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28)
결국엔 우당탕 소동을 보다 못한 오데트가 명을 거두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상황이 이럴진대 마리엔의 몸에 흔적이 안 남는 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이에 당사자인 마리엔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멍도 아니고 손자국쯤이야 금세 없어질 거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문제는 언짢은 기색의 오데트와 당일 오후에 웃음기 하나 없이 쏘른 홀을 방문한 재상 바일레온이었다.
하도 나를 귀찮게 해서 그랬다. 손자국이 남을 줄은 몰랐다. 그 부분은 내가 사과하고 황실의의 특제 연고를 내렸다.
해명하는 오데트.
그에 맞서 조곤조곤 항의하는 바일레온.
황제와 재상의 대화가 열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데 그날따라 어찌나 교대시간이 손꼽아 기다려지던지.
그날 이후로 근위대는 황명을 따르는 ‘시늉’을 하는 게 무엇인지 터득했다.
모든 황명에 그렇게 대처하는 건 아니고 오직 마리엔이 엮였을 때만을 예외로 두었다.
오데트와 마리엔의 아옹다옹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마리엔을 끌어냈다가, 나중에 마리엔이 입꼬리를 시무룩하게 내리기라도 하면 저들만 낭패다.
“괜찮아요. 어서 나가세요. 그렇죠. 돌아서서, 그렇지.”
“……이젠 황제인 내 말도 통하지 않는군.”
“폐하, 비탄에 잠기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마리엔은 제법 능숙한 손놀림으로 찜질용 안대를 데웠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사태도 다 폐하께서 자초……. 폐하와 저,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저번에 근위대가 중간에 끼어서 고생했잖아요. 같은 곤란을 두 번 겪고 싶지 않은 심정도 이해가 가요.”
따끈하게 데워진 안대를 오데트의 눈두덩에 내려놓자, 오데트가 신음 같은 한숨을 쉬었다.
“반박할 여력도 없어. 어제 잠을 거의 못 잤거든.”
“망할 블랙우드 놈 때문이군요.”
마리엔은 손에 향유 몇 방울을 덜었다. 공기 중에 포근한 라벤더 향이 퍼져나갔다. 마리엔은 가냘픈 오데트의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손등뼈를 덮고 있는 희고 얇은 피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톡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바일레온이 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바일레온은 애정이 과보호로 발현되는 사람인데, 보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겠어.’
저 역시도 오데트에게 손을 댈 적엔 깃털 다루듯이 조심하게 된다.
마리엔은 오데트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지그시 누르며 반응을 살폈다.
황제는 입을 꾹 다물 뿐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된 거다. 마리엔은 한동안 오데트의 손을 정성껏 주물렀다.
“안 그래도 성치 않은 몸을 여기저기서 흔들어대니……. 이러다 서른은 넘길 수 있으려나.”
오데트가 지친 목소리로 한탄했다. 마리엔은 끼어들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서른이라뇨. 약한 소리 마세요. 폐하께선 아흔다섯까지 장수하실 예정인걸요.”
“아흔다섯? 아무렇게나 던지는 소리치고는 제법 구체적…….”
오데트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찜질용 안대가 움직이는 걸 보니 미간을 찡그렸나 보다.
“책에 써져 있던? 내가 아흔다섯까지 산다고?”
“네, 굉장하죠?”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은데.”
오데트는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툭하면 앓아눕는 이 육신으로 70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끔찍하네.”
“아니에요. 점점 건강해지실 거예요. 좋아질 일만 남았어요.”
마리엔은 그런 의미에서 어젯밤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알려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데트가 졌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블랙우드 공작은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했어. 기존의 것은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자며.”
흔한 결혼 동맹이 아니라 파혼을 기점으로 효력을 발하는 이른바 파혼 동맹이다.
“우린 블랙우드 영지의 조세 면제 기한을 30년으로 바꾸는 데에 동의했어. 파혼했으니까 난 이제 공작가의 후계자를 낳아줄 필요가 없지.”
