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34)
마리엔이 방에 이르른 참이다.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죠?”
“보고드립니다. 누군가 후작님의 방에 숨어들었다가 발각당했습니다. 사복 차림인데 아마 후궁 후보인 듯합니다.”
“내 방에 숨어들었다고요?”
마리엔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그 새끼…… 어, 흠흠. 잡은 인간은 어떻게 했나요?”
“후작님께서 직접 처분을 내리실 수 있도록 손발을 포박한 뒤 옆방에 두었습니다. 한데 제압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충돌이 있어서요.”
잠입한 자의 뒷목을 내리쳐서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마리엔은 근위병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아차렸다.
현장 검거, 라는 명분은 있다. 그러나 고위귀족의 자제일지도 모르는 청년을 거칠게 제압했으니, 앙심을 품은 후보가 나중에라도 가문을 등에 업고 보복하진 않을까.
직업이 근위병일 뿐 뒷배도 뭣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하다.
“괜찮아요. 해당 후보에 관한 책임은 일체로 내가 질 테니까. 그 빌어먹을…… 흠, 화살이 당신에게 돌아가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제가 보낸 카드가 밀회를 암시하긴 했다. 상대방의 착각을 의도하긴 했다. 거기까지는 인정.
그래도!
일단 약속 장소로 갔어야지. 거기 가서 뭘 하든가 해야지. 총책임자의 방에 잠입하는 쪽으로 생각이 튀다니 아주 사상부터 글러먹었다.
‘물론 휴고가 먼저 방을 점검했을 테지만.’
만에 하나 휴고가 놈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썩을 놈과 단둘이 남게 된 저는 무슨 봉변을 당했을까.
당신이 후궁 후보에게 부적절한 제안을 한 증거가 내 손에 있다.
폐하는 당신을 감싸주실지 몰라도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대신들은 어떨까.
이런 소릴 나불대면서 결국엔 본인을 후궁으로 뽑으라고 협박했겠지?
‘내궁의 정원 한가운데에 묶어놓고 매일 파리채로 때릴 거야. 기강을 잡는 훌륭한 본보기가 될 테지.’
마리엔은 옆방에 쓰러져 있는 후보의 얼굴을 확인하러 갔다.
오늘 제 카드를 받은 후보 중에 약속 장소에 아예 나타나지 않은 자는 두 명이었다.
쌍둥이 형인 12번.
그리고 손발을 결박당한 채 지금 제 앞에 쓰러져있는 155번.
눈이 번쩍 뜨이는 미남인 데다 몸가짐도 단정해서 카드를 보냈건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어, 어느 댁 자제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마리엔이 책임지겠다고 했는데도 완전히 마음이 놓이진 않았나 보다. 근위병이 조심스레 물었다.
“누군지 알아요.”
“어떤 가문…….”
“아유, 들으면 심란하기만 할 거예요. 걱정 그만. 내가 책임진다니까요.”
마리엔은 정신을 차린 후보가 소리치며 난동을 피우지 않도록 재갈을 물려두라 지시했다.
그런 다음, 밝게 웃으며 근위병의 공을 치하했다.
“근위대장에게 말해서 특별포상금을 전달케 할게요. 후궁 선발이 끝나고 나면 휴가도 받을 수 있게 하고요.”
“실은요, 후작님. 전 옆에서 거들었을 뿐이고…….”
근위병은 마리엔의 방문 앞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동료를 가리켰다.
“여기 이 친구가 잡았습니다.”
지목받은 동료 근위병은 마리엔에게 고개를 숙였다.
늦은 시각이라, 불을 최소한만 켜둬서 방이며 복도가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거기다 정모를 푹 눌러쓰고 있으니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턱선이 날렵하고 입술이 예쁜 것 정도밖에 안 보이는데.’
근위병 대다수가 훤칠한 장정임을 감안해도 상당히 큰 편이다.
공을 세운 자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서 보려는 마음에 마리엔이 한 걸음 다가서자, 근위병이 한 걸음 물러났다.
“감기가…….”
