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41)
마리엔은 마치 쫓기기라도 하는 양 후닥닥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열어둔 창문으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후끈한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이걸 어쩌지? 창밖에다 던져버릴 수도 없고…….”
처치 곤란한 물건을 들고 욕실까지 들어와버렸다. 마리엔은 일단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삼십 분 후.
마리엔은 커다란 목욕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세면대 앞 거울을 쳐다보았다.
“내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 첫째, 수건으로 몸을 가린 이 상태로 나간다. 둘째, 어쨌든 잠옷에 속하는 저 네글리제를 입고 나간다. 셋째, 둘 다 너무 야하니까 그냥 벗고 나간다.”
보통 선택지가 세 개나 되면 그나마 나은 방법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째 다 이 모양이지?
마리엔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동안 오 분이 흘렀다.
“안 되겠어. 욕실에서 밤을 새우게 생겼잖아.”
마리엔은 용단을 내렸다. 네글리제 위에 목욕수건을 숄처럼 걸치기로 한 거다.
드르륵.
마리엔은 조심스레 욕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머리만 빼꼼 내밀고 침실 쪽을 살폈다.
침대에서 독서 중인 바일레온이 보였다.
분하게도 그는 평소와 같은 실내복 차림이었다. 헐렁한 흰 셔츠에 검은 바지 말이다.
갑자기 허리끈도 여미지 않은 실크 가운 차림으로 황궁 복도를 돌아다녔다던 북부 놈이 떠올랐다.
벗길 바라는 사람은 신혼 첫날밤에도 잘 여미고 있고, 좀 싸매고 다닐 필요가 있는 놈은 훌렁 벗고 다닌다.
‘이게 인생의 아이러니일까?’
마리엔의 입꼬리가 시무룩하게 내려갔다. 저만 드레스 코드를 못 맞추는 것 같았다.
“저기, 바일레온. 잠깐만 눈 감고 있을래요? 내가 눈 뜨라고 할 때까지만요.”
“……응? 알았어요.”
마리엔은 그가 눈을 감는 것을 지켜보았다.
“실눈 뜨면 안 돼요.”
“걱정 마요.”
바일레온이 작게 웃었다. 마리엔은 수건 끝을 말아 쥐고 침대로 도도도 달려갔다.
이불 속에 몸을 쏙 넣은 다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니까 조금 안정감이 들었다.
침대는 서너 명이 굴러도 될 정도로 커다랬다.
그리고 마리엔과 바일레온은 침대의 양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됐어요?”
바일레온이 물었다.
“으응, 네.”
마리엔은 그에게 계속 책을 읽어도 좋다고 덧붙였다. 바일레온이 이불 위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신부를 쳐다봤다.
“그럼 마리엔이 심심하잖아요. 차라리 대화를 해요.”
“대화 좋죠. 대화는…… 불을 좀 끄고 하면 어때요? 같이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잠들게.”
탁.
바일레온이 책을 덮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가 불을 끄란 말만 기다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난 방이 어둡기만 하면 돼. 내가 뭘 입었는지 안 보이면 그걸로 족해.’
방이 어둠에 잠기자 마리엔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어깨까지 끌어올렸던 이불을 조금 내리고, 자세를 편하게 바꿨다.
“마리엔,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겠어요?”
바일레온의 목소리가 엄청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언제 바로 옆에 왔지? 그가 마리엔의 손에 뭔갈 쥐여주었다.
“당신이 욕실에 들어간 후에 발견했어요. 바닥에 떨어져 있던데 아무리 봐도 마리엔의 것 같지 않아서…….”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갑작스러운 촉감 놀이를 하게 된 마리엔은 그가 쥐여준 천 조각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아.”
“뭔지 알겠어요?”
소재가 지금 제가 입은 네글리제와 비슷하다.
이상한 점은 통이 굉장히 좁다는 것이었다. 사람 몸은 절대 안 들어갈 듯했다.
마리엔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손으로 천 조각을 만졌다. 심지어 길이가 짧기까지 했다.
“덧소매인가?”
마리엔은 이내 그 가정을 집어치웠다. 누가 덧소매를 이렇게 하늘거리는 소재로 만들며, 네글리제와 한 세트로 꾸린단 말인가.
