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32)
이거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권태를 연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1조를 심사할 땐 대충 몇 명을 지목해서 차 따르기 정도나 시켰던 마리엔이다.
그랬던 그녀가 2조 심사 땐 전원에게 추가 과제를 부여했다.
3조 심사에 이르러서는 후보들을 산 채로 집어삼킬 듯이 응시하며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잠깐 얼굴 가리개를 벗어도 좋아요.”
시종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10인분 가져오게 해서, 후보들이 샌드위치와 수프를 먹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다.
동화 속 왕자님 같은 외모의 소유자라도 음식을 후루룩 쩝쩝 먹는다면 약간은 식고 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
1차 외모 심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무렵이었다.
휴고가 넌지시 소감을 말했다.
“편파 심사의 정석을 보여주시네요, 후작님.”
“이러려고 총책임자 됐거든요?”
마음에 차는 후보를 벌써 여럿 확보한 마리엔은 옆에서 경호원이 뭐라고 하든 생글생글 웃었다.
정말이지 절로 웃음이 나오는 하루였다.
◇ ◆ ◇
바일레온은 돌돌 말린 쪽지를 펴 들었다.
눈사람, 8일째 발이 묶여 있음. 어제는 도시의 행정력에 폭발. 영주의 자택에 침입. 파손한 물품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절차 밟는 중. 3일 내 폭력 행위 동반한 도주 예상. 한계 임박. 빠른 회신 요망.
답장을 쓰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사람에게 협상 제안. 수락 시, 밀린 행정절차 특별 처리. 본인에게 신분증 반환 및 성문 통과 허가증 발급. 조건은 지난 수해로 일부 붕괴한 남서쪽 다리 재건.
바일레온에게서 쪽지를 건네받은 전서구 담당은 다급한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혼자가 된 바일레온은 흠잡을 데 없는 손놀림으로 찻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따랐다.
카인 블랙우드.
수도를 떠나 영지에 칩거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는 바일레온이 제게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알고 있었을 터다.
지긋지긋하게 많은 공문서와 개인 서신을 공작성으로 보내리라 짐작했겠지.
그러나 카인은 바일레온의 집요함을 얕봤다.
“집까지 편히 가도록 내버려둘 줄 알았습니까, 공작?”
꿈도 크지.
바일레온의 복수는 카인이 수도를 떠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제국에서는 영주, 시장, 지역 유지가 협력하여 도시를 다스린다.
제국법에 따르면 국경과 가까운 지역의 영주라도 매년 한 번은 황궁에 와서 황제를 알현해야 한다.
근데 매년 영주만 먼 길을 오가는 건 고생스러우니까, 보통은 저 셋이 번갈아가며 황궁을 방문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선황은 수도와 멀리 떨어진 시골 지방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규칙이 그러하다니까 할 수 없이 잠깐 만나서 판에 박힌 질문이나 던질 뿐.
그럼 편한 집을 놔두고 고생해가며 황궁까지 온 사람의 기분이 어떨 것이냐.
고작 십 분을 위해 길에서 그 고생을 했던가? 사람이 멀리서 왔는데 좀 더 성의있게 맞아줄 순 없나?
부아가 치미는 게 당연하다.
이때 온화한 미소로 그들을 접대하는 이가 재상 바일레온이었다.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입궁하셨겠군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첫손주를 보셨다지요. 축하드립니다. 아이의 이름은 정했나요? 아, 세쌍둥이입니까? 축하선물을 세 배로 드려야겠네요.”
“혹시 문건으로 올리기 곤란한 사항이 있으셨다면 제게 말씀해주세요. 해결책을 강구해보겠습니다.”
카인의 무기가 맨주먹으로 성문을 부수는 힘이라면, 바일레온의 무기는 성실성과 친화력이다.
황제의 홀대에 타지 손님의 가슴속에 진 응어리는, 젊은 재상의 성심성의를 다한 접대에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바일레온은 그들이 영지로 돌아간 후에도 꾸준히 소식을 전했다.
가족의 생일선물, 축하카드, 신년마다 보내는 연하장.
저번에 어려움을 토로했던 문제는 무사히 해결되었는지. 관심이 묻어나는 안부편지.
그러다 보면 영주 측에서도 지역 특산품이니 하는 선물을 비어스 저택으로 보내곤 했다.
그런 교류가 몇 년씩 쌓이면 바로 두터운 인맥이 되는 것이다.
제국령 곳곳에 퍼져 있는 재상 바일레온의 ‘친구’들은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생긴 인연이었다.
바일레온의 정중한 부탁 한 번이면 기꺼이 그의 눈과 귀와 손이 되어주는 사람들.
원래라면 카인은 지금쯤 블랙우드 영지에 도착했어야 했다.
한데 어쩐 일인지 카인이 하룻밤 묵으려고 숙소에 여장을 풀 때마다 번거로운 일이 발생했다.
그 결과, 공작은 여태 가려던 길의 절반도 못 갔다.
이번에 들른 도시에서는 무려 여드레가 되도록 발이 묶여 있다고 한다.
‘처음 예상은 최대 닷새였는데……. 블랙우드 공작이 드디어 준법정신의 뜻을 깨우쳤을 리는 없고.’
도시의 방문객에게 느닷없이 요구하는 증명서.
해당 증명서를 발급하려고 관청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자리를 비운 담당자.
담당자의 업무 복귀 전에 도래한 퇴근시간.
다음 날 발급 요청하면서 제출한 신분증이 ‘우연히’ 다른 서류더미에 섞여 들어가 분실된다.
일을 어떻게 이딴 식으로 하느냐고 분노하는 방문객.
