그게 가망 없는 짝사랑이든, 연인을 괴롭힌 자에 대한 복수든. 무엇이든 오래오래.
‘내가 카인 놈의 말에 수긍하는 날이 오다니.’
바일레온은 당연히 블랙우드 공작성으로도 청첩장을 보낼 것이다.
멋들어진 글씨체로 주소를 쓴 다음, 손수 녹인 분홍빛 실링왁스 위에 리셰른 후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도장을 찍을 터다.
‘어쩜 청첩장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몰라.’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엔 여러분의 축하 속에서 예식을 치르고 여행까지 무사히 다녀왔다며 감사카드를 돌릴 남자다.
후작저에서 첫 무도회를 열게 되면 굳이 북쪽 땅에 사는 카인에게까지 초청장을 보낼 것이고.
‘맨 하단의 리셰른 후작 부부 드림, 오로지 그 문구를 쓰고 싶어서…….’
그러다가 제가 임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되나.
그때부턴 정말 바일레온의 폭주를 막을 사람이 전무해지는 거다.
친애하는 블랙우드 공작께 알립니다. 둘도 없이 소중한 제 아내 마리엔이 임신 7주 차에 접어들어 어쩌고저쩌고.
친애하는 블랙우드 공작께 알립니다. 어제부로 임신 8주 차에 접어든 마리엔은 다행히 입덧으로 크게 고생하는 일이 없이 어쩌고저쩌고.
친애하는 블랙우드 공작께 알립니다. 어제저녁엔 아기가 아내의 배를 발로 찼는데 어찌나 힘이 센지 우리 부부는 분명 딸이라고 확신하여 어쩌고저쩌고.
나중엔 급기야 바일레온이 소식을 전하는 속도가 카인의 읽는 속도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카인은 성가신 일을 질색하는 타입인데. 불운하게도 서면으로 괴롭히는 것에 최적화된 관료에게 찍혀서…….’
분홍색 왁스로 봉한 편지가 공작성의 서재 책상에 산처럼 쌓여 있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리엔은 잠시나마 미래의 카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바일레온의 편지 때문에 나한테까지 정떨어지지는 않을까? 카인도 집요함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텐데. 정말 안됐다.’
이어서 생각했다.
‘근데 그건 그거고, 내가 본인 말에 수긍했다는 걸 카인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
마리엔은 일부러 턱을 치켜들고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뭐라 말하든 비어스 경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그래. 그렇겠지.”
카인이 엷게 웃었다.
“내 평생 다른 누군가가 부러운 적은 없었거든. 그런데 내심 무시해온 바일레온 비어스가 유일한 예외가 될 줄이야.”
카인은 더 지체하다간 성문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이만 대화를 마무리하자는 뜻이다.
마리엔은 말에 오르는 카인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영지로 가는 척하고는 수도 밖에 머물진 않겠지?”
“하, 마리엔 디디. 있어야 할 겁은 없고 의심만 잔뜩 많아서는.”
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웃었다.
“이대로 들고 튀고 싶게 말이야.”
다음 순간, 그가 몸을 기울임과 동시에 팔을 뻗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릴 새도 없었다. 마리엔의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한 팔로 가뿐히 마리엔을 들어 안은 카인은 이내 보드라운 뺨에다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속삭였다.
“아까부터 비어스가 우릴 지켜보는 줄은 몰랐지?”
“……응?”
“그래. 모를 것 같더라니.”
카인은 마리엔을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자그마한 승리를 거둔 자의 뻔뻔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아무쪼록 건강하길, 리셰른 후작.”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떠나는 그의 뒤로 마리엔이 한발 늦은 저주를 퍼부었다.
“수도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마아아!”
청명한 겨울의 어느 하루였다.
◇ ◆ ◇
카인은 황궁에서 나가자마자 말의 속도를 줄였다.
아직 제대로 달리지도 못했는데 벌써 멈추냐. 이럴 거면 왜 올라탔냐. 훅, 말이 내뿜는 콧김에서 불만이 느껴졌다.
“성문만 나서면 지겹도록 달릴 테니 지금은 좀 참아.”
온몸에 윤기가 반드르르 흐르는 흑마는 어디 두고 보겠다는 양 콧김을 한 번 더 뿜었다.
“클로이즈 비어스가 헛소리를 한 건 아니었군.”
카인이 중얼거렸다.
“효과가 있어…….”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건 아닌가.
그저께, 예고도 없이 멀리 떠나버리라는 클로이즈의 조언을 들었을 때, 카인은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러나 클로이즈는 위압적인 시선에 굴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수도를 떠난 후엔 한동안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카인은 그쯤에서 확신했다.
지금 비어스 영애가 카인에게 조언해주는 척하면서 실은 제 오빠를 돕고 있다고.
한동안이라면 어느 정도의 기간을 뜻하는지. 제가 떠보듯이 던진 질문에 클로이즈는 “최소 반년?” 하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확신에 쐐기를 박는 답변이었다.
“내가 갑자기 수도를 떠나고 반년 넘도록 소식이 없으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 마리엔보다도 영애의 오빠가 더 기뻐할걸.”
“초반엔 좋아하겠죠. 근데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질걸요.”
카인 블랙우드가 누군가.
갖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기어코 손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마리엔의 옆에 바일레온이 있건 말건 절대 물러설 리 없는 남자가 돌연 반년 가까이 죽은 듯이 지낸다?
카인이 마리엔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만큼, 공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빈자리가 신경 쓰일 거란다.
그건 사람이면 어쩔 수가 없다고. 바일레온 하나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마리엔 디디라고 다르지 않다고. 클로이즈는 힘주어 말했다.
“안 좋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기 마련이에요. 시간의 힘을 믿으셔야 해요, 공작님.”
카인은 클로이즈가 한 말을 되새겼다.
절 향한 마리엔의 적대심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 즈음,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등장하되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진 않을 예정이다.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랄까.
“그래도 이대로 사라지기엔 뭔가 아쉬운데.”
한동안 못 볼 이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안겨주고 싶었다. 마침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가오는 신년에 후궁을 선발한다고 했었지, 아마.”
카인의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말을 달려 어딘가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앞문이 아니라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다.
너희 주인더러 카론의 협곡에 사는 자가 보잔다고 전하랬더니, 말한 지 오 분도 안 되어 한 남자가 허둥지둥 후문으로 나왔다.
“공작님,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난 영지로 돌아갈 참이다. 그 전에 네게 시킬 일이 있어 잠깐 들렀다.”
“분부만 내리십쇼.”
카인은 말 위에서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1월이면 폐하의 후궁을 선발한다는 공문이 내려올 거다. 귀족 자제 중에서 뽑는다고는 하지만 인물만 괜찮으면 배경은 그리 보지 않을 터.”
명령을 내리는 카인의 목소리가 자못 밝았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키가 180대 후반인 갈색 머리 미남자를 몇 명 수배해둬라. 네게만 미리 알려준 만큼 우수한 후보를 데려와야겠지?”
“갈색 머리요…….”
“온화한 인상이어도 좋고 냉랭한 분위기여도 상관없어. 제일 좋은 건 꼬리를 한 일곱 개쯤 감춘 여우 새끼 같은 놈이겠지만……. 출신지만 북부가 아니면 된다.”
“알겠습니다.”
“출신지가 유일한 흠결일 만큼 빼어난 자라면 감쪽같이 서류를 고치도록.”
“예, 다른 분부사항은 없으신지요.”
없다고 말하려던 카인은 조건을 하나 추가했다.
“틀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