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23)
오데트가 마음먹은 이상, 황실 수사관과 경비대를 몽땅 동원해도 마리엔 디디의 행방을 찾기란 불가능할 터였다.
“죽다 살아났네.”
마리엔의 혼잣말에 바일레온이 말했다.
“그게 디디 보좌관의 특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네? 제 특기는 아니죠.”
엄밀히 말하면 바일레온이 매번 구해주고 있지 않나. 마리엔의 눈썹이 점점 처졌다.
“힝.”
어리광을 부리려는 건 아니다. 자신은 깨닫지 못한 사이에 또 죽을 위기를 넘겼다. 오데트가 주는 공포감은 짐승 같은 북부 놈과는 또 달랐다.
뒤늦게 밀어닥친 안도감에 저절로 칭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비어스 경이 없으면 전 어떻게 살죠?”
내가 당신에게 이 은혜를 다 갚고 가야 할 텐데.
“쫓아내지 않아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 말 마요.”
바일레온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고마운 쪽은 나라고 말했잖아요.”
그는 마리엔이 감정을 추스르길 기다렸다가 조언했다.
이제 오데트도 공작의 머리카락을 자르려는 마리엔의 계획을 안다고.
오데트 본인은 개입 안 하겠다는 모종의 허락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공작을 민머리로 만들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거라고.
“전하와 공작은 닮은 점이 많아요. 자존심이 센 것도 그중 하나죠.”
바일레온이 일부러 눈높이를 맞춰왔다.
“그러니 마리엔, 기어코 공작의 머리를 벗길 거라면요.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하는 행사 전날은 피해주세요.”
“아.”
“공작도 공작이지만 전하께선 이 이상 기회를 주시지 않을 거예요. 특히 머리카락에 관해서는 본인 입으로 허락하신 만큼 노여움이 더 크겠죠.”
첫 번째 경고, 노란 종이 새.
두 번째 경고, 돼지 피와 창자.
세 번째 경고이자 레드카드는 아까 바일레온이 가까스로 무산시켰으니, 마리엔에게 이제 남은 기회는 없는 것이다.
행사를 연기시킬 수도 없는 상황에 오데트를 밀어넣지 말자. 내 모가지를 지키자.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근데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하는 행사라면 뭐가 있을까요?”
조만간 황실 무도회 같은 게 열리려나. 그렇다면 날짜를 미리 파악해둬야겠다.
바일레온이 조용히 대답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의 약혼식이요.”
그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말을 이었다.
“다음 주 금요일이라네요.”
◇ ◆ ◇
‘기분이 별로일 줄 알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별로네.’
오늘은 4황녀와 블랙우드 공작의 약혼식 날이다. 갖은 애를 써봤지만 결국 오늘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다른 책 빙의자들도 자신과 같은 기분이었을까?
마리엔은 대구 간유를 삼키고도 입을 헹구지 못하는 사람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대구 간유가 무슨 맛인가 하면 왠지 카인 블랙우드가 떠오르는 맛이다.
‘한마디로 구역질 난다고 할 수 있지.’
마리엔은 어제 저녁식사 후의 거짓말 게임 때문에 평생 몰라도 될 맛을 알게 됐다.
간단히 말하면 비어스 백작가 사람들은 뻔뻔한 연기의 천재였고, 마리엔 디디는 아니었다.
자신이 뽑은 카드에서 범인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부터 마리엔은 얼굴근육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바일레온이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 했으나 그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마리엔은 결국 테이블 중간의 작은 단지 뚜껑을 열고 대구 간유 한 스푼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가여운 보좌관님. 딱하기도 하지.”
마지막까지 마리엔을 집요하게 추궁했던 비어스 가의 막내 데이지도 그 순간만큼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주었다.
백작부인은 그 역겨운 기름이 심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영양제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렇겠지. 반드시 효능이 뛰어나야만 하는 맛이다.