“어딘가에 끼워서 쓰는 건 덧소매와 비슷하죠.”
바일레온이 천 조각의 끝을 지그시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 생각은요. 이건 팔이 아니라 다리에 끼우는 것 같은데.”
“다리요?”
“길이가 딱 무릎 길이예요. 확인해볼래요? 이렇게…….”
그가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마리엔의 맨발을 잡았다. 구름을 한 줌 떼어내어 만든 듯이 보드랍고 매끄러운 무언가가 마리엔의 발가락에 닿았다.
“읏, 간지러워요.”
그대로 스르륵, 스르륵 발등을 타고 올라가 종아리를 감싼 천 조각은 무릎 바로 아래에서 끝났다.
바일레온은 스타킹의 끝에 달린 가느다란 리본을 제 손가락에 친친 꼬았다가 잡아당겼다.
그러자 스타킹의 윗단이 다리의 둘레에 맞게 오므려졌다.
“마리엔이 가져온 거예요?”
바일레온이 손으로 마리엔을 쓸었다.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마리엔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런 옷을 입고 있어서 나한테 눈을 감으라고 한 거고요?”
“일부러 갖고 온 게 아니라요…….”
“하지만 입었잖아요.”
“응, 그렇긴 한데.”
바일레온이 키스했다. 느리고 달콤하게 입술만 닿았다가 떨어지던 키스가 깊어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리엔은 그의 가슴팍을 더듬어 셔츠 단추를 풀려고 했다.
“벗는 건 내가 잘해요.”
이제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머리 위로 셔츠를 한 번에 벗어 아무렇게나 던지는 바일레온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 아래도요?”
마리엔이 물었다. 셔츠만 벗는 게 아니야? 그는 통이 넓은 바지 역시 벗어서 옆에다 던졌다.
평상시엔 펜 한 자루도 가지런히 제자리에 돌려두는 남잔데, 옷을 벗을 때만 처리가 난잡하다.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바일레온이 위로 올라왔다.
“앗…….”
그는 신부와 1센티미터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양 몸을 밀착했다.
서로의 체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자세였다. 근데 지금 위험할 정도로 심장이 빨리 뛰는 쪽이 바일레온일까, 아니면 절까?
정신없이 키스하던 바일레온이 입술을 아래로 움직였다.
바일레온은 신부의 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깃털로 쓸리듯 간지러운 감각이 마리엔의 온몸에 퍼졌다.
“괜찮겠어요?”
바일레온의 말에 마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얇은 커튼 너머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미간을 일그러뜨리던 바일레온은 결국 마리엔이 베고 있는 베개를 세게 움켜쥐었다.
아주아주 느린 물결로 시작한 움직임은 긴 밤만큼이나 오래도록 이어졌다.
시곗바늘이 어느새 한 바퀴를 돌았다.
꿀 향내 가득한 시간이 끝나고 깜빡 잠이 들었던 마리엔은 등줄기를 따라 입 맞추는 바일레온의 행동에 웃으며 눈을 떴다.
“야한 재상님. 만족을 몰라요?”
“깨우려던 건 아니었어요. 미안해요. 다시 자요.”
“흐음……. 난 당신의 금욕적인 분위기에 이끌렸었는데.”
바일레온이 흐린 표정으로 물었다.
“후회해요?”
“하여간 극단적이시라니까.”
“내가 너무 밝히는 것 같아서, 싫어요?”
마리엔은 일부러 대답을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내가 싫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요?”
“……다시 자기 싫다면?”
바일레온이 잠깐 미동 않고 마리엔을 바라보더니.
“꺄앗.”
그녀를 안고 몸을 굴려 제 위에 포개지게 했다.
“사랑해요, 마리엔.”
“나도요.”
“이제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느끼게 해줄게요.”
“이제? 그럼 여태 한 건…… 흣!”
리셰른 후작 부부의 첫날밤은 그 후로도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 ◆ ◇
다음 날.
마리엔은 해가 중천에 걸리고서야 느지막이 일어났다.
“원래 새신부는 늦잠을 자는 거래요.”