그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낮은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후작님께 감기를 옮길까 봐 거리를 두는 겁니다. 어쩐지 이 친구가 저녁부터 입을 안 열더라고요. 목감기에 제대로 걸렸는지 목소리도 꽉 잠겼습니다.”
다른 근위병이 대신 양해를 구했다. 마리엔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몸이 아픈데도 보초를 섰어요? 거기다가 범인도 잡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떡해.”
마리엔은 방에서 약과 물을 가지고 나왔다. 공을 세운 근위병에게 먹게 한 다음, 내일은 쉬라고 지시했다.
“아침 교대까지 몇 시간만 더 힘내줘요.”
근위병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리엔은 방으로 들어와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 ◆ ◇
이십 분 후.
“희한하게 자꾸 생각나네.”
푹신한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마리엔은 돌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리엔의 시선이 닫힌 문을 향했다.
“하관만 봤는데도 왠지 얼굴 전체에 믿음이 가.”
게다가 근위대 제복을 빠듯하게 만드는 가슴 두께라니.
“어제도 내 방 앞을 지켰잖아. 저 사람이 어제도 저런 자태였나?”
도저히 안 되겠다. 현장 캐스팅의 본능이 마리엔을 침대 밖으로 이끌었다.
문틈으로 얼굴만 빼꼼 내민 마리엔은 부동자세로 서 있는 문제의 근위병을 불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를 부르기 전에 본능적으로 그의 엉덩이를 힐끗 확인했다.
“저기, 물어볼 게 있어요. 잠깐 안에 들어와요.”
탄력적으로 올라붙은 엉덩이, 가 아니라 근위병은 마리엔을 따라 방에 들어왔다.
“문 닫으세요.”
마리엔은 두꺼운 숄을 어깨에 둘렀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상대의 용모를 꼼꼼히 살펴보기엔 조도가 아쉬웠다.
‘안으로 들이기 전에 불부터 환히 켤걸. 마음이 앞서서 그 생각을 못 했네.’
마리엔은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밀초에 불을 붙였다.
초가 녹으면서 사르르 퍼지는 꿀 냄새가 좋아, 기분이 가라앉으면 켜려고 챙겨 온 물건이었다.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오나요?”
근위병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질문을 듣고 고갯짓으로 대답해요.”
끄덕.
“결혼했어요?”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는지 대답이 약 삼 초 정도 지연되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다. 마리엔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혼녀는 없고요?”
없음.
“약혼녀는 아니지만, 구두로라도 미래를 약속한 상대는?”
멈칫.
“연인 말하는 거예요.”
정적.
“있어요?”
안 돼. 그러지 마. 그런 거 있지 말라고. 내 손을 잡고 더 높이 날아오르란 말이야.
근위병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어 답답했다.
‘얼굴 좀 보자고요, 진짜!’
마리엔은 잠시 정모를 벗어보라고 말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에 근위병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수줍음이 많은 걸까?
본인이 직접 모자를 안 벗으면 내 손으로 벗겨야 하나?
‘뭐야. 그런 건 폐하보다 내 취향에 가까운데.’
아랫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지그시 깨무는 모습에서 그가 주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주저할 여유가 있는지 몰라도 마리엔은 아니었다.
“정모를 좀……!”
마리엔은 까치발을 들었다. 한껏 세운 손끝으로 그의 모자챙을 쳐올렸다.
정모가 반쯤 벗겨진 것까진 좋았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마리엔이 균형을 잃은 것이다.
“읏.”
앞으로 넘어지는 마리엔을 근위병이 끌어안듯이 받아냈다.
고개를 든 마리엔은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바일레온?”
진작에 퇴근해서 백작저로 갔어야 할 그가 왜 근위병 복장을 한 채 내궁에 있는 걸까.
“바일레온이 어떻게 여길.”
“쉿.”
바일레온이 입술 앞에 검지를 갖다 댔다. 아까 복도에서 공을 치하하며 예쁘다고 생각했던 입술이었다.
“문밖에 사람이 있어요. 그는 내 정체를 몰라요. 그리고 내가 내궁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계속 모르는 편이 좋겠죠.”
“아…….”
