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27)
1부가 끝나고 휴식시간이 시작됐다. 마리엔은 드레스 차림으로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휴식시간이 무려 한 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클로이즈는 한 시간이 대수냐는 듯이 반응했다.
“저번에 어머니랑 본 공연은 막간이 구십 분이었는걸요.”
구십 분이라니. 여차하면 집에 갔다 와도 되겠네.
마리엔이 지켜보니 막간이 그렇게 긴 이유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사교의 장으로 활용했다.
사업가들은 매끈한 명함첩에서 명함을 꺼내기 바빴다. 혼기 찬 자녀를 둔 귀부인들은 비슷한 나이대의 미혼 자녀가 있는 집에 웃는 얼굴로 접근했다.
바일레온 남매가 있는 박스석에도 용감하게 찾아온 이들이 제법 있었다. 마리엔은 남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와, 여기 화장실에서는 달리기도 가능하겠다.”
물기 한 방울 없는 청록색 타일 바닥에 커다란 거울과 황동 수도꼭지, 우아한 생화 장식.
숙녀 휴게실 안쪽에 마련된 화장실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마리엔은 보좌관 숙소가 오페라 하우스의 여자 화장실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온수도 콸콸 나와.”
오페라 하우스 화장실의 압도적 우승 확정. 어쨌든 마리엔은 한결 산뜻한 상태로 화장실을 나설 수 있었다.
“4황녀 전하께 인사드렸어요?”
“공연 시작 전에 가보려고 하다가 실패했지 뭐예요. 이따 다시 시도해보려고요.”
그대로 숙녀 휴게실을 쌩 나가려던 마리엔은 귀부인들의 대화에 멈칫했다.
“오늘 전하께서 착용하신 귀걸이가 폐하의 하사품이라죠.”
“원래는 아인펠 국 왕가의 보물이라네요. 역사가 200년이나 된 귀한 물건이라 황후께서도 무척 탐내셨대요. 근데…….”
“그걸 공작과의 약혼 축하선물로 주신 거군요.”
“어떻게 저 얼음 심장의 남자를 잡으셨나 몰라도, 황실에서 전하의 지위가 급부상하셨어요.”
마리엔은 심통 난 얼굴로 복도로 나갔다.
바일레온도 몸이 부서져라 일한단 말이야!
누구한테 제위를 넘길까요, 척척박사님께 물어봅시다, 딩동댕동 놀이나 하는 황제를 대신해서 아침부터 밤늦도록 일하는데!
바일레온이 해결한 크고 작은 분쟁만 나열해봐도 책 한 권은 나올걸?
그런데도 황제는 북부 공작을 사윗감으로 데려온 딸을 크게 치하했다. 만일 오데트가 바일레온과 약혼했더라면 저 귀걸이를 하사받지 못했을 거다.
‘바일레온은 어차피 잡은 물고기라 이거야?’
더럽고 치사해서 할 말이 없었다.
황제부터가 저러니까 오데트가 북부 놈과 동맹 맺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호응이 바로 오잖아. 바일레온에게 마음이 기울었다가도 돌아오게 생겼다고.
“귀걸이, 꼭 찾고야 만다.”
마리엔은 의지를 불태우며 박스석으로 돌아갔다. 마리엔의 위치에서는 오데트의 얼굴이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원작 여주의 실물이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마리엔은 아쉬운 한편으로 잘됐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귀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이게 편하다. 마리엔은 열 가지 보석으로 만들었다는 오데트의 귀걸이 실루엣을 재차 확인했다.
일단 아직은 양쪽 다 멀쩡한 것 같았다.
오데트에게 인사하려는 사람들은 오데트의 귀걸이도 눈여겨볼 게 분명하다. 한쪽이 사라졌다면 당연히 처음 발견한 사람이 말을 해줄 것이다.
“보좌관님, 휴게실에 사람 많던가요?”
클로이즈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휴게실? 아, 화장실에 사람 많더냐고 묻는 거구나. 마리엔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 좀 실례할게요.”
원하는 답을 얻은 클로이즈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갔다. 비어스 가의 둘째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어느덧 2부의 막이 올랐다. 공연 중에는 다들 착석한 상태니까 마음이 편했다. 마리엔은 긴장의 끈을 느슨히 한 채 공연을 보았다.
콜록.