바일레온이 마리엔의 편을 들어줬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아침 산책을 다녀온 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씻고 난 상태여서, 마리엔은 또 저 혼자 게으름뱅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게으름뱅이로 사는 건 꽤 괜찮았다.
“아침 드세요, 아내님.”
시야에서 사라졌던 바일레온이 덮개 덮인 커다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창문 앞 테이블에 마리엔의 아침식사를 차렸다.
마리엔은 눈부시게 청량한 남편을 바라보면서 기지개를 켰다. 천국의 체험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순간이었다.
“따뜻할 때 먹어요.”
“으응, 못 걷겠어요. 바일레온이 식탁까지 옮겨주면 먹을게요.”
“눈뜨자마자부터 귀여운 소리만 하는군요.”
바일레온이 침대로 다가와 이불을 걷었다. 마리엔은 방긋 웃으면서 남편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
바일레온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마리엔을 안아 드는 대신 곱게 개켜놓은 제 셔츠를 들고 왔다.
어젯밤 그가 잠옷으로 입었던 헐렁한 흰 셔츠였다.
“응?”
마리엔은 영문도 모른 채 바일레온의 셔츠를 입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이 입혀주는 대로 가만히 있어야 했다.
“트렁크에 넣으려고 개켜둔 거 아니었어요? 왜 나한테 입혀요?”
바일레온은 아내에게 너무 큰 소매를 접어주며 대답했다.
“환하니까 비쳐서요.”
“비친다고요?”
“아직 그…… 잠옷 차림인 거 까먹은 모양이네요.”
마리엔은 그제야 제가 하늘거리는 복숭아색 네글리제 차림으로 그에게 두 팔 벌려 안기려 했음을 깨달았다.
사실 야한 잠옷쯤은 아무것도 아닐 만큼 더 야한 짓을 지난밤에 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지난밤의 일이고 지금은 해가 쨍쨍한 낮이다.
새삼스레 부끄럽달까.
“자, 이제 식탁으로 옮겨줄게요.”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운 바일레온은 아내를 가뿐히 안아 들었다.
푸딩 같은 식감의 요거트, 신선한 과일, 따뜻한 버터롤과 잼,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데운 야채, 맑은 토마토 수프로 가득한 식탁이 마리엔을 반겼다.
마리엔이 신나게 제 몫의 식사를 즐길 동안 바일레온은 옆자리에 앉아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다.
“차 더 마실래요?”
“이제 우유랑 설탕 넣어서 밀크티로 마실래요.”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후작님.”
그뿐 아니라 식사 시중을 들기도 했다.
마리엔은 그가 만들어준 밀크티를 홀짝이다가 돌연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쉬었다.
“너무 행복해서 수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요.”
“후작저에서도 매일 아침을 오늘처럼 보내면 되죠.”
“안 돼요. 둘 다 출근해야 하잖아.”
“……내가 아까 한 말 기억나요? 새신부는 늦잠을 자도 된다고. 넓게 적용하면 신혼부부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거든요.”
마리엔은 다정하고 잘생기고 어제부로 봉인이 완전히 해제된 남편을 흘겨보았다.
“분명히 사람들이 수군거릴 텐데요, 리셰른 후작 부군.”
게다가, 하고 마리엔이 덧붙였다.
“바일레온과 내가 나란히 지각한다면 그 이유는 늦잠을 잤음에도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즐겼기 때문이 아닐 거예요. 제시간에 눈떴는데도 침대에서 다른 일을 하려는 후작 부군 때문일 가능성이 커요.”
마리엔은 어디 반박해보라는 뜻에서 턱을 치켜들었다.
“아무튼 난 지각 안 하는 성실한 내궁 총책임자가 되고 싶단 말이에요.”
좀 있으면 봄이 될 테고, 봄이 되면 블랙우드 가의 청년이 내궁에 들어올 터다.
카인이 오데트에게 후궁으로 보내주겠노라 약속한 본인 가문의 청년 말이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성격이 온화할 것 같지 않아요. 그래도 인물은 준수할 거예요.”
마리엔의 하늘색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블랙우드가 보낸 갈색 머리 네 명은 다행히 포섭 완료했는데……. 그자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hotf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