“그리고요?”
“파혼 후에도 블랙우드 공작가는 여전히 황제 오데트 로즈를 지지할 거야. 그 증거로, 공작은 황궁에서 교육받길 원하는 친척 소녀 세 명을 뽑아서 내 곁에 보내기로 했어. 내가 원한다면 블랙우드 성(姓)을 달고 있는 남자 한 명도 후궁으로 보내겠다기에…… 그러라고 했고.”
“그러라고 하셨다고요?”
“눈매가 아주 매서운 흑발의 청년이래.”
마리엔은 대번에 손 지압을 멈췄다. 오데트의 눈두덩에 올려놓은 안대를 들어올리자 장밋빛 눈동자가 저를 흘겨보았다.
“왜, 이것도 네 허락을 받아야 하니?”
“아뇨. 그럴 리가요. 누굴 후궁으로 들이든지 그건 폐하의 마음이죠.”
오데트가 심복을 응시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표정이 안 좋구나. 얼굴근육이 제멋대로 떨리고 있어.”
“잘못 보신 거예요.”
마리엔은 주먹 쥔 손으로 제 양쪽 뺨을 눌렀다. 그제야 신경질적인 경련을 감출 수 있었다.
“그들은 봄에 온다는구나. 북부의 눈이 녹으면 천천히 출발하겠지. 미리 말해두는데 내 후궁을 너무 괴롭히진 말렴.”
아직 얼굴도 보기 전인데 벌써부터 총애하시는 건가요, 라고 앙칼지게 대꾸하지 않았다.
마리엔에겐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설마 그게 전부는 아니죠?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들으면 새 계약은 폐하께만 이득인데요.”
카인은 조세 면제 혜택 70년 치, 총명한 후계자, 대공으로 승격될 수 있는 황제의 정궁 자리를 포기했다.
여기에 추가로 공작가 사람 네 명을 보냄으로써 저와 오데트의 관계는 변함없이 공고함을 보여주겠다고 했단다.
자, 그러면 카인 본인은 뭘 얻느냐.
오데트와의 파혼 딱 하나?
“카인 블랙우드가 비록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긴 해도요.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순정을 위해 희생하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 인간이 제가 밑지는 거래를 할 리 없어요…….”
마리엔은 엄습하는 불안에 떨었다.
“폐하께서도 뭔가를 약속하셨겠죠?”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앞으로 마리엔 디디가 매 겨울을 블랙우드 공작성에서 보내도록 한다든가. 뭐 그런 게 되겠다.
“서, 서, 설마 저와 바일레온의 혼인신고를 영원히 반려한다든지.”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디디. 아마 어젯밤에 잠을 충분히 잤기 때문일 테지.”
오데트는 두 시간도 못 잔 제 눈 밑이 얼마나 검게 죽었는지를 보라며 투덜댔다.
“미안하지만 네게 알려줄 순 없단다. 두 사람만의 비밀에 부치는 것이 부수적인 조건이었거든. 다만 너나 바일레온을 건드리는 내용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아.”
“확실한 거죠? 저, 폐하만 믿을게요?”
“건방진 것.”
오데트가 짧게 내뱉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오데트는 이제 정말로 쉬어야겠으니 당장 제 눈앞에서 사라지라며 마리엔을 쫓아냈다.
목적을 달성한 마리엔은 냉큼 예를 갖춘 다음, 뒷걸음질로 쏘른 홀을 나갔다.
혼자 복도를 걷고 있노라니 그제야 일이 희한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가 로판인데 결말에 이르러서 여주와 남주가 헤어져. 이럴 수도 있나?’
마리엔은 멍해졌다. 그 많은 정략결혼물의 목적이 뭔가? 정략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우린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 이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던가.
‘한데 우리 폐하는 진짜 정략으로 시작해서 정략으로 끝났네…….’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던 마리엔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개중에 하나쯤은 이런 결말이 있을 수도 있지. 게다가 달콤한 사랑 파트는 나랑 바일레온이 맡고 있으니까?”
