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15)
“저, 비어스 경. 여쭤볼 게 있는데요.”
바일레온은 집무실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민 제3보좌관을 반겨 맞았다. 아마 저번 사건의 범인을 잡았냐고 물어보러 왔을 것이다.
마리엔이 머뭇거리며 책상 앞까지 다가왔다. 바일레온의 권유에 그녀가 의자에 앉았다.
“아직 범인 추적 중이에요. 의심스러운 이를 세 명으로 좁혔는데, 실행범과 배후가 별개인 사건으로 보여요.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이 그렇듯이요.”
“……네?”
“세 명 다 디디 보좌관과 접점이 없는 황궁 시녀거든요. 그중 한 명은 디디 보좌관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더군요. 집무실 밖에 붙은 명패만 보고 양동이를 설치한 거예요. 물론 그이가 실행범이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
“어.”
“셋 중 누가 범인이든 윗사람의 지시를 받았겠죠.”
마리엔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일레온은 그것을 걱정으로 해석했다.
하긴 얼마나 불안할까.
정체를 모르는 상대에게 공격받고 있다. 그것도 황궁 안, 자신의 일터에서. 아무리 씩씩한 마리엔이라도 신경이 쓰일 게 당연했다.
“내 목표는 배후까지 파악하는 거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예요. 그동안 많이 불안할 테니……. 개인 경호를 붙여줄까요? 티 나지 않게 디디 보좌관 주변에서 지킬 수 있도록.”
“저기, 비어스 경.”
“말해요.”
“아까부터 무슨…… 이야길 하고 계신 건가요?”
마리엔이 큰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바일레온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삼 초 정도를 흘려보냈다.
“저번에 디디 보좌관 집무실 문 위에 양동이를 올려둔 범인이요. 보좌관이 문을 여는 순간, 양동이가 떨어져 피와 창자를 뒤집어썼잖아요.”
마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범인을 잡겠다고 했어요.”
“네, 그러셨죠. 감사하게도.”
“그건 기억해요?”
“네.”
마리엔이 말갛게 대답했다. 바일레온은 말을 할수록 자신의 첫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대답하는 보좌관. 마리엔의 모든 요소가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뭐 어떻다고?
“디디 보좌관이 방금 물어볼 게 있다고 했을 때…… 당연히 수사 진척도에 관한 질문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보아하니…… 내 착각이었던 듯하군요.”
“오.”
“미안해요. 실은 수사 담당이 오 분 전에 보고하고 갔거든요. 보좌관이 문을 열 때까지도 온통 그 생각뿐이어서.”
바일레온은 다시금 사과했다.
“내 안 좋은 습관이에요. 지레짐작하는 거.”
자신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황궁을 출입했다. 황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게 습관이 됐다.
바일레온의 이런 성향은 오데트를 마음에 품으면서 더 심해졌다.
그녀가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의 타고난 성품 중에 오데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많았던 거다.
타인에게 너무 친절하기 금지.
아프고 힘든 거 오기로 참고 있을 때 도와주기 금지.
남의 시선을 끌 만큼 화려하거나 희귀한 선물 금지.
이 밖에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았다. 오데트는 규칙 지키기를 강요한 적 없지만, 바일레온은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끝없는 자기검열과 상황예측은 그렇게 제2의 천성으로 자리 잡았다.
오데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갈고닦은 기술은 다행히 바일레온의 본업에도 유용했다.
문제는 간혹 그런 기술이 안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다.
마리엔 디디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바일레온은 자신의 보좌관이 예측 불가한 인물임을 잠깐 잊고 말았다.
“뭘 물어보려고 했습니까?”
그리고 마리엔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은 제3보좌관은 이번에도 놀라운 소리를 했다. 그녀가 멍하니 되물었다.
“수사를 진짜 하고 계셨던 거예요?”
바일레온의 귀에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숨을 쉬고 계셨던 거예요?’와 비슷한 말처럼 들렸다. 바일레온 비어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질문이다.