바일레온이었다. 감기약을 먹고 상태가 일시적으로 호전됐지만, 그래서 막간에 너무 많은 사람을 상대해버린 탓이다. 슬슬 목이 간지러워지면서 마른기침이 터질 듯이 보였다.
하필이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가수가 아리아를 부르고 있었다. 마리엔은 얼른 외투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병을 바일레온에게 건넸다.
“기침 사탕이에요. 드세요.”
“……고마워요.”
목이 간지럽고 따가워서 괴로울 텐데도 기어코 감사인사를 하고 만다. 바일레온은 허브로 만든 사탕을 입에 넣었다.
“비어스 경이 계속 가지고 계세요.”
“알았어요.”
마리엔은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바일레온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공연이 막 끝났을 무렵, 옆 박스석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오데트에게 다녀온 바일레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집에 바로 가긴 어렵겠어요. 전하의 귀걸이가 사라졌습니다.”
◇ ◆ ◇
양동이 투하 사건의 배후를 알게 된 이후 마리엔은 결심했다. 앞으로 나대기 전엔 오데트의 눈치부터 살피자고.
만약 귀걸이를 잃어버린 사건이 오데트의 자작극이라면 마리엔 디디는 절대 여기에 관여해선 안 됐다. 아무리 바일레온을 돕고 싶어도 다음 기회를 보아야 옳았다.
그러나 마리엔이 기억하기로 오데트는 귀걸이를 잃어버리고 나서 진심으로 당황한다.
그 귀걸이는 오데트의 소유인 동시에 여전히 제국 황실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간수 못 한 책임을 엄히 물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오늘 같이 오셨다면 너무 신난 나머지 저 아래 무대에 올라가셨을 거예요.”
클로이즈가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화려한 극장에서 일어난 보석 도난이라니.”
“도난은 아니죠. 잃어버렸…….”
마리엔이 말을 하다 말았다.
“도난인가?”
마리엔은 클로이즈를 홱 쳐다보았다.
“왜 도난이라고 생각해요? 비어스 경은 귀걸이가 ‘사라졌다’고만 말했는데요.”
마리엔이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며 클로이즈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비어스 영애, 제 눈 똑바로 보고 대답하세요. 혹시…… 영애가 쓱싹하셨어요?”
클로이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마리엔에게 되물었다.
“보좌관님은 지금 절 범인으로 의심하시는 건가요?”
“막간에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운 점, 황녀 전하께 접근해도 의심을 안 살 수 있는 비어스 경의 동생이라는 방패막.”
“아니, 벌써 추리를 시작하셨네.”
클로이즈가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랑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막내 데이지랑? 왜 그들의 고질병이 말랑말랑 보좌관님께 옮아버린 거냐고요.”
클로이즈의 목소리에 차츰 슬픔이 짙어졌다.
“그럼 우리 아버지쯤 되는 별종……이나 보좌관님께 관심을 보일 텐데.”
이 아가씨, 태연하게 자기 아빠를 별종이라고 불렀어. 잠깐 멈칫했다가도 표현을 정정 안 했어.
“지금 제 연애 사업을 걱정하실 때가 아니잖아요, 영애.”
“세상에서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보좌관님!”
클로이즈가 부채를 휘둘렀다.
“사랑이 최고라고요. 사랑만이 이 세상을 구한다고요! 캬악!”
“어, 어, 진정해요.”
놀랍게도 이 아가씨는 방금 전 자기 아빠를 별종이라고 말했다.
정원을 열심히 가꾸고, 이따금 저택 방문객을 감쪽같이 속이는 취미가 있을 뿐인 백작을 두고 말이다.
정확히 캬악, 이라고 했지.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본문 외의 설정에는 다소 과감한 편이셨군요, 작가님…….’
엑스트라의 머리와 눈을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로 정했을 때부터 대강 눈치채긴 했지만.
하여튼 원작에선 그냥 사이좋은 비어스 백작 부부와 4남매로만 나와서 세부 특성이 이럴 줄은 몰랐다.
화목한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란 바일레온 비어스인 줄만 알았지.
밝은 괴짜 가족 사이에서 성장한, 거기서 유일하게 이성적인 남자이리라고는 전혀.
“영애의 말이 맞아요. 사랑이 최고. 사랑은 만능. 그러니까 대답 똑바로 하세요. 영애가 훔친 거 아닌가요?”
