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42)
“블랙우드 공작이 갈색 머리 네 명을 보냈다고요……?”
바일레온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물었다. 이에 마리엔은 흥, 하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시치미를 떼죠, 앙큼한 후작 부군님? 네 사람의 이름과 나이와 학력과 가족관계를 지금 이 자리에서 줄줄 읊을 수 있으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후궁 선발 당시 내 주변에 당신의 사람을 배치했잖아요. 바일레온이 정복을 빌려 입었던 그 근위병 말이에요. 분명 그이가 당신에게 낱낱이 전했을 테죠. 어떤 후보가 내게 무례했으며, 어떤 후보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는지.”
마리엔은 이래도 발뺌이냐는 눈으로 바일레온을 쳐다봤다.
“뛰어난 정보력으로 유명한 비어스 재상님께서 뒷조사를 안 하셨을 리 없죠.”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던 바일레온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마리엔이 이겼어요.”
“자, 항복의 의미에서 갈색 머리 네 명의 이름을 쭉 읊어 보세요.”
“알릭세이 퀸, 세르제이 퀸, 다비드 체셔, 지그프리트 시드웰.”
“아주 잘했어요.”
마리엔은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는 보기에 예쁠 뿐 아니라 감촉까지 끝내줬다.
“한데 마리엔은 그들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챘어요?”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들을 면접장에서 처음 본 순간에는, 솔직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할수록 이상한 거예요.”
선발 담당자의 취향을 직격하는 갈색 머리 미남이 유형별로 나타나다니?
심지어 그들은 돌발상황에서도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히 조심스럽고도 완벽한 태도를 견지했다.
2조의 갈색 머리들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마리엔 네가 저들을 안 뽑고 배기겠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너무 나를 노리고 보낸 후보들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열심히 관찰할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이 보였다.
보이는 게 늘수록 마리엔의 머릿속에 더 많은 의문이 싹텄다.
“성격, 분위기, 성장환경이 다른 갈색 머리 네 명 중에 어째서 힘자랑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까?”
연한 구릿빛 피부를 지닌 다비드의 경우엔 담당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체력시험이나 대련에서 힘을 많이 쓸 법도 했다.
그러나 다비드는 힘자랑하는 대신 저보다 체급 작은 상대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사전에 누군가가 그들에게 귀띔해준 것 같았다.
마리엔은 오만하고 폭력적이고 다혈질적인 것을 싫어하니, 만약에 원래 성격이 그렇다면 필사적으로 감추라고 한다든지.
“수상하잖아요. 뒷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알고 보니 카인 블랙우드가 수도를 떠나던 날,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제 수하에게 명령을 내린 거였다.
북부 출신이 아닌 갈색 머리 미남을 물색해서 후궁 선발에 내보내라고 말이다.
“더 자세히 캐봤죠. 그랬더니 어떤 내막이 있었게요?”
“뭘 알아냈어요?”
“하! 놈은 갈색 머리 후궁들이 폐하의 총애를 얻었을 때쯤, 그들에게 크고 작은 물의를 일으키게 할 생각이었대요. 그럼 내궁 안팎에서 총책임자를 성토하겠죠? 왜냐면 총책임자는 직함부터 책임을 다 진다, 는 뜻이니까요?”
이 일을 황제에게 고했던들 오데트는 절 도와주지 않았을 거다.
내궁 총책임자로서 마리엔의 실력을 시험해보려는 뜻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갈색 머리들의 목표는 폐하가 아니었어요. 내가 곤란해지는 거였으니까 내가 그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하는 게 맞죠.”
마리엔은 그래서 제가 블랙우드 측에 잡혀 있던 그들의 약점을 해결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유능한 재상님이 보시기에 어때요, 내 실력이?”
이만하면 인정하시겠느냐고 장난스레 묻자 바일레온이 앉은 자리에서 예를 갖췄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십니다, 후작님. 오히려 제가 배워야 할 정도로요.”
마리엔은 절 놀릴 필요까진 없지 않냐며 웃었다. 그러다가 지난봄에 했던 생각을 불현듯 떠올렸다.
여긴 동정이면서 절륜한 게 가능한 장르다. 그러니까 북부 놈보다 동정 지킨 기간이 1년 더 긴 바일레온은 365일만큼이나 더 절륜할 게 당연하다.
“그런데 바일레온, 궁금한 게 있어요.”
마리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어요?”
굳이 목적어를 말하지 않아도 바일레온은 알아들었다.
“성실하게 열심히.”
“열심히……?”
“신체 구조도가 수록된 의학서부터 관련 서적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어요.”
과연 바일레온다운 대답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마리엔, 책에 따르면요. 부부간에 솔직한 대화가 중요하대요. 이게 좋다, 저건 별 감흥이 없었다. 감추지 말고 얘기할수록 더, 더, 더 좋아진댔어요.”
“여기서 더, 더, 더요?”
마리엔은 혀를 날름 빼물었다.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죽지 않을까?
침대에서 너무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던 남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것도 같다.
물론 후작 부부 중에 그 남자와 같은 이유로 쓰러지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건 필시 바일레온이 아닌 저일 터다.