희한해.
그대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내 비밀은 알면서, 왜 이런 부분은 모르지?
“내 입으로 말했잖아요. 꼭 범인을 찾겠다고.”
“네에……. 그러셨긴 하지만.”
마리엔이 입을 오물거렸다.
“경은 이 나라의 재상이시잖아요.”
재상인 게 어때서.
“그러니까 제 말은…….”
보좌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슬슬 알 것도 같았다.
“바쁘시잖아요. 할 일이 엄청 많으시고, 하나같이 국가 중대사고……. 그에 비하면 제 양동이 투하 사건은 너무 소소해서.”
상대의 말을 자르고 싶진 않지만 이건 너무했다. 도저히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바일레온이 끼어들었다.
“하나도 안 소소합니다. 쏟아진 게 돼지 피와 창자여서 샤워만 하면 됐죠. 하지만 만일 그게 더 위험한 물질이었다면요? 양잿물이었으면 꼼짝없이 화상을 입었어요.”
“그렇지만 양잿물이 아니었고 또…… 제가 근래 눈에 띌 짓을 좀 저지르긴 했잖아요.”
마리엔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누군가의 심기를 거슬렀나 보죠.”
“심기가 불편해졌다고 남을 해치면 안 됩니다. 너무 당연한 건데 황궁에서는 자꾸 예외가 발생하더군요.”
그건 그렇고, 하면서 바일레온이 화제를 바꿨다.
“나 조금 서운해해도 돼요? 방금의 해프닝이 아니었다면 디디 보좌관은 내가 계속 빈말을 하는 줄 알았겠네요.”
이래 봬도 첫눈에 신뢰감을 주는 외모라고 자신해왔다. 바일레온은 잘생겼다는 찬사보다도 그 말이 더 듣기 좋았다.
외교부에서도 까다로운 사절을 맞이할 때면 재상의 동석을 요청하곤 한다. 그저 바일레온이 같은 공간에 앉아 있기만 해도 분위기가 누그러진다는 게 이유였다.
황제도 어린 바일레온을 보자마자 “고놈 견실하게도 생겼구먼. 외모 덕을 많이 보고 살겠어.”라고 평했다.
자화자찬이 자꾸 길어진다. 마치 우기는 것 같네. 내 이마에 ‘빈말 안 하는 사람’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지 않냐고.
그리고 마리엔에게 서운하다는 말 역시 그냥 한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고작 몇 달밖에 안 됐다고 해도, 마리엔은 자신을 믿어줄 줄 알았는데.
저번에 임신 오해 때도 그랬다. 바일레온 입장에서는 너무 상식적이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부분에 대해 마리엔은 감탄하지 않았었나.
‘그대 눈에 난 대체 어떤 사람인 거야.’
정말 묘하게 서운했다.
“당연히 경을 의심한 게 아니에요! 비어스 경이 제게 거짓말을 하셨을 리 없죠. 하지만…….”
또, 또 하지만.
바일레온은 그녀를 대신해 문장을 끝맺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처리순서가 뒤로 밀렸을 거다?”
슬쩍 말끝을 올리자 마리엔이 무언의 동의를 했다.
그래도 이제는 눈치 살피는 시늉이라도 하네. 고개를 숙인 채 눈만 빼꼼 들어 올려다보는 모습에서 풀 죽은 토끼가 연상됐다.
사람 서운하게 했다가 한순간에 웃음 참게 했다가. 아주 혼자 다 하지.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마리엔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양동이 투하 사건 같은 데까지 신경 쓰시면 몸이 열두 개라도 안 남아나겠어요.”
“디디 보좌관은 내 사람이니까요.”
대답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난 내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조금 과도한 강박증이 있거든요.”
“…….”
“왜요? 안 그럴 것처럼 보여요?”
마리엔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정작 입 밖으로 낸 말은 내 사람뿐이었지만.
보좌관은 그 단어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한동안 “내 사람? 내 사람. 내 사람?”을 반복했다.