담당자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신분증을 찾기 전까지는 증명서 발급이 제한된다고 안내한다.
바일레온의 입가가 살짝 떨렸다.
‘블랙우드 공작,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보았느냐.
이것이 행정력의 승리다.
어쨌든 바일레온은 그를 한계까지는 몰아붙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광활한 북쪽 땅에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온 인간이라, 그에게 인내심 같은 덕목을 기대해선 안 된다.
한계에 부닥치면 꼭지가 홱 돌아서 오데트와의 약속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수도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여드레면 루릴 측은 하는 데까지 한 거야. 저번에 시장이 편지에서 그랬지, 남서쪽 다리를 재건할 여유가 없다고.’
합심하여 제 부탁을 들어준 루릴 지역 사람들에게 사례해야 할 터.
바일레온은 마침 그 도시에 머무는 인재를 활용해, 벗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로 했다.
분하지만 한나절만 고생하면 끔찍한 도시를 떠날 수 있다니까, 아마 카인은 이를 갈며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비어스 경.”
노크 소리가 울렸다.
“내궁에서 왔습니다.”
근위병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제가 근무지를 이탈한 사실을 들킬까 봐 정모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그는 후궁이 선발되는 동안만 내궁을 지키도록 차출된 자였다. 그리고 거기엔 바일레온의 입김이 조금 들어갔다.
“후작이 준비한 의상에 불만을 표한 후보는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적어도 리셰른 후작님 앞에서는요.”
“그 말은, 뒤에서는 욕을 한 자가 있다는 뜻이군요.”
근위병은 다소 당황했다.
“욕……까지 한 사람은 없고요. 하하, 듣는 귀가 몇인데 감히 후작님 욕을 하겠습니까.”
“어쨌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자는 있었다.”
“예에. 1조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안 좋았고요. 13조의 한 후보가 방으로 가자마자 옷을 벗어서 벽에 집어 던졌다는 후문입니다.”
바일레온이 책상 서랍에서 명단을 꺼냈다.
“이름.”
“예?”
“방금 옷을 집어 던졌다는 13조의 후보 이름이 어떻게 되죠? 이름을 모른다면 번호는 압니까?”
“137번이라고 들었습니다.”
135번부터 140번까지를 담당하는 시종이 마침 저와 안면이 있는지라 그에게서 직접 들었다.
성질이 보통이 아닌 분을 맡게 되었다며 한탄하더라.
근위병은 부연설명을 하면서 재상을 흘끗거렸다.
바일레온은 웃음기라곤 없는 얼굴로 명단의 여백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137번은 비어스 경이 따로 조치하지 않으셔도 후작님 선에서 떨어뜨리실 눈치던데.’
바일레온이 한참을 적다 말고 펜을 내려놨다.
‘다 쓰셨나? 마저 보고해도 되나?’
글 쓰는 동안 이야기를 하면 방해가 될까 입을 다물었건만.
바일레온은 펜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하였다. 마디가 욱신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너무 힘을 준 탓이다.
펜대가 미끄러워서 그런가. 필기구를 바꾸면 좀 나으려나.
연필을 꺼낸 바일레온은 근위병에게 보고를 계속하라고 명했다. 제가 그만하라고 하기 전엔 보고를 멈출 필요 없다고.
“예, 아무튼 후작님께선 기분이 퍽 좋아 보이셨습니다. 특히 2조 심사를 끝낸 후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셨고요.”
“2조에 인재가 많았나 보군요.”
“예, 2조엔 갈색 머리 후보가 넷이나 있었는데요.”
멈칫.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참가했습니다. 제가 자매나 사촌이 같이 후궁이 됐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쌍둥이는 또 처음이어서요. 자연히 눈길이 가더군요. 아마 후작님도 저와 같으셨겠지요.”
“……12번과 13번.”
“예, 그 번호였을 겁니다.”
바일레온은 쌍둥이의 이름 아래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제가 입수한 명단에는 후보의 번호와 이름만 있다.
성이 같기에 형제나 사촌지간이리라 짐작했지, 쌍둥이일 줄은 몰랐는데.
“옛날엔 상흔이나 문신 없는 깨끗한 몸을 선호했지만 그건 정말 옛날이야기죠. 오데트 로즈 폐하의 시대는 달라요.”
위치에 따라서 가산점. 내용에 따라서 감점.
왜 갑자기 마리엔이 했던 말 중에서 이게 떠올랐을까.
바일레온은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쌍둥이에게 상흔이나 문신은 없다던가요? 아, 의상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했으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근위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작님께서 서로를 소개해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때 형이 말하기로 동생의 몸에 문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위치는.”
“위치요? 그게 아마, 어, 그렇지. 날개뼈 아랜가 그랬을 겁니다.”
뚝.
바일레온이 쥐고 있던 연필이 두 동강 났다. 근위병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젊은 재상은 말없이 명단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보고를 멈추라고 했던가요?”
“아, 닙니다.”
“갈색 머리가 넷인데 그중에 쌍둥이가 있었다. 아직 나머지 둘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옛, 죄송합니다. 계속하겠습니다.”
근위병의 보고가 끝날 즈음, 바일레온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엄지로 관자놀이를 힘주어 지압했다.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혹여 더 지시할 사항이 없으시면…….”
근위병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바일레온은 이만 가도 좋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불현듯 뇌리를 스친 생각에, 이미 뒤돌아선 근위병을 불러세웠다.
‘마리엔이 내게 모든 일정을 상세히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바일레온은 조용히 근위병의 위아래를 훑어내렸다.
‘대충은 들었어. 남은 건 지혜와 인성 시험일 텐데.’
제가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사람을 뽑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근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