그리고 그토록 비리고 끔찍한 생선 기름조차도 북부 놈보다는 쓸모 있다는 생각을 할 즈음이었다.
“디디 보좌관님?”
비어스 가의 둘째 클로이즈가 손님방으로 들어왔다.
“드레스는 다 고르셨나요?”
“둘 중에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에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온 클로이즈는 이윽고 난관에 봉착했다.
“음, 보좌관님.”
클로이즈가 복잡한 얼굴로 말을 골랐다.
“우린 약혼식에 참석하잖아요. 식이 끝나면 무도회가 이어지고요. 왜 똑같은 검은 옷을 두고…….”
“전혀 똑같지 않아요. 보세요. 오른쪽은 소매 전체가 레이스고, 왼쪽은 가슴부터 세로로 프릴이 달려 있잖아요.”
“그런 게 달린 검은 옷이죠. 이건 장례식용이에요.”
알아요. 압니다. 오늘은 내 마음의 장례식 날이랍니다. 마리엔은 속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진짜 이걸 입고 갔다간 오데트가 가만두지 않겠지.’
상대가 종이 새 같은 우아한 경고를 알아먹지 못하니까 바로 돼지 피와 내장을 머리 위로 쏟아붓는 원작 여주님의 대단하심을 보라.
바일레온이 아니었다면 하찮은 마리엔 디디 따위는 일찌감치 쓱싹 당했을 것이다.
상반신은 이름 모를 들판에, 하반신은 망망대해에.
머리는 끝까지 못 찾았다는 괴담이 사람들 사이에 떠돌더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다른 로판에서는 센터 자리를 위협받은 여주가 흑화해서 악역이 될지 몰라도 오데트는 아니다.
오데트는 이미 완성형이다.
방해물을 처리하는 데에 흑화 같은 건 필요 없다 이 말이다.
“하하, 사실 농담이었고요. 이…… 이걸 입고 갈까 해요.”
마리엔은 옷장에서 광택이 흐르는 연회색 드레스를 꺼냈다.
봉긋한 퍼프 소매에 격자로 수를 놓고, 모서리가 만나는 지점마다 진주를 달아놓은 드레스였다.
색깔만 얌전하지 자잘하게 잡아놓은 주름이며 뒤쪽의 리본 장식을 보면 화려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클로이즈 눈엔 아닌 모양이었다.
“보좌관님 나이대엔 너무 밋밋한데요…….”
저기요, 모태 귀족 아가씨. 여기 어깨 부분에만 진주가 수십 개 달려 있습니다.
“아! 다이아몬드를 매치하면 좀 낫겠다.”
클로이즈가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자기 방에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녀는 다이아몬드를 박은 백금 티아라와 목걸이 세트를 내밀었다.
차마 몇 캐럿인지 물어보기 두려운 크기였다.
“이제야 좀 연회복 같네요!”
클로이즈가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엔은 즉시 무릎을 꿇고 다이아몬드를 거는 형벌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전 잃어버리고 말 거예요. 반드시, 분명, 결단코 잃어버릴 거라고요. 그리고 제겐 보상할 돈이 한 푼도 없어요!”
클로이즈는 기겁하며 마리엔을 일으키려 애썼다. 바일레온에게 이 방식이 참 잘 통하던데, 바일레온의 여동생에게도 효과가 만점이었다.
결국 마리엔은 목에 아무것도 걸지 않고 백작저를 나설 수 있었다.
안도감에 취해 있느라 클로이즈가 묘하게 분한 얼굴로 수첩에 뭔가를 끼적이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마리엔은 재상의 보좌관으로 예식 참석이 가능했지만, 귀족이 아니라서 뒷줄의 가장자리를 배정받았다.
‘화장실 가기 편한 자리네.’
어디 그뿐인가. 짜증 나는 북부 놈의 면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 썩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클로이즈는 안타까워했다.