클로이즈가 부채를 빠르게 부쳤다. 본인이 순간 이성을 잃었는데도 딱히 놀란 기색이 아닌 마리엔을 다시 보는 눈빛이었다.
“아니에요.”
“그럼 막간에는 왜 그렇게 오래 자릴 비웠나요?”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크림 잔뜩 넣은 밀크티를 마셨어요. 잠깐 머리가 돈 거죠. 제 해명은 여기까지입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개인의 존엄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마리엔은 그쯤에서 클로이즈 추궁하기를 멈추었다.
“제가 보석 도난 사건이라고 말한 데엔 별 이유가 없어요. 보좌관님의 말씀이 맞아요. 실은 분실 사건이 정확하겠죠.”
클로이즈는 이것 역시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해명했다. 백작부인은 무슨 일이든 조금 부풀려서 사건으로 다루며 즐거워한다는 거다.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도난.”
마리엔은 중얼거렸다.
“주요 대사를 줄줄 읊을 만큼 마르고 닳도록 읽었는데도 몰랐어. 이게 도난 사건일 수도 있었구나.”
이제까지 마리엔은 오데트의 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문제의 귀걸이는 화려한 외양에 걸맞은 무게를 지녔다. 막간이 끝나기 직전, 개인 휴게실에서 한숨 돌릴 때 오데트가 잠깐 빼놨을지도 모른다.
휴게실을 나서기 전에 다시 착용하긴 했는데 뭔가 헐거웠던 거다. 오랜만의 외출로 피로해진 오데트는 귀걸이가 드레스를 타고 카펫에 떨어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에 들어온 급사는 성인 키 높이만 한 화병을 방 안 장식으로 뒤늦게 추가하고, 귀걸이는 그 밑에 깔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황녀의 수행원들은 귀걸이를 찾아 나서지만 아무도 거대한 화병을 들어볼 생각을 못 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리엔은 바일레온이 화병 밑을 살피도록 유도할 계획이었다.
‘근데 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냐면…….’
귀걸이를 찾아낸 자가 말했기 때문이다. 카인 블랙우드는 어디서 이걸 찾았느냐는 약혼녀의 질문에 휴게실 화병 밑이라고 대답했다.
바일레온은 개인 휴게실 담당 급사를 불러오고, 급사의 진술로 블랙우드의 말은 사실임이 확인된다.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북부 놈이 숨긴 거라면?’
귀걸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데트의 시점에서만 서술됐다. 북부 놈이 이 일에 대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독자 입장에선 알 길이 없었다.
마리엔은 무대 앞에서 수행원과 경비대에게 지시 내리는 바일레온을 내려다봤다. 저 아래까지 내려가서 바일레온에게 귓속말하기도 좀 그런 상황이었다.
마리엔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거 조심해야겠다. 마음이 앞서서 제 손으로 귀걸이를 찾아 바쳤다간, 오히려 범인으로 몰릴 위험도 있겠다.
‘북부 놈의 자작극이라면…… 이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비어스 백작부인의 부재를 아쉬워하던 찰나, 마리엔의 눈에 그녀의 딸이 들어왔다.
“영애,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모로 가도 수도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말이 있지. 백작부인이 없다면 백작부인의 딸을 어떻게든 써먹는 거다!
“저기 복도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공작 말이에요. 만일 그가 전하의 귀걸이를 슬쩍 숨긴 사람이라면.”
“……네?”
“이유가 뭘까요? 최대한 로맨틱한 이유를 생각해내 봐요.”
사랑과 로맨틱은 클로이즈 비어스의 두뇌를 과속회전시키는 주문인가 보다. 영애의 얼굴이 갑자기 헤실헤실 누그러졌다.
“사늘한 황녀 전하의 신뢰를 얻고 싶어서겠죠?”
미친놈이 그걸 자작극으로? 마리엔은 욕을 참고서는 클로이즈에게 두 번째 자극을 주었다.
“그럼 내가 찾아냈습니다, 하고 알리기 전까지는 어디에 숨기겠어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몸이죠. 누가 감히 블랙우드 공작의 몸을 수색해요?”
마리엔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화병 밑부터 어떻게든 확인한다. 거기에 없으면?
세레니티 빛으로 불타는 눈동자가 복도를 향했다.
너, 각오해