카인이란 눈엣가시가 사라진 이때, 전심전력으로 내궁을 채워 우리 폐하의 마음을 어루만져드려야겠다.
마리엔은 제 충신다운 면모에 감탄하며 춤추듯이 발을 옮겼다.
◇ ◆ ◇
신년이 밝았다.
미혼의 아들을 둔 집들이 손꼽아 기다린 새해다.
그들이 신년을 기다린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다름 아닌 후궁 선발!
연말 즈음, 후궁 선발에 관한 소문이 돌 때부터 부모들은 아들 교육에 전념했다.
이 영향으로 남성용 화장품이며 제모제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기 시작했다.
아들의 예법과 걸음걸이를 더 세련되게 다듬기 위해 과외 선생을 초빙하는 건 예사였다.
열성적인 부모들 사이에서는 선발을 담당하는 마리엔의 취향에 맞추느냐, 아니면 최종 결정권자인 오데트의 취향에 맞추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라졌다.
“당연히 리셰른 후작이지요. 본선이 중요한 걸 누가 모릅니까. 그렇지만 본선도 먼저 예선을 통과해야 올라갈 수 있잖습니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 리셰른 후작은 일단 미남이기만 하면 통과시킨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렇다면 스타일은 폐하께서 선호하시는 쪽으로…….”
아직 날짜는커녕 선발 인원수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두 사람 이상 모인 자리에선 약속이라도 한 듯이 후궁 선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는 수도 사교계건 변두리 시골의 마을회관이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급한 일을 처리하러 자릴 비웠다던 카인이 실은 제 영지로 돌아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데트는 카인과의 파혼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세상에 나처럼 파혼을 환영받는 사람도 드물 거야.”
오데트는 어이없다는 양 웃었다.
마침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블랙우드 공작가가 황제에게서 등을 돌렸나? 자칫 황권의 위기로 비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후궁 선발을 고대하던 사람들에겐 이게 뜻밖의 기회처럼 느껴진 거다.
정궁 자리가 비었다!
그 말인즉, 당장은 후궁으로 들어가더라도 이후에 황제의 마음을 얻기만 한다면 정궁에 책봉될 수 있다는 뜻이렷다.
“디디.”
“넵, 폐하.”
“색에 미친 황제처럼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물어보는 거야. 도대체 언제 공문을 내릴 셈이지?”
“어머, 폐하. 꽃다운 후궁들이 그렇게나 기다려지세요?”
“시침 떼기는. 아무튼 어서 날을 잡아 저들의 광분을 가라앉히렴. 빨리 모두의 관심이 네게만 주목되게 해.”
오데트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다들 눈이 벌게져서는 내 취향을 캐묻는 데에만 골몰한다니까. 도저히 일을 못 할 지경이야.”
오데트는 내년까지는 이 짓을 또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질려버렸다고. 어쩌면 내후년도 장담 못 한단다.
그러니까 이번에 아예 넉넉히 서른 명쯤 뽑으라는 게 아닌가.
마리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른 명이 뭐가 넉넉한가요? 폐하, 제 충심을 가벼이 보지 마세요.”
“그럼 마흔…….”
“쉰은 기본으로 깔고 갈 겁니다.”
오데트는 하늘빛 눈을 반짝거리는 심복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동의하시죠?”
“그래……. 이 소식을 반길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구나.”
1월 둘째 주 수요일.
드디어 황실 수석보좌관이자 내궁 총책임자 마리엔 디디 리셰른의 이름으로 작성된 공문이 각 기관에 배포되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수도의 어느 남성복 전문 의상실에서는 동대륙에서 수입된 진귀한 옷감을 두고 귀족 영식 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수도가 이처럼 들썩거리거나 말거나, 마리엔은 시험 출제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벗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지. 폐하의 후궁 자릴 노린다면 몸은 당연히 가꿨을 거고.”
무릇 선발 담당자라면 그 이상의 자질을 파악해야 하는 법.
똑똑.
그때 바일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