양동이 속 내용물을 뒤집어썼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던 것 같은데. 내 사람이란 말이 그렇게 이상한가?
가만 놔두면 저녁이 될 때까지 앵무새처럼 내 사람만 반복하게 생겼다. 바일레온은 원래 하려던 질문이 뭐였냐며 주의를 환기했다.
“아차, 원래 질문이 뭐였냐면……. 좀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데요.”
솔직하게 말할까?
이제까지 제3보좌관이 한 말 중에 안 엉뚱한 걸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머리카락 이야긴데요.”
심지어 우리 사이엔 익숙한 소재야. 하나도 안 엉뚱해.
“손댈 수 없는 누군가의 머리카락에 무언가를 바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누군가는 누구고, 무언가는 뭔데요?”
“아이, 그것까지 말할 순 없죠.”
마리엔이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딱 봐도 지혜를 빌리려고 온 것 같은데, 기본적인 사항도 공유를 안 해줘?
평소라면 적당히 넘어갔을 터다. 하지만 마리엔은 방금 바일레온 안에 서운함 포인트를 하나 적립한 상태였다.
“최소한 어떤 제형인지는 알아야죠. 액체에 가까운지, 가루 형태인지. 그거에 따라 방법도 달라지니까.”
마리엔의 예쁜 하늘색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이동했다. 흔들리는 초점에서 극도의 당황이 느껴졌다.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 재는 게 눈에 보였다.
“묽은…… 크림 종류예요.”
“바르기만 하면 상황 종료입니까? 누가 발랐는지 들켜도 상관없어요?”
“안 들키면 좋긴 한데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바른 다음에 시간이 좀 지나야 해요. 그동안 안 씻어내는 게 핵심이에요.”
“얼마나요?”
“한…… 삼사 분?”
마리엔이 상관을 힐끗 쳐다봤다.
“오 분쯤?”
필요한 시간은 오 분인가 보군. 바일레온은 책상 위로 손깍지를 끼며 미소 지었다. 앞서 말한 삼사 분은 오 분으로 특정되지 않으려고 던진 허수다.
“잠깐 의식을 잃게 하거나 제압할 수만 있으면 오 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요.”
“그럴 수 없어요.”
마리엔이 단언했다. 아까 재상 집무실에 발을 들인 이후로 가장 확신에 찬 말투였다.
“절대 불가능.”
“잠들었을 때를 노리면요?”
“안 돼요.”
“경호원 때문인가요?”
“안 자요.”
“……네?”
세상에 잠을 안 자는 사람도 있나. 바일레온이 조금 황당한 듯 되묻자 마리엔은 귀여운 코를 찡그렸다.
“그냥 안 자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세요.”
바일레온은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인간이긴 한 거죠?”
“네, 끔찍하게도…….”
대답하는 마리엔의 얼굴은 침통 그 자체였다. 바일레온은 순한 토끼 같은 보좌관을 조용히 응시했다.
‘근데 대답을 꼬박꼬박 다 하네.’
마리엔은 모르나 본데 대답을 아예 안 한다는 선택지도 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 당장 좀 도와달라고 호소할 수도 있다.
한데도 마리엔은 착실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살면서 그녀가 취조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괜한 걱정까지 드는 바일레온이었다.
“혹시 그 누군가가 블랙우드 공작입니까?”
순간 마리엔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앉은 자리에서 족히 한 뼘은 튀어올랐다. 토끼 같다고 했더니 정말 토끼가 되어버렸나.
“아뇨. 그럴 리가. 아닌데. 완전 아닌데요? 틀렸는데?”
부정의 말을 다다다 쏟아낸 마리엔이 고개를 푹 숙였다. 끝내 들통나고 만 게 분한 모양이었다.
“디디 보좌관.”
바일레온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게로 쏟아지는 시선에, 마리엔이 쭈뼛거리며 상관을 올려다봤다.
“대체 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