‘쇠한 기력을 자각 못 하고 좋네? 더 좋네? 세상에, 웬일이야!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예! 이렇게 끝없이 남편을 탐하다가 픽, 쓰러지겠지.’
갈발 미남 한길만 뚝심 있게 걸어온 마리엔 디디 리셰른에게 어울리는 최후이긴 하다만.
‘역시 살아서 오래도록 바일레온을 탐하는 편이 좋을 거야.’
마리엔은 생각난 김에 자양강장제를 마셨다.
아내가 단숨에 비운 약이 무엇인지 확인한 바일레온이 그녀에게 물었다.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피곤해요? 내가 어제 너무 심했…….”
“힘들어서가 아니에요.”
벌써 약효가 도는 걸까? 마리엔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열네 병이나 챙겨 왔거든요. 부지런히 마시지 않으면 짐 옮기는 이들이 고생할 듯해서요.”
바일레온은 자양강장제를 신혼여행 일자만큼이나 준비했다는 아내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마리엔의 의욕을 보여주는 지표이려나?’
만일 그렇다면 더욱 최선을 다해 아내를 모시는 수밖에.
“어쨌든 앞으로 이런 보조제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게 더 건강해질 거예요.”
지금도 건강으로만 따지면 황궁에서 내로라할 만큼 튼튼한 마리엔이지만 더 큰 목표가 생겼다.
“힘을 길러서 바일레온과 오래오래 행복해야지.”
“대화도 많이 하고요?”
“그럼요.”
마리엔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대화를 많이 해야 더, 더 좋아진다면서요.”
“우리 후작님의 향상심과 원대한 포부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죠.”
바일레온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멋져요.”
아침부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마리엔은 흐뭇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도 틀림없이 즐거우리란 확신이 들었다.
◇ ◆ ◇
늦잠을 잔 신부.
재촉하지 않는 신랑.
여행 이틀째에도 그들이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이유다.
사흘째 되는 날, 숙소를 나서는 마리엔에게 하녀가 말했다.
“그래도 해 떠 있을 때 호수마을에 도착하시겠네요. 저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낮의 풍경이 유난히 예쁜 곳이래요.”
마리엔은 마차에서 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꿈을 꿨다.
꿈속의 저는 열두 살로 돌아가 있었다. 열여섯 살의 바일레온이 제게 문법이며 수학 문제를 다정하게 가르쳐주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는 아카데미 입학시험은 혼자 할 때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
마리엔은 한 문제 차이로 아깝게 차석 입학을 할 수 있었다.
몇 년 뒤의 졸업식엔 바일레온이 해바라기 꽃다발을 들고 와주었다. 두 사람은 다음 해에 바로 약혼하기로 약속했다.
모든 사람이 제가 바일레온의 연인이며, 바일레온은 마리엔에게 속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깨어나기가 아쉬울 만큼 달콤한 꿈이었다.
“마리엔, 일어나요. 도착했어요.”
문득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렇게 곤히 자면 이따 정작 자야 할 때 어쩌려고요.”
“으음.”
“눈 떠요, 여보.”
마리엔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보라는 회심의 공격도 안 통하면…… 자기야?”
마리엔이 눈을 떴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요?”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 마리엔을 만나면 들려주려고 했죠.”
이 남자는 연애와 결혼을 위해 태어난 게 분명하다.
그를 이루어지지 않을 짝사랑 때문에 홀로 늙어가게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짓이다.
마리엔은 다시금 확신했다.
“내가 당신에게 반해서 다행이에요, 그쵸?”
마리엔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사랑받고 사랑할 준비가 된 남잔데. 다행히 내가 눈이 밝아서 당신을 알아보고는 콕 점찍었잖아요.”
“맞아요. 그러니 평생에 걸쳐 보답할 거예요.”
마리엔은 먼저 내린 바일레온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바로 앞이 호수라는데 구경하고 들어갈래요?”
“좋아요.”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권유에 흔쾌히 응했다. 그의 팔짱을 끼고 걷자니 어디선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호숫가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나무 때문에 숲처럼 느껴졌다.
구두 아래 또각, 하고 부러지는 마른 나뭇가지.
따사로운 햇살.
물가에서 불어오는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
옆에서 보폭을 맞춰 걷는 바일레온.
마리엔은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와…….”
호수를 마주한 마리엔은 탄성을 터뜨렸다.
“보석 같아요.”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왜 바일레온이 이곳을 여행지로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처럼 탁 트인 정경이 아닌 대신, 여기엔 이곳만의 운치가 있었다.
호젓하고 고요하고 따스한 호수.
호수는 바일레온을 닮았다.
“이상해요. 나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결혼식 때도 나오지 않은 눈물이 마리엔의 눈가에 고였다.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 봐요.”
마리엔은 사랑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웃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도 결국엔 목적지에 도착한 것처럼, 마리엔과 바일레온 또한 부부로 맺어졌다.
“바일레온 리셰른.”
“네, 마리엔.”
“좀 지겨울지 몰라도 또 물어볼게요.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확인할지도 몰라요. 나랑 결혼하길 잘했죠?”
그러자 바일레온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이후에 몇 번을 물어도 항상 진심을 다해 대답할게요.”
행복이 수면 위에 반짝이는 햇살처럼 퍼져나갔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