“비어스 가 사람이 되면 앞줄에서 구경할 수 있을 텐데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근데 백작부인께서 절 좋아하시긴 하지만 다 큰 성인을 입양하실 것 같지는 않고요.
마리엔은 방긋 웃으며 클로이즈를 저 멀리 앞자리로 떠나보냈다.
약혼식은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게 대관식인지 약혼식인지 살짝 헷갈릴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였다.
오데트와 카인 둘 다 서늘한 마스크를 지닌 데다가 한순간도 웃지를 않아서 더 장엄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미남미녀라 나란히 세워놓으니 어울리긴 하네요.”
“둘의 분위기가 닮았죠.”
“4황녀 전하가 오늘따라 빛이 나시는군.”
“블랙우드 공작은 평생 결혼을 안 할 줄 알았더니.”
“그러니까요. 게다가 상대가 4황녀라니. 솔직히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니까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떠들 사람은 떠들었다. 마리엔은 앞사람들의 속닥임을 한 귀로 흘리며, 예식장 빠져나갈 기회만을 엿봤다.
어떤 귀부인이 입가에 손수건을 댄 채 빠르게 출입문으로 향했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묻어가자!’
마리엔은 귀부인을 부축하는 척하며 식장을 빠져나갔다.
마리엔 혼자였으면 누구냐, 어딜 가느냐, 끝날 때까지 참으라는 식으로 귀찮게 굴었을 보안 담당은 임신한 귀부인을 알아보고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 높은 가문의 부인인가 보다. 어쩐지 브로치의 보석 크기가 남다르다 했다. 이거 평민 출신 공무원은 어디 서러워 살겠나.
마리엔은 정신없는 귀부인을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준 뒤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이제부터 바삐 움직여야 한다.
오늘은 디데이.
마리엔은 황궁 사람들의 관심이 약혼식에 몽땅 쏠려 있을 때, 북부 놈의 욕실에 들어가 샴푸를 제모제로 바꿔놓을 참이었다.
그렇다. 지난번에 실패한 계획을 재시도하려는 것이다.
남들 눈을 피해 복도를 걷고 있자니, 아까 약혼식에서 발견한 뜻밖의 성과가 떠올랐다.
‘오데트의 약혼식 드레스가 원작과 달라졌어.’
원작에서 오데트는 눈동자 색에 맞춘 붉은 장밋빛 실크 드레스를 입고 약혼식장에 등장한다.
그런데 아까 본 오데트의 드레스는 은실로 수를 놓은 보라색이었다. 자리 때문에 오데트의 얼굴은 제대로 못 봤어도 바닥에 길게 끌리는 드레스만은 똑똑히 확인했다.
‘전개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야……!’
마리엔의 가슴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호화로운 방 열쇠는 이미 바일레온을 통해 입수해두었다.
마리엔은 묵직하게 늘어진 커튼 너머로 복도를 빼꼼 내다보았다. 카인의 방 앞엔 아무도 없었다.
기다려라, 깐 달걀. 내가 간다.
그때 패기만만하게 걸음을 내딛는 마리엔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속삭이듯 한 저음이었다.
“자매님, 길을 잃으셨습니까?”
얼마나 가까이서 말했으면 순간 상대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이렇게나 가까이 접근할 동안 알아채지 못했다니. 마리엔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은색 묵주 목걸이였다.
피에 젖은 듯한 적갈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는 몸에 꼭 맞는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짓이긴 장미꽃잎 향기가 공기 중에 퍼졌다. 남자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길고 촘촘한 적갈색 속눈썹이 강조되어 보였다.
그의 뒤로 자줏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마리엔은 혼란에 빠졌다.
‘넌 또 누군데 특수효과가 지원돼?’
그리고 남자가 다시 말을 시작하자마자 마리엔은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부디 제가 사랑스러운 자매님께 도움이 된다면 좋으련만…….”
왠지 모르게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이 떠오르는 퇴폐적인 분위기.
레슬리 아나이스 사제.
그에 대한 마리엔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사이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