마리엔은 알아들었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언제부터 근위병 옷을 입고 내 방 앞을 지켰어요? 설마 어제부터?”
“오늘 저녁부터요. 이 옷의 주인에게 내 집무실에 딸린 작은 방을 내준 뒤에, 난 그의 옷을 입고 여기로 온 거예요.”
제복의 주인은 바일레온이 은밀히 심은 소식통이라고 했다.
그는 내궁에 들어올 수 없으니 안에 사람이라도 심어서 마리엔의 소식을 전해 듣고 싶었다며.
“신기하네요.”
마리엔이 눈을 가늘였다.
“방금 바일레온은 본인이 내궁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요. 그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누굴까?”
“질투와 걱정에 이성을 잃은…… 남자?”
“이성을 잃었다기엔 너무 치밀한데.”
마리엔은 그의 가슴팍을 짚고 있는 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하였다.
“당신은 동료 근위병을 여태 속였죠. 나와 휴고도 감쪽같이 속인걸요.”
“마리엔에겐 들켰잖아요.”
“그야 바일레온 비어스의 매력은 짙은 어둠과 남에게 빌린 옷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으니까요.”
바일레온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여전히 마리엔을 끌어안은 채, 그가 어깨 너머로 문을 곁눈질했다.
“문 근처에서 이러지 말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갈까요?”
“좋아요.”
마리엔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 너무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렸나 봐요. 걸을 수가 없네?”
“저런.”
바일레온이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 마리엔의 미소가 깊어졌다.
꽃다운 후보들 사이에서 행복을 누릴수록 어째 점점 더 그리워지는 연인이 저를 보러 찾아왔다.
가슴이 콩닥콩닥.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단순히 내가 걱정되어서 보러 온 건가요? 내 눈길을 사로잡은 미남들이 질투 나서?”
“그것도 그렇고 혹시 내가 도울 일은 없나 해서요.”
“아아.”
“……거짓말이에요.”
바일레온이 이내 털어놓았다.
“내가 안달 나서 그랬어요. 마리엔 생각에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바일레온은 연인에게 입을 맞추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모자챙이 방해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벗겨줘요.”
마리엔의 눈에 장난기가 스쳤다.
“정확히 뭐를요? 똑바로 말해줘야죠. 옷을, 아니면 모자를?”
바일레온이 한숨 섞인 웃음을 흘렸다. 마리엔은 공중에 발을 달랑거리며 연인을 쳐다보기에 바빠서, 그가 벌써 침대까지 다다른 줄 모르는 눈치였다.
“어?”
바일레온은 침대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마리엔은 바로 눕지 않고 등 뒤로 손을 뻗어 몸을 지탱했다.
그가 제 손으로 정모를 벗었다.
툭.
모자가 카펫 깔린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자 다음엔 제복의 맨 윗단추를 풀 차례였다. 바일레온은 이어서 두 번째 단추를 풀었고, 나머지 단추 역시 빠르게 풀었다.
“마리엔…….”
그는 제복 소매에서 두 팔을 뺄 겨를도 없다는 듯이 마리엔의 입술을 급히 찾았다.
깊어지는 키스에 마리엔이 베개로 털썩 머리를 대고 누웠다.
겨우 이틀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몸이 왜 이렇게 빨리 뜨거워지는지 모르겠다.
한편 그새 녹기 시작한 밀초는 접시 위로 짙고 달콤한 촛농을 뚝뚝 떨어뜨렸다.
향긋한 꿀 냄새가 바스락거리는 이불 안까지 스몄다.
“키스가 너무 거칠면…… 말해요. 내가…….”
자제하겠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하나 바일레온의 몸은 본인의 의지와 달리 움직였다. 손을 쓰지 않고 뒤축만 밟아서 구두를 벗는 행동에서 조급함이 묻어났다.
나동그라지는 구두.
완전히 침대로 올라온 그는 마리엔의 손에 손깍지를 꼈다. 그 상태로 약간 힘주어 누르듯이 두 팔을 고정한 후에 다시 입술을 겹쳤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에게 달라붙은 순간이었다.
“후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